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세以道耕世 이의보본以義報本 :: '세상은 개벽중' 카테고리의 글 목록

'세상은 개벽중'에 해당되는 글 545건

  1. 2018.10.21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6)
  2. 2018.10.20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 (3)
  3. 2018.10.07 세종대왕의 업적 훈민정음(한글) 창제 (4)
  4. 2018.10.06 일본 군대 자위대의 '욱일기' '욱일승천기'는 전범기 (3)
  5. 2018.10.05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 (5)
  6. 2018.10.04 질문있는 특강쇼-빅뱅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 교수 (3)
  7. 2018.07.29 지구촌의 폭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1)
  8. 2018.07.08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와 기경량 박사 ?
  9. 2018.07.07 JTBC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1)
  10. 2018.06.17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 (1)
  11. 2018.06.16 기네스북에 등재된 625전쟁(한국전쟁) (1)
  12. 2018.06.10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경기 일정 (2)
  13. 2018.06.09 세계 3대 스포츠 피파 월드컵의 역사 (2)
  14. 2018.06.03 완전한 영구적 북한 핵폐기 CVID PVID CVIG (2)
  15. 2018.06.02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완전한 비핵화
  16. 2018.05.20 북한의 비대칭전력 핵미사일 EMP 폭탄 공격 (2)
  17. 2018.05.19 전자기펄스 EMP 폭탄 효과 블랙아웃 현상
  18. 2018.05.13 북한의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
  19. 2018.05.12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 (3)
  20. 2018.05.06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핵폐기) 합의 과정 (4)
  21. 2018.05.05 남북 정상회담 4.27 판문점 선언 전문 (2)
  22. 2018.04.29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 (1)
  23. 2018.04.28 쓰레기의 역습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 (2)
  24. 2018.04.22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와 남북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4)
  25. 2018.04.21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자유의 집) 북측 통일각(판문각) (2)
  26. 2018.04.15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SLL)과 북방한계선(NLL) (5)
  27. 2018.04.14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 (2)
  28. 2018.04.08 1950년 625 한국전쟁과 정전협정(휴전협정) (4)
  29. 2018.04.07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38선(삼팔선) 획정 (2)
  30. 2018.04.01 일본 아베 총리 평화헌법 개정 전쟁가능한 보통국가 (2)

매국지도 재사업을 공언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과

부당집행연구비 환수 소송액을 마음대로 변경한 동북아역사재단

 

 

 

 

 

 

 

 

 

 

 

 

2007년 7월 3일 아시아 최대 상륙함으로 해군의 대형수송함 독도함이 취역했습니다.

2007년 7월 6일 일본의 '2007년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표기해 영유권을 주장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일본의 독도침탈 행위가 계속되면서 정부는 2007년 7월 하순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국제법적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연구와 조사, 그리고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국책연구기관) 동북아역사재단 산하에 독도연구소 설립하기로 결정했고, 2008년 8월 14일 동북아역사재단에 독도연구소가 설립됐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 2008년 8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장장 8년간 45억여 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되어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를 편찬하게 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 등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중국이 근 10년 가까이 진행한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급변이 발생했을 때 영토문제와 여러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은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과 침탈에 맞서기 위해 편찬한 것임에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침탈을 그대로 인정하는 매국지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탈에 맞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여 알리기 위해 만든 대한민국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침탈에 앞장서는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는 중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의 고대사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됐고, 독도는 아예 그려 넣지도 않았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 그대로 반영된 삼국사기 초기불신론은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가 우리 역사를 조작한 식민사관이며, 중국의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들어온 것은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조작한 중국고생했다고 만리장성을 고무줄처럼 늘려 준 꼴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60여 명이 역사학자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해마다 두 차례씩 총 15차례 자체 심사결과 모두 합격점 80점을 웃도는 점수를 계속 받았습니다.

자체심사란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도둑과 공범이 스스로 무죄 판결을 내린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2015년 11월 심사에서는 100점 만점에 14점을 받아 부적격판정을 받았습니다.

국회 동북아 역사왜곡특위는 동북아역사지도 수정을 위해 5개월간의 수정 기간을 주었는데도 끝내 독도를 그리지 않아 2016년 5월 44점을 받고 최종 폐기됐습니다.

 

 

 

 

 

 

 

 

 

 

교육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관련자 16명을 징계처분했고,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에는 지도작업 외에 부정하게 사용한 10억여 원을 반환하라는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호섭은 '동북아역사지도에 상당한 문제점이 발견됐고, 비윤리적으로 연구비가 다수 발견돼 협약을 해지하고 연구비 회수를 통보했다.'라고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위원장 서강대 교수 윤병찬은 '2015년 11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지엽적인 사안을 가지고 협약을 해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연세대와 서강대 산학협력단은 교육부의 처분을 거부하면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산학협력단을 상대로 반환소송을 했습니다. 

 

 

 

 

 

 

 

 

 

 

2016년 9월 동북아역사재단은 연세대와 서강대 산하협력단을 상대로 비윤리적으로 부당집행한 연구비 10억여 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불과 3달 만에 반환비용을 6억 원으로 슬그머니 변경해버렸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10억 원 반환 처분을 내린 교육부와 상의하거나 보고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2018년 동북아역사재단 국정감사에서 밝혀졌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은 환수 소송금액 변경에 대한 내부결재 문서도 없는 것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2018년 2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은 자신의 임기 내에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펴낸 한국고대사 영문 서적에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조작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국책연구기관(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중국의 국책연구기관 일본의 국책연구기관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설립되고 지금까지 들어간 혈세가 4천억 원이 넘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동안 제작한 동북아역사지도는 우리의 역사 지도가 아니라 중국의 지도, 일본의 지도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설립 취지와 설립목적을 훼손한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

 

 

 

 

 

 

 

 

 

 

 

 

중국은 20세기 말부터 소위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가 되자마자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시작한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은 한韓민족의 고대사(고구려와 대진국=발해)를 중국의 변방 역사로 편입했는데,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07년 1차 역사 조작 작업이 끝났습니다.

 

 

 

한韓민족의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동북공정은 향후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충돌했을 때 역사적으로 만주와 북한이 중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주장하고, 소수민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이 조선족의 뿌리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정체성에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004년 3월 중국의 역사조작 프로젝트 소위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입니다.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연구재단은 첫 100억 원의 예산 편성과 교육부가 해마다 약 50~60여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연구재단은 정부의 예산을 받는 학술 연구의 공공기관으로 정책적인 공공기관이라기보다는 역사학자가 주축이 된 민간연구기관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고조선 역사, 고구려 역사, 고구려 문화, 발해(대진국) 역사, 동북아 관계사, 민족문제 등 총 6개 팀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하기 전 연구 분야가 고구려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고사에서 동북아 역사까지 연구하는 6개의 연구팀이 말해주듯 범위가 넓어 재단 명칭 선정에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계가 '동북아연구재단'보다는 '고구려연구재단'이란 명칭 사용에 우호적이었고, 결국 설립추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고구려연구재단' 명칭 사용을 결정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은 고구려 역사만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고조선과 고구려, 대진국(발해) 및 동북아와 민족문제 등의 역사연구를 하는 곳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연구재단이 제구실을 못하자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역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 직속의 바른역사기확단을 발족했습니다.

 

 

 

본래 바른역사기획단은 고구려연구재단과는 별도로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려고 했지만, 연구와 조직운영 및 예산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에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하게 됩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을 관계자들은 외교부 산하로 정책과 연구기관을 통합하여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연구재단을 흡수 통합한 동북아역사재단은 외교부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바뀌어 2006년 9월 출범했습니다.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으로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문제와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 등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산하의 공공기관 고구려연구재단과 확대 개편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섭립 취지와 목적을 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 고대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한 역사조작 프로젝트 동북공정은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주류 강단사학계의 방조와 묵인 아래 중국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는 신화이며, 중국으로부터 시작한 고조선 영토를 특정 지역에 한정했습니다.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대진국(발해) 역사를 중국이 역사로 편입한 것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았고, 한漢나라에 멸망한 아주 작은 고조선의 역사와 한사군 설치,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 등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추종한 고구려연구재단과 동북아역사재단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훼손했습니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에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침탈에 대응하기 위한 독도연구실이 있습니다.

국민 앞에서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할 뿐 동북아역사재단과 연세대와 서강대의 산학협력단 60여 명이 8년 동안 국고 47억여 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가 독도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사실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목적

이 법(동북아역사재단법)은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하여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 및 독도 관련 사항에 대한 장기적 종합적인 연구 분석과 체계적 전략적 정책개발을 수행함으로써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 역사를 침탈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하면서 오직 국민이 낸 혈세로 배만 불리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할 뿐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대한민국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訓民正音)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업적 훈민정음(한글) 창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많은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답변할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정신문화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왜곡 조작되었고, 일제가 영구적인 식민통치 목적으로 조작해 만든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지 않은 채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파렴치한 만행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은 정체성은 어둠에 갇힌 채 아직도 광복(光復)하지 못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통치 기간 내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수없이 저질렀습니다.

우리의 말과 한글도 없앴고, 무엇보다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없애버렸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우리 것'이라는 말만 해도 '국뽕'으로 취급받는 세상입니다.

일제 식민주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식민사학 카르텔에서 재야사학을 공격하기 위해 급조한 천박한 말이 '국뽕'입니다.

 

 

 

 

 

 

 

 

 

 

 

조선 4대 왕 세종대왕 이도 -훈민정음 한글 창제

http://gdlsg.tistory.com/1523

 

 

 

근세조선 27명의 임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추앙받고 있는 분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입니다.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 끊임없는 자기계발, 문명화된 조선, 문화가 발달한 조선, 조선의 미래를 위해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등 세종대왕의 업적은 너무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훈민정음(한글)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세종대왕 한 사람의 창작물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조선 초기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으로서는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을 위해 세종대왕의 업적이 많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단연 한글입니다.

 

 

한글 창제 당시에 많은 난관이 있었고 그 후로도 수백 년 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았지만, 이제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에는 세종대왕을 비롯해 정인지와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의 글을 모두 들어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크게 의편(例義篇)와 해례편(解例篇)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직접 쓴 예의편(例義篇)세종대왕께서 한글의 창제 목적과 한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서입니다.

해례편(解例篇) 서문은 정인지가 지었으며 훈민정음, 곧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창제 원리와 한글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 참여했던 집현전 학사들이 쓴 글입니다.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업적인 훈민정음(한글)은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에 창제됐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훈민정음 반포 시기를 세종 28년(서력 1446년)이라고 합니다.

 

 

훈민정음(한글)의 정확한 반포 날짜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단지 실록에 '이달에'라는 기록만 있습니다.

10월 9일 현재의 한글날은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통 11년 9월 상한'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추정하여 음력을 양력으로 계산하는 복잡한 과정 끝에 정해졌습니다. '정통 11년'은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正統帝, 재위 1435~1449)의 연호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中 - 1443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반대파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2년 전 세종 26년(144년) 최만리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습니다.

최만리가 세종대왕께 상소할 때 훈민정음(한글)이 옛 글자를 본뜬 모방한 글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中 -1444년

 

'우리 조선은 조종 때부터 내려오면서 지성스럽게 대국을 섬기어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행하였는데, 이제 글을 같이하고 법도를 같이하는 때를 당하여 언문을 창작하신 것은 보고 듣기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설혹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 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中 - 1446년

(예조판서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中)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

'........ 계해년(세종 25년 1443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正音)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例義)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音)은 칠조(七調, 궁상각치우 변치 변궁)에 합하여 삼극(三極, 천지인)의 뜻과 이기(二氣, 음양)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包括)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여 다함이 없이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군기(軍旗)로 사용하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치안 유지와 방어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실질적인 일본 군대 자위대

 

 

 

 

 

 

 

 

 

 

 

 

 

군대(軍隊) 아니 군인(軍人)이 단 한 명도 없는 일본과 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요?

일본이 군(軍)이라는 용어와 편제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그리고 항공자위대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사실상 군대입니다.

 

 

평화유지군은 유엔 회원국에서 파견한 부대를 지구촌 분쟁 지역에 파병하여 분쟁 해결 및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임무를 맡는 유엔 산하의 군부대조직입니다.

 

 

일본은 1990년 초부터 대내외적으로 자위대의 평화유지군(PKO) 파견 방침을 세웠고, 1992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모잠비크와 자이레, 골란고원, 동티모르, 이라크, 수단 등지에 자위대를 파병했습니다.

 

 

 

 

 

 

 

 

 

 

일본은 근대사에 들어 주변국을 수없이 침략하고 세계대전까지 일으킨 전범국입니다.

 

태평양연합사령부 전범 재판이 미국의 주도로 열렸는데 희생양이 된 전범 몇 명만 유죄판결을 받고 대다수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때 미국은 악명높은 731부대의 자료를 모두 받아갔습니다.

 

 

 

연합군 극동사령부 도쿄 전범 재판 - 일본 관동군 731부대

http://gdlsg.tistory.com/1891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일본 헌법, 소위 '평화헌법'군대를 보유할 수 없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 치안 유지를 위해서 예비경찰대를 만들었는데 이후 인원이 증원되면서 1952년 보안대, 1954년 자위대로 확대 전환되었습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불리는 전범기를 군기(軍旗)로 사용합니다.

 

 

 

 

 

 

 

 

 

 

1951년 미국과 일본은 상호안전보장법을 체결했고, 1954년 미일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상호방위원조협정을 체결하면서 전력을 보강할 명분을 얻었고, 미국은 일본에 군사기술을 제공했습니다.

 

 

 

치안 유지의 예비경찰대에서 육상안대와 해상경비대로 이어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 그리고 항공자위대라는 실질적인 군대로 확대 재편했습니다.

 

 

 

원전 국가 일본은 언제든지 핵무기 무장이 가능하다

http://gdlsg.tistory.com/1168

 

 

 

 

 

 

 

 

 

 

일본인이 최고의 신(神)으로 떠받들고 있는 신(神)은 태양신인 천조대신(천조대어신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입니다.

천조대신의 자손으로 살아 있는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일본 왕은 단 한 번도 혈통이 단절된 적이 없다며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의 문양은 일본이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태양신(천조대어신)과 태양신의 후예인 일본 왕의 위세가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일본인이 사용해 오던 문양입니다.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는 뜻의 욱일승천(旭日昇天)은 왕성한 기세로 위세를 떨친다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의 전범기라고 부르는 이른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깃발의 정식 명칭이 아닙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인일 가능성이 크지만, 누가 언제부터 붙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탈취하여 폭정과 수탈, 그리고 강제노역과 징집도 모자라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우리 민족을 무참하게 학살한 원흉들이 붙인 이름이기에 우리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부르면 안 되고 전범기라고 해야 합니다.

 

 

 

 

 

 

 

 

 

 

현재 일본의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에서 군기로 사용하고 있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깃발이 최초로 사용될 당시 명칭은 '육군어군기(陸軍御軍旗)'입니다. 메이지 정부 초기 법령(태정관 포고 제355호)에 의해 1870년 육군의 공식 군기로 지정된 것이 전범기 일본의 소위 '욱일기'입니다.

 

 

 

같은 해 일본 해군 역시 태정관 포고 제651호에 따라 우리가 아는 '일장기'가 '해군어국기(海軍御國旗)'로 지정됐습니다. 

1889년 일본 왕의 칙령 111호에 따라 일본 육군의 육군어국기를 모방하여 위치만 조금 바꾼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일본 해군의 해군어국기(海軍御國旗)로 지정됐습니다.

 

 

 

 

 

 

 

 

 

현재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자위대에서 군기(軍旗)로 사용하고 있는 전범기 '욱일기'는 태양신 천조대신의 자손 일본 왕의 권세와 위세가 만방에 퍼진다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일본의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천조대신과 일본 왕의 위엄을 형상화한 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를 메이지 유신으로 왕정복고를 이룬 일본 왕 명치의 분신과 같이 동일체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에게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 곧 현신인(現神人)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헌법도 일본 왕을 위한 헌법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헌법에 명시된 일본 왕은 영원히 일본을 통치하고, 일본 왕은 신성불가침이며, 일본 왕은 일본군을 통수하고 전쟁을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대한제국 국권침탈,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은 모두 일본 왕의 한 마디로 시작된 전쟁이며 일본 왕의 항복으로 끝난 전쟁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 전쟁의 맨 앞에는 일본 왕의 분신인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 바로 전범기가 나부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과 반인륜적 전쟁범죄가 벌어진 곳에는 일장기와 함께 일본 왕의 분신인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불린 전범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의 실질적인 군대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가 논란이 될 때마다 일본은 주변국 국민이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고 단지 정서와 감정의 문제일 뿐 국제법상 큰 문제는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라고 부르는 전범기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는 표면적으로는 군대가 아니지만, 실질적인 군대입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2016년 자체 생산한 스텔스기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일본 해상자위대는 최근 급속하게 전력을 보강한 중국에 밀려났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없는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소련과 중국 등 몇개 나라를 제외하고 세계 5~6위 정도 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플루토늄은 핵무기 6천 기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양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된 전범기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 왕을 위해 만든 제국헌법에 의해 지정된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에서 출발했습니다.

 

 

 

 

 

 

 

 

 

 

일본 왕을 위한 제국헌법에 의해 일본 왕이 하사한 일본 왕의 분신이 전범기입니다.

태양신의 자손인 일본 왕의 분신이기 때문에 수십 년째 일본의 군대 자위대가 사용하고 있는 '욱일기' 또는 '욱일승천기'는 100% 군국주의의 산물이며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군대를 보유할 수 없고 교전권이 없지만, 일본은 사실상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5년 일본의 사실상 군대 자위대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는 개헌을 통과시켰습니다.

 

현재 일본은 헌법 개정을 통해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여 언제 어디서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려고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침략전쟁의 상징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깃발 범기(戰犯旗) '욱일기(旭日旗)'의 역사

 

 

 

 

 

 

 

 

 

 

 

 

지금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천황의 나라'이며 '일본 천황'은 위대한 태양신(神)의 자손으로 절대적 존재입니다.

 

 

 

1868년 에도 막부 시대를 끝낸 메이지유신(명치유신)이 성공하면서 아무 실권 없이 한낱 뒷방 늙은이로 지내던 일본 왕이 역사를 움직이는 살아있는 신(神)으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일본이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본 왕 중심으로 국체를 세워 '천황 중심'의 나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명치 일왕과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이 급속한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제국주의 열강을 향한 발돋움을 합니다.

 

 

일본 왕은 태양신(神)의 자손이며 국권의 상징으로 일본은 모든 것이 일본 왕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본 천황'은 '살아있는 신', 국가 원수로 일본 제국주의의 육군과 해군을 통수하는 '대원수'이기도 합니다.

 

 

1889년 2월 공포되고 1890년 시행된 일본제국 헌법 제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1868년 왕정복고 성공과 근대화에 이어 1890년 제국주의라는 화려한 옷으로 바꿔 입은 일본은 천황제라는 체제 아래 군국주의 국가로 치닫게 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의 탄생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일명 '욱일기'는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전범기 '욱일기'를 누가 최초로 도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양신의 후손인 일본 왕의 위세가 만방으로 확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막부시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이룬 일본 왕 중심의 국가로 전환한 일본은 내치와 외치 모두 일본 왕의 치세로 여깁니다.

메이지 시대 초기 법령인 <태정관 포고 355호>에 따라 1870년 메이지 3년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육군의 정식 깃발이 되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며 전범기인 '욱일기'의 본래 이름은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입니다.

'욱일기'가 법령에 의해 1870년 일본 제국주의 육군의 정식 깃발로 정해졌지만, 일본 왕 중심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 왕이 하사한 깃발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어기(御旗)를 임금을 상징하는 임금의 깃발이라고 합니다.

일본 육군어국기(陸軍御國旗) 임금과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로 메이지 일왕과 일본을 동일시한 것이고, 육군에 하사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태양 빛이 만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와 태양신의 자손인 일본 왕이 하사한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군을 보살펴주고 승리로 이끌어주는 메이지 일본 왕의 분신입니다.

 

 

 

 

 

 

 

 

 

 

다시 말해 전범기 욱일기(旭日旗)'는 세상을 환히 밝히는 태양의 빛이 만방으로 확산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태양신의 후예인 메이지 일본 왕은 살아있는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었기 때문에 전범기 '욱일기'는 일본 왕과 일본 그 자체입니다.

 

 

태양신의 자손으로 추앙받는 일본 왕과 군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은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넘어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침략 야욕을 현실화합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욱일기'가 처음으로 전투에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지 유신의 주역 중 한 명이 일으킨 내란을 진압한 전투였습니다.

 

 

 

에도 막부 말기였던 19세기 중반 조선을 침략하자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이 정립됐습니다.

명치유신(메이지유신) 3걸 중 한 명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1873년 정한론을 주장하다 메이지 정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가고시마로 내려갔습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른바 '서남전쟁(세이난전쟁)'이라 불리는 내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일으킨 내란에 메이지 정부의 일본 육군이 전범기인 '욱일기' 들고 나가 내란을 진압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일제는 1899년 메이지 일본 왕의 칙령(勅令) 제111호에 의해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일본 해군의 군함기(軍艦旗)로 지정됩니다. 일육군의 욱일기'와 일본 해군의 '욱일기'는 중심에 있는 태양의 위치가 조금 다를 뿐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 전쟁 등 침략전쟁이 자행된 곳에는 언제나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일본군도 해산하면서 전범기 '욱일기'도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치안 유지라는 미명아래 1952년 보안대, 그리고 1954년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막강한 일본군이 부활하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 '욱일기'도 부활했습니다.

 

 

 

 

 

 

 

 

 

 

1873년 메이지 일왕이 일본 육군에 하사한 깃발 전범기 '욱일기'는 욱광(旭光), 즉 아침 햇빛이 세상을 밝히듯 일본 왕의 치세가 퍼진다는 의미인데, 아직도 전범기를 일본 자위대의 깃발로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군국주의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군국주의의 길을 걸어일본이 패망하면서 사라졌던 전범기 '욱일기'는 몇 년의 휴식을 끝내고 육상 자위대와 해상 자위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일방적 강의가 아닌 문답형식의 강연 프로그램

EBS 교양 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 - 빅뱅>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

 

 

 

 

 

 

 

 

 

 

 

 

강원도 춘천 의암호 한가운데 있는 중도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고조선 시대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입니다.

톰센의 삼시대 구분법으로 말하면 석기와 청동기와 철기로 이어지는 고조선 시대 문명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집과 고인돌, 생활유적과 생산유적 등 한 공간에서 집단적 형태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은 최초라고 했습니다.

 

 

춘천 중도에서는 석기시대 유물부터 집터 917기, 고인돌 100여 기, 수혈 355기, 비파형 청동검과 도끼, 유구 등 1400기의 최대 규모의 고조선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곳입니다. 한반도 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 아래 레고랜드라는 테마파크가 들어섭니다.

 

 

역사학도와 역사학자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춘천 중도에 달려가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데 앞장서야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일부 시민만이 춘천 중도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춘천 중도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아주 추악한 민낯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장소이며, 어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춘천 중도에서 발견된 최대규모의 유적과 유물에는 단군이라는 글자도 없고 단군조선이라는 글자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발견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춘천 중도는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이 상주하며 연구해야 할 곳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고조선 대동강 중심설을 만들어 고조선이 한반도 북부와 요동의 일부 지역만을 국한했기 때문에 한반도 이남의 춘천은 고조선 영역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2018년 1월 7일 목요일 저녁 7시 50분에 방영되는 EBS의 교양 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할 한국교원대 교수 송호정은 고조선에 대해 수많은 주장을 했는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라는 송호정은 국가성립은 철기시대에 이르러서만 가능하고 청동기시대에는 기껏 부족국가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고조선의 영역을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쪽과 요동 일부에 국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비파형 동검이 발견된 지역이라고 해서 고조선의 영토는 아니라는 주장을 합니다. 요서 지역에서 발견된 비파형 동검을 두고 고조선이 아니라 산융과 동호 등의 유물이라고 주장하여 고조선 영역을 한정시킨 것입니다.

 

 

한국 교원대 교수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라는 송호정은 고대국가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자기 생각을 마치 증명된 학설처럼 주장했습니다.

 

 

 

 

 

 

 

 

 

 

EBS 교육 방송의 교양프로그램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는 단군기원 4351년 개천절을 맞아 한국항공대학교 우실하 교수의 '단군은 역사다' 프로그램과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의 '단군이 신화인 이유'틀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방영한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 우실하 교수는 단군왕검이 건국한 나라가 고조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송호정 교수는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서 단군조선은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원대 교수 송호정고조선에 대한 사료가 빈곤해 고조선 역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송호정의 말처럼 고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오는 글 외에는 전무한 상태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사료가 없으니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검증할 사람도 없으며, 중국 사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했다면 아무리 우리 역사라도 중국으로부터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합니다. 

 

 

한국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료 어디에도 없는데 고조선 건국 당시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퇴출당할 망언이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랑케에서 비롯된 일본의 실증주의 식민사학을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실증적 관점의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역사학계는 유물과 유적, 사료 등 실증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역사만을 학계의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역사에 대해 가장 많이 나와 있는 『환단고기』를 부정하고 있고, 『조선왕조실록』에 500년 동안 고조선을 창업한 단군왕검께 올린 제례(祭禮) 기록 역시 인정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힌국교원대 교수로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이 학설을 말할 때 우리나라 사료에는 기록이 없으니 당연히 중국의 사료를 인용합니다.

 

그런데 송호정이 주로 인용하는 중국의 사료라는 것이 중국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폄하하고 조작한 사료가 전부입니다.

간혹 우리 역사를 제대로 기록한 중국 사료는 절대 인용하지 않는 특징도 보입니다.

 

 

 

 

 

 

 

 

 

 

유럽 중심의 세계관은 곧 서양 중심의 세계관입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실증사학 역시 독일 출신의 랑케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랑케의 실증사학을 변형시켜 역사를 조작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뿌리가 일제 식민사학입니다.

 

 

이른바 홍산문화라고 불리는 요하문명(홍산문명)은 서양 역사관이 만든 인류의 4대 문명보다 앞선 세계 최고의 문명입니다.

중국의 황하문명과는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명이고 우리의 문명과는 문화유전자가 같습니다.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 출연한 교원대 교수 국내 1호 고조선 박사 송호정은 홍산문명(요하문명)은 청동기 이전 시대라서 문명 성립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망발도 합니다.

 

 

 

4천 년 5천 년 6천 년 7천 년 전의 유적과 유물이 고조선의 유적, 유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에도 이미 그어놓은 문명의 역사 시간을 넘어선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성립 문명의 성립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홍산문명 지역역사와 문화를 모두 보고 아는 것도 아니고, 홍산문명 지역에서 발굴되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우리문화적으로 동질성을 보이는 것이 확연한데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베일에 싸여 있는 인류의 상고시대 역사를 자신이 배운 틀에서 벗어나고 자기가 아는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단군조선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는다는 것 자체가 역사학자로서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국 당나라와 당나라의 일개 지방 정권 고구려와의 전쟁을 그린 조인성 주연의 안시성이란 영화가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2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역사왜곡 프로젝트, 곧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대진국(발해) 역사를 한낱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격하시키고 고구려와 대진국을 중국 역사에 편입했습니다.

 

 

탐구와 분석, 수 없이 검증하는 현대과학도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는데, 일본 제국주의가 100년 전 조작해 만든 식민사학을 정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식민사학의 후예라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이 동북공정 등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여 지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것을 알면서도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침묵과 방관을 넘어 옹호와 동조하는 것은 반국가적 반민족적인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고 지금까지 국민 세금 4천억 원 이상이 투입된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식민사관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그대로 추종하는 매국단체가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학계의 민낯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기상 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의 폭염

인류 문명사로 보면 인간의 탐욕이 빚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세상에서는 대자연의 역습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우주사로 보면 지구촌의 폭염은 대자연의 역습이 아니라 우주 1년 사계절에서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입니다. 

 

 

 

 

 

 

 

 

 

 

 

 

천태만상 인간 군상이 탐욕을 부림으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만, 인간의 끝없는 탐욕 중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가장 무서운 탐욕이 낳은 비극은 이른바 대자연의 역습이라고도 말하는 바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입니다.

 

 

사상 최악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살인적인 지구촌의 폭염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구촌의 폭염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단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라는 사실입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음모론과 거짓과 허구설

http://gdlsg.tistory.com/1984

 

 

 

 

 

 

 

 

 

 

흔히 대자연의 습격이라고도 말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말미암아 지구촌 전역에 가뭄, 폭우, 폭설, 살인적인 한파와 살인적인 폭염, 거대 허리케인과 태풍 등이 자주 발생합니다. 일부 전문가는 화산폭발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빈번해졌다고 주장합니다. 

 

 

 

지구온난화 방지의 리우협약, 교토의정서와 파리기후협약

http://gdlsg.tistory.com/1976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폭염과 혹한, 가뭄과 폭우 등의 자연재해가 사시사철 일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기록적인 폭우와 살인적인 혹한, 찌는듯한 폭염과 극심한 가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하면서 지구촌 전역에서 인적·물적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여느 해보다 장마가 일찍 끝난 우리나라도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면서 인명 피해와 물적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은 얼마 전 물 폭탄을 맞고 수습하기도 전에 일본 열도가 뜨거운 찜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하고 있는 살인적인 폭염은 현재 겨울인 남반구를 제외한 유럽과 북미, 아시아 등 지구촌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 온실가스와 탄소배출권 거래제

http://gdlsg.tistory.com/1979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염은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지구촌 폭염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기상이변입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의 폭염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에 앞으로 어떤 기상이변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설사 인류를 위협하는 또 다른 기상이변이 발생하더라도 예측 자체가 힘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의 살인적인 폭염을 재앙 수준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열돔 현상입니다. 열돔 현상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역에 따라 제트기류가 약화하였거나 제트기류가 평소와 다르게 움직이면서 대기의 움직임이 정체 또는 치우치면서 폭염이 지속한다고 합니다. 

 

 

 

기상이변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역설

http://gdlsg.tistory.com/2042

 

 

 

 

 

 

 

 

 

 

 

 

한마디로 현재 지구촌의 살인적인 폭염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 등의 기상이변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탈선하여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018년 초 지구촌에서 일어난 기록적인 한파 역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정 지역에 혹한이 찾아온 것입니다.

 

 

 

문명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무자비하게 저질러진 인간의 탐욕 행위는 기록적인 지구촌의 폭염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기상이변 현상을 두고 문명에 대한 대자연이 반격이라고 말합니다.

 

대륙의 빙하와 남극과 북극의 빙하 해빙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 온실가스 과다배출, 지구촌 사막화, 지구촌 오대양이 플라스틱 쓰레기에 점령당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침몰하기 시작한 지구호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지구촌의 폭염,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실체>  - 시간의 비밀: 원형이정 생장염장 인의예지

http://gdlsg.tistory.com/1403

 

 

 

미국 우선주의에 눈이 멀어 세계 무역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습니다.

 

경제와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의 미국이 지구온난화를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탈퇴하면서 나머지 지구촌의 다수 국가가 파리기후협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보장할 수 없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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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차이나는 클라스> 2018년 6월 23일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 출연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거짓말로 쓰인 것이라고 주장기경량 박사 ?

 

 

 

 

 

 

 

 

 

 

 

 

1880년을 전후하여 일본 제국주의가 발견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일제가 변조하여 조작했습니다,

혹자는 1900년 일제가 석회도부작전(石灰塗附作戰), 석회로 메우고 비문을 파내서 비석을 변조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은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경량은 한때 대학 강사 일을 하다 얼마 전 '고구려 왕도 연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라는 기경량에 대해서 쓸 내용이 많지만, 오늘은 고구려 박사? 기경량이 과연 고구려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첫 부분에 신화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역사가 부분 때문에 전체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은 기경량뿐만 아니라 지구촌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러나 기경량은 JTBC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서 위의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이 믿을 내용과 믿지 않을 내용을 미리 선택해 놓은 상태에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열제께서 아버지 광개토열제의 공덕을 기려 추모왕(주몽)의 고구려 창업의 역사를 비롯하여 광개토열제의 공덕을 써 놓은 비문입니다.

 

그리고 광개토열제의 공덕 못지않게 중요한 내용이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바로 고구려는 북부여로부터 시작됐고, 광개토열제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위의 내용은 대한민국 주류 강단 사학계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라는 기경량 역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신화라고 말하면서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열제는 고구려 1대 임금이며 광개토열제는 19대 임금입니다.

우리나라 국보 삼국사기와 일본 국내청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사초략에 의하면 광개토열제는 고구려를 창업한 추모(고주몽)열제의 13세손입니다. 고구려 왕위를 형제가 계승한 때도 있어서 광개토열제가 19대 임금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수열제는 왜? 광개토대왕비에 아버지 광개토열제에 대해 시조로부터(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손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광개토대왕비 서두에도 나와 있듯이 고구려의 모든 임금은 혈통으로 이어진 북부여를 고구려의 시작으로 여겼 때문입니다.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정확하게 17대손이 바로 광개토대왕비의 주인공인 광개토열제입니다.

이 내용은 주류 강단사학계가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은 『환단고기』가 증명하고 『환단고기』 내용은 광개토대왕비가 증명합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작하여 만든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하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 역시 북부여, 단군조선, 배달국, 환국은 실체가 없는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주류 강단사학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4국 이전의 역사까지 기록하고 있는 『환단고기』는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에게 지탄을 받고 자신들의 쌓은 탑이 무너질까 봐 위서(僞書)라고 합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에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2018년 1월 3일의 첫 방송과 6월 27일 방송에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서예가이며 전북대 중문과 교수인 김병기 교수와 역사학자 기경량 박사입니다.

 

 

2018년 1월 3일 무술(戊)년에 첫 방송 된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43회 잃어버린 우리 문화, 한자>를 주제로 서예가이며 전북대 중문과 김병기 교수가 출연했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 23일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주제로 기경량이 출연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43회 잃어버린 우리 문화, 한자>에서 김병기 교수는 자신이 서예가로 또 중문과 교수로 자세히 살펴본 결과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도해파(渡海破)' 글자가 다른 글자와 확연히 달라 변조가 의심된다고 말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출연한 기경량은 김병기 교수가 주장한 고구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를 일본이 조작했다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제가 조작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도해파' 문구를 두고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에 출연한 기경량은 "나는 도해파(渡海破) 변조 의혹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기경량은 일제가 광개토대왕비를 조작한 역사적 사실을 단순한 견해차로 넘겨 버리면서 나중에는 자기 생각이 역사학계의 통설인양 강하게 주장합니다.

 

 

 

 

 

 

 

 

 

 

기경량은 '도해파(왜倭가 바다를 건너와 격파했다.)'가 맞기 때문에 조작된 광개토대왕비에 나와 있는 "신묘년 이후 왜倭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내용이 맞는다며 조선총독부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과 일본 극우 학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천박한 논리를 폈습니다.

 

 

<백잔 신라 구시속민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 매파백잔 ㅇㅇ 신라 이위신민臣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류승국 원장은 중국 문법으로 볼 때 '왜(일본)가 ...... 신민으로 삼았다.'가 아니고,

 '왜가 ...... 신민으로 삼으려고 했다.'가 맞는 해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환단고기』 역주본에서는  '왜가 ...... 신민으로 삼으려 하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경량은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 신라와 백제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구를 두고 "그 문장 자체를 한국 사람들은 불편해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문장이 쓰여진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즈음 학계에서 일반적인 견해예요."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치 모든 국민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역사를 치욕적이거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면서 왜(일본)가 한반도 남쪽을 신민으로 삼은 것은 사실이며 이런 자기 생각과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사실적 근거 없이 일반적 견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통설론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가 일제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기경량은 요즘 계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위 고구려 박사? 기경량의 주장은 일본이 4세기 후반에 신라와 백제를 점령했다는 것으로 과거 일제식민지 시절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우리 역사를 조작해 왜(일본)가 한반도 남부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경량은 또 "도대체 왜 이문장을 새겼을까? 고구려의 비(碑), 광개토대왕의 비(碑)면 고구려 사람들은 유리한 내용이 적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문장 이면에 숨겨진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얼토당토않은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라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에 입각해서 역사를 기록하고 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역사학자, 고구려 박사?라는 자가 편향된 생각으로 역사를 왜곡하여 시청자를 우롱했습니다.

 

 

 

 

 

 

 

 

 

 

더 기가 찬 것은 기경량은 고구려인들이 거짓말로 만든 것이 광개토대왕비라고 주장했습니다.

개인의 천박한 생각이 마치 역사의 사실인 양 왜곡하기에 이릅니다.

 

"고구려인들도 그냥 정직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다른 뜻이 있었다."라는 등 자신만의 추리소설을 써가며 자신의 주장이 마치 사실인 양 패널과 시청자를 기만했습니다.

 

 

 

고구려 박사? 기경량은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인들이 거짓말을 써넣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자이고 싶은 고구려인의 욕망이 광개토대왕비에 투영되었다는 게 요즘 학계에서 이야기가 많이 된다.'는 등 이른바 '썰'로 진실을 묻어버렸습니다. 

 

 

기경량은 고구려 왕도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자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직하지 않은 고구려인이 새겨놓은 거짓말 기록이라고 하면서도 일제가 조작하여 새겨 넣은 내용이 일제 식민사관과 부합할 때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몇 년 전 동북아역사재단이 국고 47억 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역사지도는 독도를 그리지 않는 등 중국의북공정과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추종해서 만든 것이 밝혀져 국민적 분노를 샀습니다.

 

기경량은 이덕일 소장이 동북아역사지도에 그려진 독도를 포토샵으로 지워놓고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를 안 그렸다며 억지 주장을 했다고 허위사실을 온라인상에다 퍼트려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요즘 흔히 세상에서 발에 채는 게 박사 학위라고 하는데 원본이 아닌 사본을 지워봤자 금방 들통날 거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소위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자가 그런 단순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가 찰 노릇입니다.

 

TV에서 자신이 한 말처럼 고구려 왕도인 평양은 가보지도 않았지만, 고구려 왕도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경량은 온라인상에서 허성관 전 장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이덕일 박사 등에 대한 허위사실배포와 명예훼손으로 2018년 6월 28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됐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TV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JTBC 홈페이지 차이나는 클라스 캡쳐)

 

 

 

 

 

종편 제이티비씨 홈페이지의 JTBC 소개 카테고리 비전에는 지구촌 시청자에게도 통하는 감동을 창조한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JTBC가 시청자에게 얼마만큼의 감동을 선사하는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JTBC TV 프로그램 편성은 크게 보도, 시사, 교양, 예능, 드라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교실)>은 초청 강사가 패널과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강사는 교사, 패널은 학생이 되어 질문과 답을 하면서 소통하는 형식의 신개념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강사와 패널이 문답식 강의를 하면서 단순한 교양 프로그램을 넘어 살아있는 교실을 지향한다고 JTBC가 야심 차게 편성한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주제도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정치, 역사,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시청자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차이나는 클라스>는 첫 포문을 연 유시민을 비롯하여 장하성, 문정인, 유홍준, 정재승, 황석영, 호사카 유지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사회 저명한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하여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주는데 일정 부분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JTBC의 신개념 강연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2017년 3월 5일 유시민의 <1회 민주주의가 뭔데?>를 시작으로 2018년 7월 4일 임용한의 <67회 평화의 길, 전쟁에서 배워라>까지 방송되었습니다.

 

 

제이티비씨 티브이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가 1년 4개월 동안 67회까지 방송하면서 최악의 방송사고?는 단연 JTBC TV가 특급가이드라고 소개한 기경량의 <제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입니다.

 

 

 

 

 

 

 

 

 

 

제이티비씨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방송되기 전까지 시청률에 등락은 있었지만, 마니아 애청자가 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은 JTBC의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66회 방송에서 기경량은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주제로 패널들과 주고받은 문답형식의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JTBC TV의 교양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기경량 강사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방송 예고가 나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에 염려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기경량은 보란 듯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기경량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이 마치 우리의 역사인 것 마냥 주장하면서 우리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지극히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자가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거짓 역사를 강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2018년 6월 27일 방송된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교실)> 기경량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은 [차이나는 클라스(class 강의)]인지, [china(차이나, 중국) 수업]인지, [차이나는 cloth(거짓말의)]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청자를 우롱하고 진실을 왜곡한 형편없는 방송이었습니다.

 

기경량의 일방적인 주장은 19세기 서양의 의류업자들이 구매자를 속이고 거짓말을 한데서 유래한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낸 거짓말(invented out of whole cloth,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기 생각이 마치 역사의 진실인 양 일방적인 주장만 했습니다.

 

 

 

 

 

 

 

 

 

 

JTBC의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는 지난 1년 4개월간 프로그램 스텝들의 노력과 강사들의 수준 높은 강의로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기경량의 <66회 고구려로 떠나는 시간여행> 때문에 그동안 쌓아 놓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방송사와 언론사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사실을 내보내면 시청자들은 공신력 있는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내보낸 정보를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쪼록 JTBC의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 관계자들이 다음부터라도 기경량과 같은 수준 미달의 강사를 다시송에 내보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지구촌 근현대에서 가장 긴 전쟁, 남북한의 한국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

 

 

 

 

 

 

 

 

 

 

 

 

흔히 지구촌의 작은 한반도에서 1950년 일어난 6.25 한국전쟁을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이념전쟁이라고 말합니다.

 

6.25 한국전쟁은 동서 냉전 이후 최초의 전쟁으로 패권국가 미국과 소련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체제를 더 공고히 하여 군비경쟁을 가속화한 전쟁이라고 평가합니다.

 

 

 

6.25 한국전쟁이 전투지역이 작은 한반도에 국한된 전쟁이었지만, 미·소 강대국과 아시아와 유럽 등 직간접적으로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전쟁입니다.

 

더불어 한국전쟁에 한국을 지원한 나라가 역사상 가장 많은 67개국으로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대전쟁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되고 450여만 명의 희생자와 1천만 명의 이산가족 등 큰 아픔과 슬픔의 상흔이 남아 있는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까지 1,100여 일 동안 남북한과 중공과 연합군이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현재의 휴전선 부근 지역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휴전협정)을 맺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은 수많은 희생자와 전쟁의 상흔을 남긴 채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역사책에서 보았던 수백 년 전의 긴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입니다.

2018년 현재 전쟁 68년, 정전협정 65년이 되는 근현대사에서 가장 긴 전쟁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미국에서는 6.25전쟁, 즉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2018년 6월 1일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면담한 직후 기자들 앞에서 잊혀진 전쟁, 즉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문제, 즉 종전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 당사국이 아닙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의 당사국은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며, 종전협정 당사국은 정전협정 당사국과 전쟁 당사국인 대한민국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유엔의 연합군 대표로 마크 클라크 미 육군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은 역사상 가장 긴 전쟁, 끝나지 않은 6.25 한국전쟁의 참전국이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절대 아닙니다. 

 

한반도 남북 분단에 단초를 제공하고, 가장 많은 연합군을 파병했던 미국은 정전협정 이후 지난 65년 동안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미 연합사령관과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은 정전협정(휴전협정)으로 전쟁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으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55마일 휴전선을 마주 보고 전쟁의 연속 선상에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만남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면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역사적인 만남, 세기의 만남이었습니다.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국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을 좌지우지하는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 지도자인 만큼 종전협정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가장 긴 전쟁"이라며 끝나지 않은 전쟁을 종식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미국은 1945년 한반도 남북한을 갈라놓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나라고, 북한은 6.25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정점협정의 당사국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발굴 등 4가지 항목의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북한과 미국, 대한민국과 중국 등 전쟁과 정전협정 관련국들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검증, 북한의 체제보장 등 일련의 행동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이 체결될 것입니다.

  

 

 

 

 

 

 

 

 

 

흔히 미국에서는 6.25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에 유엔 연합군으로 참전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동안 약 3만 6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전쟁 기간과 상황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지만, 6.25 한국전쟁보다 많은 희생자와 경제적 손실, 미국 내의 사회적인 파장이 컸던 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근 5년 동안 40만 명이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미국 본토에 대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미국의 자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린 대사건이었습니다.

 

 

미국은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11년이 지난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합니다.

미국이 처음 베트남에 파병을 한 1965년 이후 1975년까지 계속된 베트남전쟁에서 천문학적인 경제손실 외에도 미군은 전사자 약 6만 명, 부상자 약 30만 명, 전후 베트남전쟁 후유증과 관련된 자살자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상 미군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것은 흔히 미국 남북전쟁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내전입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남부와 북부 간에 일어난 4년여의 내전에서 약 62만 명의 미국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현대사 동족상잔(民族相殘)의 가장 큰 비극 625전쟁(한국전쟁)

세계 67개국이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지원)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625전쟁(한국전쟁)

 

 

 

 

 

 

 

 

 

 

 

 

기네스북은 1955년 기네스북 세계기록이란 이름으로 영국에서 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 최고, 최다, 최장, 최대, 최초, 최단, 최소 등의 기록을 수집해 해마다 기네스북을 발행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부터 전혀 쓸데없는 내용도 있으며,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 위한 이상한 경쟁까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세계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지구촌에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많은 세계기록이 기네스북에 등재되면 좋겠지만, 절대 깨지지 않고 깰 수도 없는 세계기록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바로 불행한 우리의 역사, 현대사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전쟁(한국전쟁)이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습니다.

626전쟁(한국전쟁)은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남북한이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치하고 있는 가장 긴 전쟁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휴전협정) 이후 일부 지역에서 충돌을 빚어 국지전을 벌인 적은 있었지만, 아직 전면전은 없었습니다.  

 

 

 

2010년 월드피스자유연합이란 민간단체는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한 나라가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67개 나라가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기네스북에 등재했습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625전쟁(한국전쟁)에서 67개국이 대한민국과 북한이 전쟁에 참전하고 지원한 것은 단일 전쟁으로 최대국가가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록이라며 기네스북에 등재하면서 국방부가 사실확인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참전 및 지원국은 41개국이었기 때문에 국방부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와 국방부와 한국전쟁 관련 전문가 등을 상대로 각종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2011년 국방부는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한 나라는 총 60개국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추가로 확인된 세 나라를 합쳐63개국이라고 발표하고 기네스북 재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민간단체 월드피스자유연합은 국방부의 수치 63개국과드피스자유연합이 기네스북에 등재한 67개국과 4개국이 차이가 나는 것은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67개국의 기록이 오랜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을 지원했다는 자료를 찾을 길 없어 확인할 수 없는 4개 나라를 뺏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방부가 기네스북에 등재된 67개국에서 제외한 4개국은 이라크,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입니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기네스북에 등재한 67개국과 국방부가 조사한 63개국 중 어느 것이 정확한 통계치인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국방부 수치의 63개국이라고 해도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단일 연합군으로 한 나라(대한민국)를 지원한 연합군의 규모는 유사 이래 세계 전쟁의 역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기네스북에 올라갈 세계 최고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쟁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 직접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입니다.

 

전투부대를 보내지 않았지만, 의료지원국 5개국, 전쟁 물자 등 지원한 나라는 40개국, 전후복구 사업을 지원한 나라 6개국 총 67개국이 625전쟁(한국전쟁)에 전후방과 전후복구 사업을 지원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전투병력을 보내 참전한 지원국은 가장 많은 전투병과 무기를 보낸 미국을 비롯하여 에티오피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프랑스, 그리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터키, 콜롬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국, 필리핀 등 16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의료지원국은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인도 노르웨이 등 5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에서 물자를 지원한 나라는 대만, 베트남, 미얀마, 일본, 이란,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캄보디아, 파키스탄,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자메이카, 쿠바, 칠레, 과테말라,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페루, 니카라과, 멕시코, 도미니카공화국, 파나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아이티, 온두라스,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헝가리,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라이베리아, 모나코, 이집트, 이스라엘 등 40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의 전후복구에 지원한 나라는 이라크, 아일랜드, 교황청, 포르투갈, 스페인, 리히텐슈타인공국 등 6개국입니다.

 

 

 

 

 

 

 

 

 

 

 

625전쟁(한국전쟁)은 인류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가장 많은 나라 67개국이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고 지원한 나라로 기네스북에 세계기록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기네스북 세계기록 인증

 

625전쟁 1950~1953년 당시 전세계 67개국이 대한민국을 지원했는데,

이 기록은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 기록이다

 

(기네스북 세계 기록 등재일 - 2010년 9월 3일)

 

 

 

 

 

 

 

 

 

비극의 우리 역사가 기네스북 세계기록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원한 67개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단일 연합군으로 참전한 세계 기록으로 2010년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더불어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1951년 흥남철수작전에서 정원 60명의 선박에 피난민 14,000여 명을 태워 구조작전을 벌인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구조작전 성공 기록으로 지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전 세계 독립국은 93개국이었으며, 이중 유엔 회원국은 60개국이었습니다.

 

공산국가 북한과 중공 등을 제외한 유엔 회원국과 비회원국 등 전 세계 70%가 넘는 67개 나라(국방부는 63개국)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625전쟁(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북한 간의 전쟁이면서 참전국과 지원국의 규모 면에서 볼 때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대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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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스포츠 세계인의 스포츠 축전

대한민국 역대 월드컵 본선 진출 및 성적과 2018 러시아 피파 월드컵 한국(대한민국) 경기 일정

 

 

 

 

 

 

 

 

 

 

 

 

현재의 피파 월드컵은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부터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까지는 줄리메컵 세계축구선수권대회였습니다.

 

 

브라질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역대 세계축구선수권대회(월드컵) 3회 우승으로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어 새롭게 제작된 월드컵 우승 트로피가 피파 월드컵입니다.

 

 

1974년 제10회 서독 월드컵부터 피파컵이 수여됐으며, 6월 13일에 개막하는 2018 제22회 러시아 월드컵 우승국에도 피파컵이 수여됩니다.

 

 

 

 

 

 

 

 

 

 

4년마다 피파 월드컵이 개최될 때면 전 세계 축구인뿐만 아니라 지구촌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대한민국(한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본선에 총 10회 진출했습니다.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그리고 1986년 제13회 멕시코 월드컵 대회부터 2018년 제22러시아 월드컵까지 9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최초로 출전한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입니다.

1954 스위스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헝가리를 상대로 0-9로 완패, 터키를 상대로 0-7로 완패, 2패의 성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1966년 제8회 영국(런던) 월드컵 대회에서 북한은 8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두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1986년 제13회 멕시코 월드컵입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3 패, 불가리아를 상대로 1-1 무승부, 이탈리아를 상대로 2-3으로 패,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세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1990년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벨기에를 상대로 0-3 패, 스페인을 상대로 1-3 패, 우루과이를 상대로 0-1로 패, 3패의 성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네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1994년 제15회 미국 월드컵입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2-2 무승부, 볼리비아를 상대로 0-0 무승부, 독일을 상대로 2-3으로 패, 2무 1패의 성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다섯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1998년 제16회 프랑스 월드컵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1-3 패, 네덜란드를 상대로 0-5 패, 벨기에를 상대로 1-1 무승부, 1무 2패의 성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여섯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2002년 제17회 한·일 월드컵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폴란드를 상대로 2-0 승, 미국을 상대로 1-1 무승부, 포르투갈을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었으며, 16강 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2-1 승, 8강 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 5-3 승, 4강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0-1로 패했습니다. 3, 4위전에서 터키에 2-3으로 패하며 한국은 월드컵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이 일곱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2006년 제18회 독일 월드컵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은 토고를 상대로 2-1 승, 프랑스를 상대로 1-1 무승부, 스위스를 상대로 0-2로 패하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여덟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2010년 제19회 남아공월드컵입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은 그리스를 상대로 2-0 승,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4 패,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6강전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16강전 상대였던 우루과이에 1-2로 패하면서 8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한국(대한민국)이 아홉 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은 2010년 제20회 브라질 월드컵입니다.

201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은 러시아를 상대로 1-1 무승부, 알제리를 상대로 2-4 패, 벨기에를 상대로 0-1로 패하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이 열 번째로 출전하는 월드컵이 바로 이번에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입니다.

한국이 2018 러시아 올림픽까지 총 10회, 9회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은 아시아 최초이며, 세계적으로도 6번째 최다 출전 기록입니다.

 

 

제21회 피파 월드컵, 곧 2018 러시아 월드컵 전체 일정은 2018년 6월 14일부터 7월 15일까지 한 달간 경기가 열립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치, 카잔 등 11개 도시에서 월드컵 경기가 개최됩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은 F조로 한국(피파 랭킹 61위), 스웨덴(피파 랭킹 23위), 멕시코(피파 랭킹 15위), 독일(피파 랭킹 1위)입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는 총 6경기 일정이 잡혀 있으며, 한국은 3번의 경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한국의 3경기를 포함한 F조의 전체 6경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F조 전체 경기 일정

 

F조 첫 번째 경기 일정: 독일과 멕시코

시간: 2018년 6월 18일 00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모스크바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1차전

F조 두 번째 경기 일정: 한국(대한민국) - 스웨덴

시간: 2018년 6월 18일 21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모스크바에서 약 400km 거리)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2차전

F조 세 번째 경기 일정: 한국(대한민국) - 멕시코

시간: 2018년 6월 24일 00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모스크바에서 약 1000Km 거리)

 

F조 네 번째 경기 일정: 독일 - 스웨덴

시간: 2018년 6월 24일 03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소치

 

F조 다섯 번째 경기 일정: 멕시코 - 스웨덴

시간: 2018년 6월 27일 23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3차전

F조 여섯 번째 경기 일정: 한국(대한민국) - 독일

시간: 2018년 6월 27일 23시(한국시간)

장소: 러시아 카잔(모스크바에서 약 800km 거리)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1, 2위 - 16강 경기 일정

F조 2위 - E조 1위: 7월 2일 사마라

F조 1위 - E조 2위: 7월 3일 상페테르부르크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세계 3대 스포츠 단일종목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줄리메컵 세계 축구선수권대회로 시작한 피파(FIFA) 월드컵의 역사

 

 

 

 

 

 

 

 

 

 

 

 

흔히 말하는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하여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올림픽과 국제축구연맹 피파(FIFA)가 주관하여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축구선수권대회(월드컵), 그리고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주관하여 2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라고 합니다.

 

 

혹자는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에서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빼고 세계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F1(포뮬러 1) 월드 챔피언십을 넣기도 합니다.

 

 

 

 

 

 

 

 

 

 

세계 3대 스포츠이며 단일종목으로 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피파 월드컵의 역사는 올림픽과 유럽 축구로부터 시작합니다.

1900년 제2회 프랑스 올림픽과 1904년 제3회 미국 올림픽(1906년 10주년 기념 올림픽)까지 축구는 올림픽 시범종목이었습니다. 

축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08년 제4회 영국(런던) 올림픽부터입니다.

 

 

19세기 후반 유럽과 중남미 지역에서 축구는 활발하게 진행된 운동경기였습니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이 국제 축구조직을 결성에 미온적이자, 1904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7개국이 국제축구연맹 피파(FIFA)를 창설하게 됩니다.

 

국제축구연맹(피파)의 초대 회장은 프랑스의 로베르 게랑, 2대 회장은 영국의 다니엘 울 펄, 3대 회장은 프랑스의 줄 리메입니다.

 

 

 

 

 

 

 

 

 

 

피파가 세계 축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라와 대륙 간에 통일되지 않은 축구 규칙과 여러 제반 여건이 미흡하여 월드컵이 개최되지 못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아메리카 지역의 나라들이 하나둘 국제축구연맹 피파에 가입하기 시작하면서 명실상부한 국제축구연맹 피파로 자리 잡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과 총칼을 겨누었던 국가 간에 묵은 감정으로 인해 피파 월드컵이 열리지 않고 한동안 침체기를 거치게 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축구연맹 피파 간의 불협화음, 피파 내부의 갈등이 계속되던 때 줄리메 피파 회장은 승부수를 던지면서 피파 월드컵 역사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피파 월드컵의 공식 명칭은 줄리메컵 세계축구선수권대회였습니다.

 

월드컵을 창시하지 않았지만, 세계 축구선수권대회(월드컵)가 최초로 열릴 때 피파 회장이었던 줄리메 회장이 순금 트로피를 기증했습니다. 피파 줄리메 회장이 세계 축구선수권 대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과 우승 트로피를 기증한 것을 기념하여 우승 트로피에 줄리메컵이란 이름을 붙였고, 줄리메컵 세계 축구선수권대회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첫 피파 월드컵 역사의 포문을 연 나라는 우루과이입니다.

우루과이는 제8회와 제9회 올림픽(1924년과 1928년) 축구에서 연속 우승한 나라로 1930년 제1회 월드컵을 우루과이에서 개최하기로 피파 회의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결정됐습니다.

 

 

단일종목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피파 월드컵의 첫 역사는 초라했습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불참한 가운데, 유럽 4개국과 남북아메리카 9개국 총 13개 나라가 월드컵을 치렀습니다.

 

 

남미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제1회 피파 월드컵은 개최국 우루과이가 우승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1934년 제2회 이탈리아 월드컵과 1938년 제3회 프랑스 월드컵 역시 유럽에서 개최하면서 장거리에 있던 남미 축구팀이 참여하지 못하면서 반쪽 월드컵이 됩니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월드컵 개최국에 자동 진출권이 주어졌습니다.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한 브라질이 받아 영구 소유한 우승 트로피는 줄리메컵이었습니다.

줄리메컵에는 역대 월드컵 우승국을 새겨 넣을 수 있는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브라질이 1958년과 1962년에 이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하면서 영구적으로 소유하게 됐지만, 1983년 도난당해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줄리메컵 도난 사고 이후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한 나라가 우승 트로피를 영구 소유하는 규정은 없어졌습니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4년 동안 보관했다가 반납하고, 복제한 월드컵 트로피 복제품을 받게 됩니다.

 

 

 

 

 

 

 

 

 

 

1974년 서독에서 개최된 제10회 서독 월드컵부터 피파 월드컵 우승국에 수여하는 우승 트로피가 새로 제작됐습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으로 영구 소유하게 된 줄리메컵을 대신한 피파컵이 등장한 것입니다.

 

 

1974년 서독 피파 월드컵부터 줄리메컵 세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피파 월드컵으로 공식 명칭바뀌면서 새로운 월드컵의 역사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니다. 1974년 서독에서 개최된 피파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해 피파컵을 최초로 들어 올리게 됩니다.

 

 

 

 

 

 

 

 

 

세계 3대 스포츠 올림픽과 월드컵, 세계 육상선수권대회가 사람의 힘과 재능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F1은 모터의 힘으로 하는 모터스포츠입니다.

 

 

F1 모터스포츠 같은 경우에는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경기를 하고 마니아층이 두껍다고 하지만,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엄청난 운영비와 기술력, 그리고 참가 선수에 대한 자격과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세계 3대 스포츠가 시작한 시기와 개최 주기가 다릅니다.

세계 3대 스포츠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되었고, 4년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스포츠 피파 월드컵은 1930년 우르루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개최되었고, 4년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피파 월드컵은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42년과 1946년에 피파 월드컵이 개최되지 못했고, 1950년이 되어서야 제4회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게 되었고, 이후 피파 월드컵은 4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세계 3대 스포츠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1983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제3회 대회(1991년)까지 4년마다 개최되다가, 제4회 대회(1993년)부터 2년마다 개최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영구적 북한 핵폐기와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

미국의 요구 -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비가역적) 비핵화(해체-폐기)

또는 PVID: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불가역적) 비핵화(폐기=해체)

북한의 요구? - CVIG: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보증=확약)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구촌의 절대 강자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지구촌 최고의 슈퍼 갑이 바로 미국입니다.

핵무장을 했다고 하지만, 북한은 김씨 일가 독재체제의 약소국입니다.

 

 

흔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비교되는 절대 강자 미국과 독재국가 북한은 지난 수십 년간 스스로 불신을 초래한 나라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합의와 조약 등을 준수한 것도 있지만, 미국과 북한은 국가 간 또는 국제기구와의 협정, 조약, 합의를 탈퇴, 파기(폐기)하며 헌신짝 버리듯 한 것도 사실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이 국가 간 협정(행정협약)을 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습니다. 국가 간의 협정 또는 합의 사항은 미국 대통령(행정부)의 서명만으로 발효되는 것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조약과는 다릅니다. 

 

 

 

 

 

 

 

 

 

 

미국 행정부와 미국 의회의 약속? -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트럼프 대통령(행정부)이 북한과의 약속(협정 또는 합의)을 잘 지킬 수도 있고, 파기할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재임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정권이 바뀌었을 때 미국 행정부는 북한과의 약속(협정 등)을 지킬 수도 있고, 파기할 수 있습니다.

 

 

미국 의회 인준을 받은 국가 간의 조약은 미국 대통령(행정부)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가 보장하지만, 이 또한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국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지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또 군산복업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불가침 협정을 맺기를 바랄 것이며, 협정보다는 더 큰 안전장치로 미국과 북한의 북미 조약을 맺어 미국 의회에서 인준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미국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할 수 없도록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의회의 승인 없이 60일 동안 전쟁을 할 수 있으며, 30일을 연장하여 최장 90일까지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쟁 의회 보고와 추인은 사후 보고와 추인입니다.

 

한 마디로 북미 조약을 미국 의회가 인준 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도 있으며, 실제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 핵폐기의 해결 방안으로 완전한 북한 핵폐기(CVID) 또는 영구적 북한 핵폐기(PVID)를 요구할 것이지만, 현재까지 미국의 공식적인 정책은 CVID입니다.

 

 

미국이 북한에 완전한 핵폐기의 CVID를 요구한다면 북한은 미국에 완전한 체제 안전 보장(CVIG)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혹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무사히 임기를 다 마치고 퇴임해 다른 대통령(행정부)에 취임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CVIG,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체제보장을 국가(미국)가 끝까지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북한을 믿지 않는 미국 의회와 미국 의회에 지지세력이 취약한 트럼프가 과연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협정)한 내용을 지킬지, 의회 인준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의회가 인준해준다 하더라도 인준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미국과 북한이 완전한 또는 영구적 북한 핵폐기를 위해 2018년 6월 12일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납니다.

트럼프는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차례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핵폐기를 위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경호와 의전 등을 조율하는 판문점, 싱가포르, 뉴욕에서 실무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한 핵폐기와 북한의 체제보장입니다.

북한 핵폐기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 준비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지만, 혹자는 북한 핵폐기에 대해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나온 북한 핵폐기 방안은 크게 완전한 핵폐기와 영구적 핵폐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완전한 북한 핵폐기(CVID)와 영구적 북한 핵폐기(PVID)는 모두 미국 정부와 관료가 주장한 것입니다.

 

 

북한은 6자 회담에서 거론된 완전한 핵폐기 CVID를 전제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최근 미국 관료로부터 영구적 핵폐기 PVID 용어가 나오자 크게 반발했습니다. 

 

 

미국은 완전한 북한 핵폐기가 이루어질 때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정 보장)를 북한에 제공해 준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북한 핵폐기 - 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완전한 북한 핵폐기 방안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입니다.

 

2003년 8월에 북한 핵폐기를 위한 제1차 6자 회담이 열렸는데, 미국은 북한이 핵폐기를 먼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미국이 사용한 말이 완전한 북한 비핵화, CVID입니다.

 

 

 

완전한 북한 핵폐기CVID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북한은 미국의 CVID에 맞서 북한의 체재보장과 경제지원을 요구하다가 결렬되었습니다.

 

2018년 6월 12일에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완전한 북한 핵폐기의 CVID가 정부의 정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구적 북한 핵폐기 - PVID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영구적 북한 핵폐기 방안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의미입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사에서 그동안 미국이 견지해오던 완전한 북한 핵폐기의 CVID가 아닌 영구적 북한 핵폐기를 의미하는 PVID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어떤 의도로 영구적 북한 핵폐기의 CVIG 표현을 썼는지 밝히지 않으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구적 북한 핵폐기 PVID란 승전국이 패전국에 쓴 표현이라며, 미국이 마치 북한을 패전국 다루듯 하는 데 대해서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말한 영구적 북한 핵폐기 PVID란 완전한 북한 핵폐기 CVID보다 강화된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완전한 북한 핵폐기의 CVID와 영구적 북한 핵폐기의 PVID는 용어와 표현의 차이일 뿐 기본적인 뜻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완전한 북한 핵폐기 CVID는 6자 회담이 시작된 2003년부터 미국 정부가 사용한 용어이며, 영구적 북한 핵폐기 PVID는 폼페이오가 2018년 5월 3일 취임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완전한 북한 체제보장 - CVIG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보장

 

완전한 북한 체제보장을 의미하는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보장)는 2017년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미국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완전한 북한 핵폐기 CVID에 대해 북한이 완전한 체제안전 보장 CVIG 용어를 사용한 사실은 없습니다.

완전한 북한 체제보장의 CVIG는 완전한 북한 핵폐기 CVID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북한은 CVIG를 말한 적이 없으며, 일부 논객들 사이에서 북한이 CVIG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완전한 북한 핵폐기의 CVID가 용어가 사용되면서, 근래 들어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 CVID를 이행하면 완전한 체재보장, 즉 CVID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북한 핵폐기 원칙으로 완전한 북한 핵폐기 CVID와 영구적 북한 핵폐기 PVID가 거론되고 있지만, PVID는 북한이 절대 수용하지 않으리란 것이 중론입니다.

 

 

 

 

 

 

 

 

 

 

북한 핵폐기 방식으로는 리비아 핵폐기 방식과 이란 핵폐기 방식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원자로도 없었던 리비아와 핵무기가 없는 이란과 북한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트럼프 방식이 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북한 핵폐기를 성사시켜야 하는 미국과 단계적 핵폐기와 체제 안전보장의 약속(협정 또는 조약)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북한의 견해차가 있지만, 여러 차례의 회담을 하더라도 절충안을 내서 소위 '트럼프 모델 방식'의 합의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이 주도적으로 북한 핵폐기를 추진하더라도 러시아, 중국, 일본은 반드시 북핵 문제에 개입할 것입니다.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의 남북한을 비롯한 4대 강국이 북한 핵폐기를 위해 2003년부터 시작한 6자 회담을 열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든 약속을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북한입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더 나아가 지구촌의 평화와 안녕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북한 핵폐기이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전체적인 흐름과 혹시라도 약속(협정 또는 조약)을 지키지 않고 어깃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안전장치로 6개 나라가 함께 북한 핵폐기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 합당합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1991년(1992년 서명)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으로부터 시작한 한반도 비핵화,

급진전하고 있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최근 들어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나타내며 분명히 예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근 30년 동안 진행되어 온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2018년 들어 급진전 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문제는 과연 별개의 것일까요? 아니면 같은 것일까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1991년 말부터 시작해 1992년 남북한의 정원식, 연형묵 총리가 서명하면서 남북한의 첫 번째 비핵화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북한은 1992년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고 핵사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고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2006년 핵무기 실험을 통해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 됐습니다.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는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평화와 통일의 조건을 조성하며, 핵에너지는 오직 평화적인 목적에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남북한 모두 핵무기를 실험, 제조, 보유, 저장 및 사용 등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모두 어겼습니다.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만들어 핵보유국이 됐습니다.

 

 

 

 

 

 

 

 

 

 

과연 북한만 한반도 비핵화를 파기했을까요?

 

미국은 대한민국 내의 미군기지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모두 철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남한 내에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검증하지 못했으며, 미국은 아직도 유럽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터키 등에 배치한 전술핵은 수백 기에 달합니다.

 

 

미국은 북한 못지않게 지난 수십 년간 스스로 지구촌이 못 믿을 언행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의 생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사건은 1994년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도 알리지 않고 한반도 전쟁까지 준비했었으며, 핵무기와 더불어 많은 인명을 살상시키는 대량살상 무기인 생화학무기를 최근까지 주한미군 기지에 몰래 반입해 실험하다 발각된 사건입니다.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지구촌 유일의 세습 독재국가이듯이, 미국은 뼛속까지 자본주의 국가로 이익이 남는 일에는 자국의 국민(미군)을 희생시켜서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나라입니다.

미국은 이문이 남지 않는 일에는 수십만 명이 죽어가도 절대 개입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검증과 통제를 받으며 한반도 비핵화를 충실하게 이행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2018년 4월 27일 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 남북한의 통일 문제를 판문점 선언에 넣었습니다.

 

 

북한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바로 체제보장입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한의 불가침 및 항구적 평화체제를 말한 것은 최소한 김정은 당대에는 한반도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지가 드러난 것입니다.

 

 

 

 

 

 

 

 

 

2003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한과 4대 강국이 6자 회담을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의 로드맵이 나온 것은 2005년 제4차 6자 회담의 9.19 공동성명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했다고 주장하며 북한 지도부가 이용하고 있는 BDA 은행을 제재면서 눈앞에 왔던 한반도 비핵화가 다시 멀어졌습니다.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했다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로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제조,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과 같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최초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유엔과 국제기구와 국제조약은 철저하게 강대국의 힘의 논리로 움직이고 맺어집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이며, NPT(핵확산금지조약)가 인정하는 지구촌 핵무기 보유국 역시 똑같은 5개 나라입니다.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 5개 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면제 특혜를 받고 있습니다.

 

 

 

가장 입김이 강한 미국은 일본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추출)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주었습니다. 막강한 미국의 파워 덕분에 일본은 핵무기 비보유국임에도 불구하고 IAEA 등의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1950년대 후반에 일본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인정했고, 1970년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철저한 보호와 묵인 아래 단 한 명의 군인도 없는 나라지만, 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전쟁을 한다면 이길 수 있는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근 3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한반도의 남북한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현재는 중단된 6자 회담은 모두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포함하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입니다.

 

 

혹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또 특정 세력은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하여 미국의 핵전략 자산과 주한미군 철수 등 소위 핵우산을 없애는 것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근 30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에서도 북한의 핵무기 폐기, 즉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체재보장을 약속했습니다.

 

 

특정 세력의 주장처럼 북한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주한미국 철수 및 미국의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불가는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단지 추정에 그칠 뿐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도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포함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체재보장이기 때문에 미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불가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건 아직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발표할 때까지 북한과 미국이 어떤 조건을 내세웠고 합의했는지 구체적인 사항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국과 북한은 모두 못 믿을 나라입니다.

그래도 한반도 전쟁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상의 무한경쟁 시대로 특히 강대국은 경제적, 군사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돌발 상황 및 북한과 미국의 변심,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간섭과 주변 강대국끼리의 파워 게임이 지속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더 나아가 동북아와 지구촌의 완전한 비핵화와 각 나라가 상극적인 무한 경쟁을 멈추었을 때 지구촌 평화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북한의 비대칭전력, 생화학무기와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핵탄두를 탑재한 핵미사일 EMP 폭탄 공격

 

 

 

 

 

 

 

 

 

 

 

 

한반도 비핵화를 대전제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과 앞으로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체재보장입니다.

 

 

북한이 그동안 대한민국과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와 핵탄두를 탑재한 핵미사일 발사를 언급한 것은 체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 위협용이라는 것은 중론입니다.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의 입장을 보면 전쟁을 일으킬 마음도 없고, 지구촌 4대 강국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래식무기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앞서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대칭 전력에서는 북한이 대한민국에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핵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생화학무기, EMP 폭탄 등입니다.

북한이 대한민국과 1:1로 전쟁을 벌인다면 비대칭 전력으로 전면전을 할 수도 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상황 때문에 현실적으로 북한이 비대칭 전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핵무기 보유국, 세계 1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으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비대칭 전력과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최강의 전력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미국 의회의 EMP 조사위원회 조사에서 2004년 러시아로부터 EMP 폭탄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북한이 EMP 폭탄(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탑재한 핵미사일이 폭발하면 핵전자기펄스(NEMP) 방출됩니다.

북한은 핵전자기펄스(NEMP)와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를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한정된 범위지만, EMP 공격장치 시험개발을 완료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전자기펄스(EMP) 공격에 대비한 방호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EMP를 차단할 수 있는 EMP 방호시설을 구축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EMP 효과를 차단할 방호시설은 1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북한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 핵무기를 비롯해 생화학무기 등도 모두 폐기해야 하지만,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입니다. EMP 폭탄은 살상용 무기가 아니고 우리나라도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를 개발하고 있어서 폐기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를 제외한 생화학무기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모두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의제에 빠져 있으므로 차후에 논의하고 풀어 내해야 할 문제입니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 생화학무기, 핵미사일과 EMP 폭탄 등의 공격 위협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지만, 일반적으로 미국과 강대국에는 그리 위협적인지 않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북한은 여러 차례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ICBM) 등을 시험 발사를 하자 미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핵탄두를 탑재한 SLBM과 ICBM은 핵미사일입니다.

미국은 최첨단 요격미사일로 날아오는 ICBM을 100% 요격할 수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지만, 단 한 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에서 폭발한다면 상사할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만일 북한이 비핵전자기펄스 EMP 폭탄을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하거나 핵탄두를 탑재한 핵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한다면 미국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바뀔 것입니다.

 

 

 

 

 

 

 

 

 

 

미국은 지난 2003년 이라크전쟁에서 비핵전자기펄스 EMP 폭탄 공격에 사용했습니다.

 

미국 CIA 전 국장 제임스 울시와 EMP 위원회 피터 빈센트 프라이 박사는 미국 의회 국가안보소위원회에서 북한의 수소폭탄을 탑재한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면 폭발과 함께 초강력 EMP 효과가 발생하여 지국 전역이 마비되면서 사회 혼란, 질병, 기아 등으로 1년 이내에 90%에 달하는 미국인이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 공격은 문명을 파괴하지만, 핵미사일로 공격해 발생하는 핵전자기펄스(NEMP)는 인간과 자연, 문명을 모두 파괴하게 됩니다.

 

 

 

 

 

 

 

 

 

 

구소련은 1961년 6Mt 급의 수소폭탄 고고도 핵실험을 했는데, 4천km 떨어진 미국 알래스카의 조기경보 레이더와 핵실험 반경 4000km 내의 장거리 고주파 통신이 고장 났습니다.

 

 

미국은 1962년 1.4Mt 고고도 핵실험을 했는데, 1400여 km 떨어진 하와이의 가로등과 전화 등 전자기기가 고장 났습니다.

구소련과 미국의 고고도 핵실험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핵전자기펄스(NEMP)입니다.

 

 

구소련과 미국의 고공 핵실험에서 나타났듯이 EMP 폭탄 공격의 경우 수소폭탄을 탑재한 핵미사일은 목표에 대한 정확도가 필요 없고, 대기권 재진입의 문제도 필요 없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전 국장과 EMP 전문 박사의 주장대로 만약 북한이 수소폭탄을 탑재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미사일을 발사해 단 한 방이라도 미국 본토 상공에서 터진다면 북한은 보복 공격으로 시 멸망, 미국은 1년 후쯤 멸망할 것입니다.

 

 

북한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궁지에 몰린다던가 체제가 붕괴할 조짐이 보이던가, 돌발 상황, 쿠데타 등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북한 스스로 자멸을 길을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화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강대국은 북한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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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출력 전자기파를 발생시키는 전자기펄스 EMP 폭탄의 공격 효과

- 모든 전기 전자장비를 파괴하고 세상을 암흑천지로 만들어버리는 블랙아웃(black-out) 현상

 

 

 

 

 

 

 

 

 

 

 

 

18세기 후반까지 우리나라에는 전기가 없었습니다.

발전기를 도입한 1887년 경복궁 건청전에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가 공급됐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기를 지구상에 전기가 없다면 원시시대와 다름없다고 말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말이면서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현대 문명은 1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습니다.

근래 들어 전기사용량 폭증으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는 이른바 블랙아웃(black-out) 현상이 일부 지역에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암흑천지가 된 블랙아웃 현상은 짧은 시간에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발생했습니다.

 

 

 

 

 

 

 

 

 

 

블랙아웃 현상은 발전소 사고, 천재지변과 비상 상황 등과 발전소의 공급량보다 많은 전기를 소비할 때 일어나게 됩니다.

전기를 공급받아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와 장비는 블랙아웃 현상이 일어나면 임시 발전기가 작동하던지 블랙아웃 현상을 일으킨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용을 못 합니다.

 

 

우리가 아는 블랙아웃 현상은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발전소 문제, 공급량과 소비량의 문제에 의해 발생하게 됩니다.

블랙아웃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력, 화력, 수력, LNG 발전소 등에서는 전력수요량 대비 초과 전력 공급량(전력 예비율)을 확보하여 비상 상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블랙아웃 현상보다 더 무서운 블랙아웃 현상은 바로 전자기펄스 EMP 폭탄의 공격으로 발생하는 블랙아웃 현상입니다.

전자기펄스 EMP 폭탄 공격은 일반적은 블랙아웃 현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합니다.

 

 

EMP(전자기펄스) 폭탄은 폭발과 함께 고출력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폭탄의 위력에 따라 일정 지역 내의 공중과 지상, 지하에 있는 모든 전기 전자제품을 파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전자기펄스 EMP 폭탄은 모든 전기, 전자제품을 파괴하지만, 인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상이 암흑천지가 되는 블랙아웃 현상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1925년 물리학자 콤프턴이 전자기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 효과 원리를 처음 발견하여 '콤프턴 효과'라고도 합니다.

전자기펄스 EMP 효과는 1962년 미국이 태평양 상공에서 핵험을 했는데 1400km 이상 떨어진 하와이의 전화, 가로등 등이 작동이 중지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자폭탄(E-폭탄, electronic bomb)' 등으로 불리는 공식 명칭은 고전력 극초단파 빔(HPMs, High Powered Microwave beams)입니다. 전자기펄스 EMP 폭탄은 권총에 장착하여 발사할 수 있는 영향권 수십m의 극소형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해 발사할 수 있는 영향권 수천 km의 대형 폭탄까지 다양합니다.

 

 

전자기 펄스 EMP 폭탄은 최첨단 무기입니다.

전자기 펄스 EMP 폭탄은 크게 비핵전자기펄스(Non-nuclear electromagnetic pulse, NNEMP)와 핵전자기펄스(nuclear electromagnetic pulse, NEMP)가 있습니다.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은 총알, 비행기 투하 폭탄, 미사일 탑재 등으로 특정 지역에 폭발시켜 손목시계부터 휴대전화, 가정의 모든 전자기기가 파괴되고, 발전소가 정지되면서 블랙아웃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군용 통신장비, 레이더, 위성, 자동차, 비행기 등 일체의 전자무기를 무력화시킵니다.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은 핵폭발 없이 EMP 효과만 나타납니다.

 

 

 

비핵전자기펄스(NNEMP) 폭탄은 직접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전자기파 펄스 EMP 폭탄이 터지면서 영향권 안에 있던 모든 발전소를 비롯한 전기 전자제품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발생하는 2차 피해가 발생하여 인명이 희생됩니다.

 

반면 핵전자기펄스(NEMP) 폭탄은 말 그대로 핵폭탄이 터졌을 때 방출되는 엄청난 양의 전자기파로 핵폭발로 인한 피해와 동시에 EMP 효과가 광범위한 지역에 발생하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20여 년 전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존 트라볼타 주연한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핵무기 사고를 의미하는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 부러진 화살)였습니다.

영화에서 핵미사일이 폭발하게 되는데, 이때 아주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핵무기가 터지는 순간 핵폭발에 때문에 강력한 전자기파(EMP-Electromagnetic Pulse, 핵전자기파)가 발생하면서 헬기의 전자장비가 파괴되어 추락합니다. 이처럼 핵폭탄이 폭발하면 강력한 핵전자기파(NEMP 효과)에 의해 일정 지역 내에 있는 모든 전기, 전자제품은 파괴됩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까지 시리즈로 개봉하여 공전의 히트를 한 SF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전자기펄스 EMP 폭탄 공격 장면이 나옵니다.

매트릭스의 EMP 공격은 일시적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파괴하는 공격은 아닙니다.

 

 

 

 

 

 

 

 

전자기 펄스 EMP 폭탄이 터지면 현대문명의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고, 문명 이기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만약 미국 본토 수십km 상공에서 수소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폭발한다면 핵전자기펄스(NEMP)가 발생하여 미국은 순식간에 19세기 중반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EMP 폭탄의 영향으로 불과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현대인은 문명의 이기만을 의지하여 살아왔기 때문에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로 인한 물적, 인적인 피해 규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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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부터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탄도미사일은 로켓 엔진의 추진력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말합니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북한이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기술까지 이르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은 북한이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기술력만 있다면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탄도미사일에는 핵탄두를 모두 탑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은 300km 내외의 전술 탄도미사일, 1000km 이하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3000km 이하의 준중거리탄도미사일, 5500km 이하의 중거리탄도미사일, 5500km 이상의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전술 탄도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한반도 전역을 사정권으로 한 탄도미사일입니다.

준중거리탄도미사일은 일본, 중장거리탄도미사일은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와 하와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입니다.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에서부터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르기까지 화성(1~15호), 북극성, 은하(1~4호, 광명성) 등 여러 탄도미사일에 고유명칭과 숫자를 붙였습니다.

 

북극성탄도미사일은 육상과 해상(잠수함 SLBM)에서 발사 실험을 했습니다.

화성-14호와 은하 3호(광명성 호를 탑재한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이루었다면 모두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입니다.

 

 

 

노동미사일, 무수단미사일, 대포동미사일 등은 우리나라가 편의상 미사일 발사 장소의 이름을 붙인 명칭입니다.

KN-01, 02, 03.... 등으로 이어지는 북한 미사일 명칭은 국(한국)이 북한(Korea North) 미사일에 붙인 또 다른 명칭입니다.

 

 

 

 

 

 

 

 

 

 

국제연합(UN)의 안전보장 이사회의는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10개 비상임이사국은 2년 임기로 유엔 총회에서 선출됩니다.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와 북미 간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1994년까지를 흔히 1차 핵위기라고 말합니다.

 

유엔 안보리 최초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북한이 1993년 탈퇴를 선언하자 결의됐습니다.

1993년 5월 11일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결의안 제825호가 최초의 대북제재입니다.

 

 

 

 

 

 

 

 

 

 

1998년 사정거리 2500km 백두산 1호(광명성 1호)를 발사했는데, 우리는 대포동 1호라고 불렀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다시 대북제재를 결의한 것은 2006년 7월 15일입니다.

 

 

 

2006년 7월 5일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2호(광명성 2호)는 발사 후 7분여 만에 동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제1695호 결의안은 사정거리가 3500km~6000km 정도로 추정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의 대포동 2호 발사에 대한 조치였습니다.

 

더욱이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10월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군사, 경제적으로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결의했습니다.

 

 

 

 

 

 

 

 

 

 

유엔의 강력한 대북제재는 미국이 주도한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대북제재가 시작된 것은 2006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을 하고 나서부터입니다.

 

북한의 핵무기 기술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관련된 내용은 한국, 중국, 미국 등 지구촌 어느 나라도 모르고 단지 추정치만 있을 뿐입니다.

 

 

 

최근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했고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고 발사한 2009년 은하 2호(대포동 2호)와 2012년 발사한 은하 3호는 사정거리 13000km 수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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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북한은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국

영국과 프랑스는 ICBM급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보유국

 

 

 

 

 

 

 

 

 

 

 

 

지구촌 전체 핵무기의 90%,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핵탄두)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95% 보유국이 바로 미국과 러시아(구소련)입니다.

 

 

세력 확장의 동서냉전 시대 미국과 구소련(러시아)은 앞다투어 군비경쟁에 열을 올렸습니다.

군비경쟁은 재래식 무기에서 핵무기로, 핵무기에서 수소폭탄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먼 거리에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대치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SLBM은 1955년 구소련은 B-67 디젤 잠수함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R-11 미사일을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구소련은 1957년 8월 세계 최초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에 성공합니다.

 

미국도 1957년 아틀라스 발사에 성공하고, 1959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합니다.

미국은 1960년 원자력 잠수함 조지 워싱턴 함에서 폴라리스 A-1 미사일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SLBM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탄도미사일은 사정거리에 따라 일반적으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분류하지만, 사정거리를 더 세부적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1000km 미만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1000km 이상 3000km 미만의 준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3000km 이상 5500km 미만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5500km 이상의 장거리 탄도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 ICBM)로 분류합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에서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발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통제 아래 사정거리 800km 미사일까지만 보유할 수 있습니다.

 

 

 

단거리 미사일에 재래식 폭탄을 장착한다면 몰라도 수천 킬로를 날아가는 중거리탄도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재래식 폭탄을 장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특히 대륙을 넘나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량파괴와 대량살상으로 공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핵무기(핵탄두)를 탑재합니다.

 

 

 

 

 

 

 

 

 

미국과 구소련 양국은 1968년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탄도 요격미사일 보유국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구소련이 주도하여 핵무기 보유국 외에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과 이전 금지 등에 관한 핵확산방지조약(NPT)이 1969년 유엔 총회에서 체결됐습니다.

 

 

 

미국과 구소련은 1969부터 1972년까지 협상을 벌인 끝에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 1) 합의와 탄도 요격미사일 제한(Anti-Ballistic Missile, ABM) 협정 체결합니다.

 

 

미국은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054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710기로 제한하고,

구소련은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618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950기로 제한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때 미국과 구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탄도 요격미사일(ABM) 기지를 두 곳에서 한 곳으로, 200기에서 100기로 제한합니다.

 

 

 

 

 

 

 

 

 

1969년 미국과 구소련(러시아)은 ICBM(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과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및 핵무기 탑재 장거리 폭격기 등 전략무기를 제한하는 협정, 이른바 전략무기제한협정((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SALT)을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구소련(러시아)이 보유한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은 3000기가 넘었습니다. 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총 한 방 쏘지 않고도 미국과 구소련이 초토화하고 전멸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구촌 강대국이 신무기를 개발하거나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 무기의 파괴력을 증강할 때 언제나 하는 말은 '방어용 무기다.'입니다. 일반적으로 방어용 무기란 약자가 강한 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무기를 방위용 무기, 또는 자위용 무기라고 합니다.

 

 

핵무기(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는 요격미사일은 100% 방어용 무기입니다.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를 두고 흔히 '창과 방패'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핵폭탄은 방어용 무기가 아니며,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역시 절대 방어용 무기가 아닙니다.

 

 

미국과 구소련이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제한협정을 하면서 100% 방어용 무기인 탄도 요격미사일(ABM)까지 제한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군사강국 미국과 구소련(러시아)이 핵폭탄과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탄도미사일 등 핵무기 공격능력을 그대로 둠으로써 양국이 전쟁을 벌이면 완전히 초토화되어 몰살된다는 두려움 때문에 공격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었습니다.

 

 

웃긴 것은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구소련의 핵무기 보유량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 후반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률은 형편없었고, 40여 년 동안 연구개발을 거듭한 현재도 100% 성공률을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구소련의 생각처럼 '공포의 균형'이 유지되려면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핵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미국과 구소련은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을 벌여 합니다.

미국과 구소련은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대지탄도미사일(ASBM), 핵무기 탑재 전략폭격기, 다탄두 각개 목표 재돌입미사일(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 MIRV) 등을 제한하는 것을 체결했지만, 발효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1982년, 1991년, 1993년, 2000년에 전략무기감축협정(SALT 2)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2010년 미국과 러시아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을 조인했습니다.

양국은 핵탄두를 2021년까지 1550기로 제한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비준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맺은 전략무기감축협정은 단 한 번도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이른바 국가미사일방어체제((National Missile Defense, NMB → 미사일방어체제Missile Defence, MD)로 전환한다는 미명아래 탄도요격미사일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탈퇴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사정거리가 ICBM급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보유국입니다.

 

 

러시아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제외한 핵폭탄과 핵무기(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본토에 배치했지만, 자칭 세계 경찰이라고 행세하는 미국은 핵무기를 본토와 해외 기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은 불가역적 비핵화,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실현을 위한 첫걸음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핵폐기)>의 과정

 

 

 

 

 

 

 

 

 

 

 

 

1968년 유엔(UN) 총회에서 채택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70년 발효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NPT 조약이 체결된 이후 지구촌 핵무기는 빠른 속도로 보유량이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 중반 전 세계 핵무기가 최대치(약 7만여기)를 기록했고, 지금은 약 1만 5천개 정도의 핵무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는 생화학무기와 함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마의 무기입니다.

당시 지구촌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미국, 구소련, 영국, 중국, 프랑스였습니다.

 

'핵무기 불확산에 관한 조약(NPT)'은 기존의 핵무기 보유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여타 다른 나라는 핵무기 도입 및 개발과 보유를 금지한 조약입니다.

 

 

 

 

 

 

 

 

 

 

흔히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라는 말처럼 글로벌리더로 꼽히던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그중에서도 미국과 구소련이 앞장서서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면서 국제조약을 헌신짝 내버리듯 뒤집어 버렸습니다.

 

핵무기 불확산에 관한 조약(NPT)은 내 것은 그대로 둔채 남의 것만 빼앗겠다는 철저하게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반영된 국제협약입니다. 

 

 

 

 

핵무기와 함께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무기의 세계 1, 2위 보유국은 미국과 러시아입니다.

다른 핵보유국과 생화학무기 보유국의 무기도 폐기해야 하지만,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는 지구촌이 지켜보는 가운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반드시 폐기해야 할 악마의 무기입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북한 핵무기를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영구적으로 완전하게 폐기해야 하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악마의 무기인 생화학무기도 반드시 폐기해야 합니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와 선언(북핵폐기) 과정>

 

대한민국은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습니다.

북한은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지만, 1993년 탈퇴와 탈퇴와 보류를 거쳐 2003년 NPT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1990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합니다.

 

 

 

1991년 12월 남북한은 한반도의 핵전쟁 위험을 없애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전문과 6개 항으로 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때는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었던 시기라 '완전한 한반도의 비핵화 합의와 선언(북핵폐기)'이 아닌 앞으로 핵무기의 개발과 실험 및 생산과 보유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대한민국 정원식 국무총리와 북한 연형묵 총리가 서명했습니다.

 

1991년 말 채택하고 1992년 초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북핵폐기가 아니라, 앞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과 실험 및 보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북한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2018년 4월 27일 남북한 정상이 만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의 <판문점 선언>이 있기 전까지 1991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장 구체적인 남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합의와 선언이었습니다.

 

북한은 2009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폐기를 선언했습니다.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의 <6.15 남북 공동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2002년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증폭되고, 2003년 1월 북한이 NPT를 탈퇴합니다.

 

2003년 8월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모여 북한의 핵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베이징에 모여 이른바 6자 회담이 개최됩니다. 제1차 6자 회담에서 먼저 북한의 NPT 복귀와 북핵폐기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고 핵보유국을 선언합니다.

6자 회담은 2007년 3월 6차 회담을 마지막으로 아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남북한의 <10.4 남북 정상선언>에는 한반도 핵문제(비핵화) 해결을 위해 남북한이 6자 회담의 9·19 공동성명(2005년)과  2·13 합의(2007년)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노력한다는 추상적인 합의 내용만 들어 있습니다.

 

 

 

 

 

 

 

 

 

 

북한은 6번의 핵실험과 여러 차례 탄도미사일 발사했습니다.

북한 핵무기가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는지, 또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북한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아무것도 모르며 단지 추정치만 있을 뿐입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문 내용에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즉 북핵폐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북핵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남북한이 밀실에서 합의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생중계하면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의 합의와 공동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판문점 선언의 3번째 의제는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입니다.

 

 

3번째 의제의 ④항에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지만, 더 강하게 한반도의 비핵화, 곧 북핵폐기를 원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아직은 <4.27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핵폐기)는 남북 정상 간에 합의와 선언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며,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합의한 것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유엔을 앞세워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와 군사적 압박에 성공해 북한이 중대 위기의 기로에서 북핵폐기라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전문가도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과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핵폐기)의 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출행동과 쇼맨십으로 유명한 미국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할지 안 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북핵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과 시기 등이 합의된다고 해도 산 넘어 또 산을 넘어야 할 것입니다.

 

반도 비핵화 문제는 단순히 북핵폐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관련 당사국의 국내 문제와 6자 회담의 당사국 간 국제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습니다.

 

 

 

 

 

 

 

 

 

 

6자 회담은 한반도의 대한민국과 북한, 그리고 주변의 4대 강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북한의 핵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다자회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의 눈치를 보는 일본은 몰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6자 회담 재개를 강력하게 주장할 것입니다. 

 

 

 

과거 미국과 북한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국제협약을 헌신짝 버리듯 했습니다.

북핵폐기 과정에서 돌발상황, 또는 서로의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는 언제든지 무효화 될 수 있으며,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에서 패권 경쟁을 하는 4대 강국 간의 복잡한 변수와 종전협정, 6자 회담 등 수많은 난제가 놓여 있습니다.

 

 

 

 

 

 

 

 

 

 

정전협정 당사자이면서 아무 힘없는 유엔, 정전협정 당사국 중국과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니면서 입김이 강하게 내뿜는 미국, 미국을 등에 업고 부활한 일본, 미국이 군사적으로 절대 덤빌 수 없는 유일한 군사대국 러시아는 모두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이거나 한국전쟁에 개입한 나라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북핵폐기가 성사된다 해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력 확장에 눈먼 4대 강국이 북핵폐기 하나에 만족하고 더 큰 탐욕은 버릴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보유한 핵무기는 전 세계 핵무기의 약 90%에 해당하는 1만 4천여 기입니다.

북한은 악마의 무기이며 핵무기 못지않은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무기 세계 3위 보유국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면죄부를 주는 조건으로 일제 731부대로부터 생화학무기 관련 자료 일체를 받았고, 자체 개발한 생화학무기로 무장한 세계 1위의 생화학무기 보유국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 남쪽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과 4.27 판문점 선언 전문

 

 

 

 

 

 

 

 

 

 

 

2차 세계대전 말기 세력 확장을 하던 미국과 구소련에 의해 1945년 한반도는 남북한으로 분단되었습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유엔과 중공(중공)과 북한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면서 현재까지 휴전상태가 지속하고 있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근 50년 동안 한반도의 주인인 남북한은 남북 간 교류와 협력, 남북한의 전쟁을 종식과 미래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체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남북 실무자가 만나 수백 차례 회담을 했습니다.

 

 

 

 

 

 

 

 

1994년 남북한 정상은 북한의 평양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이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1998년 현대그룹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판문점 소떼 방북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급진전하였으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남북 정상회담은 3차례 열렸습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평양에서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회담입니다. 남북한 정상은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하고 발표해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6·15 남북 정상회담이라고도 합니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회담입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남북한 정상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발표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10·4 남북 정상회담이라고도 합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은 2018년 4월 27일 북한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으로 4·27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은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선언문으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은 없지만, 그 상징적 의미와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첫 단추를 잘 끼운 성공적인 회담이라고 말합니다.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었던 군사분계선(휴전선)이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 번영과 통일을 위한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합의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4.27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로 이어지는 대장정의 시작입니다.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은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판문점 선언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합의문을 온전하게 이행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4.27 판문점 선언 전문은 큰 틀에서 남북한 공동의 원칙적인 목표와 입장을 확인한 내용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판문점 선언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표명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판문점 선언이 실현되는 키를 미국이 쥐고 있어서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에 나오리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미국의 주도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한의 적대행위 전면중지와 교류와 협력 등의 판문점 선언의 세부 항목들도 실현 가능성이 결정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운명은 스트롱맨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4.27 판문점 선언 전문에 나타난 합의 사항은 크게 3가지의 핵심 의제와 그 아래 13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남과 북은 남북 관계에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 4.27 판문점 선언 전문에 나오는 첫 번째 의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입니다. 아래 6개 항목은 남북의 대화와 협상, 민간과 각계각층의 교류와 협력, 남북공동연락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남북한 균형발전 등을 이루어 나가자는 것입니다.

 

 

 

2.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 4.27 판문점 선언 전문에 나오는 두 번째 의제는 한반도 남북한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3개 항목은 육해공의 적대행위 일체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을 평화수역화, 군사적 보장대책을 통해 전쟁의 위험 요소를 방지한다는 것입니다.

 

 

 

3.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다.

 

※ 4.27 판문점 선언 전문에 나오는 세 번째 의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며, 아래의 4개의 항목은 상호불가침, 군축 실현, 종전협정(남·북·미 또는 남·북·미·중)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내용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다, 거대한 쓰레기하치장이 되어 버린 대양(大洋)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과 지구 해양에 떠 있는 거대 쓰레기섬

 

 

 

 

 

 

 

 

 

 

 

 

프랑스의 농학 전문가이며, 쓰레기처리 전문가인 카트린 드 실거가 쓴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란 책이 2014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과거 중세유럽의 쓰레기와 싸움을 비롯한 현재 쓰레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환경마피아에 이르기까지 쓰레기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의 저자 카트린 드 실기는 인간이 쓰레기를 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카트린 드 실기의 말처럼 위생관념이 뿌리내리고, 급격한 인구 증가와 인류 문명이 발전으로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쓰레기양은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지구촌 쓰레기 절반가량을 수입하던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이른바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생활의 불편을 주는 문제 때문에 이슈가 되었지만, 재활용 쓰레기 대란보다 더 큰 문제는 태평양 등 지구촌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거대 쓰레기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밖으로 드러난 거대 쓰레기섬 못지않은 큰 문제는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등의 바다 밑에 가라앉은 쓰레기들입니다.

 

 

 

1972년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화학, 산업 폐기물 등 해양 소각과 투기하지 않 런던협약이 체결됐으며, 1975년 발효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런던협약에 가입했고, 1994년 발효됐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1988년부터 해양 투기를 시작우리나라는 해양에 투기한 각종 폐기물이 최소 7천만 톤에서 최대 1억 4~5천만 톤에 이른다고 니다. 대한민국이 해양에 투기한 폐기물은 바다를 떠다니는 일회용품과 비닐 등 플라스틱이 아닙니다.

 

 

 

 

 

 

 

 

 

 

육상에서 버려진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등으로 떠내려와서 모여 거대 쓰레기섬을 형성하면서 해류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은 현재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태평양 쓰레기섬이 확인되었고, 1997년 미국의 해양 환경운동가 찰스 무어 선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제품이 상용화된 20세기 중반부터 해양쓰레기가 다량 배출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어 선장이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미국 텍사스 정도의 면적 크기였다고 합니다.

무어 선장은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을 여러 차례 답사했으며,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태평양뿐만 아니라 인도양과 대서양 등 지구의 대양마다 거대 쓰레기섬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은 우리가 아는 섬처럼 플라스틱 쓰레기가 고정된 형체가 아니라, 크고 작은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무어 선장은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을 바다라는 그릇에 담긴 플라스틱 수프라는 표현을 썼으며, 지구의 해양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어 선장은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저자 카트린 드 실거처럼 재활용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무어 선장은 자신의 말이 해답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혹자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의 규모가 부풀려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이 존재하는 것과 거대 쓰레기섬의 문제가 심각한 것도 사실이지만, 1980년대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닐봉지, 알루미늄 용기, 랩 조각,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기적인 인간이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등을 무분별하게 만들고 버리면서 지구를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오염을 일으킨 주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당사자가 다름 아닌 바로 인간입니다.

 

 

 

 

 

 

 

 

 

 

지난 2015년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이 형성되는 과정, 곧 생명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가 되는 과정의 동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과 미해양대기국(NOAA)이 지난 35년 동안 바다 위에 부표(흰색)를 띄어놓고, 태평양을 비롯한 지구의 바다 위에 떠다니는 쓰레기섬이 해류에 의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공개한 영상입니다.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등 거대 쓰레기섬은 마치 지구의 지각변동 때문에 대륙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우리가 보는 바다 위의 쓰레기도 엄청나지만, 바다 밑에 가라앉은 쓰레기는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문명의 그림자 쓰레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약 18만 톤의 해양 쓰레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5톤 화물차로 약 36,000번을 옮겨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며, 실제 수거하는 쓰레기양은 해마다 달라 최소 3분의 1에서 최대 2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몰고 온 쓰나미의 여파로 약 500만 톤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갔다고 합니다.

그중 3분의 2는 바닷속에 가라앉았고, 나머지 3분의 1 정도가 바다 위의 거대한 쓰레기섬이 되어 해류를 타고 일부는 섬과 육지의 해변으로 몰려갔고, 대부분은 거대 쓰레기섬이 되어 태평양을 떠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촌 75억 인구 중에서 과연 바다 생선을 먹지 않는 인구가 얼마나 될까요?

설령 지구촌 인류가 바다 생선을 먹지 않는다고 해도 해양 환경오염과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 문제는 지구촌 어느 나라도 해결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전문가 무어 선장이 지난 20여 년 동안 지켜본 결과도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등 대양의 거대 쓰레기섬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문명의 그림자입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은 우리나라 면적의 14배, 텍사스의 2배에 이르고, 지구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전체 쓰레기는 이보다 다섯 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은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알갱이부터 스티로폼 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쓰레기 대부분은 플라스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물고기와 새가 먹은 것이 확인됐고, 심지어 바닷새는 비닐과 폐그물 줄을 이용하여 둥지를 짓고 있습니다.

 

 

문명의 그림자 인도양, 대서양, 태평양 등 거대 쓰레기섬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인류의 미래가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생선과 새처럼 되지 않다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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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문명의 그림자 쓰레기의 역습 -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

 

 

 

 

 

 

 

 

 

 

 

최근 이른바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 사태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산업 쓰레기(폐기물)와 일반 쓰레기, 방사능 폐기물 등 역시 또 다른 쓰레기 대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고 배출한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쓰레기의 역습이라고 말합니다.

 

 

지구촌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일각에서는 중국발 쓰레기 대란이라고 부르며 중국에 원성을 보내고 있지만, 중국은 지구촌의 고민을 한동안 해결해준 나라입니다. 중국은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지구촌에서 전역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의 절반 이상을 수입한 나라입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대부분 쓰레기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재활용이 안 되는 것으로 분류하지만,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경제적 논리와 재활용과 소각시설 문제 등과 아무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투기하는 쓰레기 때문에 실제 재활용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그동안 지구촌 전역에서 수입하던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자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촌 전역에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재활용 쓰레기 수입 품목을 지정해 올해부터 24개 재활용 쓰레기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중국은 앞으로 재활용 쓰레기 수입 금지 품목을 36개로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발표로 지구촌 전역에 제2, 제3의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일어날 수 있고, 쓰레기의 역습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등 분리수거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 속합니다.

일반적으로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되는 것들은 유리제품과 종이류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석유화학 제품입니다.

재활용 쓰레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닐과 플라스틱 등의 석유화학 제품도 제품의 특성과 재질이 다양합니다. 

 

 

재활용 쓰레기의 대명사가 된 플라스틱은 150년 전인 1868년 미국의 존 웨슬리 하야트와 파키스 형제가 상아로 된 당구공 대용품으로 발명한 셀룰로이드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입니다.

 

 

플라스틱은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매립할 경우 썩는데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이 소요되며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플라스틱은 인간이 문명을 이용해 편리성과 저가 생산비 때문에 불과 150년 만에 생산량이 재활용 시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습니다.

 

 

 

 

 

 

 

 

 

 

 

문명의 쓰레기 플라스틱은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활용되었고,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라 불리는 쓰레기의 역습은 중국이 재활용 쓰레기 일부 품목 수입을 중단하면서 이슈화된 것이지만, 생활의 불편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아주 서서히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상황입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단지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은 것에 분노합니다.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는 생각하지 못하고 단지 보기 싫고, 냄새나고 불편하다고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쓰레기 수거 업체에 대놓고 불평합니다. 쓰레기의 역습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재활용품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와 수거업체 등 지구촌 모두의 문제입니다. 

 

 

비난의 화살을 받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 업체는 말 그대로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업체일 뿐 쓰레기를 배출하지도 쓰레기 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닙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민에게 철저한 분리수거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시민이 동참한다고 해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언론과 시민 단체 등에 정부와 지자체가 재활용 쓰레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을 만들고 확장하는데도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폐기물 종합처리시설이 자기가 사는 곳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현상 역시 큰 난제입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재활용 쓰레기 대란 대책을 세우고 방법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땜질식 임시방편에 그칠 것입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 수거 업체와 시민, 지구촌 전역이 나서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고 합의해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쓰레기의 역습,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계기로 지구촌 인류는 쓰레기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촌 전역에서 재활용 쓰레기 활용 대책은 단기적이고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에서 모든 제품에서 발생하는 재활용 쓰레기 배출량은 쓰레기 재활용 시설과 인력보다 쓰레기 배출량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지구촌에서 앞다투어 내놓는 방법은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대책만 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쓰레기의 역습은 인간이 편리함을 추구하다 저지른 어리석은 짓입니다.

 

쓰레기의 역습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이 체결된 옛 판문점과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정한 현재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구속력과 실효성이 없는 남북한 종전선언과 한반도의 전쟁을 종식하는 정전협정 평화협정

 

 

 

 

 

 

 

 

 

 

 

 

1951년 7월 8일 북한의 개성에서 한국전쟁 휴전협정(정전협정)을 위한 첫 대화가 시작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휴전협정)이 체결된 지명입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유엔군과 중국과 북한 등 군사정전위원회가 1953년 10월 휴전협정 이행 관리와 통제, 감시와 감독을 위해 군사분계선(휴전선)을 기준으로 판문점 인근을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설정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는 군사분계선(휴전선)을 기준으로 동서로 8백 미터 남북으로 4백 미터 가량의 장방형 지역을 말합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의 행정구역이 다릅니다.

대한민국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입니다.

북한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행정구역상 개성시 판문군 판문점리입니다.

 

 

 

 

 

 

 

 

 

 

남북한의 군사분계선(휴전선)에는 철책이 없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양쪽 끝인 대한민국의 남방한계선과 북한의 북방한계선에만 철책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가 있었습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유엔군이 지명한 5명과 중국(중공)과 북한이 지명한 5명 총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립국 감시위원회는 유엔군이 지명한 스위스와 스웨덴, 북한과 중국(중공)이 지명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 중립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1993년과 1995년 중립국 감시위원회의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에서 추방하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는 유엔군이 지명한 스위스와 스웨덴만 남아 있습니다.

 

유엔군이 지명한 스위스와 스웨덴 중립국 감시위원회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인근 비무장지대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1994년 중국의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와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폐지하고 조선 인민군대표부를 설치하면서 유엔군을 대표하는 미국과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리고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한 직후인 3월 5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남측 지역은 유엔군(미군)이 담당해왔습니다.

유엔군(미군)이 담당하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남측 지역을 2004년 111일부터 한국군이 맡고 있지만,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종전협정(終戰協定)은 전쟁을 하는 쌍방 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을 뜻합니다.

평화협정(平和協定)은 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을 넘어 전쟁 당사국이 불가침을 약속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교류와 협력 등 관계된 협정을 체결하는 국제조약을 뜻합니다.

 

 

종전선언(終戰宣言)이란 전쟁이 끝났다고 외부 세계에 정식으로 발표하거나, 앞으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외부 세계에 정식으로 선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국끼리 서로 합의하여 전쟁을 끝낼 것이다. 또는 전쟁 당사국끼리 전쟁을 끝냈다고 발표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합의하여 종전선언을 한다면 이는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을 끝내는 구속력이 있고 국제협약으로서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은 휴전협정 당사자인 유엔, 중국, 북한이 종전협정문에 서명해야만 전쟁이 끝났다고 종전선언을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일반적인 전쟁과는 그 양상이 다릅니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전쟁이지만, 휴전협정은 유엔군과 중공(중국), 그리고 북한이 체결한 협정입니다.

 

 

 

한국전쟁 종전협정은 휴전협정의 당사자 유엔, 중국, 북한이 만나 체결한다면 구속력이 있는 외교상 협정으로 실효성이 있는 협정이 됩니다. 반면, 남북한의 종전선언은 휴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대한민국과 북한 간에 체결하거나, 또는 외부 세계에 남북한의 의지를 알리는 것으로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종전(終戰)과는 상관없는 남북한만의 협정이며 선언입니다.

 

 

남북한 정상과 실무자가 만나 상호불가침과 북한의 비핵화, 남북한의 관계 정상화 등에 관한 일련의 협정(조약)을 맺고 종전선언문을 체결하거나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남북한의 종전선언은 남북한 두 나라에 국한된 것이지, 한국전쟁을 종식하는 종전협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남북한뿐만 아니라 지구촌에서 전쟁하는 전쟁 당사국은 종전협정과 종전선언을 체결하고 발표하는 순서는 종전선언과 종전협정 중 어느 것이 됐 선후와 관계없이 요에 따라 먼저하고 나중에 할 수 있습니다.

 

 

 

휴전협정을 맺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는 남북한 역시 종전선언과 종전협정 중 어느 것을 먼저 해도 상관없습니다.

남북한 두 나라가 만나 합의하여 종전선언은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은 할 수 없습니다.

 

 

종전선언과 종전협정, 평화협정을 사전적 의미로 살펴보더라도 평화협정이란 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과 종전협정이 이루어진 이후에 체결하는 것입니다.

 

 

 

 

 

 

 

 

 

 

3년여의 한국전쟁과 70여 년 동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유엔과 중국을 배제한 채 남북한 쌍방이 한국전쟁을 종식하는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조선인민군 사령관이 휴전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남북한의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의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을 겸직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동의와 함께 형식적이더라도 유엔 안보리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의 평화협정은 유엔, 중국, 북한 3자 합의의 전협정(종전선언)이 끝나고, 남북한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미국은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1962년 남북한 평화협정을 제의했었고, 1974년에는 정전협정에 서명한 유엔군 사령관이 미국이라는 이유를 들어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휴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닌 대한민국과 종전협정도 맺을 수 없는데,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교류 협력하는 평화협정을 맺자는 억지 주장을 했으며, 북미 간 평화협정은 북한과 미국의 평화협정이지 남북한의 평화협정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의 당사국이면서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엔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합의하여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체제유지와 미국의 세력확장 때문에 군사적 대치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종전협정(종전선언)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국과 북한, 그리고 유엔군 사령관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휴전협정(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 중국, 북한이 남북한 전쟁의 종전협정이 체결되면 남북한은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유엔과 중국, 북한 간에 종전협정이 체결되고 남북한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남북한 또는 미국과 북한, 북한과 일본,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 국들 간에 군사적 충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휴전협정은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모두 휴전협정을 위반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휴전협정 위반 사항은 남북한 모두가 비무장지대에서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며, 대한민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한미군은 유엔군이 아닙니다.

 

 

 

그리고 휴전협정 이후 만들어진 한미연합사(미국 측)가 한반도 유사시 대한민국군을 통제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시 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군에 환수됐고, 전시작전통제권 발동 기준은 있지만, 사실상 미국이 군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휴전협정, 곧 정전협정이 전쟁을 잠시 쉬고 멈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시상황은 휴전 이후 60여 년 동안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군작전 통제권의 평시와 전시(유사시)는 미국과 대한민국이 임의로 설정한 것입니다.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하고 북한이 종전협정에 동의하더라도 반드시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체결 당사자인 유엔군과 중국(중공)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도 2018년 남북한 정상회담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첫걸음이며, 정전협정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을 하고, 이후 평화협정이 최종 목표라고 말합니다. 2018년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남북한이 한반도 종전과 평화협정에 대해 제의하고 논의할 수 있지만, 휴전협정을 종식하는 종전협정문에 유엔군과 중국과 북한이 서명해야 합니다.

 

 

 

혹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사실상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유명무실화되었기 때문에 남북한이 합의하면 정전협정을 종식하는 종전협정과 평화협정 체결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남북한이 전쟁을 끝내는 종전협정(종전선언)과 평화체제를 구죽하는 평화협정 앞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높고 험한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대치상황을 정치 이슈로 활용하면서 권력을 잡아 온 세력과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유지도 큰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휴전협정을 주도한 당사국인 미국(유엔을 주도)과 중국이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만 합니다.

더욱이 예측 불가능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측근까지도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행보로 애를 먹는 모습을 지구촌이 지켜봐 왔을 정도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는 인물입니다. 북한의 김정은 역시 트럼프와 맞설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인물입니다.

 

 

러시아와 일본 역시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이며, 북한 비핵화는 스트롱맨이 권력을 잡고 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4대 강국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을 거쳐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남북한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난제들이 있어서 순탄치 않을 것입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판문점은 본래 임진강의 지류인 작은 사천강이 흘 널빤지로 다리를 놓았던 주막과 초가집 몇 채만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널문리로 불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1951년 10월 25일 유엔군 측의 요구로 휴전협상 장소를 개성에서 '널문리'로 옮기게 됐는데 휴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중공)이 한자를 사용해 배려하다보니 지명이 판문점(板門店)이 된 것입니다.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62km, 북한 평양에서 212l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곳은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가 아닙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곳이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북방한계선 중간 지점(약 1km)에 있어서, 1953년 10월 군사분계선으로 옮겨와 현재의 판문점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가 공동으로 관할하는 특수지역

남북한이 중화기로 무장한 유명무실한 비무장지대(DMZ)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 통일각과 판문각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은 휴전협정(정전협정)에 서명한 유엔군과 중국과 북한, 그리고 중립국(스위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이 공동으로 관할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특수지역 판문점은 지명(地名)이고, 공식명칭은 공동경비구역(JSA)입니다.

휴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800m에 이르는 장방형 지역입니다. 군사분계선 남쪽은 유엔군이 경비를 맡고, 군사분계선 북쪽은 북한(공산 진영)이 경비를 맡기로 했습니다.

 

 

중립국 감시위원회(중립국 감시단)는 판문점 내에 있는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 통일각과 판문각 등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롯하여 비무장지대에서 유엔과 공산 진영이 휴전협정(정전협정) 이행과 준수하고 잘 하고 있는가를 감시, 감독, 시찰하고 조사결과를 군사정전위원회에 보고하게 됩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본래 유엔군, 중국, 북한, 그리고 중립국 감시단이 공동으로 관할하는 특수지역이지만, 현재는 중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철수했고, 대한민국 군인이 추가됐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경비를 담당하던 유엔군(미군)은 2004년부터 한국군(일부 미군)에게 경비를 맡겼지만, 한국군의 지휘통제는 유엔군 사령부가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및 감시초소와 경비병 막사 등과 남측에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으며, 북측에는 판문각과 통일각이 건물 등이 있습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있는 건물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및 회의실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임시 건물 중 파란색 건물 3개는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의실(T1),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T3)입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T1, T2, T3에서 T는 Temporary의 약자로 임시 건물이란 의미입니다.

유엔과 중공, 북한이 모두 정전협정(휴전협정) 이후 현재의 공동경비구역(JSA)은 현재의 판문점으로 옮기면서 임시로 건물을 지은 것입니다.  

 

군사분계선(휴전선) 위에 세워진 T1은 중립국 감독위원회, T2에서는 장성급 회담, T3는 영관급 회담이 열립니다.

그리고 T2에서만 유일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휴전협정으로 만들어진 특수지역으로 유엔군과 북한군 경비병이 공동경비구역(JSA)을 자유롭게 왕래했습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면서 왕래가 중단됐습니다.

 

 

 

1976년 8월 18일에 일어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의 일명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무성하게 자란 미루나무 때문에 북측 초소 관측이 어려워지자 미국과 한국군 11명이 한국인 노무자가 미루나무 절단 작업 하는 것을 감독하고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북한군 10여 명이 나타나 제거 작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미군과 한국군은 북한군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잠시 후 북한군 지원병력 20여 명이 트럭을 몰려와 재차 작업 중지를 요구했지만, 작업을 강행하자 북한군은 차에 있던 몽둥이와 곡괭이 등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적으로 우세한 북한군은 한국인 노무자가 미루나무 제거 작업에 사용했던 도끼까지앗아 공격했습니다.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당시 부상자를 제외하더라도 미군 2명이 사망하면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갔었습니다. 8월 21일 미군은 '폴 버니언 작전'으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단초가 된 미루나무를 절단해 버립니다,

 

한국 특전사부대는 카투사로 위장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습니다. 미국과 한국군이 작전을 개시했지만, 북한이 대응하지 않으면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은 더는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1953년 7월 31일 휴전협정(정전협정) 추가 사항에는 '군사정전위 쌍방 성원은 민사경찰을 보총과 권총으로 무장한다.'라는 사항을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남측으로 북한군 귀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군이 AK 자동소총을 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추가된 정전협정에서 말하는 보총은 총탄 한 발씩 쏘는 수동식 소총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장한 군인이 들어올 수 없는 비무장지대에 남북한 군인들이 중화기로 완전무장한 채 진지를 구축하면서 휴전협정은 유명무실화됐습니다.

 

 

 

 

 

 

 

 

 

북한의 개성에서 시작하여 2년여의 휴전협상과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그리고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이르기까지 세 번을 옮겨 다녔습니다. 

 

 

본격적인 전협상은 판문점의 임시 천막에서 다시 목조건물, 휴전협정이 끝나고 휴전협상을 한 목조건물이 비무장지대 북측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군사분계선(휴전선)으로 옮긴 것입니다.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안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 건물과 남북한 감시초소, 남측 평화의 집과 자유의 집, 북측의 통일각과 판문각 등이 세워졌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의 건물은 모두 임시 건물입니다.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단 건물 중앙에 군사분계선을 상징하는 폭 50cm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들어졌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자유의 집은 1998년 세워진 건물로 군사분계선에 걸쳐져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 뒤 남쪽에서 북측 판문각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자유의 집은 남북연락사무소와 남북적십자사무소가 있으며, 남북 간의 연락과 회담, 교류 등을 지원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측 판문각은 1969년 세워진 건물로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시위원회 건물을 두고 북쪽에서 남측 자유의 집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남측 자유의 집이 평지에 있지만, 북측 판문각은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판문점 북측 판문각은 군사정전위원회와 남북회담 대표들이 대기하고, 북측 경비병들의 사무실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남측 평화의 집은 1980년 세워진 건물로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남서쪽130m에 있으며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남측의 남북회담 장소입니다. 판문점 평화의 집은 대한민국이 휴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관계로 민간 부분 회담을 개최하는 건물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북측 통일각은 1985년 세워진 건물로 남측의 평화의 집과 대칭되는 건물입니다.

통일각은 판문점 북측의 판문각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북남연락사무소 기능과 북측의 북남회담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고,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비무장지대(DMZ)와

남북한의 최전방 남방한계선(SLL)과 북방한계선(NLL)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까지 동북아의 작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세계대전과 맞먹는 규모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정전협정)이 체결됩니다.

 

1973년 7월 27일 오후 10시 휴전협정이 발효되는데 때를 기준으로 해서 휴전선(군사분계선)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남북한은 휴전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인 오후 10시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습니다.

 

 

 

1953년 오후 10시에 확정된 휴전선(군사분계선)이 오늘의 휴전선입니다.

군사분계선(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2km 아래쪽이 남방한계선(Southern Limit Line, SLL)이며, 북쪽으로 2km 위쪽이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입니다.

 

 

 

 

 

 

 

 

 

 

한반도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155마일 군사분계선의 남북 각각 2km씩 떨어진 남쪽이 육상 남방한계선, 북쪽이 육상 북방한계선으로 그 안쪽이 모두 비무장지대(DMZ)입니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군인은 비무장지대(DMZ) 남쪽의 남방한계선(SLL)을 따라 일반전초에서 경계 및 적의 기습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비무장지대(DMZ) 북쪽의 북방한계선(NLL)을 따라 똑같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 비무장지대(DMZ)를 완전무장지대로 만든 지 오래입니다.

 

 

흔히 민통선이라고 부르는 민간인통제선은 대한민국 남방한계선 밖으로 군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및 보안 등의 이유를 들어 1954년 미군에 의해 귀농선(歸農線)이라는 이름으로 설정되었다가 현재의 민통선으로 바뀐 지역을 말합니다.

민통선은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남방한계선을 따라 남쪽으로 5~20km까지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휴전협정문에 명시되지 않은 해상의 북방한계선(NLL)도 있습니다.

 

서해의 북방한계선과 동해의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것은 휴전협상이 끝나고 1953년 8월 30일 유엔군 클라크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이때 유엔군과 한국군이 점령하고 있던 옹진반도 연근해 섬들이 북한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은 북한의 황해도와 남한의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의 중간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동해의 북방한계선(NLL)은 군사분계선, 즉 비무장지대(DMZ) 중심을 가로지르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서해와 동해의 군사분계선은 협상에 실패하면서 휴전협정문에 명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문에는 서해 5도와 북한의 황해도와 남한의 경기도 경계선 이남의 섬들은 유엔군이 통제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 해상 군사분계선 해상 북방한계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휴전협정문에 첨부된 지도에는 주석을 달아놓았습니다.

서해 5도와 황해도와 경기도의 경계선을 '해상 경계선은 서부 섬들의 (유엔군) 통제를 표시한 것이며, 이 선은 아무런 의의가 없으며, 또한 다른 의의를 첨부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1953년 8월 30일 클라크 유엔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은

약 20년간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쌍방이 관행적으로 준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1973년 서해 5도 주변이 북한의 수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정전협정문에 해상 북방한계선(남방한계선)이 명시되지 않은 문제로 여러 차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으며,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1975년 2월 28일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 사령부와 주한미군 사령부, 그리고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외교 전문을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한반도 서해안의 해상경계선, 즉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법적 지위가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육상의 155마일(248km)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만 존재합니다.

 

155마일 휴전선(군사분계선)에는 철책이 없고, 약 200m 간격으로 1292개가 설치되었습니다.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의 중심부를 동서로 가르는 248km의 군사분계선(휴전선)에 남북으로 폭이 4km입니다.

 

비무장지대(DMZ)는 남북의 폭이 4km, 동서 길이 248km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250분의 1이나 되는 넓은 면적입니다. 

군사분계선(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떨어진 곳에는 남방한계선(SLL)과 북방한계선(NLL)에는 철책선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으로 확정된

한반도 중앙을 가르는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체결되고 오후 10시에 발효된 이른바 6·25 한국전쟁의 정전협정(휴전협정)에 의해 만들어진 155마일(248km)의 군사분계선(DML)을 우리는 휴전선이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1950년 10월 중공의 주은래(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은 미국이 한반도 삼팔선을 넘어 북진하면 중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다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중공(중국)의 참전으로 한국전쟁의 확전을 우려한 유엔은 3인 위원회 대표를 통해 1950년 12월 중순부터 중공 측과 정전협상을 벌였지만, 1951년 1월 초순 중공은 유엔의 제의를 거부하고, 이른바 인해전술의 대규모 공세를 펼치며 한반도 중앙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1951년 6월 21일 유엔 주재 말리크 소련 대사가 한국전쟁 휴전을 제의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중공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이 휴전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1951년 7월 10일 북한의 개성시 내봉장 여관에서 첫 휴전협상(정전협상) 본회을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휴전협정 직전까지도 휴전을 반대했고, 미국의 지원과 한미동맹을 전제로 휴전에 동의했습니다.

 

 

 

1951년 7월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은 초기에 군사분계선(DML 휴전선) 확정문제로 난항을 거듭하다가 11월 말경 당시 남한군(유엔군)과 한군(중공군)이 대치하고 있는 곳을 경계로 군사분계선(DML 휴전선)을 정하고 각각 2km씩 후방으로 물러나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휴전협정의 가장 큰 문제로 알았던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 확정이 끝나자 포로교환 문제가 휴전회담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옛 판문점 자리에서 유엔군 총사령관 북한군 최고사령과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3자 대표가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에 서명하면서 이른바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됩니다.

 

한·중·영 3개 국어로 된 전문 5조 63항의 정전협정문에는 한국전쟁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 DML 휴전선)이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이른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3년여의 세월이 지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군사 활동의 한계선을 말합니다.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북한이 전쟁을 잠시 멈춘 휴전의 경계선이라 하여 휴전선이라고 부릅니다.

 

 

 

군사분계선(DML 휴전선) 서쪽 끝은 임진강 하구이며 군사분계선 동쪽 끝은 강원도 고성으로 총연장 248km입니다.

248km(155마일)의 군사분계선(DML 휴전선)을 따라 약 200m 간격으로 표식판을 설치했으며, 판문점이 있는 곳은 흰 막대기로 군사분계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서해안 군사분계선 경기도 파주시 강정리 임진강 변에 군사분계선 표식판 제1호를 세우고 동해안 군사분계선 고성군 동호리에 마지막 표식판 1292호가 세워져 있습니다.

 

휴전협정으로 한반도 중심을 가르는 군사분계선(DML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각 2km씩 물러난 비무장지대(DMZ)는 약 2억 7천만 평(907km2) 규모입니다. 비무장지대(DMZ)의 면적은 한반도 전체 면적의 250분의 1에 해당합니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 DMZ)에는 기존에 있던 쌍방 군대는 철수하고 군사시설 및 무기는 철거해야 하고, 앞으로도 군대의 주둔과 군사시설 설치 및 무기의 배치가 금지됩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1항에는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각 2km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휴전협정문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6항, 7항, 8항에는 비무장지대 내에서와 비무장지를 향하여 적대행위를 할 수 없고, 민간인과 군인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허락하지 않으며,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득한 자만이 비무장지대로 들어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 안에 남북한 쌍방이 군인을 투입하고 군사시설을 만든 원인은 휴전협정이 끝난 후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임시로 결정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문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10항에는 남북한 모두 비무장지대에 민사행정경찰을 투입하여 관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휴전협정이 끝난 후 군사정전위원회 제3, 4차 본회의에서 민사경찰 대신 군경찰(헌병)을 우선 투입하고 추후에 민사경찰로 교체하자고 합의했습니다. 이로부터 민간경찰 대신 남북한 군부대가 비무장지대에 주둔하면서 무장지대가 된 것입니다.

 

 

한반도 중심을 가르는 248km의 군사분계선(DML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km씩 총 4km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비무장지대 안에서 북한군을 감시하고 적의 기습을 대비하는 군부대 경계초소를 GP(Guard Post)라고 하며, 비무장지대 밖의 남방한계선에서 북한을 감시하는 최전방의 일반전초를 GOP(general outpost)라고 합니다.

그래서 GP를 보고 비무장지대(DMZ) 안에 고립된 섬이라고도 말합니다.

 

 

 

 

 

 

 

 

 

 

대한민국 군인과 북한군은 각기 민정경찰과 민경대 마크를 부착하고 무장한 채 비무장지대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무장하고 들어가는 민정경찰과 민경대는 각기 헌병과 경무라는 완장을 차고 있습니다.

 

남북한 군인들은 군복을 입고 무장한 채로 민정경찰과 민경대(民警隊, 민정경찰)로 비무장지대를 돌아다니는 것을 빗대어 세상에서 말하기를 대한민국과 북한은 정전협정을 휴지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군사분계선(DML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2km씩 설정한 비무장지대(DMZ)는 정전협정문 제1조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의거해 공식적으로 남북한이 군대를 주둔하거나 군사시설을 만들어 놓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남북한 군인이 무장하고 군사시설을 지어놓고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휴전협정 당시 육상의 군사분계선(DML 휴전선)만 확정했고,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서해지역의 해상 북방한계선(NLL)은 1953년 8월 유엔이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과 어민의 안정 등을 고려하여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의 군사분계선입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과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 조인이 없는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당사국은 대한민국과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고, 한반도에 사는 같은 우리 민족 간에 일어난 전쟁을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불러왔습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북한 김일성,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서명만 있고,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소장 최덕신은 휴전협정문이 조인될 당시 대표로 배석만 했습니다.

 

 

 

 

 

 

 

 

 

 

1950년 12월 유엔에서 한국전쟁 휴전문제가 논의되었고, 이란, 캐나다, 인도의 3인 위원회는 휴전을 위해 중공군과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은 휴전결의안을 채택하고 1951년 1월 초까지 중공군을 접촉하여 휴전협정(정전협정)을 모색했지만, 중공군이 유엔의 휴전협제안을 거절합니다.

 

 

 

1950년 6월 25일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남북한과 참전국 간에 치열한 전쟁은 1951년 3월경 38선을 중심으로 전선이 고착화됩니다. 유엔의 휴전 제안이 실패로 돌아간 후 1951년 6월부터 미국의 주도로 정전협정(휴전협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됩니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2년여의 길고 긴 휴전협상(정전 협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2년여의 정전 협상 기간에도 북한(중공군)과 남한(유엔군) 간이 치열한 혈전을 계속됐습니다. 

휴전회담이 열리는 동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된 것은 경계선, 즉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발효되는 시점에 각기 군부대가 점령한 지역을 휴전선으로 설정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1953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처음 열렸고, 1953년 7월 27일까지 765차례가 열렸습니다.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에서는 휴전선 확정과 포로 교환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습니다.

 

의제 채택과 일정, 휴전선(군사분계선) 확정, 휴전 감시구 설립, 쌍방의 관계국 정부에 대한 건의(외국군 철수) 등의 문제는 해결됐지만, 포로 교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년 2개월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 정전협정(휴전협정)이 이루어지는 중에 전군에 극비 지령을 내보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전 시행에 대해 협력하지 아니한다. 전투행위 중지에 불응하고, 현재의 전투행위를 계속하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전협정(휴전협정) 발효로 한국전쟁 이전에 남북이 대치했던 3·8선은 사라지고, 정전협정으로 지금의 휴전선이 확정됐습니다.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인 따르면 6·25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군부가 이승만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하려고 했고, 미국 정부도 이른바 '에베레디 계획'으로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쿠데타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측의 끈질긴 줄다리기 끝에 이승만은 휴전협정 체결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미국의 원조와 한국군 증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등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6·25 한국전쟁 휴전협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1953년 1월 미국 제34대 대통령에 취임한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게 휴전협상에 반드시 성공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협정이 끝난 후 '공산국가와 전쟁과 협상보다 이승만 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