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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

by 도생(道生) 2018. 10. 5.

침략전쟁의 상징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깃발 범기(戰犯旗) '욱일기(旭日旗)'의 역사

 

 

 

 

 

 

 

 

 

 

 

 

지금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이며 '일본 천황'은 위대한 태양신(神)의 자손으로 절대적 존재입니다.

 

 

 

1868년 에도 막부 시대를 끝낸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이 성공하면서 아무 실권 없이 한낱 뒷방 늙은이로 지내던 일본 왕이 역사를 움직이는 살아있는 신(神)으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일본이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본 왕 중심으로 국체를 세워 '천황 중심'의 나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명치 일왕과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급속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제국주의 열강을 향한 발돋움을 합니다.

 

 

일본 왕은 태양신(神)의 자손이며 국권의 상징으로 일본은 모든 것이 일본 왕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본 천황'은 '살아있는 신', 국가 원수로 일본 제국주의의 육군과 해군을 통수하는 '대원수'이기도 합니다.

 

 

1889년 2월 공포되고 1890년 시행된 일본제국 헌법 제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1868년 왕정복고 성공과 근대화에 이어 1890년 제국주의라는 화려한 옷으로 바꿔 입은 일본은 천황제라는 체제 아래 군국주의 국가로 치닫게 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의 탄생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일명 '욱일기'는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전범기 '욱일기'를 누가 최초로 도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양신의 후손인 일본 왕의 위세가 만방으로 확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막부시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이룬 일본 왕 중심의 국가로 전환한 일본은 내치와 외치 모두 일본 왕의 치세로 여깁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 법령인 <태정관 포고 355호>에 따라 1870년 메이지 3년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이 되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전범기인 '욱일기'의 본래 이름은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입니다.

'욱일기'가 법령에 의해 1870년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정식 깃발로 정해졌지만, 일본 왕 중심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 왕이 하사한 깃발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어기(御旗)를 임금을 상징하는 임금의 깃발이라고 합니다.

일본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 임금과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로 메이지 일왕과 일본을 동일시한 것이고, 육군에 하사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태양 빛이 만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와 태양신의 자손인 일본 왕이 하사한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군을 보살펴주고 승리로 이끌어주는 메이지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다시 말해 전범기 욱일기(旭日旗)'는 세상을 환히 밝히는 태양의 빛이 만방으로 확산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태양신의 후예인 메이지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 왕과 일본 그 자체입니다.

 

 

태양신의 자손으로 추앙받는 일본 왕과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넘어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침략 야욕을 현실화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가 처음으로 전투에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 일으킨 내란을 진압한 전투였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였던 19세기 중반 조선을 침략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이 정립됐습니다.

명치유신(메이지유신) 3걸 중 한 명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1873년 정한론을 주장하다 메이지 정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가고시마로 내려갔습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른바 '서남전쟁(세이난전쟁)'이라 불리는 내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일으킨 내란에 메이지 정부의 일본 육군이 전범기인 '욱일기' 들고 나가 내란을 진압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일제는 1899년 메이지 일본 왕의 칙령(勅令) 제111호에 의해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해군의 군함기(軍艦旗)로 지정됩니다. 일육군의 욱일기'와 일본 해군의 '욱일기'는 중심에 있는 태양의 위치가 조금 다를 뿐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등 침략전쟁이 자행된 곳에는 언제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일본군도 해산하면서 전범기 '욱일기'도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치안 유지라는 미명아래 1952년 보안대, 그리고 1954년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일본군이 부활하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도 부활했습니다.

 

 

 

 

 

 

 

 

 

 

1873년 메이지 일왕이 일본 육군에 하사한 깃발 전범기 '욱일기'는 욱광(旭光), 즉 아침 햇빛이 세상을 밝히듯 일본 왕의 치세가 퍼진다는 의미인데, 아직도 전범기를 일본 자위대의 깃발로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군국주의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군국주의의 길을 걸어일본이 패망하면서 사라졌던 전범기 '욱일기'는 몇 년의 휴식을 끝내고 육상 자위대와 해상 자위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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