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군함도4

군함도(하시마섬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하시마 섬 탄광)와 한국인 강제징용(강제노역) 피해자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나라다. 혹자는 일본 근대화와 산업화가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인을 강제징용으로 끌고 가 이루었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강제징용을 본격화한 1939년 말 이전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미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었다. 일본은 지난 2015년 지옥섬으로 불린 군함도(하시마 탄광)를 비롯한 23개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군함도(하시마 탄광)를 비롯한 23곳 중 7개 시설이 일제강점기 한국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시설이라 세계문화유산 등재 보류 또는 일본의 강제징용.. 2017. 7. 2.
군함도 강제징용 생지옥 하시마섬 탄광 군함도(軍艦島) 강제징용(강제노역): 조선인에게 생지옥과 같았던 하시마섬 탄광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19세기 말 일본인에 의해 탄전(炭田)이 조사되었고,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문경 탄광(남한)이 채굴을 시작했다. 탄광산업의 전성기라고 하는 1960~70년대 흔히 탄광을 '막장'이라고 불렀다. 광부라는 직업이 그만큼 위험하고 힘들었다는 의미였다. 수십 년 전 사용하던 막장이라는 의미는 아직도 부정적 또는 극단적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군함도(하시마섬) 탄광으로 강제징용 당하여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들은 하시마섬 탄광을 생지옥과 같은 지옥섬이라고 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세기 말부터 침략전쟁을 일으켰고, 식민지와 점령지 국민을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에 강제동원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2017. 7. 1.
미쓰비시 소유의 단도와 군함도 해저탄광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의 비참한 삶의 현장 나가사키 해저 탄광 미쓰비시 소유의 고도(高島) 다카시마 탄광과 지옥섬 단도(端島, 군함도:군칸지마)의 하시마 탄광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의 정점에는 히로히토 일본 왕이 있었다. 그러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을 주도한 미국 측의 은혜로 히로히토는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 제국주의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끈 대표적인 재벌 그룹이면서 전범 기업이다. 일본인과 점령지 국민을 강제노역시켜 전쟁에 사용하는 무기와 물자를 생산하고 수송한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재벌 역시 미국 측의 큰 은혜로 전범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2015년 미쓰비시의 머티리얼(옛 미쓰비시 광업) 기무라 히카루 상무가 미국을 방문하여 미쓰비시 탄.. 2017. 6. 25.
다카시마탄광과 지옥섬 군함도 하시마탄광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강제노역)의 비참한 삶의 현장 나가사키 해저 탄광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지옥섬 고도(高島)의 다카시마 탄광, 지옥섬 군함도(軍艦島, 단도端島)의 하시마 탄광 일본은 19세기 중엽 서양의 문물과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면서 제국주의로 발돋움하였다. 일본 근대화의 핵심 산업으로 크게 철강과 조선, 그리고 석탄산업을 꼽는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의 지쿠호 지역은 일본 최대의 탄광 지역으로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지쿠호 지역의 300여 개 탄광에서 일본 석탄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 생산해 냈다.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고 나서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과 1930년대 말 일본의 국가총동원법이 공포되고 강제징용(강제노역)으로 끌.. 2017.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