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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진리眞理

증산도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개벽 - 2. 원시반본이란 무엇인가(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유철 박사)

by 도생(道生) 2014. 11. 19.

증산도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과 개벽

 

 

 

 

2. 원시반본이란 무엇인가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유철 박사)

 

 

 

 

 

 

 

 

 

증산도 원시반본 사상과 개벽 - 2. 원시반본이란 무엇인가

 

증산도의 기본이념인 원시반본에 대해 증산도 『도전道典』에서는 "이제 개벽시대를 당하여 원시로 반본하는 고로..."(증산도 도전도전 2:27:4)라는 구절로 설명한다.

 

 

2편 26장 1절, 27장 4절에도 동일한 구절이 있으며, "지금은 원시반본 하는 시대니..."(증산도 도전도전 7:17:3)라는 구절도 있다. 이러한 구절들은 현대의 시대적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증산 상제님은 현대의 위기적 상황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선천의 분열 성장된 모습, 상극의 대립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래서 가을개벽이라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여야 한다는 것을 원시반본이란 말로 표현한 것이다.

 

 

 

 

 

 

 

 

 

원시반본은 현대에 대한 부정의 의미와 동시에 이상적 미래를 위한 문제해결 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증산 상제님은 당시의 혼란한 말대(末代)의 천지를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대의 천지를 뜯어 고쳐서 새 세상을 열고 비겁에 빠진 신명(神明)과 인간을 구원하여 안정을 누리게 하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후천개벽의 도수(度數)에 맞게 짜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후천개벽과 천지공사의 기본정신을 우리는 원시반본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원시반본의 필연성, 즉 "이 때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문명과 역사의 전환점을 이해할 수 있다. 원시반본한다는 것은 곧 개벽이 된다는 것이다. 우주, 인간, 문명의 총체적 개벽이 바로 원시반본의 실현이다.

 

 

 

이러한 가을개벽의 역사의 전환정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어원적 의미는 '시원을 살핌으로써 근본으로 되돌아 감'으로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좀 더 넓게 풀어서 살펴보면 '우주와 인간이 처음의 근본 위치, 상태, 입장, 본원적 의미, 절대적 가치, 근원적 원리 등을 성찰하여 그 근본으로 되돌아가서(회복하여) 새롭게 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의 근본적인 상태나 위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되돌아가서 새롭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증산도의 진리』(안경전 1981년)에서는 다음과 같이 원시반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시반본의 순수한 의미는 우주 생명의 도(道)의 근원인 무극(無極)의 통일상태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증산도 『도전道典』의 "후천(後天)은 온갖 변화가 통일로 돌아가느니라."(증산도 도전도전 2:19:7)는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원시반본의 본(本)은 통일상태임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되돌아가야 하는 곳, 원시반본의 목적, 곧 본(本)이 바로 '도의 근원인 무극의 통일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극의 통일상태는 분열 성장하는 존재자들이 처음의 근본적 상태에로 복귀한 상태, 존재자의 순수 본질이 드러나는 상태, 생명의 본래적 가치가 회복된 상태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지축이 바로 섬으로써 우주가 정역운동으로 전환되고, 모든 인간이 생명의 근본 뿌리로 회귀하고, 세계문명의 이상적 조화통일이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원시반본에서 중요한 것은 돌아간다는 반(返)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곳, 즉 본(本)이다. 반(返)은 돌아가는 과정(過程)이라면 본(本)은 돌아가야 할 목적(目的)이다. 즉 반(返)의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근본(根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원시반본의 어원적 의미이다.

 

 

 

 

 

 

 

 

 

 

이 때 본(本)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과 대비 가능할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이데아는 인간의 영혼이 다시 돌아가서 알게 되는 진리의 대상이다. 즉 인간은 현실적 허구의 삶을 벗고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서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는 바로 돌아가야 하는 목적이다. 이 목적으로서의 이데아는 진리와 존재와 도덕의 본체이다. 원시반본의 본(本)은 존재해야 할 최상의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상태는 플라톤의 이데아적 세계 혹은 예지계(叡智界)처럼 현실 초월적 상태가 아니라 현실 내재적 상태이다. 즉 현상적 우주자연과 구체적 삶의 현실이 변화하는 과정이고 목적이다.

 

이러한 원시반본의 본(本)은 넓게 우주적 근본과 문명의 근본, 인간의 근원심 등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때 우주적 근본은 후천개벽에 의해, 문명의 근본은 천지공사에 의해, 인간적 근본은 마음의 실천적 개벽에 의해 반(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되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으로 되돌아간가는 것은 과거 상태로의 회귀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면 인간과 우주가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서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시간상 퇴행(退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발전된 상태에서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불합리한 것처럼 생각된다.

 

 

여기서 다시 위에서 풀이한 '원시반본'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보기로 하자.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다시 '현재를 벗어나 새로운 상태에로 간다'는 의미로 이된다. 이 때 '간다'는 것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시점을 갖는다. 즉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 미래의 어떤 새로운 상태로 가는것인데 그 새로운 상대가 바로 도(道)의 근원인 무극의 통일상태이다.

 

 

 

그런데 '되돌아간다'에서 '간다'는 현재의 과정과 미래의 시점을 의미하지만 그리고 미래의 상태는 지금과 다른 새로운 상태이지만 문제는 '되돌아'에 있다. 즉 '도의 근원인 무극의 통일상태'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미래에 가능한 상태이고, 그리고 인간이 가야 하는 이상적 상태이며, 그런 의미에서 현재와 다른 새로운 상태를 의미하지만, 그곳에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은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본래적 상태에로의 복귀 혹은 일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복귀는 퇴행(退行)인가?

물질적 과학적 발전은 직선적으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되돌아' 간다는 것은 분명 퇴행이다. 즉 현재의 발전된 물질적 풍요를 버리고 과거의 원시시대(原始時代)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원시(原始)를 물질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차원에서 본다면, 혹은 가치의 측면에서 본다면 문제는 다르게 평가된다. 정신적 지평에서 볼 때 '되돌아 감'은 단순히 퇴행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질적 발전은 직선적이며, 따가서 발전이란 말이 전혀 거부감이 없이 사용될 수 있는데 반해서, 정신적 사상적 측면에 있어서 발전이란 말은 적당하지 않으며, 혹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직선적으로 나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도의 근원인 무극의 통일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퇴행이 아니라 상실된 의미에의 복귀이며 절대적 가치로의 회귀이다. 즉 모든 것들이 존재의 비본래적 상태에서 본래적 상태에로 복귀하는 것이다.

 

 

 

 

 

 

 

 

 

 

원시반본의 의미는 다음의 구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원시반본이란 우주의 순환원리(자연섭리)에 기초한 말씀으로 우주의 가을철을 맞이하여 우주생명이 분열 운동을 마치고 뿌리를 찾아 하나로 통일되는 것"(증산도 본부 역음 1998년)이다. 즉 우주 1년의 과정에서 봄, 여름의 성장분열시기가 끝나고 이제 가을 추수기를 맞이하여 우주생명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원시반본'의 '반(返)'과 '본(本)'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본(本)'은 '우주생명의 뿌리'이며. '반(返)'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이것을 앞의 정의와 상관해서 살펴본다면 '반(返)'은 '되돌아가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며. '본(本)'은 '우주생명의 뿌리로서 도의 근원인 무극(無極)'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곳은 무극의 통일상태, 생명의 근본 뿌리이다.

이러한 원시반본은 미래에 가능한 우연적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과정을 거쳐 미래의 시점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우주변화의 필연적 지향점이며, 인간 정신의 당위(當爲)적 상태를 의미한다. 즉 우주 1년의 순환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역사적 현실을 뜻한다. (원시반본이념의 인간적 당위는 실천적 자유를 전제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이 무극의 통일상태는 자연의 질서가 완전한 구조 속에서 정립되고, 인간의 이상이 현실 속에서 완결되고, 생명의 근본이 제 위치를 찾는 상태로 이해된다. 즉 "원시반본이란 생명이 처음의 근본자리로 돌이켜서 복귀하는 것"(안경전 증산도의 진리)을 말한다.

 

 

이는 달리 표현해서 후천개벽을 통해서만 진정한 의미의 원시반본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원시반본이란... 이성적인 자연환경 위에서 인간완성의 구원의 길이 트이는 생명의 길이다. 그러므로 원시반본은 하느님의 생명이 천지의 봄,, 여름 선천의 분열성장을 종결짓고 근원을 향하여 창조하신 자연 세계와 인간을 다 함께 완성시키는 통일의 길이다."

(안경전 증산도의 진리)

 

 

 

 

 

 

 

 

 

그렇다면 이러한 원시반본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후천 가을 개벽기에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은 반본하게 된다. "이 때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도전道典의 구절에서 보듯이 원시반본의 상태는 선천 5만년이 끝나고 후천 5만년이 시작되려는 하추교역시기(夏秋交易時期)의 후천개벽을 통해서 이 땅과 우주의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를 찾게될 때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상태이다. 이 이상적인 상태는 바로 인간의 구원이 실현될 수 있는 지향점이며 목적이다. 즉 원시반본은 인간구원의 필연적 과정이며 결과이다.

 

 

 

『증산도의 진리』에서는 후천 개벽기에 이루어져야 하는 원시반본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네가지 변화(되돌아감, 복귀, 회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천지만물과 그 주인공인 인간이 생명의 근원으로 복귀함을 뜻한다.

 둘째,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서 천지가 성공되어짐을 뜻한다.

 셋째, 창조의 이상이 완성되어짐을 뜻한다.

 넷째, 선천문명의 상극을 상생으로 전환시킴을 의미한다."  (안경전 증산도의 진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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