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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증산도 도전 - 순망치한 중국 6·25 한국전쟁 참전

by 도생(道生) 2016. 1. 28.

증산도 『도전道典』 - 천지공사天地公事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의 명분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팽덕회 - 모택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은 북한의 불법남침으로 촉발된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중일전쟁과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국공 내전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북한의 남침에 수도 서울은 불과 3일 만에 함락이 되었고 두 달 만에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남한 전 지역의 90%가 점령당했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연합군은 북진을 계속하였다.

 

 

 

 

 

 

 

 

 

 

중국은 어려운 국내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주은래 중국 총리 겸 외교부장은 1950년 9월 30일 제국주의자의 중국 인근 국가에 대한 침략전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하였고, 중국 국가 주석 모택동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명분을 내세우며 6·25 한국전쟁 참을 공식화했다. 

 

 

 

 

 

(팽덕회 - 김일성)

 

 

 

 

중공군은 수십 년 전쟁터에서 다져진 전략과 전술을 발판으로 물밀 듯이 밀어붙이는 해전술을 펼치며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1951년 1월 4일 서울을 재점령한다.

 

그러나 그 이상은 전진하지 못한다. 소련 공군의 지원을 받고 내려온 중국 총사령관 팽덕회는 북한의 김일성을 비롯한 소련과 중국 수뇌부와 마찰을 빚어가면서도 남진을 중지시킨다.

부대를 재정비하고 보급을 담당하는 병참부대와의 거리를 좁힌다는 이유였다.

 

 

줄행랑을 치던 유엔군은 다시 진격의 기회를 잡고 총반격을 하여 1951년 4월 12일 북한군과 중공군을 삼팔선 이북으로 몰아냈다.

 

 

 

"장차 청일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할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5:405:1~2)

 

 

 

 

 

 

 

 

 

 

1950년 10월 19일 중공군 26만 명이 압록강을 넘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다. 약 100만 명의 중공군이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정확한 통계는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중공군의 사상자는 모택동의 아들을 포함하여 약 15만여 명이라고 발표하였으나 2년여의 전쟁 기간에 수많은 전투에서 희생된 인명을 대충 추산해 봐도 의문이 가는 숫자다.

 

중국은 정규군이 전쟁에 참전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하여 중화인민의용군으로 지원병 형식의 직제와 편제를 썼다고 하나 중공군의 다수가 정규군 출신으로 수십 년에 걸친 중일전쟁과 국공 내전에서 활약한 군인이었다. 

 

 

 

 

 

 

 

 

 

 

증산도 도전道典은 미래의 설계도이자 이정표

 

 

 

"대인의 말은 구천에 사무치나니 나의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아무리 큰 일이라도 도수에 맞지 않으면 허사가 될 것이요, 경미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도수에만 맞으면 마침내 크게 이루어지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60:1~2)

 

 

 

증산 상제님께서 1908(무신)년 중국과 한반도(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에 관한 천지공사를 보셨다.

1950년 모택동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의 중국 참전 명분을 순망치한이라 하였다.

중국과 국경을 같이한 같은 북한이 망하면 중국 역시 온전하기 어려워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한국전쟁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운 상승에도 대한민국(북한)과 중국이 순망치한의 밀접한 관계를 맺는 천지공사를 보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개벽으로 넘어가는 분기점에서도 중국은 순망치한의 큰 역할을 한다.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이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나니 중국 인민이 부흥하여야 우리도 이어서 부흥하게 되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5:322:17)

 

 

"나의 말을 잘 믿을지어다.

나의 말은 구천(九天)에 사무쳐 잠시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부절(符節)과 같이 합하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93:5~6)

 

 

"나의 말을 듣기가 어렵다...

나의 말은 쌀에서 뉘 가리기와 같으니라. 알아듣겠느냐?

알기 쉽고 알기 어렵고 두 가지다. 알아듣겠느냐?

우리 일은 쉽고도 어려운지라. 알고도 어렵고 모르고도 쉬우니라.

똑똑한 것이 병통이니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아는 것도 병이 되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6:11:1,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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