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일본 총리와 각료(장관) 국회의원 야스쿠니 신사참배①

by 도생(道生) 2017. 6. 17.

일본 총리와 각료(閣僚, 장관), 국회의원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참배 ①

 

 

 

 

 

 

 

 

 

 

 

 

 

막부시대 상징적인 존재로 사실상 허수아비였던 일본 왕은 메이지유신(명치유신) 이후 살아 있는 신(神)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국가 자체였다.

 

명치(메이지) 일본 왕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초혼사招魂寺, 정국신사靖國神社)를 세워 충성과 호국의 상징으로 추켜세우며 '일본의 신'으로 추앙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살아 있는 신()일본 왕의 명()으로 건립된 신사다.

 

일본 왕이 직접 참배하는 야스쿠니 신사는 굳이 법제화하지 않더라도 천황의 신민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신성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해야 했다.

 

 

 

 

 

 

 

 

 

 

 

 

천황의 신민으로서 일본 제국의회 국회의원, 내각 총리와 각료(장관) 등을 비롯하여 침략전쟁을 위해 전쟁터로 떠나는 일본군과 공무원과 민간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일본 왕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였.

 

 

 

일본은 메이지유신(명치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1885년 입헌군주제(내각제도)로 전환하였다.

지금은 일본 왕이 상징적인 존재지만, 19세기 말부터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일본 왕은 절대적 존재였다.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유럽의 입헌군주제, 특히 '독일제국 헌법'을 바탕으로 '대일본제국 헌법', 소위 '명치 헌법'을 기초하였다. 일본 왕은 '대일본제국 헌법' 위에 군림하였으며, 살아 있는 신(神)으로 추앙받는 초월적 존재였다.

 

 

 

천황중심제(절대군주제)의 무소불위 권력으로 일본을 직접 통치하는 일본 왕 앞에 일본 제국의회는 한낮 전쟁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각 총리와 각료(장관) 역시 일본 왕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충견에 지나지 않았다.

 

 

 

 

 

 

 

 

 

 

 

 

1889년(명치 22년) 일본 왕이 천황의 신민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공포된 일본 제국주의 '명치 헌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일본 왕은 '신성불가침 존재'이며 '국가통치의 절대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1조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이 통치한다.'를 비롯하여 천황의 신성(神聖) 침해 불가, 국가 통치, 입법권, 사법권, 의회 소집 및 해산, 일본군대 통수권, 전쟁 선포 등 일본 왕은 살아 있는 신(神) 자체로 절대적 존재이며,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갖는다.

 

제55조에는 일본 정부의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는 일본 왕을 보필하고 책임만 지는 존재, 한 마디로 충견 노릇만 하면 된다고 규정했다.

 

 

 

일본 통치에서부터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권리행사는 오직 일본 왕의 것이며, 일본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 국회의원 등은 책임만 지는 존재가 된다. 명치 헌법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1946년 폐기 된다.

 

 

 

 

 

 

 

 

 

 

 

 

일본의 제1대 총리(1, 5, 7, 10대)는 민족의 원흉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이며, 이후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 42대 스즈키 간타로 총리까지 역대 총리들을 살펴보면 군국주의 국가답게 일본군 장성 출신이 많았다.

 

 

일본 왕의 최측근 인물과 내각 각료(장관)와 제국의회 국회의원 출신 총리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통감부 통감, 사이코 마코토, 아베 노부유키 등은 조선총독부 총독을 지낸 자들도 있다.

 

 

2대 일본 총리 구로다 기요다카 육군 중장 출신,

3대, 9대 일본 총리 야마가타 아리모토 육군 중장 출신,

11대, 13대, 15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 육군 대장 출신,

16대, 22대 일본 총리 야마모토 곤노효에 해군 대장 출신, 

18대 일본 총리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 대장 출신,

21대 일본 총리 가토 도모사부로 해군 대장 출신,

26대 일본 총리 다나카 기이치 육군 대장 출신,

30대 일본 총리 사이토 마코토 해군 대장 출신,

31대 일본 총리 오카다 게이스케 해군 대장 출신,

33대 일본 총리 하야시 센주로 육군 대장 출신,

36대 일본 총리 아베 노부유키 육군 대장 출신,

37대 일본 총리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장 출신,

40대 일본 총리 도조 히데키 육군 중장 출신,

41대 일본 총리 고이소 구니아키 육군 대장 출신,

42대 일본 총리 스즈키 간타로해군 대장 출신로 일본이 패망할 때 내각 총리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 설립한 이래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일본 왕을 비롯하여 일본 내각 총리와 각료(각부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 군인은 반드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해야 했고, 민간인 등도 일본인이라며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참배해야 할 신성한 곳이었다.

 

 

일본인들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통해 일본 왕에 대한 충성심을 다졌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왕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일본 제국주의의 군국주의 상징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