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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최초의 국가 환인천제의 환국에서부터 대중상의 대진국(발해) 건국사와 천도(遷都)사

by 도생(道生) 2014. 10. 16.

최초의 국가 환인천제의 환국에서부터 대중상의 대진국(발해) 건국사와 천도사 비교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인천제의 환국 건국(建國)은 BCE 7197년, 임술(壬戌)년.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환웅천황의 신시 배달국 건국은 BCE 3897년, 계해(癸亥)년.

단군왕검의 옛 조선 건국은 BCE 2333년, 무진(戊辰)년.

 

 

한민족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은 BCE 239년, 임술(壬戌)년.

북부여를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고손자 고주몽 성제의 고구려 건국은 BCE 58년, 계해(癸亥)년.

고구려를 계승한 대중상과 대조영 부자의 대진국(일명 발해) 건국은 AD 668년, 무진(戊辰)년이다.

 

환국 배달, 조선은 하늘의 뜻과 이상을 이 땅에 펼친 위대한 우리의 선조들로서 삼성조(三聖祖) 시대라 부른다.

 

  

 

 

(송호국님의 기고문 中)

한민족의 건국(建國)사와 천도(遷都)사를 비교해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게 된다.

곧 우리 고대 역사는 삼신(三神)과 온전히 일체되는 역사라는 것이니, 한민족 옛 제국(帝國) 건국년의 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조(三聖祖) 시대의 천도(遷都)사는 삼신(三神)과 하나 되는 역사다.

삼신의 본체는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 人一)'이고, 그 작용은 '천일(天一), 지이(地二), 인삼(人三)'이다.

 

 

 

 

환국(桓國)의 중심은 천산에 위치한 파나류국이니 그 도읍은 하나요, 배달의 신시는 훗날 자오지 치우천황에 의하여 청구로 옮겨가니 그 도읍은 둘이요, 단군조선은 아사달, 백악산, 장당경으로 삼천(三遷, 세번 옮김)하니 그 도읍은 셋이다.

 

이는 천부경(天符經)의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의 삼신일체(三神一體) 원리가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삼성조(三聖祖)를 그대로 계승한 것은 삼웅조(三雄祖)라 할 수 있다.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의 건국 연도는 환국 배달 조선의 삼성조와 그대로 일치하는 임술년, 계해년, 무진년이니, 이는 삼웅조(三雄祖)가 삼성조의 국통을 그대로 계승한 명백한 증거라 할 것이다.

 

 

 

 

단군조선은 진주(眞主)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진한(眞韓)이라 하였으니, 달리 진한(辰韓), 진국(震國)으로도 불린다. 진한의 대단군은 삼신(三神)과 칠성(七星)을 대신하여 원만하게 천하를 다스리니, 조선은 가히 진(辰)나라다.

 

시조 단군 왕검께서 웅씨 비왕에 오른 때가 갑진(甲辰)이요, 또 배달을 이어 조선을 개국하신 해가 바로 무진(戊辰)년이다. 또한 삼한(三韓)의 제왕 중에서 가장 많은 재위 원년을 차지하는 것도 진(辰)이니, 곧 진한은 경진(庚辰)년이요, 번한은 무진(戊辰)년이요, 마한은 병진(丙辰)년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놀랄 만한 점은 무진년에 아사달에서 개국한 제1기 단군조선 때는 번한이 다스리는 중원 쪽으로의 진출이 두드러졌다는 것이요, 병진년에 장당경에서 개국한 제3기 단군조선 때에 이르러서는 번한이 쇠퇴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마한으로 망명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정기를 지키는 고대의 '칭간秤幹(진한, 태일太一), 칭추秤錘(번한, 지일地一), 극기極器(마한, 천일天一)'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곧 조선의 왕검 황조(皇祖) 때는 저울추가 번한으로 기울어지고, 제2기 단군조선에 해당하는 색블루(22대) 황조 때는 저울대가 균형을 이루고, 제3기 단군조선인 구물(44대) 황조 때는 저울 접시가 마한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한의 왕검성이 남서방향을 따라 아사달(하얼빈), 백악산(장춘), 장당경(개원)으로 세 번 변한 것은 곧 저울의 원리에 따라 삼한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겠다.

 

옛날 고대 한민족이 천도(遷都)의 입지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는 왕기(王氣)다.

이는 색블루 단군 때의 영고탑 천도 논쟁에서 살필 수 있다.

 

이 때 신지 육우는 영고탑(零古塔, 영고는 곧 부여의 영고迎鼓와 통함)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면서 "아사달은 천년 제업의 땅이나 대운이 이미 다하였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함이 아사달과 같아 백악산을 능가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지리적인 이점 못지않게 왕기 또한 중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왕기는 본래 삼신(三神)의 정기와 같은 것이니, 삼신이 정기를 보존하는 곳이 곧 삼한의 왕검성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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