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세以道耕世 이의보본以義報本 :: '한민족' 태그의 글 목록

'한민족'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8.09.11 한민족의 역사와 우리 역사의 시작 (3)
  2. 2018.05.24 한민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 (2)
  3. 2017.10.20 한민족의 뿌리와 신교 문화: 환단고기와 한국사 국통맥 (3)
  4. 2015.09.11 환단고기가 전하는 한민족 상고시대 역사 - 단군조선(고조선) (5)
  5. 2015.09.10 환단고기가 전하는 한민족 상고시대 역사 - 신시 배달국(동이족) (11)
  6. 2015.09.09 환단고기가 전하는 한민족 상고시대 역사 - 환국 (7)
  7. 2015.08.25 강화도 마니산(마리산) 참성단은 한민족 불멸의 성지, 강화 환단고기 북콘서트 (7)
  8. 2015.08.20 한민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나라의 족보, 대한민국 국통맥(國統脈) (8)
  9. 2015.08.19 환단고기가 밝혀낸 한민족의 사라진 역사와 지워진 역사 (상고사) (5)
  10. 2015.08.12 광복 70년, 대한민국 국기(國旗)이며 한민족 최고 브랜드 태극기(太極旗) (6)
  11. 2015.04.18 한민족과 인류 시원 역사와 문화를 찾는 청주 환단고기 북콘서트(2015. 4. 25 - 충북대학교) (4)
  12. 2014.12.30 을미년(1895년) 단발령 - 중국의 변발, 일본의 존마게, 한민족(조선)의 상투의 의미와 상징 (13)
  13. 2014.10.30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상지, 홍산문화의 제천단은 한민족의 적석총 (9)
  14. 2014.10.15 태고시대 도술(天干地支)로 보는 한민족의 옛 제국 천도(遷都, 수도 이전)의 의미 (6)
  15. 2014.10.10 한민족의 고유 사상인 '한'을 통해 고찰한 『한사상』 과『 한철학』 - 김상일 前 한신대 교수 (10)
  16. 2014.09.19 동이(東夷) 한민족, 우리 민족의 활쏘기 문화사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신독(愼獨) (4)
  17. 2014.09.12 한민족의 광명사상과 빛의 의미 (5)
  18. 2014.05.22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부정하고 정체성없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號)(한국 상고사 입문-이병도, 최태영 공저)) (11)
  19. 2013.04.27 환단고기 - 한민족의 역사 경전이며 종교 경전이요 문화 경전인 환단고기 완역본 간행사
  20. 2013.04.14 증산도 - 대한민국(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의 참뜻과 환국,배달,조선의 한민족 광명사상
  21. 2013.04.10 환단고기 - 고조선(한민족)과 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몽골족 등 여러 북방 민족과의 관계 (1)
  22. 2013.04.03 환단고기- 한민족은 배달겨레, 치우천황이후 동이東夷족으로 불리어졌다.
  23. 2013.03.28 환단고기 -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으로부터 국통계승을 받은 한민족 최초국가, 배달
  24. 2013.03.26 STB 상생방송 -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 대외진출사 특별기획 역사특강.
  25. 2013.03.08 환단고기- 환단고기가 출간되기까지(계연수,이유립 선생)
  26. 2013.03.07 증산도 도전 - 유불선(동서양 종교) 삼교의 연원, 신교(도전강독)
  27. 2013.03.07 증산도 도전 -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상제님(도전강독)
  28. 2013.03.04 증산도, STB 상생방송 - 3월 1주차 편성표 ,2013년 3월 4일 ~ 3월 10일
  29. 2013.03.04 환단고기 -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환단고기 북(BOOK)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2)
  30. 2013.03.01 환단고기-환단고기의 구성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

실재한 역사에서 왜곡되고 조작되어 사라진 한민족의 역사와

한韓민족 최초의 국가 우리 역사의 시작은 단군신화가 아니라 배달국

 

 

 

 

 

 

 

 

 

 

 

 

부산 지역 김ㅇㅇ도생(道生) - 우리 역사의 시작 배달국과 왜곡 조작된 한민족의 역사

 

저는 회사에서 출장이 잦은 부서에서 업무를 맡은 관계로 자주 지방 출장을 다녔습니다.

보통 당일이나 1박 2일 정도의 짧은 지역 출장도 있지만, 가끔은 4, 5일 정도의 출장을 가는 일도 있는데, 몇 년 만에 4박 5일의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지방의 숙소에 들어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증산도 상생방송을 시청하게 됐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에서는 역사 특강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고, TV 아래 자막에 <환단고기 북콘서트> 프로그램 방영을 예고하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배운 역사 외에는 역사 지식이 거의 없는데 증산도 상생방송의 역사 특강을 시청하면서 제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너무 달라 <환단고기 북콘서트>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상생방송을 시청했습니다.

 

 

 

 

 

 

 

 

 

 

상생방송 역사 특강을 시청하면서 학교 다닐 때 많이 배웠던 배달의 민족이니 우리 역사의 시작이 단군신화니 하는 것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우리 역사의 시작 등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너무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아는 한민족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현대사뿐입니다.

반만년의 역사를 말하면서도 그 절반도 안 되는 역사를 배웠고, 배달민족의 후예라고 말하면서도 배달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고,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단군신화의 곰의 자손이라고 교육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반박하지 않고 순진하게도 그대로 믿고 살았던 제 모습이 한심스러웠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의 역사 특강에서는 왜곡과 조작으로 사라진 우리 한민족의 역사와 우리 역사의 시작인 배달국의 역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배달민족, 배달의 후예가 바로 약 6천 년 전 환웅천황께서 건국하신 배달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 역사의 시작이 신화라고 말하는 단군왕검의 고조선이 아니라 배달국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배달국과 단군조선은 신화의 역사가 아니라 실재한 역사였습니다.

 

 

역사 특강과 증산도 진리 관련 프로그램이 끝나고 드디어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방영되었습니다.

환단고기 출간 100주년을 맞아 30년 동안 지구촌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문헌을 고증하여 환단고기 역주본을 출간했다고 했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에서는 한민족의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고 조작됐으며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단군왕검의 옛 조선이 신화가 아니라 실재한 역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하면서 대한민국 역사학계가 적폐청산 1순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을 통인류 창세 역사와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출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시청했습니다.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개최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여러 번 반복해서 시청하여 어느 순간 제가 역사 전도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직장과 지인에게 한민족의 역사를 줄줄 말할 정도가 되었고, 우리 역사의 시작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 역사의 시작이 단군신화가 아니라 배달국이라고 정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환단고기는 지구촌 최초의 국가인 환국(桓國)과 우리 역사의 시작인 배달국과 배달국을 계승한 단군조선의 역사 등 한민족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올바른 한민족의 역사를 알고 역사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시청했는데, <환단고기 북콘서트>가 전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 역사를 아는 것이 아니란 것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인류의 원형문화 속에 흐르는 역사정신과 문화정신의 문화유전자가 수천 년 동안 계속 이어져 왔고, 뿌리 문화유전자는 한민족과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원동력이 됩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의 대도(大道) 말씀과 증산도 진리 관련 프로그램도 함께 시청하면서 춘생추살, 개벽실제상황, 천지성공, 증산도 도전道典 등 증산도 관련 서적을 사 읽고 증산도가 한민족의 역사 결론이고, 세상 모든 진리의 결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마침 부산에서 증산도 진리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참석하여 강의를 다 듣고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습니다.

 

 

 

지구촌 인류가 하나의 국가였 인류 창세 역사 시대의 시원 문화정신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만들었고, 증산도는 가을개벽기에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대도 진리로 인류 역사의 문화와 문명을 결실하기 무극대도(無極大道)입니다.

증산도는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밝히고 시원 역사의 문화를 계승한 역사의 열매이며 진리의 열매입니다.

 

 

 

 

 

 

 

 

 

 

몇 년 전 신문과 방송에서 강원도 춘천의 중도에서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고 말하면서도 신화라고 가르치고 있는 고조선의 유적과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민족의 역사와 내 삶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증산도 상생방송을 시청하고 나서 제 역사의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상고시대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한 일본 제국주의와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이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신화에서 우리 역사의 시작됐다 주장하는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의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자 그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학설이 모두 부정될까 봐 춘천중도 유적지가 놀이공원이 되어가고 있는데도 모두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고 무엇보다 신화의 역사에서 실재 역사가 되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곳을 보존하지 않고 놀이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민을 우롱하여 역사의 죄인이 되기를 자초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한 제가 역사를 마무리 짓는 증산상제님의 천지대업(天地大業)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인류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신천지의 새 역사와 문화를 열어나가는 도생(道生)으로 거듭 태어날 것을 서원하며 증산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 태상종도사님과 종도사님, 그리고 자손을 위해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조상님들의 은혜에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보은(報恩)!

 

 

 

 

 

 

 

 

 

 

증산도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jsd.or.kr/

 

 

 

증산도 신앙 상담 문의: 1577 - 1691

 

 

 

증산도 STB 상생방송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stb.co.kr/

 

 

※ 인류의 창세 역사 시절부터 지구촌 인류가 모셔온 삼신상제님으로 가을개벽기에 인간으로 강세하신 아버지 하나님 증산상제님과 어머니 하나님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증산도를 만나는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식민사학자들이 부정하는 한민족의 참역사, 반드시 알아야 할 진짜 한국사

 

 

 

 

 

 

 

 

 

 

 

증산도 경남 지역 박ㅇㅇ 도생(道生) -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국사를 배우는 증산도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자기 나라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입니다.

정부가 나서서 인성교육과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국사는 가르치지 않고 오직 입시 위주의 교육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한민족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정부와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국사를 부정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작해 만든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세력, 곧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 강단사학자(식민사학자)를 볼 때면 도대체 왜 그럴까? 저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진짜 역사, 참 한국사를 좋아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증산도와의 첫 인연은 대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 증산도 동아리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와 증산도와의 두 번째 인연은 상생방송을 시청한 것입니다.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 따르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2:78:8)

 

 

 

 

 

 

 

 

 

저는 평소 TV를 잘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다큐멘터리와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할 뿐이었습니다.

 

아주 우연히 한민족의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너무 유익하다고 생각되어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한민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를 한국과 일본과 중국의 사료와 유물 등을 비하면서 자세하고 전해주는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증산도 STB 상생방송이었습니다.

 

 

 

저와 증산도와의 세 번째 만남은 도서모임이었습니다.

저는 책 읽기를 좋아하여 독서모임을 자주 나갔습니다.

 

독서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를 기록한 『삼성기』, 『북부여기』, 『환단고기』 등을 읽고 토론하였습니다. 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완역본을 읽고 상생방송의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시청하면서 자연스럽게 증산도 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 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증산도 도전道典 2:26:1~2)

 

 

<환단고기 북콘서트>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여러 차례 행사를 하면서 한민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를 밝혀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입니다.

 

더불어 지구촌에 남아 있는 사료와 유적, 유물 등과 세계 곳곳에 그대로 보존되고 전수되고 있지만, 잘 모르는 인류의 공통된 문화코드를 밝혀 줌으로써 인류의 창세 역사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도장에서 우주가 돌아가는 우주의 변화 원리, 인류의 역사와 일제 식민사관에 물들어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주류 강단사학계가 부정하는 진짜 한국사, 한민족의 참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천지의 이법에 의해 돌아가는 이 세상에 가을개벽기에 인간과 신명을 살리고 후천의 조화선경 세계를 여시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 증산상제님의 놀라운 천지공사는 제 삶을 뒤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조선국(朝鮮國) 상계신(上計神) 중계신(中計神) 하계신(下計神)이 무의무탁 無依無托하니

불가불(不可不) 문자계어인(文字戒於人)이니라.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 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 말고 잘 받들 것을 글로써 너희들에게 경계하지 않을 수 없노라.

(증산도 도전道典 5:347:16)

 

 

천지의 이법과 인류 역사, 상제님의 강세와 천지공사는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완벽 또 완벽했습니다.

어려서부터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국사를 관심을 가진 것이 저의 선택이었지만, 기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으로 오신 참하나님의 진리 세계로 인도해 주신 조상 선령님이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민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를 알게 해주고, 우주의 변화 원리와 참 인간의 길을 가게 해주신 천지일월 부모님과 조상 선령님의 크신 은혜에 깊이 감사 올립니다.

보은(報恩)!

 

 

 

 

 

 

 

 

 

 

 

한민족의 참역사, 진짜 한국사 - 환단고기 위서론(僞書論) 시비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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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신앙 상담 문의: 1577 -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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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tb.co.kr/

 

 

※ 인간으로 오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신 증산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을 신앙하는 국내외 증산도 도생(道生)들이 무극대도(無極大道) 증산도를 신앙하게 된 과정의 입도(入道) 수기를 짧게 편집했습니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이것이 개벽이다 하下 - 6부 한민족의 뿌리와 신교(神敎)

1장 한국사 국통맥과 뿌리 문화: 환단고기와 단절된 한국사 국통맥(國統脈)

 

 

 

 

 

 

 

 

 

 

 

지구촌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서양 중심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 서양 중심의 역사관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는 톰센이 주창한 고대 유물 분류로 시대를 구분하는 이른바 삼시대(三時代) 구분법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히 삼시대법이라고 하는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구분은 덴마크의 부유한 골동품 수집가에서 박물관 관장과 학자가 된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1788~1865)이 제창한 시대 구분법 학설입니다.

 

 

 

톰센과 동시대에 독일에서 근대역사와 관련된 또 다른 인물이 태어납니다.

바로 사료와 유물 등을 분석하고 연구해 역사적 사실만이 진짜 역사라는 이른바 실증사학을 주창한 레오폴트 폰 랑케(1975~1886)입니다.

 

 

 

톰센과 랑케 두 사람이 근대역사학에 이바지한 부분도 크지만, 한계와 문제점도 많습니다.

특히 무력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 제국주의는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을 만들어 한국사를 조작하고 9천여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국통맥을 끊어버렸습니다.

 

 

일제는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하게 이용한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뿌리 역사와 원형 문화를 왜곡하고 말살합니다.

 

 

 

 

 

 

 

 

 

 

이것이 개벽이다 하下 - 6부 한민족의 뿌리와 신교(神敎)

1장 한국사 국통맥과 뿌리 문화: 환단고기 단절된 한국사 국통맥 

 

 

중심 내용 - 『환단고기』에는 인류 창세 역사와 원형문화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국통맥을 밝혀 잃어버린 9천 년 한국사가 오롯이 살아 있는 역사서입니다.

 

 

『환단고기』는 상고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역사와 창세 역사부터 전해진 인류의 정신문화도 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역사 경전이면서 지구촌 인류의 종교 경전, 문화 경전, 철학 경전입니다.

 

 

 

 

 

 

 

 

 

 

이것이 개벽이다 하下 104쪽

역사 해석의 주관성(主觀性), 객관성(客觀性)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 전개의 바탕이 되는 천지 이치의 핵심 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가 전개되어 나아가는 시간의 큰 틀인 '우주 일 년'과 역사 관계를 모르면 인류사의 보편적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동안 사실과 물증을 중시하는 '객관주의 구사학(舊史學, 랑케의 실증사학)"에서 역사 해석을 중요시하는 '주관주의 신사학(新史學)'으로 넘어왔지만, 이제는 '제3의 역사관'이 나와야 하는 때다. 이 제3의 역사관이 바로 '대한사관大韓史觀'이고, '신교神敎사관'이다.

 

 

 

대한사관大韓史觀

한반도 남부에 있던 작은 삼한(三韓)의 역사의식이 아니라 대륙을 호령하던 본래의 큰 삼한의 의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사관(史觀).

 

대한사관(大韓史觀)으로 바라보면 인류 문명의 시원 역사를 밝힐 수 있고, 식민주의·사대주의·중화주의 사관으로 병든 노예 역사관을 바로잡을 수 있다. 나아가 지구촌 인류를 '큰 한 가족(대한大韓)'으로 보고, 동서양의 갈등을 해결하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대통일의 역사관이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해제, 42~45쪽)

 

 

 

☆ 신교사관神敎史觀

실증사학에는 인류의 정신문화가 결여되어 있다.

신교사관은 9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 공통의 원형 문화인 신교(神敎)의 눈'으로 역사를 본다.

 

또한,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근본요소로 해서 구성되고 발전한다.

신교 사관(神敎史觀)은 천지인(天地人)을 삼위일체적 존재로 인식하고 그 틀에서 인간 역사를 해석한다.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해제, 40~42쪽)

 

 

 

 

 

 

 

 

 

 

 

이것이 개벽이다 하下 - 6부 한민족의 뿌리와 신교

1장 한국국통맥과 뿌리 문화: 환단고와 단절된 한국사 국통맥

(『이것이 개벽이다』 하下 100쪽 ~ 173쪽)

 

 

1. 역사를 보는 새로운 눈

- 제3의 역사관 대한사관

- 동방 한민족의 시원 문화와 창세 역사의 구성 원리

- 『환단고기』가 밝히는 국통맥

 

 

2. 인류 최초의 문명국가, 환국

- 동북아 시원 문명의 주인공, 한민족

- 천지인(天地人)의 광명, 환(桓), 단(檀), 한(韓)

- 황금시대, 환국

- 인류 문명의 뿌리, 환국

 

 

3. 동방 한민족사의 시작, 배달국

- 신교와 배달국

- 성수(聖數)와 신교 수행

- 삼황오제 혈통의 비밀

- 고대 동북아 대전쟁, 탁록 대전

- 고대 동방 문명의 주인공, 동이(東夷)

 

 

4. 한민족의 전성기, 단군조선

- 단군왕검의 즉위

- 대홍수에 얽힌 고대사의 비밀

- 동방의 천자를 알현한 순임금

- 중국에서 입증된 단군조선의 실체

- 단군조선 강역의 핵심 열쇠: 삼한관경(三韓管境) 

- 세 번의 분단과 대통일

- 4천 년 전에 예견된 한민족의 국운

 

 

5. 고대 한국 문화의 전파

- 한자(漢字)를 창조한 동방 동이족

- 한글의 원형 문자 가림토

- 천자 사상의 종주국

- 천자 사상의 계승

- 중국에 전수된 단군조선 신교문화

- 몽골로 전수된 고대 조선 문화

 

 

※ 일본 고대사는 한민족의 이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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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안경전 종도사님 말씀 中

 

 

문화와 역사적인 배경으로 볼 때도 상제님이 우리 한국 땅에 반드시 오시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근원을 찾으신다.

역사의 근원, 문화 생성의 근원, 지구촌 모든 신앙의 뿌리를 찾아 머무시는 분이다.

 

 

상제님은 당신님께서 이 동토(東土)와 인연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조선이 우주와 천지신명들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을 신앙하는 상제문화의 시원 국가라는 점이다.

 

즉 우리 조선은 유불선 기독교 등 세계 종교 탄생의 시원 문화인 신교(神敎)의 종주국이요, 인류의 뿌리 문화인 신교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방의 유일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 민족은 인류의 뿌리문화, 신교문화, 원형문화의 맥을 가지고 온 민족이지만, 유불선, 기독교 등 제2의 세계 종교를 신앙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부정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는 한국인 중에 상제문화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상제님을 아세요?'라고 물어보면 백에 하나, 천에 하나나 있을까 말까하고, 혹시 안다고 해도 서양이 샤머니즘으로 매도한 무당, 점쟁이가 믿는 신(神), 중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神)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상제문화를 회복하려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종임금이 1897년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을 쌓고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국통맥은 환국-배달-조선-북부여(열국시대)-고구려(사국시대)-고려- 마지막 왕조 조선, 상제문화를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상제님은 인류 문화사의 뿌리, 상제님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오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답은 오직 하나, 우주의 가을문화를 출산하기 위해서다.

 

 

초목은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가 뻗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인류문화도 이처럼 뿌리 없이는, 뿌리 문화를 복원하지 못하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류의 통일문화, 우주 가을철의 결실문화, 열매문화를 출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상제님은 우주의 유일자이신 우주의 조화옹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서양 기독교에서도 '장차 오실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류의 뿌리 문화 맥을 따라 동방 조선 땅에 강세하신 것이다.

 

 

 

이처럼 증산 상제님께서 동방 조선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 한민족이 동서 문화를 통일할 수 있는 뿌리문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동방 한민족 신교(神敎)의 토양에서 유불선과 기독교의 강력한 신앙 문화가 꽃피웠기 때문에, 뿌리와 줄기 문화 시대를 지나 인류문화의 통일·결실기를 맞아 열매문화·보편적 구원의 진리를 열어 주시기 위해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천지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은 우리 한민족이 서양 제국주의로부터 멸망하는 위기에 처하였기에, 약해 빠진 한민족을 먼저 건기지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리적, 문화와 역사적인 문제 등 총체적인 이유로 조선 땅으로 오신 것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전하는 한韓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 단군조선(檀君朝鮮, 고조선古朝鮮)

 

 

 

 

 

 

 

 

 

 

한韓민족의 9천 년 유구한 역사에서 조선(朝鮮)이라는 동명(同名)의 국명(國名)을 쓰는 나라가 둘이 있다.

첫 번째 국가는 환웅 천황의 신시 배달국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고 단군왕검께서 개국하신 조선(朝鮮, 옛 조선古朝鮮)이며,

두 번째 국가는 태조 이성계가 개국하여 한양을 도읍으로 하는 새로운 조선이다.

 

 

현재 이 두 국가를 구별하기 위하여 단군왕검께서 개국하신 나라를 단군조선, 옛 조선, 고조선, 고대조선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 나라를 한양 조선, 조선 등으로 부르고 있다.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 물들어 우리 역사를 왜곡한 자들은 위만 조선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없애버린 대한민국 주류 강단 사학에서 그들이 말하는 고조선은 그 역사의 실체가 없어서 위만조선과 (한양) 조선을 구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韓민족의 9천 년 역사에서 상고시대 역사인 환국과 배달국, 조선의 7천 년 역사를 송두리째 왜곡하고 날조하여 거짓된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단군조선의 준왕 때 연나라 사람 위만이 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고, 위만의 손자인 우거 때 한漢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점령하여 한사군을 설치하였다고 역사를 조작하였다.

 

 

일제 식민사학의 주장대로라면 있지도 않은 신화의 나라인 단군조선을 중국 한漢족 위만이 그 정통성을 계승하였다가 중국 한漢족이 세운 한漢나라 무제에 의해 한韓민족의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한韓민족은 존재하지도 않은 나라로부터 시작하여 중국 한漢족이 세운 나라를 바탕으로 중국 한漢족의 점령을 받고 시작된 민족의 정체성도 없고 세상에서 참 별 볼 일 없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한韓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한漢족의 역사이며 중국 한漢족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한민족사(韓民族史)가 아니고 중국사(中國史)와 일본사(日本史)다.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단군조선(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는 북부여를 개창하신 해모수 단군이시다.

해모수 단군께서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직계 조상으로 고조할아버지가 되시며 광개토태왕의 17대 조부(祖父), 즉 17대 할아버지가 되신다.

 

 

 

 

 

 

 

 

이와 같은 사실은 광개토태왕비문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나 대한민국 역사서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학자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오직 『환단고기』에서만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에 대하여 어떤 연구나 검증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자신들의 학설과 맞지 않는다면 이유만으로 철저하게 『환단고기』를 부정하고 있다.

 

 

 

 

 

 

 

 

단군왕검께서 다스렸던 단군조선(고조선)의 통치제도는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였다.

대(大)단군께서 중앙(진한辰韓)을 다스리면서 두 명의 부(副)단군은 마한(馬韓)과 번한(番韓)을 다스렸고 대단군은 이 두 부단군을 통솔하였다.

 

 

환국이나 신시 배달국이 그랬던 것처럼 천지 대자연의 섭리, 신교(神敎)의 삼신(三神) 사상에 따라 나라를 셋으로 나눠서 국가를 통치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국가경영 시스템은 흉노족을 비롯하여 근대 중국의 청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후대에 와서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 삼국시대) 우리가 삼한일통을 외쳤던 것이 바로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에서 유래된 것이며, 한양 조선의 26대 임금 고종께서 임금에서 황제로 등극하시며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꾸었는데 그 역사적 연원이 바로 단군조선의 삼한관경제였다. 

 

 

이때가 북삼한(北三韓) 또는 대륙 삼한(三韓) 시대였고, 후에 북삼한이 문을 닫고 백제, 신라, 가야의 전신이 되는 진한, 번한, 마한의 남삼한(南三韓) 시대가 열린다. 단군조선은 이 삼한관경제 체제가 흔들리면서 조금씩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단군왕검께서 개국하신 조선(朝鮮, 옛 조선)은 그 역사 역년이 2096년에 이른다.

 

단군조선 단군 성조 계보 (47대, 2,096년)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시대: B.C.2333∼1286 (1048년간)

제1세 단군 왕검(檀君王儉, 재위 93년, B.C.2333)

제2세 부루 단군(扶婁, 재위 58년, B.C.2240)

제3세 가륵 단군(嘉勒, 재위 45년, B.C.2182)

제4세 오사구 단군(烏斯丘, 재위 38년, B.C.2137)

제5세 구을 단군(丘乙, 재위 16년, B.C.2099)

제6세 달문 단군(達門, 재위 36년, B.C.2083)

제7세 한율 단군(翰栗, 재위 54년, B.C.2047)

제8세 우서한 단군(于西翰, 재위 8년, B.C.1993)

제9세 아술 단군(阿述, 재위 35년, B.C.1985)

제10세 노을 단군(魯乙, 재위 59년, B.C.1950)

제11세 도해 단군(道奚, 재위 57년, B.C.1891)

제12세 아한 단군(阿漢, 재위 52년, B.C.1834)

제13세 흘달 단군(屹達, 재위 61년, B.C.1782)

제14세 고불 단군(古弗, 재위 60년, B.C.1721)

제15세 대음 단군(代音, 재위 51년, B.C.1661)

제16세 위나 단군(尉那, 재위 58년, B.C.1610)

제17세 여을 단군(余乙, 재위 68년, B.C.1552)

제18세 동엄 단군(冬奄, 재위 49년, B.C.1484)

제19세모소 단군(牟蘇, 재위 55년, B.C.1435)

제20세 고홀 단군(固忽, 재위 43년, B.C.1380)

제21세 소태 단군(蘇台, 재위 52년, B.C.1337)

 

 

 

 

 

 

 

 

 백악산 아사달(장춘) 시대: B.C.1285 ∼ 426 (860년간) 삼한관경제(三韓觀경제) 체제 삼조선(三朝鮮) 체제로 바뀌게 되며 삼한관경제체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 

제22세 색불루 단군(索弗婁, 재위 48년, B.C.1285)

제23세 아홀 단군(阿忽, 재위 76년, B.C.1237)

제24세 연나 단군(延那, 재위 11년, B.C.1161)

제25세 솔나 단군(率那, 재위 88년, B.C.1150)

제26세 추로 단군(鄒魯, 재위 65년, B.C.1062)

제27세 두밀 단군(豆密, 재위 26년, B.C.997)

제28세 해모 단군(奚牟, 재위 28년, B.C.971)

제29세 마휴 단군(摩休, 재위 34년, B.C.943)

제30세 내휴 단군(奈休, 재위 35년, B.C.909)

제31세 등올 단군(登, 재위 25년, B.C.874)

제32세 추밀 단군(鄒密, 재위 30년, B.C.849)

제33세 감물 단군(甘物, 재위 24년, B.C.819)

제34세 오루문 단군(奧婁門, 재위 23년, B.C.795)

제35세 사벌 단군(沙伐, 재위 68년, B.C.772)

제36세 매륵 단군(買勒, 재위 58년, B.C.704)

제37세 마물 단군(麻勿, 재위 56년, B.C.646)

제38세 다물 단군(多勿, 재위 45년, B.C.590)

제39세 두홀 단군(豆忽, 재위 36년, B.C.545)

제40세 달음 단군(達音, 재위 18년, B.C.509)

제41세 음차 단군(音次, 재위 20년, B.C.491)

제42세 을우지 단군(乙于支, 재위 10년, B.C.471)

제43세 물리 단군(勿理, 재위 36년, B.C.461)

 

 

 

 

 

 

 장당경 아사달(개원) 시대: B.C.425 ∼ B.C.238 (188년간)

제44세 구물 단군(丘勿, 재위 20년, B.C.425) :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부여로 고치고 대단군이 가지고 있던 병권(兵權)을 부단군들도 동등하게 가지게 되며 삼조선이 각기 분리 독립됨.

제45세 여루 단군(余婁, 재위 55년, B.C.396)

제46세 보을 단군(普乙, 재위 46년, B.C.341)

제47세 고열가 단군(高列加, 재위 58년, B.C.295)

 

 

 

B.C.238년 (계해 58년) 진조선(옛 진한)의 고열가 단군께서 제위를 버리고 입산하며 6년간 오가(五加)들의 공화정이 시작된다.

B.C 232년 공화정을 실시하였던 오가(五加)는 해모수에게 진조선을 맡기고 역사의 막을 내린다.

(번조선과 막조선은 유지되고 있었다.)

 

해모수 단군은 대부여(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북부여를 개국한다. 

 

 

번조선은 B.C 221년 마지막 왕 기준이 연나라에서 넘어온 도적 위만의 꼬임에 빠져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자 중에 고조선학 1호 박사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그가 쓴 책 중에 「단군 만들어진 신화」 내용을 보면 청동기 문화가 고대국가 성립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써 놓았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에서 한韓민족의 상고시대 역사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역사다.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그가 주장한 기준으로 보면 B.C 1000년 ~ B.C 1,300년 정도인데, B.C 2333년 단군조선 국가 성립은 말이 안 된다고 하였다. 한반도 내에서도 수많은 단군조선 시대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고 있지만, 모르쇠 아몰랑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들의 머릿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현재 세계 학계에서도 한반도 지역만을 국한하더라도 약 4천 년 전의 청동기 유물을 인정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가 국가 탄생의 조건인 것처럼 주장하는 그의 괴변을 보면 참 불쌍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전하는 한韓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 환웅 천황의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 (동이족東夷族)

 

 

 

 

 

 

 

 

 

 

인류 최초의 국가로 동서양 창세 역사와 한韓민족 시원 국가였던 시작 환국桓國.

환국(桓國) 말기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기후가 변화하여 식량 등의 물자는 부족해지며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진다.

결국, 새로운 정착지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이때를 시작으로 동서문명이 갈라지게 된다.

 

 

환웅 천황께서는 환국의 환인 천제로부터 환국의 정통성 계승과 국가 통치자를 상징하는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받고, 동방 태백산(太白山, 백두산)으로 새로운 문명 개척의 여정을 시작한다.

 

 

 

 

 

 

 

 

문명 개척단으로 제세핵랑군(濟世核郞軍) 3,000명을 이끌고 동방으로 오신 환웅 천황께서 서기 전(BCE) 3897년(계해년癸亥年) 음력 10월 3일 백두산(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시고 배달국을 개국(開國)하셨다.

우리 한韓민족을 배달의 민족, 배달의 겨레, 또는 동이족이라고 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신시 배달국 초대 환웅 천황이신 거발환(居發桓, 커발환) 환웅 천황께서 나라를 여신 날이 음력 10월 3일로 진짜 개천절(開天節)이다. 한韓민족의 역사가 왜곡되고 조작되다 보니 현재 우리개천절을 단군조선(고조선)의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여신 날로 잘못 알고 있다.

 

 

 

 

 

 

 

 

배달국 초대 거발환 환웅 천황께서는 환국의 정통성과 국가를 통치자를 상징하는 증표로서 천부(天符, 문서)와 인(印, 도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고 환국 시절의 백성과 같이 대자연과 함께 밝고 밝은 마음으로 신성(神性)을 가지고 사는 가장 이상적 인간을 실현할 수 있는 가르침도 함께 받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이다.

이는 우주의 조물주이신 삼신 상제님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교화(敎化, 변화)하여, 우주의 본성 광명과 같은 밝은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말씀이다.

 

 

홍익인간 이념은 배달국과 단군조선보다 더 앞선 환국의 이념으로 환인 천제께서 배달국의 환웅 천황으로 또 단군조선의 단군왕검에게로 전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르치는 가짜 역사교육에 등장하는 단군신화의 내용은 신시 배달국 환웅 천황의 실제 역사 이야기이다.

신시 배달국을 건국할 당시 그 지역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인 족과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 웅족이 살고 있었다.

 

 

환웅 천황께서는 웅족과 호족에게 삼신 상제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주문 수행을 통해 고요히 마음을 닦고 신성(神性)을 밝혀 야만성을 벗겨주려 21일간 수행을 시켰으나, 방종하고 사나우며 게을렀던 호족은 그 기간을 참지 못하였고, 웅족은 그 과정을 극복하여 광명의 백성이 되었다.

 

 

 

 

 

 

 

 

한韓민족의 정통 역사서 환단고기의 기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역사관은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일제 식민주의 사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2천 년도 안 되는 한韓민족의 역사가 우리 역사의 전체인 양 가르치고 있는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상고시대 역사 유적과 유물이 나와도 부정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요하지역(홍산지역)에서 발굴되는 역사에 대해서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다.

 

 

요하문명(홍산문명)은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 길게는 9천 년에서 짧게는 2,3천 년 전의 수많은 유물이 쏟아지는 그 역사의 진실, 역사의 실체를 밝혀주는 사서는 오직 환단고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단고기 삼성기 하에서 전한 신시 배달국의 역사는 1,565년간 18분의 환웅 천황께서 이어갔다.

 

신시(神市) 배달국(倍達國) 환웅 천황 계보 (18대, 재위연수: 1,565년)

 

1대   거발환 환웅 천황 (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 천황 (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 천황 (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 천황 (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 천황 (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 천황 (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   련 환웅 천황 (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 천황 (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   운 환웅 천황 (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  고 환웅 천황 (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 천황 (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 천황 (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 천황 (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 천황 (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 천황 (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 천황 (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 천황 (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 천황 (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인류 최초의 국가이며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가 되는 환국(桓國)과 한韓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국(倍達國)의 상고시대 역사를 환단의 역사시대라 말한다.

 

환(桓)은 하늘의 광명이며, 단(檀)은 땅의 광명을 말한다. 즉 천지(天地) 광명으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상고시대 역사가 바로 환국과 배달국 역사 시대였다.

 

환웅 천황의 신시 배달국은 배달의 겨레(민족) 역사이며, 환국의 환인 천제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고 동방 문명을 개척하여 세운 한韓민족의 최초 국가로 동이족의 역사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환단고기桓檀古記가 전하는 한韓민족의 상고시대 역사 - 환인 천제(桓仁天帝)의 환국桓國

 

 

 

 

 

 

 

 

 

 

한韓민족 시원 역사와 인류 창세 역사가 기록된 한韓민족의 정통 역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紀』 첫 문장, 첫 단락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인류의 창세 역사와 우리 한韓민족의 시원 국가로서 7분의 환인 천제(桓仁天帝)께서 다스렸던 환국桓國의 개창 사실을 전하고 있다.

 

오환건국이 최고라.

吾桓建國이 最高라.

 

우리 환족(桓族)의 나라 세움이 가장 오래 되었다.

 

『환단고기』 『삼성기』 첫 문장의 이 짧은 한 구절이 바로 한韓민족과 인류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지구촌 70억 인류가 바로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桓國으로부터 시작되어 뻗어 나간 것이다.

밝음으로 시작된 나라, 모든 백성이 밝은 마음으로 살았던 나라, 나라 이름 그 자체에 밝고 밝은 대광명의 의미를 새긴 나라가 바로 인류 최초의 국가 환국이다.

 

 

 

 

 

 

 

 

『환단고기』 첫 문장에 나오는 환국의 실체는 우리가 잘 아는 역사서인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삼국유사』 판본은 故 손보기 교수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여 보물 1866호로 지정된 『삼국유사』 왕력편(한양 조선 초기 목판본)과 조선왕조 중종 7년(1512년) 간행된 『삼국유사』 임신(壬申本, 국보 306-2, 정덕본) 등을 보면 '석유환국昔有桓國'의 기록이 있다.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라고 아주 간결하고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한 후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없애고 일제의 대한제국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를 조작하고 말살하는 데 바로 이 부분을 왜곡함으로써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와 인류 창세 역사가 송두리째 신화의 바뀌며 말살되게 된다.

 

 

 

 

 

 

 

 

일왕의 특명은 받은 조선총독부는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일제 식민사관에 근거하여 한韓민족의 역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완전히 뒤바꿔 버리며 소위 조선사를 만든다. 소위 조선사 편찬에 핵심 인물이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 금서룡(今西龍, 이마니시 류)이었으며, 그 아래 대한민국 주류 강단 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가 있었다.

 

 

금서룡(이마니시 류)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뜯어고쳐 신화로 만들어 조작한 『삼국유사』를 출판하게 된다. 그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환국의 존재를 은폐하여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금서룡이 조작한 삼국유사 보다 더 오래된 『삼국유사』 왕력편과 『삼국유사』 임신본에는 분명하게 석유환국昔有桓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 후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독점한 지배권력자들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韓민족의 역사를 조작 말살한 친일파였으며, 광복 후 70년 동안 정권의 비호와 묵인 아래 오늘에까지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하고 추종해 온 그들의 제자들이 한韓민족의 역사를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식민주의 사관으로 아직도 교육하고 있다.

 

 

한韓민족의 정통 역사서 『환단고기』에는 한韓민족의 상고시대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환인 천제께서 다스렸던 환국桓國은 인류 창세 역사의 고향이며,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의 고향이다.

물질문명은 현대문명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정신문명은 현대인보다 훨씬 밝고 밝은 영성문화(靈性文化), 정신세계를 가지고 살았다.

 

 

 

 

 

 

 

 

환국을 통치하신 환인 천제께서는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셨고, 7대 환인에 이르기까지 환국은 3301년 존속하게 된다.

몸과 마음, 신성(神性)이 밝아 무병장수하였던 시기다.

 

국가 영역은 동서(東西)로 이만리, 남북(南北)으로 오만 리에 이르며 12개 나라로 이루어진 실로 방대한 국가였다.

인류의 상고시대 환국의 통치자 환인 천제와 백성들은 대자연과 하나 되어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화이트 샤먼(White Shamans)의 시대를 살았고, 하늘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던 때로 전쟁도 없었고 평화로움으로 가득 찼던 시대였다.

 

 

 

 

 

 

 

 

환국이 문을 닫는 시점인 약 6천 년 이전 지구촌의 상고시대 유물에서는 전쟁무기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샤머니즘을 연구한 독일의 칼 바이트는 그 시대를 '인류의 황금시대, 장수시대, 신성(神性) 시대라고 하며, 먼 옛날 인간이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에 사람들은 평화와 행복 속에 살면서 어려움 없이 신神과 소통할 수 있었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라고 말하였다. 9천 년 전 환국은 톰센의 역사시대 구분으로는 신석기 시대였다.  

 

 

 

 

 

 

 

 

 

 

환국(桓國) 환인 천제(桓仁 天帝) 계보

1세 안파견(安巴堅) 환인 천제

2세 혁서(赫胥)       환인 천제

3세 고시리(古是利) 환인 천제

4세 주우양(朱于襄) 환인 천제

5세 석제임(釋提壬) 환인 천제

6세 구을리(邱乙利) 환인 천제

7세 지위리(智爲利) 환인 천제

 

 

 

환국의 12국가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勾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勾牟額國), 매구여국(賣勾餘國,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시위국豕韋國, 통고사국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

 

 

 

 

 

 

 

 

환국 말기에 7세 지위리 환인 천제께서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 백두산)을 보시고 '두 곳 모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라.'라고 하시며 오가(五加)의 추장들에게 물으니, 모두 "서자(庶子)에 환웅이 용기와 어짋과 지혜를 경했으며, 일찍이 세상을 개혁하여 홍익인간케 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동방의 태백산(백두산)으로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라고 대답하였다.

 

 

 

 

 

 

 

환인 천제께서 천부(天符)와 인(印) 세 종류를 주시며 "이제 인간과 만물이 이미 제자리를 잡아 정립되었으니 그대는 노고를 아끼지 말고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서, 새 시대를 열어 가르침을 세우고 세상을 신교(神敎)의 진리로 교화하여 만세 자손의 큰 규범으로 삼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로부터 인류의 창세 역사 국가이며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 상고시대 첫 나라였던 환국이 문을 닫고 한韓민족의 최초의 나라, 동방 신시 배달국을 개척하신다.

 

 

 

 

 

 

 

 

이때 태백산(백두산)에 신시 배달국을 여신 환웅 천황과 함께 환국에서 또 다른 무리가 삼위산으로 떠났으니 그는 바로 중국 한漢족의 시조인 반고(盤固, 반고가한盤固可汗)이다.

 

10간(十干) 12지(十二支)의 신장과 함께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 등의 인물들을 거느리고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삼위산(三危山) 납립(拉林) 동굴에 가서 임금이 되었다.   

 

 

 

 

 

 

서자(庶子, 서자부庶子部)

1. 여러 아들, 즉 뭇 자식의 의미로 백성이란 뜻이 있다.

2. 부락 또는 부족 이름으로 밝혀주고 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3. 태자의 스승, 기타 높은 벼슬의 명칭으로도 말한다.

 

그러나 서자(庶子)라는 의미가 후세에 들어 첩의 자식이란 엉뚱한 의미로 잘못 해석하여 왔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강화도 마니산(마리산) 참성단은 한(韓)민족 불멸의 성지,

강화 환단고기 북(Book) 콘서트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지명은 건설부장관(중앙지명위원회, 現 국가지명위원회)이 1961년 마니산으로 결정하여 일괄고시하였다. 

 

 

강화도 마니산의 원 지명인 마리산(摩利山)의 이름을 되찾고자 한 노력은 1981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십수 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1995년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을 강화도 마리산(摩利山)으로 개명(改名)하고자 했던 인천광역시와 마리산이름되찾기위원회의 청원이 처리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마니산이 이미 전국적 또는 전 세계적으로 이미 통용되는 지명이라 혼동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불가 통보를 하였다.

 

 

 

 

 

 

 

 

개천절(양력 10월 3일, 대한민국이 만든 짝퉁 개천절)과 전국체전이 있을 때마다 천제(天祭, 삼신 상제님께 올리는 제사) 등의 행사를 하고 있으나, 대한민국 그 어떤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군조선의 역사. 일본의 역사보다 더 짧은 한韓민족의 역사를 8.15 광복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70년 동안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국조(國祖)를 부정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 대한민국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마니산 지명 기록보다 더 오래된 옛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 규원사화 등에는  마리산으로 나온다. 

 

 

마리산은 가장 머리(수首)가 되는 산이란 의미로서 강회도지(江華島誌)의 기록에 의하면 마한(馬韓) 때는 마리산(馬璃山), 고려 때는 마리산(摩利山)으로 기록되었다가, 조선 중기 강화 유수가 승병들에게 참성단의 보수를 맡긴 이후 승려들이 보수를 마치고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불교용어를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후 마니산(摩尼山, 불교에서 마니摩尼는 여의주를 의미)과 마리산이 섞여 쓰이게 되었고, 신숙주의 국조보감(國朝寶鑑) 제10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강화부지에 마니산(摩尼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미래를 위해 삼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던 참성단이 위치한 산 이름으로 으뜸 마루(머리, 최상)의 의미가 있는 마리산(摩利山)이 4천3백 여년 전 동북아시아 최고 맹주로서 옛 조선(단군조선)의 민족혼이 살아 있는 역사문화의 유적지, 불멸의 성지로서 가장 부합하는 산 이름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성수 명예교수의 <마리산의 역사적 고찰>, 故 경희대 서정범 명예교수의 <마리와 머리의 어원적 고찰> 등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마니산의  본래 이름 마리산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韓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되찾는 환단고기 북Book 콘서트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은 한韓민족 불멸의 성지, 강화 환단고기 북콘서트

 

 

 

초청: 안경전 환단고기 완역본 역주자

일시: 2015년 9월 13일(일요일) 오후 2:00

장소: 강화도 강화문예회관(1층 대공연장)

주최: 사단법인) 대한사랑

후원: STB 상생방송, 사단법인)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문의: 032-933-1697, www.daehansarang.org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한韓민족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나라의 족보, 대한민국 국통맥(國統脈)

 

 

 

 

 

 

 

 

대한민국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정신(精神)은 무엇인가?

9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 혼백(魂魄, 정신) 속에 한韓민족의 정체성이 들어 있다.

 

 

 

 

 

 

우주를 탐사하는 최첨단 현대문명과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의 족보가 무얼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제일이라 자부하는 미국이나 그에 버금가는 러시아나 중국과 일본, 이스라엘 등 지구촌의 여러 나라는 국가의 정체성 확립이 최우선 과제에 속한다.

 

 

불과 200여 년밖에 안 되는 미국조차도 그러할진대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강력한 역사의식을 가진 국가와 민족이 세계 역사를 주도해 온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현재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 역사라 말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과 역사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구촌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 9천 년의 장구한 민족의 역사와 위대한 정신문화의 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이 조작하여 만든 거짓말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것이 정설인 양 대한민국은 말로는 반만년 역사라 하면서도 절반 이상의 역사를 싹둑 잘라버리고 2천 년 역사밖에 가르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구촌 어느 국가와 민족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정신문화의 가치는 실종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가와 민족의 국조(國祖)를 부정하며 정신을 잃어버린 유일한 나라가 되어 있다.

 

 

 

 

 

 

 

지구촌이 일일생활권으로 변모하였고, 한류의 국제화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을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에게 '곰이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신화를 우리의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인 양 소개하는 미개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더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민족의 뿌리도 모르고 정신문화의 혼(魂)도 빼앗긴 국적불명의 고아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 국통맥(國統脈)을 바르게 세워 잃어버린 민족혼, 정신문화를 회복하여 한韓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한韓민족의 9천 년 국통맥은 나라의 계보이며 나라의 족보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9천 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었다.

 

1. 환국桓國   →   2. 배달국倍達國   →   3. 단군 조선   →   4. 북부여(열국 시대)   →   5.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사국 시대)      6. 대진국, 신라(남북국 시대)   →   7. 고려   →   8. 조선(대한제국)   →   9. 대한민국(남북분단 시대)으로 크게 아홉 번에 걸쳐 시대가 바뀌면서 이어져 왔다.

 

이 아홉 번의 개국(開國) 과정이 바로 인류 시원 문화의 민족이며 동북아 역사의 주역인 한韓민족의 국통맥(國統脈)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환단고기桓檀古記』가 밝혀낸 한(韓)민족의 사라진 역사와 지워진 역사(상고사上古史)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이 한 그루 나무라면 인류의 창세 역사와 시원 역사, 즉 상고역사 시대는 뿌리에 해당한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나무의 가지와 줄기와 잎이 그 나무의 전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생명력 있게 살아 숨을 쉴 수 있도록 자양분을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뿌리는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일 강제병합 다음 해인 1911년(신해년) 출간된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인류의 창세 역사, 시원의 역사와 함께 한韓민족의 잃어버린 역사, 사라진 역사, 지워진 역사 7천 년의 상고역사가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9천 년 동방 한韓민족사는 인류 역사의 뿌리가 되며, 한민족사를 바르게 알 때 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를 함께 볼 수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

"역사는 인간이 대자연에 적응하면서 문화를 창조하는 끊임없는 연출과정이며, 역사는 현재사며 미래사"라고 한다.

 역사는 현재의 모습이며 역사는 미래의 나침판이고 거울이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한韓민족의 9천 년 역사에서 사라지고 지워진 7천 년의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조선朝鮮(단군조선, 옛 조선)의 상고사에는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지구촌 인류가 깜짝 놀랄만한 위대하고 장대한 역사의 진실이 담겨 있다.

 

 

중화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주의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되어 사라진 역사의 진실이 담겨 있는 『환단고기』에는 그동안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국민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우리 조상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 있다.

 

 

 

 

 

 

『환단고기』는 인류 시원 문화와 창세 역사의 틀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역사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다.

『환단고기』에는 한韓민족과 인류의 종교와 철학 등 정신문화의 원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민족과 인류 문명의 뿌리 환국桓國 - 7대 환인 천제, 3301년

 

동방 최초의 국가 배달국倍達國 - 18대 환웅 천황, 1565년

 

한韓민족 문화의 전성기 조선朝鮮(단군조선, 고조선) - 47대 단군 임검, 2096년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광복 70년, 대한민국 국기(國旗)이며 한(韓)민족 최고 브랜드 태극기(太極旗)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또 다른 이름이 한(韓)민족이다.

우리의 근현대사,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또 다른 상징이 태극기(太極旗)다.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며 우리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 있는 또 다른 얼굴, 태극기(太極旗)!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을 한 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광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왜곡하고 조작한 역사가 마치 정사(正史)인 양 가르치고 있는 나라, 일제의 무자비한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제의 앞잡이와 후손들이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기득권을 잡고 좌지우지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그리고 한(韓)민족은 국조(國祖)를 부정하는 유일한 나라이며 민족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라고 떠들어 데지만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어떤 역사책에도 반만년 역사는 없다.

옛 조선을 창업하신 단군 임검은 한낱 신화 속에 인물로 남아 있다.

 

그렇다 보니 태극기의 기원이 되는 태극과 건곤감리를 세상에 처음 그리신 한韓민족의 위대한 선조, 태호복희씨가 중국의 조상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공식적인 역사 기록과 강단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중국의 조상 태호복희씨가 만든 태극기(태극과 팔괘)를 대한민국의 국기(國旗)로 사용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남의 나라 문화나 가져다 쓰는 국가이며, 아직도 중화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중국의 문화적, 정신적 속국임을 자인하는 결과가 된다.

 

 

 

 

 

 

태극기를 처음 국기(國旗)로 사용하신 고종황제는 태극기가 한(韓)민족의 위대한 선조이신 태호복희씨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았고,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생성 변화가 담겨 있는 태극과 팔괘의 깊고 오묘한 학적 의미를 담아 국가의 상징이며 민족의 대표 브랜드, 국기(國旗)로 제정하신 것이다.

 

그것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인류 창세 역사의 종주국, 시원 역사의 주체 민족으로서존심을 회복하려 하신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구촌 200여 개 국가의 국기 중에서 가장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기이며 최고 브랜드인 태극기다.

 

 

 

 

 

 

 

 

한韓민족배달의 민족, 동이족이라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5912년 전 배달국 초대 거발환 환웅천황께서 환국(桓國)으로부터 홍익인간의 이념과 천부인(天符印)을 전수받아 개국한 나라가 바로 신시 배달국이다.

 

 

그리고 태극과 팔괘(태극기의 원조)를 그으신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 천황의 막내 아드님으로 삼신상제님으로부터 하도(河圖)를 계시받아 내렸다. 하도는 우주 삼라만상의 변화원리,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의 변화 원리를 팔괘의 원리로 그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현대 디지털 문명은 태호복희씨의 하도(태극 팔괘)에서 비롯되었다. 

 

 

 

 

 

 

 

한韓민족의 위대한 조상 태호복희씨는 도교와 유교의 시조가 되시며 역철학의 효시인 복희 팔괘를 그렸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태호복희씨를 인류문명의 시조, 인류문명의 조상이라 부르며 한漢족의 조상으로 바꿔 놓았다.

 

 

 

 

 

 

 

 

광복 70년이 되었지만, 우리의 역사와 정신은 아직도 일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몸(경제적)은 성장했으나 정신(역사와 문화)은빈 허수아비 나라가 되어 있다.

 

국민들 눈요기나 하는 화려한 행사나 선심성 행정보다 천배 만배 시급하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바로 국가와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 즉 민족혼을 일깨워 정신이 살아 있는 민족, 깨어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위정자들이 흔히 말하는 선진국, 창조적인 나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한민족과 인류 시원 역사와 문화를 찾는 청주 환단고기 북콘서트(2015년 4월 25일 - 충북대학교)

 

 

 

 

 

 

 

동북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역사전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독도 영유권 주장과 임나일본부설 등 드러내 놓고 역사 왜곡과 영토를 침탈하는 일본과 은밀하게 우리 민족의 고구려 역사까지도 자국의 역사로 바꾸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지금 이 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역사전쟁은 한민족의 상고사 말살과 왜곡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민족의 상고시대였던 환국과 배달, 단군 조선의 7천 년 역사가 복원되지 못한다면 근현대사 역사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시원 역사와 문화가 한민족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현재 인류 문화의 종주국인 한민족의 역사가 중국으로부터 발원한 역사가 되어 있고, 일본의 통치를 받은 민족으로 전락하여 이제는 대한민국의 영토까지도 서슴없이 침탈하려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동북아 역사전쟁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나와 우리 삶의 출발점을 아는 것이며,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원입니다.

 

 

 

 

 

 

 

 

지구촌의 선진국들을 보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앞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한 역사를 기반으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현재 없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시작한 야만족이며, 고대사 일부분도 일본의 간섭을 받으며 살아온 민족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고, 희망찬 대한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민족의 상고시대 7천 년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여 그 안에 담겨 있는 민족혼을 되살려 정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한민족과 인류 시원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환단고기를 가지고 지난 30여 년간 지구촌의 문명 유적과 현장 답사를 정확하게 고증하여 출간된 환단고기 역주본 저자 안경전님을 초빙하여 청주 충북대학교에서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청주 환단고기 북콘서트를 통해서 한민족의 9천 년 역사와 문화에 담겨 있는 정신으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인류 문명의 종주국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주(충북대학교) 환단고기 북콘서트

 

초청: 안경전 환단고기 역주본 역주자

일시: 2015. 04. 25 (토요일) 오후 2시

장소: 청주시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 대공연장

주최: 사단법인 대한사랑

후원: STB 상생방송, 상생문화연구소, 상생출판

문의: 070-8644-3075, www.daehansar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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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1895년) 단발령 - 중국의 변발과 일본의 존마게는 무사의 상징과 전쟁의 상징, 한민족의 상투는 선비와 평화를 의미.

 

 

 

 

지금은 과거의 구습舊習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투!

불과 1백년 전만 해도 우리 민족의 일반적인 머리 모양이었다.

일제가 시행한 단발령으로 우리 조상들은 강제로 상투를 잘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을미의병(1895년)까지 일어나게 된다.

 

 

 

 

 

왜 우리 조상들은 "목은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최익현)"고 하면서까지 상투를 지키려 했을까?

당시의 시대상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훼상할 수  없다는 유교의 가르침이 주된 이유였지만, 그 상투 안에는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헤어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거리에는 최신식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고 사람마다 남들과 다른 머리양식을 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은 상투, 청나라는 변발, 일본은 존마게(丁髷 , ちょんまげ )로 대변될 만큼 민족을 구분하는 상징이자 수단이 바로 머링양식이다.

변발과 존마게가 무사의 상징이자 전쟁의 상징이었던 반면, 한민족의 상투는 유독 선비의 상징이자 평화를 의미했던 것이다.

 

 

 

 

 

"상투는 우리 민족 고유의 머리 형태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기마민족들은 투구를 쓸 때에 땀띠가 나는 것을 막으려고 앞머리 부분을 면도했으며, 호족의 변발이나 일본 무사의 상투(존마게)도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 머리 모양을 '노정露頂'이라 하는데, 용감한 병사를 일컫는 말로 쓴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와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에서는 이 앞머리 깎는 풍습이 호마胡馬와 마찬가지로 자리잡지 못하였다... 삼국시대 이후 한국인의 머리 모양은 과하마果下馬처럼 평화스러운 선비의 상투 형태로 정착되어 갔던 것이다."  (1998년 지식산업사, 용운 『제2건국론』)    

 

 

 

 

 

목을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없다!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벌어진 날, 친일내각이 단행한 단발령은 백성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1896년 1얼 7일, 궁내부 특진관인 김병시는 공자가 "신체발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치 말라"고 가르쳤다고 하면서 단발령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를 기화로 단발령 반대운동은 재야의 유생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번지게 된다.

 

 

 

 

 

그러자 내각에서는 각지에 체두관剃頭官을 파견하여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강제로 상투를 잘랐고, 이로써 거리마다 상투를 잘린 자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수령들은 더러 상투를 잘라 백회百會를 드러내 놓고는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어 머리를 두르고서 상투 없는 것을 표시했으며 더러는 깡그리 깎아 시세를 따르기도 했지만 이민吏民들은 한사코 단발령을 거역하며 기한을 여러 번 물렸다. (황현 『매천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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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고의 문명 발상지, 홍산문화의 제천단은 한민족의 적석총

 

 

 

 

 

세계 최고의 문화 발상지,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상지라 할 수 있는 홍산문화(紅山文化)는 내몽고 동남부와 요녕성 서부와 하북성 북부, 그리고 길림성 서부 등지에서 발견된 문명을 말한다.

 

20세기 가장 충격적인 고고학적 발견 중의 하나로 꼽히는 '홍산문화' 유적은 지금까지 알려져 온 인류 최고의 문명 발상지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새로운 연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좁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기원전(BCE) 35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로, 내몽골과 요령성의 접경지역인 적봉, 조양, 능원, 객좌, 건평 등을 중심으로 분포된 유적지를 일컫고, 넓은 의미의 홍산문화는 요서 일대의 신석기문화(BCE 7000년 ~ BCE 1500년) 모두를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홍산문화의 핵심지라 할 수 있는 우하량에서 BCE 3500년까지 올라가는 대형 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돌을 쌓아 무덤의 묘실을 만든 적석총(積石塚) 등이 발굴되었다.

 

특히 우하량 20여개 지점 중 총길이가 160m이고 남북 50m에 이르는 제2지점에서는 3층으로 이루어진 원형(圓形) 제단과 방형(方形) 돌무덤이 발굴됐는데, 제단과 무덤 모두 돌로 쌓아올려 만든 적석총으로 원형과 방형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3층으로 이루어진 원형 제단은 중국 북경의 천단(天壇)에 있는 원구단(圓丘壇) 형태와 같은 구조로, 중국학자들은 이 제단을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원형이자 명. 청 시대 때 중국 황제들이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던 북경 천단(天壇)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는 묘장법(墓葬法)이다.

죽은 사람을 장례 치르는 의식은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석총, 즉 돌무지무덤은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무덤으로 고구려와 초기 백제에까지

이뤄진 대표적인 양식이다.

 

 

 

 

중국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 유역에는 적석총이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다.

이를 볼진대, 비록 배달국과 (고)조선 초기문화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동방 한민족의 조상, 동이(東夷) 배달족이 그 문화의 주체 세력인 것이다. 또한 천원지방 사상도 동이족에서 발원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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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시대 도술(천간지지天干地支)로 보는 한민족의 옛 제국 천도(遷都, 수도 이전)의 의미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시고 나라의 이름을 정하실 때나, 새 도읍을 정하시는 것은 역사의 전개에 따라 진행된 것이지만, 하늘의 섭리(천도天道)가 같이 맞물려서 그 의미를 더하게 된다.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도읍을 정하신 해(年)를  다소 난해한 내용이지만 하늘의 이치, 동양의 우주론과 함께 살펴 본다.

 

 

 

(송호국님의 기고문 中)

 

우리 민족이 나라의 도성(都城)을 옮긴 것도 모두가 태고 시대의 도술(천간지지天干地支)에 따른 것이다.

도성(都城)은 지지(地支)의 토(土)와 깊은 관련이 있다. 무릇 토(土)의 지지는 '진辰, 술戌, 축丑, 미未'가 있으니, 이중에서도 '축토(丑土)'를 제외한 진토(辰土), 술토(戌土), 미토(未土)와 관련이 깊다.

 

 

 

 

 

『환단고기』 「신시본기」의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도술(道術)에서 '진, 술, 축, 미'가 뜻하는 것은 토(土)다.

여기에서 '축丑'은 가다(加多), 진辰은 밀다(密多), 미未는 순방(順方), 술戌은 개복(皆福)이라 하였다.

 

 

 

 

축(丑)은 '가다(加多)'이니

다(多)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을 뜻한다.

다(多)는 많은 것이요, 가(加)는 더하는 것이니, '가다'는 축(丑)이 하늘과 땅, 음과 양의 기운을 더하여 인간과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진(辰)은 '밀다(密多)'이니

인간과 만물을 길러 더욱 번영시킨다는 뜻이다.

진(辰)은 빽빽하다는 뜻이니, 인간과 만물이 이땅에 가득 들어차도록 길러준다.

 

 

미(未)는 '순방(順方)'이니

순방이란 천지가 개벽하여 상하사방이 곧고 바른 것을 뜻한다. 곧 방(方)이란 '천원天圓, 지방地方, 인각人角'의 방(方)이니, 곧 토(土)가 가장 큰 땅을 뜻한다. 고로 주역에서는 곤괘(坤卦)를 일러 직방대(直方大)라 한다.

 

 

술(戌)은 '개복(皆福)'이니

모든 것을 행복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皆)는 '다(多) 개'이니, 진(辰)의 다(多)를 수렴하여 통일하고, 축(丑)의 '다(多)'를 새롭게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환단고기』에서 '가림다(加臨多)'를 달리 '가림토(加臨土)'라 하였고, 삼국사기에서는 '다물(多勿)'을 일러 '고구려의 말에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는 고로 이름지어진 것이다',라 하였으니, '다(多)'는 곧 '토(土)'다.

 

인간과 만물이 생겨나고, 번성하고, 열매맺고, 씨앗을 보존하는 것은 오로지 토화작용(土化作用)에 의한 것이다. 고로 토화작용을 주재하여 만물을 조화시키는 성령을 일러 황웅여신(黃熊女神)이라 부른다. 아울러 한 지방의 터를 지키는 신명(神明)을 터주대감이요, 한 나라의 도성과 궁실을 지키는 신명(神明)은 성조대군이다.

 

 

 

삼신(三神, 우주의 주재자)이 강림하는 땅, 가림토

오행 중에에서 토土가 하는 역할은 모든 인간과 만물이 모든 생명의 뿌리인 삼신(三神)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사유위(四維位)의 세상이다.

사유위란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중심이 되어 변화 작용을 하는 세상을 뜻한다.

 

다시 말해 사유위란 소인이 대인인 진술축미(辰戌丑未)를 쫓아 내고 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정방(四正方)이란 진술축미가 동서남북 정방위에 바로 자리잡은 것을 뜻하니, 이른바 개벽이다.

 

 

 

 

『환단고기』 「삼신오제본기」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천도(天道)는 북극에서 일어남으로, 후천개벽은 궁극적으로 지금의 동북방(자방위)에 기울어진 자전축이 정북(축방위)으로 오면서 실현된다.

 

 

 

 

한민족의 옛 제국이 4토(진술축미)의 천도를 고집한 것은 삼신상제님의 강림을 소원한 것이다. 아울러 광명으로 나라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광명 속에 사는 삼신의 강림을 지극히 염원한 것이다. 삼신께서 강림하는 땅을 우리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 가리(嘉利)는 곧 신(神)의 옛말이며, 림(臨)은 강림한다는 뜻이고, 가토(加土)는 가다(加多)로서 축(丑)이니, 삼신이 개벽의 땅에 강림하는 것을 뜻한다.

 

 

돌이켜보면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해에 천도(遷都)를 단행하였으니 곧 '임술, 무진, 을미'다.

더불어 특정한 장소에 천도를 단행하였으니, 가장 대표적인 곳은 백악산이다.

또한 같은 국호(國號)를 반복하여 사용하였으니, 그것은 곧 '고려高麗, 부여夫餘, 진辰, 한韓'이니, 이는 모두 천하를 호령했던 옛 영광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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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고유 사상인 '한'을 통해 고찰한 한사상 』과,한철학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

 

 

 

 

 

한사상의 '한'은 '한국', '한겨레', '한글', '하느님', '한얼' 할 때의 한으로서(韓, 桓, 汗, 恨, 咸, 丸으로 표기 가능) 국가, 민족, 사상, 생활 전반에 걸쳐 우리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를 규정할 때 쓰인 말이다.

 

한사상의 철학적 측면에서 '한'의 중요한 의미로는 1 하나(one), 2 많음(Many), 3 같음(Same), 4 가운데(Middle) 5 얼마 대략(About) 등이 있고 이 밖에도 무려 22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중 One/Many의 문제는 '일자一者'와 '다자多者'의 문제로 유교, 불교, 서양철학에서 풀려고 하는 숙원의 문제이다.

이는 보편과 특수, 신과 세계의 문제, 불교 삼론종에서 나오는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문제로 동서철학 공통의 해결 과제이다.

 

이는 철학의 문제를 떠나 교육, 신학, 경영이론, 수학 등 어디에나 부딪히는 문제인데 한사상은 이를 서양사상처럼  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오거나, 동양철학처럼 Neither/nor의 논리로 중용Middle의 길을 택한 게 아니라 이마저도 파괴시키고 비결정적인 '어떤, 대략About'으로 넘어서는 데에 한사상의 극치가 있다고 한다.

 

이는 전체가 완숙하여 파열됨으로써 개체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개체가 자유자재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동경대전』에 나오는 기연불연(基然不然)과 같은 사상이다.

그렇다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전체가 매 상황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사상은 한민족의 구성원들에게 삶의 의미, 가치의 표준, 희망, 꿈을 담고 또한 그것을 주기 위한 사상이다.

그러면서 철학을 역사학에서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종래의 과학적 객관적이라고 하는 서구의 실증주의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즉 실증주의 사학자들이 말하는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고전 뉴턴 물리학적 개념과 데카르트적 세계관으로서의 '과학적'이라는 점인데, 이미 뉴턴 물리학은 아인슈타인과 현대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부정되어 버렸다.(1972년 코펜하겐 선언)

데카르트적 세계관도 현재의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 흐름이나 동양사상으로 본다면 그 졸렬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는 현재 드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에서도 역사란 서술하는 주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 수 있는데, 아직도 실증에만 매달리는 국내 역사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역사사료와 사건을 배우고 연구한 후에 사관(史觀)이 생기는 법인데, 이를 뒤집어 나중에는 마치 자기 사관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오만함을 보인다.

 

그래서 『환단고기』, 『규원사화』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선가 계통의 역사자료를 현 국사학계에서는 일언지하에 신빙성 없는 자료들로 취급해 버린다. 그렇다면 이들 기록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왜 기록했는지, 이들 기록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없어도 우리 역사 영역을 넘어선, 또 다른 역사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질문을 가능케 한다. 현재도 그들은 여기에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저자는『 환단고기』에 나타나는 언어와 사상체계, 종교양식, 정치제도 같은 것을 차츰 발굴되어지고 있는 동아시아 고고학의 연구결과(홍산문명 등)에 맞추어 보고, 나아가 근동아시아(수메르 문명 등)에까지 확장하며 더 나아가 아메리카인디언에까지 한국학의 범위권에 넣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도 없이 쪼그라진 식민사관을 가지고 한국 상고사를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사상'은 역사학을 하는 태도에 있어서 이 작은 지구 위에 사는 인종들의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고, 그 이유가 한 우주질서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근거로 한국고대사와 수메르문명의 관계성,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함께 우리들 자신이야말로 가장 값진 실증 자료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역사 연구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며 우리의 잠재의식 원형(Archetype)속에 이미 환단시대(단군성조의 옛 조선 이전의 환국과 배달시대)에 형성된 원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언어와 행동관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문화의 상한선은 엄청나게 올라가는데, 역사 상한선은 소위 한사군, 기자조선으로 잘라버리면 서로 평행선이 길고 짧은 결과가 생기지 않겠는가 하며 무당은 엄연하게 존재하는데, 단군시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문화와 역사 길고 짧아 절룸발이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은가 라며 비판하고 있다. 나와 우리를 하나로 보게 해주며 우리 됨을 확고하게 해주는, 그럼으로써 나와 너 우리가 하나 되게(HAN) 해주는 아주 아주 좋은 책이다.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 한사상 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 전공,

미국 필립스대학 대학원, 클리어몬트대학 대학원에서 과정철학과 한국 불교를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음.

저서로는 수운과 화이트헤드, 동학과 신서학, 화이트헤드와 동양철학, 현대물리학과 한국철학,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 카오스와 문명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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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東夷) 한민족, 우리 민족의 활쏘기 문화사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스리는 신독(愼獨)

 

 

활은 수렵도구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병장기의 의미 외에 풍요를 이룩하는 도구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들은 활을 지니고 다녔는데, 특히 태양신 아폴로는 활을 잘 쏘아 재앙을 쫓아버리고 더러움을 제거하며, 풍요를 가져오는 태양을 상징한다.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고대 페르시아의 태양신 및 전투신인 미트라(Mithra)는 바위를 활로 명중시켜 물이 솟아나게 하였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아홉 개의 태양을 맞춰 떨어트린 동이족 출신의 '예(羿)'라는 명궁수가 있었다.

특히 우리 민족을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의미로 동이(東夷, 夷 = 大 + 弓)족이라 했으며, 왕조의 창업자들은 모두 활을 잘 쏘는 선사(善射,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이었고, 예로부터 우리를 '선사(善射)의 나라'라 불렀다.

 

 

 

 

우리 활의 역사는 환웅천황의 배달국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4대 자오지환웅(일명 치우천황)과 한족(漢族) 황제헌원의 탁록대전에서부터 그 기록이 나온다(환단고기- 삼성기 하편,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 이후 단군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단궁(檀弓)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시대에는 맥궁(貊弓)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이 맥궁에 철갑을 두를 말을 탄 개마무사들은 광개토태왕의 동아시아 영토회복(多勿다물)의 주력군이었다. 고려에서는 경궁, 강노, 청노라는 궁술부대가 있었는데, 몽골 강점기에는 활 만드는 장인들을 모조리 잡아갔다고 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외적의 침입에 수성전(守城戰)을 장기로 삼았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게 바로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예 유성룡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활을 잘 쏜다고 알려졌고, 이 때문에 성을 굳게 지킬 수 있으니, 활은 우리나라의 장기(長技)이다."라 했다. 임진왜란 당시 중국 명의 창, 일본의 칼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병기로 활이 알려졌었다. 또 성호 이익은 "활과 화살의 이점이 우리를 동방의 최고로 만들었다."고 했다.

 

 

 

 

활쏘기가 우리에게 단순히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활문화에서는 살생의 용도를 의미하는 '쏜다'는 말보다 심신수련의 의미를 강조한 '낸다'는 말을 더 선호했다.

 

『 중용中庸 』14장을 보면

'射사, 有似乎君子유사호군자, 失諸正鵠실제정곡, 反求諸其身반구제기신.'

"활쏘기는군자의 덕성에 비유될 만하다.

활을 쏘아 정곡에서 벗어났으면, 항상 그 오류를 되돌이켜 자기 몸에서 찾는다."는 구절이 있다.

 

그래서 활쏘기 하는 날에는 술을 마시지도 않고, 몸을 단정히 하여, 웃거나 잡담을 금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며 일체 격식을 준수하였다고 한다.

 

 

 

 

활쏘기는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단전호흡이 되었고,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활을 쏠 때는 딴 생각을 할 수 없고 활에만 집중해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라 하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홀로 삼가야 하는 신독(愼獨)을 수련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태양을 상징하는 동심원의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바람이 불어 화살이 움직이고, 마음이 흔들려 화살이 흔들리고, 우리의 삶도 이리저리 흔들릴 수 있다.

그러기에 선사(善射)는 자기 자신을 과녁 삼아, 중심(中心)을 잡는다.

흔들림 없는 올곧음, 중심을 지키는 마음 수양이 있을 때 활과 내가 하나되어 심신(心身)수련으로서 자기 수양의 활쏘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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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광명사상과 빛의 의미

 

 

 

 

역사적으로 우리 한민족만큼 '광명'(光明)과 친근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백의민족'이라는 닉네임은 우리 동이족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나라이름을 짓기에도 늘 '광명'을 사용하였다.

 

환국(桓國), 배달(倍達), 조선(朝鮮), 부여(夫餘),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이 모든 국호(國號)가 말호 '광명' 즉 빛을 표현한 단어들이다. 우리 민족은 늘 이 '빛'과 함께 공존하여 왔다.

 

 

 

 

우리 주변에서는 흔히 빛과 어둠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동양철학에서는 '음양(陰陽)이라고 하여 빛은 양을 어둠은 음을 의미한다.

사시(四時)가 분명한 우리나라는 특히 춘분과 추분이라는 절기가 있어 빛과 어둠의 비율이 반반인 시기가 있다.

 

예로부터 '등하불명'(燈下不明,등잔 밑이 어둡다)이라는 말도 있어 왔다.

하지만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어두운 밤에는 '빛'이라는 게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몇 년전 발생한 초유의 정전사태(블랙아웃) 역시도 이러한 '빛'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랑방에서 호롱불에 의지하면서 바느질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에서 짙은 어둠을 밝히는 '빛'의 위대함도 같이 느끼게 된다.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빛'은 단순한 '빛'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고대문학과 철학, 종교 전반에 걸쳐 '빛'이 갖는 비유적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다.

지상의 밝은 세계와 지하의 어두운 세계가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된다.

빛은 생명의 충실, 청정함, 자유, 희망, 기쁨, 신들의 지복 세계를 나타낸다.

또한 보는 작용의 매체, 보여지는 대상, 사상의 통찰, 세계인식과 그 힘을 나타내며 신(神)적인 것의 현현, 임재이다.

 

 

빛은 종종 영적인 세계에 비유되기도 한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말하는 영의 세계는 그야말로 광명의 세계다. 영의 세계에서 영적인 존재들은 '빛'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예수, 석가, 공자 등의 성자들 모습을 그릴때는 반드시 뒷쪽에 둥그렇게 밝은 후광(後光)을 그려 넣는다.  

신(神)은 밝음 그 자체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밝을 명(明)자를 덧붙여 '신명'(神明)이라고 불러왔다.

 

 

몇해전 빛보다 빠른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했다가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언제 발견될지 아직 미지수인 빛보다 빠른 물질인 '타기온'.

빛보다 빠르다는 것이 큰 이슈가 되는 것만큼 '빛'은 비교대상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조명'이라는 말로 대치된다.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생활 가정, 상가, 문화공연,직장 등에서 다양한 용도에서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크기 사랑을 받았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가 3D영화라는 이슈와 함께 대중들에게 던져준 새로운 세계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채감이었다.

유토피아라는 신세계의 이미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조명의 세계라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요즘 조명의 대세인 LED 빛의 색깔은 친환경적이면서도 그 색상이 매우 유려하다.

그리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명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9천 년 전부터 대우주의 본성(本性)인 광명을 나라 이름으로 정하여 사용하여 왔던 우리 한민족.

혹자는 현대의 기준으로 구석시, 신석기, 청동기로 분류하여 역사 발전단계에서 우리 한민족이 염색기술이 부족해서 흰옷을 입었다는 무지한 소리를 하는 자들도 있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무지는 순수가 아니라, 죄악이다."라는 말이 떠올려진다.

우리 한민족은 우주의 본성인 광명사상을 생활속에서도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 왔던 것이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은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감동과 자긍심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3,1운동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민족에게 큰 격려와 위안을 주었던 시(詩)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부정하고 정체성없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號)

(한국 상고사 입문 - 이병도, 최태영 공저)

 

 

 

 

 

얼마전 "세월호 침몰"로 인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슬픔과 분노에 빠져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고 분통이 터지고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 발단의 주체인 청해진 해운사와 관련 기업과 인물, 침몰 원인과 침몰 당시의 관계부처의 잘못된 대처, 그리고 침몰 후 구조 문제와 유가족에 대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이야기 까지 나오고 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다.

 

 

대통령이 여러 이야기와 함께 관피아 척결을 하겠다는 의지 표명을 했다.

대한민국에 관피아만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모피아, 법피아,교피아, 해피아... 대한민국 단 한 곳도 예외없이 병들어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촌이 대동소이 하겠지만 여러 단체와 기관들관의 유착으로 병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월호 침몰의 사건은 개인의 이기주의(욕심)와 집단간의 복합적인 문제들이 얽히고 섥혀서 만들어진 사건이다.

모든 문제는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하지 않고는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어디서 부터 문제가 잘못되기 시작하였는가?

 

구한말이 첫 번째 잘못된 시작점이라면 두 번째는 대한민국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 후 일제의 앞잡이를 했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도권을 대부분 거머쥐고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현대사의 문제점이 바로 이 시점에서 두 번째로 크게 잘못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부모님의 손에 길러진 것이 아니고, 집안의 가풍을 물려 받지도 못하고, 제대로된 인성교육도 받지 못하여, 자신의 성(性)도 이름도 잃어버리고 성장한 정체성없는 나라, 대한민국이 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 36년의 세월 속에서 일본은 조선(한민족, 대한민국)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일본이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없앰으로서  한민족은 정신적 고아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찾고자 하는 몇몇 의인(義人)들이 있었으나 정권(政權)의 힘아래서는 아무 힘도 쓸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광복 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서 교육을 받은 현재 대한민국의 5천 만 국민과 700만 재외동포는 환국과 배달국, 단군 조선을 부정한다. 알고 부정 하든, 모르고 부정 하든, 자신들의 조상을 부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만든 일차적인 원인 제공자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에 의한 한민족 역사 왜곡이다.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이병도와 신석호의 주도 아래 조선사(朝鮮史) 편수회를 중심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했다.

 

물론 이완용, 최남선, 박영효 등도 있었지만 광복 후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을 주도하여 현재의 왜곡된 한국사를 만들어 제자들이 답습하고 전 국민이 조작되고 왜곡된 한민족의 역사를 사실인양 믿게 만든 장본인이 신석호와 이병도다.

 

 

 

 

 

 

 

 

 

신석호(1904~1981)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 처럼 정권에 밀착하며 식민사학자로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이병도(1896~1989)는 최태영 박사님의 3년간의 설득의 결실로, 1986년 10월 9일에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아닌 우리 국조'라는  특별기고를 통해 자신이 한 평생 지켜왔던 식민사학을 언론을 통해서 참회하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사망하던 해(1989년)에  '한국 상고사 입문'이라는 책이 최태영 박사님과 공동 저자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병도의 "단군은 신화가 아닌 역사다." 라는 말에 대해서 그의 제자들과 식민사학을 답습하여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강단사학자들로 자리잡은 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망난 늙은 이"라고 하였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스승을 욕보이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

 

 

 

 

 

 

 

 

 

 

교육은 100년 대계라고 한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은 인성이 형성되고 한 개인으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의 작은 톱니 바퀴가 되어 살아간다.

정치나 경제, 교육이 됐든 모든 것은 가정과 학교 교육을 바탕으로 해서 현실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다.

 

 

 

한민족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 속에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유구한 역사나 찬란한 문화 뿐만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우리 선조들께서 어떤 가르침과 지혜로 세상을 살았는가 하는 정신사가 중요한 것이다. 그 정신사가 말살 당한 것이다.

 

 

역사라는 몸뚱이도 잘려 나가고 몸뚱이의 주인이 되는 정신(마음)도 잃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전혀 변함없이 꿋꿋하게 일본의 뜻대로 식민사학자들의 생각대로 혼(정신)빠진 인간이 되어 천길 낭떠러지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는 대한민국호(號)는 침몰하기 일보직전이다.

 

 

 

 

국유형(國猶形)하고 사유혼(史猶魂)하니 형가실혼이보호(形可失魂而保乎)아.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환단고기 - 단군세기 서문)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현실을 전혀 망각한 죽은 학문이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과거는 현재의 뿌리요, 현재는 과거의 성과(成果)이며, 과거 생활 중에는 현재에 대한 양분(養分)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한국 상고사 입문 中)

 

 

 

 

현재에 드러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다...

 

 

왜? 위정자들이 말로는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남탓을 하며 변화를 지시하겠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을 받았고 그런 국가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정신없는 민족이 만든 참사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언제고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교육이 개인의 인생사 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도 판가름 짓는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알아야 하는 이유

국가의 외적인 국가경쟁력, 국격(國格)이 경제나 정치, 군사적인 면이라면,

국가를 내적으로 지탱하고 살아움직이게 하는 '정신력이 바로 역사다!'

 

과학문명의 선구자로 서양 사람의 이름은 알아도 현대 과학문명을 있게 해준 한민족의 위대한 조상은 모르고,

현대의 문화 예술에 감동하고 울고 웃으면서도,지구촌  문화의 근원이 되는 한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을 모르고 산다. 

 

지구촌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가면서 상생의 시장경제를 처음 여셨던 한민족의 위대한 조상은 모르며,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위해서 상대방을 철저히 짓밟는 현 정치 체계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모습에 몸을 담고 살면서도 이상적이며, 올바른 국가 경영을 했던 한민족의 위대한 정신사를 모르는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지구촌)에서는 그 분들을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원시인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의 참 모습이다.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정신'에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에서 부터 국가를 올바르게 경영하는 국정 운영의 요체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다.

 

깨어나라 대한의 혼(魂)이여!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진 역사 정신이 살아 움직일 때 대한민국과 지구촌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태영

1900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19년 명치대학 예과 입학, 1924년 일본 명치대학 법학부 졸업, 1945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교수역임(한국인 최초 법학교수, 최초의 검사 이준 열사, 최초의 판사 효봉 큰 스님) , 부산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학장,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학장및 대학원장, 청주대학교 학장 및 대학원장 역임. 1975년 상고사 복원에 뜻을 두고 퇴임하여 역사 연구에 전념, 이병도를 3년 간 설득하여 '한국 상고사 입문' 책을 출판함. 2005년 만105세를 일기로 타계. 

 

이병도

1896년 경기도 용인 출생, 보성전문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역임,학술원 회장, 국사편찬위원화 위원, 문교부 장관, 손자 (전 서울대총장 ,현 카이스트 이사장 이장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전 문화재청장 이건무), 윤보선 대통령과 겹사돈, 윤치영(전 내무부장관, 친일파)의 처남, 1989년 사망.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환단고기 간행사

『환단고기』 출간 100주년에 부쳐

 

2011년 5월 어느 날,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고조선관館에 들른 적이 있다. 개관 60년이 넘는 한국의 대표적인 박물관에 고조선관이 들어선 지 불과 1년여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씁쓸하였다.

 

필자를 서글프게 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고조선을 소개한 안내문에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영어 안내문에는 (The First Korean State)”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BCE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서술 바로 아래 줄에 BCE 194년 위만조선으로 계승되었다고 쓰여 있을 뿐, 그 중간 역사(BCE 2333~BCE 194)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사의 99%가 사라진 것이다.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이어받았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고조선의 한쪽 날개인 번조선의 준왕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한 위만을 버젓이 고조선의 정통 왕위 계승자로 둔갑시켜 놓은 것이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내용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우리 자신이 우리 역사에 가한 가장 큰 모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만은 배은망덕의 표상이다. 위만이 한 고조 유방의 왕후인 여태후의 탄압을 피해 번조선으로 피신하자, 준왕이 그의 망명을 허락하고 국경 수비대장으로 임명하였건만, 위만은 오히려 몰래 군사력을 길러 왕검성을 습격하여 준왕을 몰아냈다. 그런 부도덕한 위만을 단군조선의 정통 계승자로 내세우는 것은 제 부모를 쫓아내고 안방을 차지한 강도를 성웅聖雄으로 대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디 위만조선뿐이랴. 철저히 뒤틀리고 일그러진 우리 역사는 언제나 바로잡힐 것인가!

 

2011년은 『환단고기』가 간행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온 1911년은 동서양의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에 몰려와 패권을 다툰 끝에 조선 왕조가 망한 바로 다음 해이다. 나라를 잃고 온 백성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 민족의 시원 역사인 환국―배달―고조선의 삼성조三聖祖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9천 년 한민족사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위대한 역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이는 한민족사의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낸 일대 쾌거이자 동북아와 인류의 창세 역사를 밝힌 기념비적인 대사건이었다.

 

당시 압록강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던 운초 계연수 선생이 한민족의 고대사를 밝히는 주옥같은 글들을 묶어『 환단고기』라는 한 권의 책을 간행하였다. 이때 선생의 두 벗으로서 독립운동을 하던 홍범도, 오동진 장군이 사재를 털어 출판 경비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인쇄된 초간본 30권 중 현재 이 땅에 남아 있는 책은 찾아 볼 수 없다.

 

계연수 선생의 제자 이유립이 한 권을 전수받아 간직하였으나 그마저 소실되고 말았다. 하지만 필자는『 환단고기』 초간본이 언젠가 꼭 발견되리라 확신한다. 이유립의 제자 양종현이 최근 필자에게‘ 북한 학자들도 그것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자신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런데 중화주의 사관과 식민주의 사관에 중독되고 실증주의 사관에 젖어 있는 이 땅의 강단사학자들은 이 책을 조선 백성들의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든 위서로 매도한다. 혹자는 단순한 종교 서적으로 간주하며,상고시대 종교 교리서는 될지언정 역사서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근대 역사학의 안목으로만 보면 『환단고기』의 진가를 결코 알아볼 수 없다. 이 땅의 주류 사학자들은 집터, 무덤, 그릇 등의 유물과 유적으로만 과거를 추적하는 고고학 중심의 근대 실증사학에 갇혀,『 환단고기』가 전하는 인류 원형문화의 정신을 읽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여기저기서 발굴됐다는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지를 가 보라. 물고 기 잡고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서 동굴이나 움집에 살던 미개한 생활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누리던 지고한 정신문화와, 신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으며 대자연과 하나 되어 살던 광명의 삶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주류 사학계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운운하는 실증주의 사관에 중독되어, 태고시대 인류가 누렸던 광명문화인 신교神敎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20여 종의『 환단고기』 번역서가 나왔지만, 그들의 숱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정확하게 전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의 모든 책이 중대한 내용을 오역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민족 시원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였다. 특히 태곳적 인류의 정신문화인 신교의 본질과 실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에『 환단고기』 출간 100주년을 기리며,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되찾고 인류 시원 문화의 참 모습을 밝히기 위해 본 번역서를 내는 바이다.

 

필자가『 환단고기』라는 한문 역사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2년이다. 그날 밥상 위에 흰 종이를 깔고 책을 올려놓고는 밤을 새워 다 읽었다. 우리 문화와 역사의 본래 모습에 감동받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모든 내용이 놀라웠으나, 특히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필자 역시 실증주의 사관의 산물인‘ 구석기, 신석기로 시작되는 역사 교과서’에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단고기』를 접하면서 인류의 상고시대는 원시 미개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한마음으로 순수하게 살던 황금시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환단고기』를 늘 가까이 두고 마치 경문經文을 읽듯이 탐독하며, ‘동방 한민족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환단고기』가 말하려는 궁극의 역사 정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환단고기』가 밝히고자 한 상고 역사와 문화의 진리 명제들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환단의 천지광명, 신교, 삼신三神,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도道, 진선미眞善美의 출원처 등,『 환단고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이 책을 풀어 써서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에 사무쳤다.

 

그리하여 당시‘ 한의 뿌리와 미래’란 제목으로 천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정리하였다. 그러나 너무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이라『 환단고기』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하기에는 마땅하지 않아 출판을 보류하였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지난 작년 6월,『 환단고기』 번역서를 천지대천제의 제단에 올리면서 옛 원고를 다시 꺼내어 그 핵심 메시지 몇 가지만 간추려 책의 앞머리에‘ 해제解題’로 실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 속에서 한 가지 강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오늘의 역사학계가 왜『 환단고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위서론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지식인과 문화인뿐 아니라 초·중·고 학생들까지 “『환단고기』는 위서라며?”하는 말로써『 환단고기』를 의심하고 비방한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국민이 위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환단고기』 위서론에 관련된 모든 도서, 논문, 언론 기사 등을 정리하면서 한국의 강단사학계에서 제기하는 위서론의 실체를 분석하고‘ 왜『 환단고기』는 진서인가’를 규명하는 데 매진하였다. 그 결과, 본 해제에 정리된 『환단고기』 진위논쟁이 일반인에게는 다소 버거울 정도로 글이 길어졌다. 그렇지만 이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역사 연구가들이『 환단고기』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기를 바란다.

 

『환단고기』 진위논쟁과 더불어, 해제에서 특별히 페이지를 할애한 주제가 있다. 다름 아닌『 환단고기』의 역사관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네 가지 기둥이다.

 

기둥은 환국을 계승한‘ 배달 문명’, 환국에서 뻗어 나가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된‘ 수메르 문명’, 배달에서 분화되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일대에 퍼져 나간‘ 동이 문명’, 고조선 시대에 북쪽의 초원지대에서 일어나 유럽까지 정복한‘ 북방 유목 문명이다. 지금의 세계 문명은 인류의 황금시절이었던 환국이 이 네 기둥으로 분화되고, 다시 이것이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명으로 세분화된 결과이다. 인류 문명의 네 중심축에 대한 연구가 아직 많이 미진하지만, 이 책이 인류 문명사를 통시적으로 보는 시야를 틔워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어떤 이는 『환단고기』를 『한단고기』라 부른다. 이는 ‘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잘못이다. 환과 한은 다르다.‘ 환’은 하늘의 광명, ‘단’은 땅의 광명, ‘한’은 인간 속의 광명을 뜻한다. 인간은 천지의 자녀인 까닭에 그 안에 하늘땅의 광명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인간의 내면에 휘감아 도는 무궁한 천지 광명, 그것이 바로‘ 한’이다. 본질은 동일할지라도, 환과 한은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호는 반드시『 환단고기』여야 한다.

 

그렇다면 『환단고기』는 과연 어떤 책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이 천지 광명을 직접 체험하며 살았던 창세 역사시대인‘ 환단 시대이래 한민족의 역사 이야기 책’이다. 지금은 하늘과 땅의 광명을 잊고 살아가는 어둠의 시대지만, 태고시대 인간의 일상생활과 문화 주제는 오직 광명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인간의 순수성이 오염되기 이전으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하나된 생활을 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환단고기』는 인류의 상고역사, 그 중에서도 고대 동북아 역사의 실체를 밝혀주는 고귀한 역사 경전이다. 수 억 광년 떨어진 밤하늘의 별자리를 망원경으로 조망하듯, 이 한 권의 책으로 인류의 잊혀진 뿌리 역사를 시원스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동북아의 창세역사 이야기와 함께, 한민족이 9천 년 전부터 받들어 온 하늘 숭배의 실체인 상제上帝 신앙이 담겨 있고, 동서의 종교와 철학, 역사학 등에서 제기해 온 여러 문제들에 대한 궁극의 해답이 들어있다. 또한 천지 대자연의 법칙, 인간의 생성 원리, 성性과 명命의 존재 원리, 진아眞我를 구현하는 신교의 수행 원리 등 진리의 한 소식이 들어있다. 그래서『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역사 경전이면서 동시에 종교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라 하겠다.

 

『환단고기』를 오랜 세월동안 명상서를 보듯이 깊이 들여다 보면, 밝을 환桓이 바로 하늘과 땅과 인간의 본성이고, 역사의 궁극 목적이란 것을 깨치게 된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란 말처럼, 역사의 모든 주제가‘ 환’(광명)이 라는 한 글자로 통한다.

 

천지가 열리기 전부터 우주는 오직 광명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광명 속에 대자연과 인간을 낳는 궁극의 존재 근거로서 삼신이 있었다. 삼신은 무형의 신이고, 그 삼신의 조화권을 그대로 쓰면서 이 우주를 다스리는 절대자 하나님은 따로 계신다. 그 분을 우리 민족은 삼신상제님이라 불러왔다. 그리고 삼신의 자기 현현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 세계가 열렸다. 다시 말해서 하늘과 땅과 인간은 삼신이 낳은 삼위일체적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천지인 삼위일체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삶의 목적도 그 속에서 온전히 성취할 수 있다.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의 삼신 문화를 이해하고 수긍한다면, 인류 문화사에서『 환단고기』가 가지는 독보적인 가치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환단고기』가 탄생하고 그 내용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전해지기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사서가 집필되는 데 천 년이 걸렸고, 『환단고기』라는 이름의 역사서가 출판되기까지 다시 4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환단고기』는 수십 세기에 걸친 여러 선인들의 공덕과 혈성血誠이 빚어 낸 위대한 문화 유산인 것이다.

 

『환단고기』의 탄생에 가장 큰 공덕을 남긴 분들은 역시 다섯 사서의 저자들이다.『 삼성기』 상편을 쓴 안함로,『 삼성기』 하편을 쓴 원동중,『 단군세기』를 쓴 이암, 『북부여기』를 쓴 범장, 『태백일사』를 쓴 이맥, 이들은 『환단고기』의 초석이 된 역사적 인물들이다. 그리고 1911년에 다섯 사서를 발굴하여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 출판 전 원고를 감수한 이기, 출판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 홍범도와 오동진, 초간본을 지켜 1980년 대에『 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등은『 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에 기여한 분들이다.

 

『환단고기』의 편찬과 전수에는 고려 시대 이암에서 조선 시대 이맥, 근세의 이기와 이유립에 이르기까지 고성 이씨 가문의 크나큰 공헌이 있었다. 신라 시대 안함로 이래 9천 년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되찾아 준 모든 분들의 정성과 헌신에 감읍하면서, 고성 이문李門에도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끝으로 2009년에 만난 이후 계연수와 이유립의 생애를 비롯하여 『환단고기』 전수 내력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한 이유립의 제자 양종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또한 지난 30년 세월 동안『 환단고기』의 번역에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모든 이들, 본문의 최종 번역을 확정짓고 해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료 수집과 정리, 내용 교정 등에 참여한 상생문화연구소의 전 연구원, 책의 표지를 만들고 원고를 편집한 상생출판사의 디자인부, 편집부 전원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환단고기』가 여느 역사책과 같다면, 굳이 본서를 간행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환단고기』에는 인류의 꿈이 성취된 이상 세계를 미래의 현실로 만들기 위한 문화 해석의 비밀코드가 들어있다. 때문에 역사적인 사명감과 기쁜 마음으로 이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는 바이다.

 

인류의 태고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밝혀주는 『환단고기』가 한민족의 역사서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류 원형문화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하며, 여전히 번역의 한계가 드러나는 신교 문화의 미묘한 내용, 정리가 미진해 아직 소개하지 못하는 지구촌 현장 답사 사진과 자료들은 판을 거듭하며 보충할 것 을 약속한다.

 

환기 9209년, 신시개천 5909년, 단군기원 4345년,
서기 2012년 6월 3일
安 耕 田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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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

대한민국大韓民國의 대한大韓에 참 뜻과

환국,배달,조선에서 현재까지 한민족의 국호國에 담긴 광명사상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 中

환(桓)과 단(檀)과 한(韓)의 의미

 

故 自天光明 謂之也, ,

자천광명 위지야 ,

自地光明謂之也, 所謂桓卽九皇之爲也

자지광명위지야, 소위환즉구황지위야

亦卽大也 三韓曰 風伯 雲師

역즉대야 삼한왈 풍백 우사 운사

 

 

 

 

윤창렬 강사님 강의 녹취中

 

고로 자천광명을 위지환야요 자지광명을 위지단야라. 하늘로부터의 광명을 우리는 환이라 그럽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태양의 빛, 달빛, 별빛, 하여튼 이 주된 것은 태양의 빛이겠죠.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모든 빛을 환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아침에 캄캄할 때 밖에 나가면 “와, 밖이 환해졌어.” 환은 광명의 뜻입니다. 하늘의 광명.

 

그다음에 그 하늘의 광명이 땅에 비치면 그걸 단이라 그래요. 그래서 우리 배달국을 또한 단국이라 그래요, 단국. 배달이라는 것은 여러 번 설명을 드렸지만 이 "달"에서 "배달"이 됐거든요. 그러면 이 "달"이라는 것은 ‘’은 ‘밝은’이고 ‘달’은 ‘땅’이란 뜻이죠. 그리고 지금도 그늘진 곳을 음달, 양지바른 곳은 양달, 기울어진 곳은 비탈, 뭐 달이 아니라 탈이지만 비슷한 뜻이죠.

 

최초로 그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드리고 하는 걸 아사달, 달은 땅의 뜻인데. 그러니까 박달은 하늘의 광명이 비친 밝은 땅인데, 하늘의 광명이 비치는 제일 첫 번째 땅이 백두산이에요. 우리나라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환과 단의 차이점이 있는 거에요. 환은 하늘의 광명, 단은 그 하늘의 광명이 비친 땅의 광명이에요. 근데 그 다음을 여긴 없지만 그 사부님(종도사님)께서 그걸 해석해주셨잖아요. 자 한번 조금 보고서 설명을 드리면요.

 

하늘의 광명은 환桓이라 그러고 땅의 광명을 단檀이라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사람들이 그 여러분들 시중에 나가있는 환단고기 책 보면 전부 다 한단고기라고 다 적어놨죠. 그건 잘못된 거에요 그건. 환단고기라고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이 천지, 하늘의 광명은 한이고, 땅의 광명은 단인데, 이 천지의 광명, 합한 광명을 이걸 한이라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광명인데 인간의 광명이 그냥 되는게 아니죠. 천지의 정신을 꿰뚫고 수행을 해가지고 천지의 이상을 실현하는 거니까 이제 그런 그 인간의 광명세상을 열 때가 되기 때문에 우리 국호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우리가 한이 되는 것이고 그 우리 국가가 이름이 한국이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건 단계가 하늘의 광명, 땅의 광명을 지난 뒤에 인간완성의 대도가 나와야만이 이게 한이 되는 건데. 그러니까 그건 환단고기라고 해야지 한단고기라고 해선 안 되요.

 

이 한韓의 어떤 그 철학적인 의미가 이렇게 깊다 이거에요. 이걸 사부님(종도사님)께서 처음 말씀해주셨죠. 한이라는 것은 그런 어떤 천지의 광명을 꿰뚫고 승화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낸 어떤 천지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의 광명자리가 한이다. 이건 개벽과 더불어 열리는 거죠 이것은. 개벽과 더불어. 옛날에 인제 환국 배달국을 지나가지고 인제 삼한관경제 쓸 때 한이라는 것은 그런 모델만을 한번 이렇게 제시했던 겁니다.

 

그러니 뭐 이 환단고기를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상제님의 진리를 어떤 역사적인 맥락속에서 알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상제님을 신앙하는 일꾼들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 일꾼들의 역할이 어떤 거냐? 이건 우리 민족 9천년의 우리의 역사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꾼이 역사의식을 갖는 거에요. 역사성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러니 이런 것을 모르고 말이야 외래종교에 빠지고,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남은 조선 사람이다. 그런 의미가 우리한테 더 깊이 와 닿는 거죠. 하여튼 그 외래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그게 전부인줄 알고 그냥 그 광신과 맹신을 하는데 이런 세계를 몰라요, 이런 세계를..........

 

인류 구원의 남은 조선 사람

7월 어느 날 성도들을 거느리고 제비창골 입구를 지나실 때 건너편 삼밭에서 사람들이 삼을 치거늘

상제님께서 “삼대 석 다발을 가져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잘 골라서 안아다 올리니라.

이에 삼대 석 다발을 한데 섞으신 뒤에 먼저 상(上)대를 추려 뽑아 버리시고 다시 중(中)대를 추려 버리시니 가장 가늘어 쓸모없는 하(下)대만 한 줌 남는지라

그 하대를 한 손으로 들고 이리저리 재시더니 끈으로 묶고 한 발로 탁 차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들이 내 자식이니라. 가장 못나고 모자란 사람, 이리 가지도 않고 저리 가지도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동남풍이 불면 살 수 없는 병이 오느니라.” 하시니라.

이후에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남조선(南朝鮮) 사람이라 이르나니, 이는 남은 조선 사람이란 말이라.

동서 각 교파에 빼앗기고 남은 못난 사람에게 길운(吉運)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니 그들을 잘 가르치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6:60)

 

'구변지도九變之道' 끝에 이루어지는 '대한大韓'

 

9천 년 역사를 이어 온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예언한 위대한 인물이 있다.

바로 고조선 6대 달문 단군 때의 신지 발리이다.

 

그는 대우주의 조화옹하나님이신 삼신상제님을 예찬하고 한민족사의 뿌리 되는 역대 열성조의 성덕과 치적을 칭송하면서, 단군조의 앞날과 한민족의 국운에 관한 예언을 남겼다. 그가 전한 '신지비사'에 의하면 이 땅 동국의 역사는 아홉 번 바뀐다

[구변지도九變之道]고 했다.

 

발리의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 ②배달 → ③조선 → ④북부여(열국시대) → ⑤고구려(4국시대) → ⑥대진국.신라 → ⑦고려 → ⑧조선 → ⑨상해임시정부 → ⑩대한민국으로 아홉 번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신지 발리가 한민족 통사의 대강을 논하면서 전하고자 한 진정한 뜻은 과연 무엇일까?


아홉 번 변한다는 것은 열 번째로 나라이름이 바뀌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는 뜻이다. 그것은 분열의 극단을 뜻하는 '9'수의 천지 상수원리에 의해 나라이름이 아홉 번 변하면서 한민족이 선천 분열시대를 종결짓는다는 것이며, 나아가 10무극의 통일시대인 후천을 열고 완전한 통일 국가로 거듭 태어나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이 때 동방의 한민족이 아버지 하나님의 10무극의 조화권으로써 세계 구원의 대업을 이룰 것이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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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

 

 

 고조선과 흉노족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를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들이 있다. 3세 가륵단군 6년(BCE 2177) 조에 나오는“ 임금께서 열양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弱水 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둬 놓았다. 후에 용서하여 그 땅에 봉하시니 흉노의 시조가 되었다”라는 기록과 4세 오사구단군이 재위 원년인 BCE 2137년에 자신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에 봉했다는 기록, 또 30세 내휴단군 5년(BCE 905)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32세 추밀단군 3년(BCE 847)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등 여러 북방민족과 한민족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세력 부침을 알아보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몽골 고원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남러시아와 동유럽 일대에는 광대한 초원(스텝) 지대가 이어진다. 이들 지역은 유목생활을 영위하는 몽골계와 투르크계에 속하는 다양한 유목민들의 공간이었다. 동양사에서는 중국 북방의 여러 유목민과 중국 간의 갈등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북방민족을 융戎, 적狄, 호胡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물리치고 억압해야 할 무지하고 흉악한 오랑캐로 여겼다.

 

그러나 북방민족을 오랑캐로 여긴 것은 어디까지나 중화사상에 빠진 중국인들의 편견 때문이다. 북방 유목민들은 분명 정착 농경민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이지만 결코 야만인은 아니었던 것이 실제로 기마술과 야금술 및 금속가공 기술은 중국인들보다 앞서 있었다.

 

 

동방의 삼신과 제천 문화 생활화한 흉노

 

『단군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흉노의 시조는 한민족이다. 흉노는 그 수가 계속 늘어나 진나라 때 와서는 이미 오르도스와 몽골고원, 천산산맥 일대를 주름잡고 있었다. 흉노는 그 우두머리를 선우單于라 하였다. 흉노는 한나라 초기 묵특선우冒頓單于(BCE 209~BCE 174) 때 서쪽의 월지와 동쪽의 동호東胡를 격파하고 아시아 최초로 대유목 제국을 세웠다. 묵특선우는 흉노 제국을 신교의 삼신문화의 고향인 고조선처럼 셋으로 나눠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신은 중앙을 통치하고 동쪽은 좌현왕이, 서쪽은 우현왕이 통치하게 하였다. 좌현왕은 우현왕보다 우선시 되었는데 보통 선우의 아들을 좌현왕으로 삼았다.

 

선우는 자신을‘ 탱리고도撑梨孤塗선우’라 하였는데, 탱리撑梨는‘ 하늘’을 뜻하는 흉노어‘ 텡그리Tengri’의 음역이고,‘ 고도’는 아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탱리고도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흉노는 천지와 일월을 숭배하고, 나아가 조상을 숭배하였고, 일 년에 세 번 큰 제사를 지냈다. 특히 정월의 춘제春祭와 오월의 용성대제龍城大祭는 대규모 천제였다. 중국 측의 기록에 의하면 흉노는 하늘에 제사지낼 때 이용하는 큰 금상이 있었다고 한다. 흉노의 한 왕인 휴도왕의 땅에 있던‘ 제천금인祭天金人’이 그것이다. 선우는 매일 해와 달에게 절하고 자신이 거처하는 게르(천막집)의 문도 항상 동쪽을 향해 배치하였다. 이처럼 문을 동향으로 한 것은 동쪽을 중시하는 동이족의 관습과 일치하는 것이다.

 

중국 역사서에서 흉노는 BCE 4세기 전국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흉노는 틈만 있으면 연, 조, 진 나라를 침략하는 골칫거리였다. 이 세나라는 모두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았다. 이것을 연결한 것이 진시황 때 이루어진 만리장성이다. 진시황은 장군 몽염에게 삼십만 군을 주어 흉노에게 반격을 가하고 서쪽의 농서군에서 동쪽의 요동군 갈석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만리장성 축조는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고 결국 2세 황제인 호해 때 진나라는 진승과 오광의 반란으로 망했다. 흉노의 위협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멸망시킨 원인의 하나였던 것이다.

 

진에 이어,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흉노의 공격에 시달렸을 뿐, 흉노를 제압하는데 실패하였다. 한고조 유방의 경우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위당했다가 가까스로 뇌물을 주고 빠져나오기도 하였다. 이후 공주와 공납을 보내 굴욕적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한 무제 때 와서는 다시 흉노와 전쟁을 시작하였는데 이 전쟁은 근 50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한 무제는 흉노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큰 손해를 보았다. 장진퀘이에 의하면 흉노와의 전쟁은 백성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만들고 국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무제는 다시는 변방으로 출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윤대輪臺의 조서’를 발표하고 자신의 실책을 반성하였다.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공격하고 그곳에 군현을 설치하려 한 것도 흉노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위만조선이 흉노와 손을 잡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무제 때 한국사와 연관하여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흉노의 비왕 가운데 한 사람인 휴도왕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된 것이다. 흉노 왕자는 왕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후에 품위 있는 거동과 성실함이 한 무제의 눈에 띄어 무제의 측근이 되었다. 무제는 이 흉노 왕자 김일제金日磾를 뒤에‘투후’로 봉하였다. 투후는 오르도스의 제후라는 뜻이다. 그 후손 중에는 왕후(원제의 비 효원왕후)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왕망王莽도 김일제의 고손이다.

 

외척인 김일제 가문은 왕망이 정권을 잡으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왕망이 몰락하자 위험한 처지에 몰렸다. 정확한 경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들은 한반도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 비문과 중국 시안[西安]에서 발견된 당나라 시대의 묘비명에서 김일제가 신라 김씨 왕가의 조상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사서 기록에 의하면 한 무제가 김일제에게 김씨 성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한서』「 김일제전」).

 

1세기 초 한나라에서 망명한 김일제 후손이 신라와 가야에 들어와서 왕권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야가 있었던 지역에서 기마민족의 유적이 대거 발견되었다. 유물들 가운데 청동제 솥인 동복銅鍑은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제사의식을 위해 말에 싣고 다니던 물건으로, 유럽의 훈족 루트에서도 많이 발견되었다.

 

흉노 제국은 BCE 1세기 중반에 내분이 일어나 둘로 분열되었다. 호한야선우가 이끄는 동흉노는 한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 북쪽에 머물렀지만 한나라와의 타협하기를 거부한 질지선우가 이끄는 서흉노는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하였다. 동흉노는 한 세기 뒤에는 다시 남북 흉노로 분열되었다. 남흉노는 고비사막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나라의 번병藩兵(수비병)이 되었다. 몽골 초원은 북흉노가 지배하였다. 그러나 북흉노는 한 제국과 남흉노 연합세력의 공격 때문에 91년에는 몽골리아를 포기하고 중앙아시아의 일리강 유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이주에는 가뭄과 병충해 같은 자연환경의 악화에도 기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후한서』「 남흉노전」에는“ 흉노국은 매년 가뭄과 해충의 습격으로 헐벗은 땅이 수천 리에 달하고 초목은 전부 말라버려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과 가축의 수가 삼분의 이에 이르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북흉노는 일리강 인근 오아시스 국가들을 지배하기도 했지만 결국 몽골리아 초원의 새로운 패자인 선비족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세기 중반 즈음에 더 서쪽으로 옮겨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후 이들은 역사적인 기록에서 사라져 버린 듯했지만, 4세기 중반에 갑자기‘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훈족은 370년경 흑해 북부에 나타남으로써 처음으로 유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들은 볼가강을 건너 남러시아 초원지대에 거주하던 알란족을 공격했고, 이어서 알란족과 함께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을 공격하여 유럽 대륙에 민족이동의 대물결을 야기하였다. 공포에 질려 도주한 게르만족이 밀물처럼 로마 국경 안으로 몰려들자 이를 제어하지 못한 서로마 제국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게르만족의 이동은 서양 역사에서 고대의 종말을 초래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바로 이 게르만족의 이동은 훈족의 공격 때문에 촉발된 것이었다.

 

훈족은 이 시기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동서 유럽 여러 지역을 침략하여 유럽인에게 커다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훈족은 아틸라 대왕(395~453) 때에 이르러 유럽 일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를 훈제국이라 부르는데 우랄산맥에서 동유럽 일대에 걸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였다.

 

 

선비족

 

북흉노가 1세기 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흉노의 지배를 받아오던 여러 유목집단들이 초원을 지배하기 위한 각축이 시작되었다. 각축에서 선비족이 승리하여 북방지역을 통일하였다. 2세기 중반에는 단석괴檀石槐라는 영웅이 나타나 선비의 여러 부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였다. 이 선비제국은 북으로 바이칼호, 서로 신장의 일리강, 동으로 만주 일대에 걸치는 넓은 땅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선비제국도 다른 유목민들이 세운 다른 제국처럼 여러 부족집단들의 연합체였다.

 

단석괴가 사망하자 선비제국은 순식간에 여러 집단로 분할되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나라가 망하고 그 뒤를 이어 동탁, 원소, 조조, 유비 등 군웅이 패권을 놓고 다투는 삼국시대와 그 뒤를 이은 위진魏晉 제국이 붕괴하면서 중원이 혼란에 빠지자 선비족은 그 틈을 이용하여 대거 북중국으로 밀고 들어갔다. 탁발拓跋, 모용慕容, 우문宇文, 단段, 걸복乞伏 등의 선비족의 여러 부가 이때 거의 모두 남하하였다고 한다.

 

중국사에서 말하는 소위 5호16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탁발부는 대국代國을 세웠고, 모용부는 전연前燕·후연後燕·서연西燕·남연南燕 등의 나라를 세웠다. 또 산서 지역의 흉노는 한漢·전조前趙·후조 등을 세웠다. 이 가운데서 탁발부의 대국은 다른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북중국을 통일하였다. 이 나라가 북위北魏이다. 북위는 후에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되었는데 다시 북제北齊와 북주北周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나라는 바로 북주의 귀족인 수국공隋國公 양견이 나라 이름을 수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수는 다시 당으로 이어지는데 수·당의 기원은 바로 선비족인 탁발씨였던 것이다.

 

 

5호16국 시대에 북방 유목민족들이 중국 본토로만 진출한 것은 아니다. 한반도로도 적지 않은 수가 왔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김호동 교수는 북방 유목민의 일부가 신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4~5세기경에 조성된 신라의 대형 적석목관분 무덤에서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기류를 느끼게 하는 유물이 대거 발견되는 것은 이처럼 선비족이 들어왔음을 증명한다. 훈족의 출현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서부에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대륙의 동부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커다란 민족이동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북방 유목민들의 이동의 파고는 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고 중국에서는 북방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16국 시대를 열었으며 한반도와 일본에서는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다. 한마디로 말해 유목민은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유목민의 대이동으로 크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돌궐족

 

『단군세기』에는 흉노의 시조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투르크계인‘ 강거康居’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강거는 흉노의 서쪽에 자리 잡은 유목민으로서『 사기』에도 나온다. 가륵단군 8년에 강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단군이 지백특에서 토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백특은 티베트를 가리킨다. 18세 동엄단군 때에는 지백특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왔다는 기록도 있다. 이 기록은 고조선의 활동영역이 티베트 인근까지 뻗쳤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군세기』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투르크 계통의 민족으로서 동양 고대사와 서양 중세사에 큰 영향을 미친 민족이 있다. 바로 투르크족이다. 투르크족은 6세기 중반에 서쪽으로 카스피해에서, 동쪽으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초원을 제패한 강력한 유목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스스로 족속 이름을‘ 투르크(Turk)’라 하였는데, 중국 측 자료에는‘ 돌궐突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터키Turkey라는 나라 이름도 바로 이 투르크에서 비롯한 것이다.

 

돌궐 제국은 기원 후 1세기 중반에 흉노가 붕괴된 뒤 실로 500년 만에 초원의 유목민을 통합하고 출현한 국가였다. 중국 측 기록에 의하면 돌궐 제국은 553년에 토문土門이라는 이름의 수령이 몽골리아에 있던 몽골족 국가 유연柔然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이다. 돌궐은 몽골계인 유연의 예속 하에 있던 집단으로 알타이 지역에서 야금 일에 종사하였던 것이다. 돌궐족은 알타이 산지에서 나는 철광석을 제련하는 등 금속가공에 뛰어난 솜씨를 보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돌궐 제국의 건설자인 토문이 죽자 그 영토는 아들 무한과 아우 이스테미에게로 나뉘어졌다. 카간의 칭호를 쓴 아들은 몽골 지역을 차지하여 동돌궐이 되었고,‘ 야브구’라는 칭호를 사용한 이스테미의 나라는 서돌궐이 되었다. 서돌궐은 중앙아시아 일대에 위치하였다.

 

서돌궐은 곧 사산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헤프탈Hephtal을 쳐서 멸망시켰다. 이어서 동돌궐은 동쪽으로 거란족을 복속시키고, 북으로 바이칼호에 이르렀다. 남으로는 고비사막을 넘어 당시 북주·북제로 나뉘어 있던 북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당시 북주와 북제는 서로 대립하였기 때문에 북방의 돌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재물을 갖다 바쳤다.

 

그러나 중국에 당나라가 들어서자 상황은 급속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돌궐의 내분이 격화되고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다. 결국 당나라는 쇠약해진 돌궐, 초원의 대제국을 일거에 무너뜨려 버렸다.

그러나 돌궐은 중국의 지배를 받은 지 반세기 만에 놀랍게도 제국을 부흥시켰다. 만리장성 주변 내몽골 지방에 살면서 당나라의 감시와 통제를 받던 부족민 사이에서 670년대 후반부터 독립을 향한 움직임이 나타나 돌궐 제국을 재건한 것이다. 이것이 제2 돌궐제국이다.

 

다시 일어난 돌궐 제국은 752년에 그 지배하에 있던 세 부족의 반란으로 무너졌다. 세 부족 가운데 하나인 위구르가 몽골의 모든 유목민을 제압하고 돌궐의 뒤를이어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위구르족은 9세기 중반에 몽골고원에서 천재가 빈발한 때에 유목민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망하게 되었다. 돌궐의 후예들은 차츰 서진하여 이란 지역에 왕조(가즈나 왕조)를 세우기도 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여 이슬람의 노예와 용병 노릇을 하였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으로 침투하여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몽골족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단군세기』 4세 오사구단군 조에는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에 봉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BCE 2137년의 일이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호東胡’라는 이름의 족속이 나온다. 동호는 만리장성 너머 몽골과 만주 일대에 걸쳐 살던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부른 명칭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몽골족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대에 동호가 주로 교류한 나라는 연燕나라였는데, 동호는 4세기에 매우 세력이 강했던 것이 분명하다. 연의 장수 진개秦開가 동호의 인질로 잡혀 있었다는『 사기』의 기록이 그것을 말해 준다. 동호 역시 흉노처럼 야금술과 궁술, 기마 전투술이 뛰어났고, 진개는 인질로 있는 동안 동호의 앞선 기술을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연나라가 쌓은 장성은 바로 이 동호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몽골 일대의 동호는 한대에 흉노의 묵돌선우에게 패한 후(BCE 209년) 약화되었다. 그 후 동호라는 이름은 사서에서 사라지고 선비鮮卑, 오환烏桓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선비보다 약했던 오환은 삼국시대 조조의 공격으로 붕괴되어 조씨 권력의 기동부대로 전락하였다. 이것이‘ 오환돌기烏桓突騎’ 부대이다.

 

선비족의 영웅이었던 단석괴 이후 선비 제국이 붕괴되면서 여러 부족(탁발拓跋, 모용慕容, 유연柔然, 거란契丹, 실위室韋)이 분립하였는데 이들 중 앞의 세 부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강력한 국가를 건립하였다. 거란은‘ 키탄’이라 불리는데, 거란의 영웅 야율아보기는 10세기 초 요나라를 건국하였다. 야율아보기는 907년 천제를 거행하고 칭호를‘ 탱그리 카간’이라 하였다. 거란족에게도 카간은 천제의 대행자인 천자였다. 야율아보기는 곧 몽골고원을 장악하고 발해(대진국)을 멸망시켰다.

 

거란 제국은 이어서 현재의 북경과 대동 일대에 이르는 북중국을 장악하고 송나라와 대치하였다. 거란 제국은 거란족 외에 몽골계 유목민, 한족, 발해 유민, 여진족, 탕구트인 등 다양한 족속을 포괄하였다. 또 중국과 달리 발해의 5경 제도를 계승하였다. 거란 제국은 12세기 초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멸망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나라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나라는 여진족과 거란족의 연합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1162~1227)은 실위족에 속한다. 그러나 실위는 다양한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이전에 몽골초원 지역은 투르크계와 몽골계, 퉁구스계가 뒤섞인 다양한 집단의 상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집단 가운데‘ 울루스’가 세력이 컸는데, 칭기즈칸이 속한 울루스는‘ 몽골울루스’였다. 칭기즈칸은 19세에 몽골 울루스의 칸으로 선출되고 곧 동쪽의 타타르 울루스, 중앙의 케레이트 그리고 서쪽의 나이만과 메르키트 등 여러 울루스를 차례로 격파하고 통합하였다. 마침내 1206년 쿠릴타이(몽골 족장회의)에서 몽골 집단 전체의 카간으로 추대되었다.

 

칭기즈칸은 곧 눈길을 초원 밖으로 돌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1222~1223년에 아조프 해 연안에서 러시아 군대와 싸워 이기고 1223년에는 키에프 공국을 공격하였다.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그 후계자들은 정복의 범위를 더 넓혔다.

 

칭기즈칸의 후예인 오고타이(2대 카간 1229~1241), 구유크(3대 카간 1246~1248), 몽케(3대 카간1251~1259), 쿠빌라이(4대 카간 1260~1294)는 정복사업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북부의 금나라를 정복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금의 멸망 후에는 네 방향으로 정복사업을 추진하였다. 유럽 원정(1236~242)을 수행한 다음 중동을 공격하여 카프카즈 지역과 셀주크 투르크를 속국으로 삼고(1243)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1258) 고려도 1236~1241년에 걸쳐 몽골의 공격을 받아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1279년 남송을 멸망시킨 쿠빌라이는 섬나라인 일본과 자바까지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렇게 하여 형성된 몽골 제국은 그 지배 지역이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하였다. 그러나 효율적인 역참제를 통해 결속을 이뤄 낼 수 있었다. 몽골의 역참제는 제국 전역을 연결하는 조밀하고 광대한 교통 네트워크였다. 동으로 고려와 만주, 서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란과 러시아에 이르는 교통로 상에 역참을 두었고, 남쪽으로는 안남과 버마까지 연결되었다. 역참에는 운송 수단인 말과 수레, 배를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숙박시설도 있었고 패부牌符라는 증명서만 있으면 얼마든지 역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문서와 서신, 관원과 공적 물자가 신속하게 이동되었다.

 

이러한 역참제를 기반으로 몽골 제국은 상업을 진흥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몽골제국은 중국의 전통적 한족 왕조와 달리 상인을 우대했고 국제무역을 적극 지원했다. 심지어‘ 오르톡’이라는 상인조합에게 행정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사업을 맡겼다. 또 통행세를 폐지하고 통상로를 안전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썼기 때문에 몽골 제국 시대에는 동서양 간에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이뤄졌다.

 

몽골 제국은 종교인에게도 관용정책을 취하여 각 종교의 지도자에게 면세 혜택까지 부여하였다. 페르시아나 중국 측 기록에도 남아 있듯이 이슬람·기독교·유대교·유교·불교·도교의 사제나 승려가 그러한 혜택을 누렸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여태까지 국가의 탄압을 받던 소수 교단이 활력을 얻게 되었다. 중국과 중동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가 활발한 활동을 했고 유럽의 가톨릭도 적극적으로 선교사를 몽골 제국으로 파견하였다.

 

이러한 몽골 제국의 개방적인 동서교류 정책은 인류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활발한 인적 왕래, 종교의 전파, 상품의 확산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이 소위‘ 팍스 몽골리카’의 실체였다. 이 시대에 위대한 여행기들이 나온 것은 이러한 팍스 몽골리카를 배경으로 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서양인으로서 몽골 제국에 가서 쿠빌라이 칸의 신하로 살다가 귀국하여 견문록을 남겼다. 반대로 동에서 서로 가서 여행기를 남긴 사람들도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장춘진인長春眞人(1148~1127)이다.

 

산동성 사람으로 도교의 도사이던 그는 칭기즈칸의 부름을 받고 몽골군의 원정에 종군하였다. 알타이산을 넘어 천산북로를 따라 사마르칸트에 갔고 후에 남쪽으로 힌두쿠시 산맥을 넘었다. 장춘진인의 기행문은 『장춘진인서유록長春眞人西遊錄』으로서 13세기 몽골 제국 시대의 동서교통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다.

 

이처럼 몽골이 주도하던 13~14세기 때에는 동서 간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이러한 교류는 다시 근대를 열어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요컨대 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북방 지역에서 일어났던 흉노, 선비, 돌궐, 몽골 등 여러 족속은 상고 시대에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이끈 주도 세력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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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겨레, ‘동이東夷’

 

한민족은 배달겨레, 치우천황이후 동이東夷족으로 불리어졌다.

고대 동북아에서 수천 년 동안 위엄을 떨친 치우천황은 우리 역사에 또 다른 자취를 남겼다.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래 중국인들이 동방 배달민족을 동이東夷라 부르게 된 것이다.

 

동이의‘ 이夷’는 자전字典에서‘ 큰 활을 잘 쏘는 동방 사람[東方之人也 從大從弓]’으로 풀이되는데, 이것은 치우천황이 쓴 큰 활의 위력에 놀란 서방 한족이 동방 민족을 동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이夷’는 또한‘ 신을 대신하는 사람’과‘ 어진 사람’을 뜻한다. 은나라 갑골문에서 이夷는 시尸, 인人과 똑같이‘ 사람이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시尸는 제사 때 신이 응감하도록 세워 놓은 신상으로‘ 신의 대리인’을 뜻한다. 이렇게‘ 이夷’를‘ 신의 대리인’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동이족이 신성한 종족으로 간주되었음을 보여준.

‘이夷’를 어진 사람으로 해석한 것은“ 이夷는 뿌리이니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여”라고 한『 후한서』「 동이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의 눈에 비친 동이족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사는 어진 민족이었던 것이다. 춘추시대의 공자도 동이를 어진 군자가 사는 나라라 하며 동경하였다.‘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공자의 말에 어떤 사람이 누추한 곳이 아니냐고 묻자,‘ 군자가 그곳에 있는데 어찌 누추하리오’라고 답했다『( 논어』)고 한다.

그런데 공자가『 춘추』를 지을 때 이夷를 융戎, 적狄과 함께 오랑캐의 칭호로 사용함으로써 이夷의 뜻이 변질되었다. 그 후 한대漢代에 이르러 동서남북의 각 종족을 멸시하여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 부름에 따라 동이는‘ 동쪽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완전히 변질되어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원래 동이는‘ 큰 활을 쏘는 사람’,‘ 신을 대신하는 사람’,‘ 어진 사람’ 등을 뜻하는 말로서 동방 한민족을 부르던 별호인 것이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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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최초국가, 배달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으로부터 국통계승을 받은 한민족 최초국가, 배달

거발환 환웅의 건국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기후변동으로 환족의 일부가 근동으로 이주하여 수메르문명을 개척하고 있을 때 환족의 다른 한 갈래가 동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인류의 첫 나라 환국 속에 구환족이 모두 통일되어 있던 시대가 끝나고, 나비의 두 날개처럼 인류 문명이 동서로 분화되는 극적인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환국시대 말, 인구 증가와 물자 부족으로 백성들이 살기 어려워지자 서자부庶子部 부족의 환웅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기를 갈망하였다. 이에 삼위산과 백두산을 두루 살펴 본 환국의 마지막 임금인 지위리智爲利 환인께서 백두산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하고, 환웅을 동방 개척의 선봉장으로 세우셨다. 환인은 백두산을 향해 떠나는 환웅에게 국통 계승의 상징으로 천부天符와 인印을 내려 주고, 문명개척단 3천 명을 붙여 주셨다『( 삼성기 하』,『 태백일사』).

 

문명개척단 3천 명을 이끌고 마침내 백두산에 도착한 환웅은 도읍을 신시神市에 정하고 백두산 신단수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려 나라 세움을 고하였다. 이로써 거발환居發桓 환웅이 세운, 동북아 한민족사의 최초 국가인 배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배달倍達은 밝음을 뜻하는‘ 배’와 땅을 뜻하는‘ 달’을 합친 말로서‘ 광명의 동방땅’을 뜻한다. 우리 역사를‘ 배달의 ’라 하고, 우리 민족을‘ 배달겨레’라 하는 것은 한민족사의 첫 번째 나라인 배달에서 연유한 것이다.

 

환웅이 이끄는 무리가 동방 백두산으로 떠날 무렵, 반고盤固가 이끄는 다른 한무리가 삼위산으로 향하였다. 중국 한족漢族의 창세 신화에 등장하는 그를『 삼성기 하』는 환국에서 갈려 나가 한족 역사의 뿌리가 된 실존 인물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환인께 청하여 이주를 허락받은 반고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의 신장神將과 여러 부족장과 백성을 거느리고 많은 재물과 보화를 꾸려 길을 떠나, 마침내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반고가한盤固可汗이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환국의 마지막 환인께서 환웅을 환국의 정통 계승자로 지목하였다는 점이다. 그 증표가 바로 천부와 인이다. 천부는 태고의 문서로, 환인은 이것을‘ 세상을 다스리는 권한의 표증’으로 환웅에게 내려 주셨다. 흔히 세상에서 말하듯, 그것은 무속巫俗 세계에서 쓰는 방울이나 거울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인은‘ 환국의 종통을 전한다’는 것을 인증하는 도장으로 왕의 옥새와 같은 것이다.

백두산과 삼위산에 터전을 잡은 동방 한민족과 서방 한족은 그때부터 제각기 동북아 역사를 개척하였다.

 

 

홍익인간의 도를 전수 받은 환웅

마지막 환인천제로부터 국통 계승의 증표로 천부와 인을 전수 받은 거발환 환웅은 또한 국가 통치이념도 전수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 한민족의 상고사를 제법 안다는 사람마저도 고조선의 국시國是로 잘못 알고 있는 홍익인간 사상의 연원이 사실은 9천 년 전의 환국인 것이다.

 

거발환 환웅은 재세이화在世理化를 기반으로 홍익인간을 실천하였다. 다시 말해서 삼신상제님의 진리, 즉 신교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 환웅이 재세이화와 홍익인간의 도를 실현하기 위해 취한 정치 제도 또한 신교에 바탕을 두었다.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바로 삼신오제 사상에서 나온 삼백三伯·오사五事 제도이다.

 

삼백은 입법부인 풍백風伯, 행정부인 우사雨師, 사법부인 운사雲師로 이루어졌고, 오사는 주곡主穀, 주명主命, 주형主刑, 주병主病, 주선악主善惡이라는 다섯 부서로 구성되었다. 오사에서 인간사를 360여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다스렸다고 하니, 환국 시대와 달리 인간 삶의 방식이 많이 복잡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환웅천황은『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우주관, 신관, 인성론 및 수행관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천부경』은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오다가 배달 시대에 문자로 옮겨진, 한민족의 최고 경전이다. 여든 한 자에 불과한 짧은 글이지만, 삼신 사상의 3수 원리를 근거로 하여 천지인 삼위일체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다.

 

천부경』은 우주론과 인간론의 진수가 압축되어 있는 동양 최초의 계시록이라 할 것이다.

『 삼일신고』는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환웅천황이 직접 지은, 다섯 장으로 구성된 신학서神學書이다. 하늘에 계신 삼신과, 그 삼신의 조화권을 자유자재로 쓰시며 하늘 궁전에 계시는 삼신상제님과 만물의 탄생에 대한 이치를 밝혀 준다.

 

이로 보건대, 6천 년 전 상고시대에 한민족은 이미 우주와 신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깨달음이 있었으며, 그 깨달음은 백성들에게도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배달의 위대한 성인 제왕들

 

백두산의 신시에서 출발한 배달국은 점차 도시국가의 틀을 벗고 동북아의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는 특히 세 분 성황의 지대한 공덕이 있었다.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그리고 치우천황이다.

 

지금으로부터 5천5백 년 전, 5세 태우의환웅의 막내아들인 태호 복희씨는 하도河圖를 그려 음양오행 사상의 기틀을 마련하고, 팔괘를 지어『 주역』의 기초를 닦았다. 복희씨 덕분에 인간이 우주의 변화 법칙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또한 그는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 잡는 법을 알아내고, 결혼 제도를 만들고, 침針과 금슬琴瑟을 만들어 인간 삶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복희씨는 한마디로 동양철학의 아버지요 인류 문명의 창시자이다.

 

약 5천2백 년 전, 8세 안부련환웅 때 인물인 염제 신농씨는 농사법과 불을 쓰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배달 초기에 불을 발명한 고시씨의 후손인 신농씨는 자신이 베푼 화덕火德으로 임금에 추대되어 신농국이라는 나라까지 세웠다. 또한 수백 가지 풀을 직접 맛보아 의약을 개발하였으며, 시장을 열어 교역을 촉진시켰다. 복희씨가 기초를 마련한 문명이 신농 때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게 된 것이다.

 

1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은 약 4천7백 년 전 요서를 넘어 산동성과 그 주변은 물론 서쪽으로 탁록까지 진출하여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 성웅聖雄이다. 치우천황의 재위 초기, 신농국이 8대 유망楡罔에 이르러 쇠퇴의 길을 걷자, 서방으로 출정하여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토로 흡수하였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서토 지역의 일개 제후였던 헌원이 치우천황을 밀어내고 동북아의 천자가 되려고 일어났다. 이에 급히 말머리를 돌려 돌아온 치우천황은, 탁록 벌판에서 헌원의 군대와 맞서 10년 동안 73회의 접전을 치루어 마침내 헌원을 굴복시키고 제후로 삼았다. 나아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도읍을 백두산 신시에서 서토에 가까운 청구靑邱(현 대릉하 유역)로 옮겨 배달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법력과 위용을 떨친 치우는 배달 이후 수천 년 동안 한민족은 물론 중국 백성들에게까지 숭배와 추앙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진한 시대 중국인들은 해마다 10월이면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마다‘ 붉은 기운[蚩尤旗]’이 천황의 능에서 하늘로 뻗쳤다고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태백일사』,『 규원사화』 등 국내 사서만이 아니라,『 사기』「 천관서」,『사기집해』 등 중국 기록에도 나타난다.

 

중국 백성들만이 아니라 중국 황제들도 치우천황을 숭상하였다. 초한전으로 유명한 한 고조 유방은 치우천황 전각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싸움에 나가, 진秦의 수도 함양을 평정하였다. 4년 후 진나라 땅을 완전히 평정하였을 때, 유방은 장안長安에 치우의 사당까지 지어 치우천황을 돈독히 공경하였다『( 태백일사』).

 

요컨대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치우천황, 이 세 분은 동방 문명의 중심축을 세운 위대한 성인 제왕들이다. 이 세 분 제왕이 출현한 배달시대는, 삼신의 세 가지 신성 가운데 문명을 꽃피우는‘ 교화신敎化神’의 신성이 발현된 시대였다. 그리하여 역학, 천문, 의술, 농경술 같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인간을 교화시키는 다양한 분야가 배달 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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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박성수 교수

* 발해연안문명 한국고대문화의 기원 이형구 교수

* 인류문명의 뿌리, 동이 김선주 박사

* 일본 고대사와 한민족 김철수 박사

*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제갈태일 박사

* 일본속의 백제 홍윤기 교수

*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배옥영 교수

* 천자의 제국 고구려 김병기 박사

* 한국 고대 조직사 이강식 교수

*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대외진출사 윤명철 교수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 상제님

(증산도 도전 1편 1장)

 

 

단절된 역사, 말살된 민족혼!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우리 역사는 실로 ‘무정신의 역사’다.

고고학적 발굴로 고대사에 대한 일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한민족 역사와 문화의 근본적인 복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을유(1945)년, 일제가 원폭으로 패망하여 물러간 뒤에도 그들이 남긴 식민사학은 조선 땅에 그대로 남아 뿌리내렸고, 그 깊은 병독이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식민사관에 물들어 한민족 고유의 정신세계, 역사관(신교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결여된 역사학자들이 오로지 실증적이고 유물론적인 연구태도만을 고집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신성문명의 황금시대였던 태고의 시원문화와 역사의 실체를 송두리째 상실한 한민족!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신교神敎와 상제문화’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신교는 한민족 혼의 고향인 동시에 인류문화의 모태였다. 어떤 종교를 신앙하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 존재의 근본인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에서 살다 갔는가 하는 민족의 정통성을 명백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요건이다.

 

이제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인류 역사의 정의를 총체적으로 바로 잡아 그 원형을 되찾고 민족의 국통을 바로 세우기 위해 STB 상생방송국에서 그 첫걸음을 내딪고자 한다. 다가오는 2009년 기축년 새해에 방영될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STB초청 역사특강은 각계의 지식인들을 초청해 우리의 뿌리 역사에서부터 왜곡된 기존의 한민족사를 바로잡아 시원사의 국통을 밝히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사명을 일깨워 줄 역사 강좌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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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의 편찬과 대중화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계연수 선생의 환단고기 편찬

 『환단고기』는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1864~1920)가, 지인들로부터 구한 한민족의 정통 사서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그의 집안에 전해 내려오던 것이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다. 『단군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다.『태백일사』는 그의 스승이자 항일운동 동지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이었다.

 

계연수는 원래 우리 옛 역사와 민족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여러 양반가와 사찰을 돌아다니며 비장 서책과 금석문, 암각문 등 옛 사료를 많이 수집하였다. 약초를 캐어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 오로지 역사 밝히기에 골몰하다가 1897년 이기의 문하에 들어간 이후 여러 권의 역사서를 발간하였다.

 

이기는 정약용의 학통을 계승한 실학자로서 당대의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또한 『단군세기』를 쓴 이암과 『태백일사』를 쓴 이맥의 직계 후손으로 우리의 고대사에도 해박하였다. 이기의 지도 아래 계연수가 발간한 역사서의 결정판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1911년 계연수는, 그의 벗이자 독립운동 동지인 홍범도와 오동진 두 사람의 자금 지원으로 만주 관전현에서 『환단고기』30부를 간행하였다. 이로써, 9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동방 한민족이 절망과 통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그때, 민족의 국통 맥을 천지에 선포하는 위대한 사서가 출간된 것이다.

 

계연수 선생의 죽음을 지켜본 이유립 선생

 

운초는 항일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천마산대, 서로군정서 등의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57세 때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런데 당시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그의 시신이 수습되는 광경을 지켜본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환단고기』를 널리 대중화시킨 이유립(1907~1986)이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그는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이관집李觀楫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유립은 계연수와 친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13세 때(1919) 단학회가 주관하는 교육기관인 배달의숙倍達義塾에 들어가 계연수, 이덕수 두 스승의 강의를 들으며 『환단고기』를 공부하였다.

 

그 후 독립군의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14세), 신간회의 삭주 지부를 결성하는(21세)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단학회 기관지 『태극』을 발행, 그 주간主幹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에, 계연수 사후 그에게 전수된 『환단고기』를 가지고 월남하였다. 이후 단학회檀學會를 단단학회檀檀學會로 개칭하였고, 1963년 대전에 정착한 이후에는 후학을 기르며 역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환단고기 출간의 우여곡절

 

 

 

한문과 역사에 해박한 이유립에게 여러 사람이 배움을 청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형기吳炯基였다.오형기는 한국 고대사의 실상을 알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환단고기』공부에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빌려가 필사한 후 발문跋文을 써 붙였다. 그러나 책을 지은 사람이 쓰는 것이 상례인 발문을 오형기가 임의로 쓴 것에 대해 이유립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이유립의 문하생 조병윤이 1979년에 서울의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에서 이 필사본을 영인하여 100부를 출판한 것이다. 이른바 ‘광오이해사본’ 『환단고기』가 이유립의 허락도 없이 시중에 배포되었다.

 

이에 사태 수습 차원에서 이유립의 단단학회는 문제의 발문을 삭제하고 오자를 바로잡은 새로운 필사본을 만들었다. 원고는 1979년 그해에 완료되었으나, 출판비가 없어 1983년에야 배달의숙을 발행인으로 하여 100부 발간하였다.

 

일본인의 환단고기 왜곡

그 무렵 『환단고기』가 일본어로 번역·출판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광오이해사본을 입수하여 검토한 일본인 변호사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환단고기』를 일본 천황가의 뿌리를 밝혀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긴 것이 발단이었다. 가지마는 ‘『환단고기』는 아시아의 지보至寶’라 극찬하고 자국의 정계와 재계의 후원을 끌어내어 1982년 ‘실크로드 흥망사’라는 부제를 붙인 일본어판 『환단고기』를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일본어판은 환국 → 배달 → 고조선 → 고구려 → 대진국(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를 배달 → 야마토일본 → 나라일본 → 헤이안시대로 이어지는 일본 역사로 둔갑시켜 놓았다. 동방 한민족의 역사가 중동 유대족의 역사에서 발원하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하였다.

 

뒤이은 환단고기 번역본의 출간

 

당시 국내에서는 이유립과 임승국이 우리 고대사를 월간지 『자유』에 수년 동안 연재해 오던 터라, 한민족의 상고 역사와 신교 문화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인이 쓴 『환단고기』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소개되자, 한국 역사학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1985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이던 김은수가 첫 번역서를 낸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환단고기』번역본이 출판되고 있다.

 

 

 

 

잃어버린 한민족의 시원 역사와 문화를 복구하려다가 일제의 역사 도륙의 칼날에 무참히 죽어간 계연수와 그의 스승 이기,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역사 연구에 헌신하며 『환단고기』를 널리 알린 이유립! 이들은 모두 ‘한민족 사학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하다 하겠다. 

* 자세한 내용은 『환단고기(상생출판)』 참고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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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불교,선도, 삼교의 연원, 신교神敎

 

 

[증산도 도전1:6] 유불선 삼교의 연원, 신교
본래 유(儒)·불(佛)·선(仙)·기독교(西仙)는 모두 신교에 연원을 두고 각기 지역과 문명에 따라

그 갈래가 나뉘었더니
이제 성숙과 통일의 가을시대를 맞아 상제님께서 간방 땅 조선에 강세하시매
이로써 일찍이 이들 성자들이 전한 천주 강세의 복음이 이루어지니라.

 

 

인류의 뿌리문화를 밝히는 증산도
 

원시반본의 정신에 따라 증산도를 공부하면 우리 한민족의 시원문화를 알게 됩니다.

잃어버린 우리 문화의 원형, 근본을 찾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민족이 몸담고 있던 영혼의 고향, 문화의 바탕은 신교神敎입니다.
 


 신교는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시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태고시절 서양에는 신탁 문화가 있었어요. ‘전쟁을 하오리까? 그 여자와 결혼을 하오리까? 헤어져야 옳습니까?’ 하고 기도로써 하늘의 뜻을 받아내려 살던 때가 신교 시대입니다.


 
 중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지구촌에는 거석문화 시대가 있었어요. 이집트에만 피라미드가 있는 게 아닙니다. 만주에는 무려 150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큰 피라미드가 동방에도 있고, 서안에도, 티베트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문화가 보통 5천년, 6천년 이전의 문화인데, 그 문화의 원형이 바로 신교입니다. 이 신교를 뿌리로 하여 유·불·선·기독교 문화가 줄기 문화로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교에서부터 여름철의 유·불·선·기독교 등 모든 세계 종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된 구원의 소식을 가르침의 결론으로 전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이 오신다, 불가에서는 도솔천 천주님이 오신다, 유가에서는 상제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나 각 종교 문화의 교리 중심으로만 보면, 앞으로 오는 여름과 가을 천지가 바뀌는 하추교역, 가을개벽으로 열리는 세계일가의 대통일 문명, 우주 통일 문명의 진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선천에는 상극 질서 때문에 각 문화들 사이에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서부터 음악 공부만 했다든지, 과학 공부만 했다든지 하면 다른 분야를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밥을 먹을 때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을 유지하듯이, 문화의 영양소 또한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편적인 사고와 안목으로 진리의 근원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나 유교나 기독교 어느 한 분야만 매달려 있으면, 생각이 편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증산도는 선천의 생장 과정에서 등장한 모든 문화의 영역을 수용하고 그 발전 과정 전체를 포용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종도사님 도훈 (도기138.5.25 , 서기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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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조화옹이 세 가지 창조의 덕성으로써 이 우주를 다스린다.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상제님

종도사님 도훈道訓 中- (도기135년.7월.3일=2005년)

 

[도전 1:1]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상제님

1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2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3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4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5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6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7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8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9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

[증산도 도전 1: 1]

 

『증산도 도전』 1편 1장 3절에 보면
 
 ‘삼신이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천지만물을 낳은 분은 삼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누구도 이러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삼신? 세 분 신이요? 아니,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세 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건가요? 그거 이상하잖아요.” 이렇게 오해를 한다. 단순히 문자에 매어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앞의 2절을 보라. 3절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풀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신은 곧 일신이니 우주의 조화성신이니라.’ 좀 더 자세하게 정의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삼신은 일신이다. 한 분의 신이 온 우주를 꽉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신은 조화성신이다. 얼굴이 없는 성신이다. 이 신이 바로 하늘땅과 인간, 만물을 낳아 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신이다. 그래서 으뜸이요, 바탕이라는 원 자를 써서 원신(元神)이라고 한다.


  

상제님은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즉 삼신 자체가 되어 인간과 신들의 세계와 자연계를 실제로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나님이다. 형상을 갖고 계신, 사람 모습을 하고 계신 인격신으로서 실질적인 이 우주의 주재자요, 조화주 하느님이다.
 
 

만물을 낳은 이 우주, 삼신! 그 속에서 태어난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그 속에 열려 있는 자연신과 인격신, 이 신의 세계까지 실제로 다스려 우주의 이상을 완성하시는 분이 바로 천상 호천금궐에서 이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는 상제님이다.
 
 

우주의 조화옹이 세 가지 창조의 덕성으로써 이 우주를 다스린다. 즉 조화(造化), 만물을 낳고, 교화(敎化), 진리를 가르쳐 주고, 치화(治化), 생명의 질서를 바로 잡아 성숙하게 해 준다.

 

세 가지의 신성으로써 만물을 낳아 기르기 때문에 삼신(三神)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주를 낳아 준 삼신의 신성 하늘인간 속에 그대로 깃들어 있다.

삼신의 조화의 신성, 조화의 생명이 하늘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어서 천일(天一)이라고 한다.

그 때의 일(一)이란 우주를 낳아준 한 분의 신을 말한다.

 

또한 땅에도 그대로 깃들어 있기 때문에 지일(地一)이라고 한다.

그리고 천지의 열매, 천지의 꿈인 인간 속에도 이 우주 삼신의 신성, 조화 생명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온 우주의 거룩한 생명을 다 받아 나와서 우주의 뜻을 실현하는 진리의 중심적 존재다. 즉 천지의 모든 뜻을 이루는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인일(人一)이라 하지 않고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인간이 천지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주체이기 때문에, 하늘땅보다 더 큰 자리라는 진리의 소식을 담아서 태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명 자리, 그 신성이 바로 태일이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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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 상생방송 3월 1주차 편성표
2013년 3월 4일 ~ 3월 10일

 

 

 

 

          4일 월요일    5일 화요일       6일 수요일    7일 목요일        8일 금요일      9일 토요일      10일 일요일

오전0:00

00도전봉독

30재미있는 한자이야기 <수불석권> 12회

00도전봉독

30도전속 성지를 찾아서 <시천주, 상제님을 모시다> 4회

00도전봉독

30참참참 <우주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00도전봉독

30지구촌 개벽소식

00도전봉독

30나의 신앙 증산도 <권동주>

00도전봉독

30나의 신앙 증산도 <서호원>

00도전봉독

30마이 잉글리쉬 도전 <천지성공시대> 16회

1:00

00우리가락 우리소리 <공주 세계사물놀이 대축제>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우주탄생의 비밀, 빅뱅> 1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태양, 태양계의 원리를 찾아서> 2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지구, 45억 6천만년의 기록> 3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시작, 그리고 진화> 4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사슬, 유전> 5회

00우리가락 우리소리 <대전시립무용단 정기공연 52회>

2:00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소리없는 지배, 식물> 1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깃털이야기> 2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경계의 모험가들, 상륙> 3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모든 것의 끝, 시작 멸종> 4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생명의 재구성> 5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논술과 폭력> 23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현대사론> 24회

3:00

00환구단의 비밀 <고종의 꿈, 대한의 위대한 시작> 1회

00환구단의 비밀 <천자의 나라, 대한제국>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로 탄생한 인류> 1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하는 인류>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구석기인처럼 살아라> 3회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독도,동해> 1회

30요리비전 <바다가 차려 준 울릉도 밥상> 17회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백두대간,금강산> 2회

30요리비전 <화산 땅에서 일궈낸 울릉도 약식> 18회

4:00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독도,동해> 1회

30요리비전 <바다가 차려 준 울릉도 밥상> 17회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백두대간,금강산> 2회

30요리비전 <화산 땅에서 일궈낸 울릉도 약식> 18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논술과 폭력> 23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현대사론> 24회

00STB역사기행-한국사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00생명, 40억년의 비밀 <모든 것의 끝, 시작 멸종> 4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생명의 재구성> 5회

5:00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2>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3>

00TV 증산도 대학 <가을의 추수정신,원시반본>

00TV 증산도 대학 <무척 잘사는 사람>

00마이 잉글리쉬 도전 <천지성공시대> 16회

30재미있는 한자이야기 <와신상담> 13회

00우리가락 우리소리 <대전시립무용단 정기공연 52회>

00우리가락 우리소리 <아름다운 동행>

6:00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00아침수행

30도전봉독

7:00

00한문화특강 <고대 한민족 복식문화의 국제적 위상-복식문화의 전승과 기법>

00한문화특강 <고대 한민족 복식문화의 국제적 위상-고대 복식문양의 금관과 갑옷>

00한문화특강 <고대 한민족 복식문화의 국제적 위상-복식문화의 전승과 기법>

00한문화특강 <고대 한민족 복식문화의 국제적 위상-고대 복식문양의 금관과 갑옷>

00조선 총독부 특명,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라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3>

00TV 증산도 대학 <무척 잘사는 사람>

8:00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효는 사랑이며 배려이다> 2회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현대인의 효> 3회

00STB 역사특강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동방의 등불 코리아> 3회

00STB 역사특강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민족사의 맥을 이은 삼국> 4회

00STB 콜로키움 <차경석과 보천교 운동> 5회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4>

00TV 증산도 대학 <이때는 해원시대니라>

9:00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우주탄생의 비밀, 빅뱅> 1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태양, 태양계의 원리를 찾아서> 2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지구, 45억 6천만년의 기록> 3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시작, 그리고 진화> 4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사슬, 유전> 5회

00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흉노제국 이야기>

30지구촌 개벽소식

00치우천황 그는 살아있다

10:00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소리없는 지배, 식물> 1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깃털이야기> 2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경계의 모험가들, 상륙> 3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모든 것의 끝, 시작 멸종> 4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생명의 재구성> 5회

00마이 잉글리쉬 도전 <천지성공시대> 16회

30재미있는 한자이야기 <와신상담> 13회

00증산도 대학교 열린강좌 <다가오는 병란을 대비하라>

11:00

00환구단의 비밀 <고종의 꿈, 대한의 위대한 시작> 1회

00환구단의 비밀 <천자의 나라, 대한제국>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로 탄생한 인류> 1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하는 인류>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구석기인처럼 살아라> 3회

00도전속 성지를 찾아서 <시천주, 상제님을 모시다> 4회

30나의 신앙 증산도 <권동주>

00참참참 <우주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30나의 신앙 증산도 <서호원>

오후 12:00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독도,동해> 1회

30요리비전 <바다가 차려 준 울릉도 밥상> 17회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백두대간,금강산> 2회

30요리비전 <화산 땅에서 일궈낸 울릉도 약식> 18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논술과 폭력> 23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현대사론> 24회

00STB역사기행-한국사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00환구단의 비밀 <고종의 꿈, 대한의 위대한 시작> 1회

00환구단의 비밀 <천자의 나라, 대한제국> 2회

1:00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

00치우천황 그는 살아있다

00우리가락 우리소리 <대전시립무용단 정기공연 52회>

00우리가락 우리소리 <아름다운 동행>

2:00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현대인의 효> 3회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소통의 효 지기의 효-전통시대의 효, 충효의 갈등과 실천사례> 4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15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민족원형질이다> 16회

00증산도 대학교 열린강좌 <다가오는 병란을 대비하라>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15회

3:00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3>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4>

00TV 증산도 대학 <무척 잘사는 사람>

00TV 증산도 대학 <이때는 해원시대니라>

00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흉노제국 이야기>

30지구촌 개벽소식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민족원형질이다> 16회

4:00

00도전속 성지를 찾아서 <시천주, 상제님을 모시다> 4회

30나의 신앙 증산도 <권동주>

00참참참 <우주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30나의 신앙 증산도 <서호원>

00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흉노제국 이야기>

30지구촌 개벽소식

00도전속 성지를 찾아서 <시천주, 상제님을 모시다> 4회

30나의 신앙 증산도 <권동주>

00참참참 <우주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30나의 신앙 증산도 <서호원>

00치우천황 그는 살아있다

00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흉노제국 이야기>

30지구촌 개벽소식

5:00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우주탄생의 비밀, 빅뱅> 1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태양, 태양계의 원리를 찾아서> 2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지구, 45억 6천만년의 기록> 3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시작, 그리고 진화> 4회

00과학혁명이 이정표 <생명의 사슬, 유전> 5회

00증산도 대학교 열린강좌 <다가오는 병란을 대비하라>

00마이 잉글리쉬 도전 <천지성공시대> 16회

30재미있는 한자이야기 <와신상담> 13회

6:00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소리없는 지배, 식물> 1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깃털이야기> 2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경계의 모험가들, 상륙> 3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모든 것의 끝, 시작 멸종> 4회

00생명, 40억년의 비밀 <생명의 재구성> 5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15회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현대인의 효> 3회

7:00

00환구단의 비밀 <고종의 꿈, 대한의 위대한 시작> 1회

00환구단의 비밀 <천자의 나라, 대한제국>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로 탄생한 인류> 1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요리하는 인류> 2회

00진화의 비밀 음식 <구석기인처럼 살아라> 3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민족원형질이다> 16회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소통의 효 지기의 효-전통시대의 효, 충효의 갈등과 실천사례> 4회

8:00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독도,동해> 1회

30요리비전 <바다가 차려 준 울릉도 밥상> 17회

00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 <백두대간,금강산> 2회

30요리비전 <화산 땅에서 일궈낸 울릉도 약식> 18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논술과 폭력> 23회

00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 <현대사론> 24회

00STB역사기행-한국사 숨겨진 진실을 찾아서

00TV 증산도 대학 <무척 잘사는 사람>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3>

9:00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

00치우천황 그는 살아있다

00TV 증산도 대학 <이때는 해원시대니라>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4>

10:00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현대인의 효> 3회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소통의 효 지기의 효-전통시대의 효, 충효의 갈등과 실천사례> 4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유구한 낱말이다> 15회

00STB 역사특강 <한문화의 뿌리를 찾아서-한은 민족원형질이다> 16회

00증산도 대학교 열린강좌 <다가오는 병란을 대비하라>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효,인간다운 삶의 근원-현대인의 효> 3회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해를 말하다>

11:00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3>

00개벽실제상황 <가을 개벽기 구원의 길4>

00TV 증산도 대학 <무척 잘사는 사람>

00TV 증산도 대학 <이때는 해원시대니라>

00책으로 만나는 가을개벽문화 <흉노제국 이야기>

30지구촌 개벽소식

00인간의 길 가효국충 <소통의 효 지기의 효-전통시대의 효, 충효의 갈등과 실천사례> 4회

00한문화특강 <해와 달과 별과 천손을 말하다-달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