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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5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 안의 친일잔재 3·1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74주년 2019년 8월 15일 광복절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한 우리 안의 친일잔재인 일제 식민사관과 역사전쟁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고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제는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과 수탈과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정할 수 없고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가당찮은 이유를 내세워 경제 침략까지 했습니다. 現 일본 아베 총리가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경제전쟁은 역사 부정에서 시작한 역사전쟁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일제의 학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좀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는 침략 야욕을 드러낸 역사전쟁으로 현대.. 2019. 8. 15.
일제 식민사학과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강단사학 한국 고대사 왜곡의 원흉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로부터 배운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 여주 이씨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1919년 3.1만세 혁명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남강 이승훈 선생은 사업을 하며 번 돈으로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 중등교육기관 오산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여주 이씨로 한국사신론의 저자 이기백(1924~2004)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1년 오산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기백은 60년 차이가 나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6촌 종고조부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집안에 족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고손자(현손) 이.. 2019. 3. 23.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와 이병도와 이기백 '한사군 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작한 일제 식민사학자 한국 사학계의 태두(泰斗) 이병도와 한국 사학계의 대부 이기백의 학문과 정신적 스승 쓰다 소키치 한국사의 태산북두 이병도가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의 스승이 바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입니다. 한국사의 대부 이기백이 와세다대 사학과에서 공부할 때 쓰다 소키치가 쓴 책을 열심히 탐독했고, 쓰다 소키치가 주도한 연구발표회에 항상 참석하는 등 쓰다 소키치의 식민사관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일제 식민사학자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에서 초기 기록은 고려의 김부식이 창작한 것이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허구이며 조작된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쓰다 소키치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2019. 3. 20.
일제 식민지배 정책과 항일 무장 독립운동사 무단(武斷)통치, 문화통치, 민족 말살 통치 시대의 국권 회복과 일제의 탄압과 폭압에 맞선 순국선열들의 역사학자는 사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흔히 역사란 '승자의 기록', '이긴 자의 기록',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대한大韓의 역사는 누가 기록했고,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대한大韓의 역사, 한韓민족의 역사는 과연 승자의 기록일까요? 아니면 패자의 기록일까요?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간단하게 일제강점기 한반도를 영구지배하기 위해 만든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은 크게 삼 단계로 실시됐습니다.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고 무력으로 탄압한 무단통치 정책을 폈고,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유화책인 문.. 2018. 3. 10.
일제 식민잔재 - 유사종교, 사이비종교(이단종교 ) 조선총독부가 만든 일제 식민잔재 - 유사종교와 사이비종교, 이단 종교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유사종교(類似宗敎) 또는 사이비(似而非) 종교라는 말이 시작된 것은 근현대사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만든 문화정책, 유사종교 정책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로 일제 식민잔재이다. 일제의 한韓민족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은 항일정신과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민족종교 천도교와 대종교, 보천교 등 민족종교 탄압 정책이었다. 천도교나 대종교 등 우리의 민족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던 단체들과 함께 한반도 3분의 1 정도의 민중이 신앙하던 보천교(600만 명)의 위세는 조선총독부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는 일제가 만든 .. 2015.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