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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38선(삼팔선) 획정

by 도생(道生) 2018. 4. 7.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3·8선(삼팔선) 획정 

 

 

 

 

 

 

 

 

 

 

 

소련은 1945년 8월 9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150만 명의 대군을 앞세워 만주를 넘어 한반도로 진격해 들어 왔습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11일 한반도의 함경북도 웅기, 12일 나진, 13일 청진을 점령했습니다.

계속 남하한 소련군은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입성했고, 8월 26일 3·8선(삼팔선)을 봉쇄하면서 한반도 이북을 완전하게 점령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왕 히로히토가 라디오를 통해 항복 방송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은 1945년 9월 2일입니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는 포고령 제1호를 발동했고, 9월 9일에 조선에 발표합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며, 실질적인 한반도 분할 점령이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의 하지 중장은 한반도에 있던 일본의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로부터 조선의 식민지 통치권을 이양받아 미 군정이 한반도 3·8선(삼팔선) 이남을 점령해 통치합니다. 한반도가 일본이 패망하면서 광복한 것이 아니고,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미국의 식민통치로 바뀐 것뿐입니다.

 

 

 

1945년 9월 9일 미군정청 포고령 제1호에는 '일본 천황의 명령에 따라 일본 정부와 대본영이 서명한 항복 문서 조항에 따라 본관(맥아더) 휘하의 미군은 금일 (한반도)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선이 된 것이 바로 3·8선(삼팔선)입니다.

우리나라가 전범 국가도 아닌데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는 3·8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갈렸고, 삼팔선은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선이 됩니다.

 

 

한반도 분할 점령을 제안한 것은 미국입니다.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 분할 점령 제안을 받은 것은 해방 하루 전인 1945년 8월 14일입니다.

소련은 미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8월 15일 미국에 통고합니다.

 

 

대한민국이 해방된 1945년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한반도 중심을 가로지르는 북위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38선(삼팔선) 북쪽은 소련이 한반도 38선 남쪽은 소련이 분할 점령이 확정된 날, 바로 새로운 식민통치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은 1945년 8월 14일에 미국이 소련에 제안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기 전 이미 한반도 분할 점령이 논의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은 1945년 7월 26일 발표된 포츠담선언 때부터라는 설이 있고, 1944년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보다 앞서 미국이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3·8선(삼팔선)을 획정한 것이 먼저입니다.

3·8선(삼팔선) 획정 과정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같이 여러 설이 있어서, 어느 하나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현재까지 한반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3·8선(삼팔선)의 검토 및 획정된 시기,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한반도 3·8선(삼팔선)이 획정됐는지 여러 설이 난무합니다.

 

 

먼저 3·8선 획정 시기는 1945년 8월 11일 새벽에 즉흥적으로 결정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한 상태에서 1945년 8월 10일 일본이 미국에 항복 의사를 전했습니다.

이때 미국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장군은 에이브 링컨 장군(준장)에게 한반도 분할 점령을 어느 곳으로 정할 것인지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에이브 링컨 장군이 소집한 회의에는 한반도 지형이 담긴 낡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가 전부였고, 이 자리에서 에이브 링컨 장군(준장)이 3·8선을 획정했다고 하는 설과 함께있던 딘 러스크 대령과 찰스 본스틸 대령이 3·8도선을 획정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반도 3·8(삼팔선) 획정의 또 다른 설은 일본이 항복하기 한해 전인 1944년부터 세력을 확장하던 미국이 소련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한반도 분할 점령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합니다.

 

1년여에 걸친 논의에서 도출한 것을 바탕으로 1945년 7월 26일 포츠담회담이 열렸을 때 딘 러스크 대령의 상관인 존 에드원 헐 중장이 한반도 3·8선(삼팔선) 획정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한반도 3·8선(삼팔선)을 획정지은 사람은 여러 명이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1903년 제국주의 국가 일본과 러시아는 북위 39도선(대동강 남북)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 점령하자는 제안이 오간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일본의 한반도 분할 통치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일본은 1910년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강제병합해 식민통치를 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검토됐는지, 누가 38선(삼팔선)을 획정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1945년 8월 10일 조지 마샬 장군의 지시가 내려가고,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1945년 8월 11일 새벽에 미국 군인에 의해 한반도 3·8선(삼팔선)이 획정되었고, 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한반도 38선(삼팔선)을 기점으로 소련에 한반도 분할 점령을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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