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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2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폭발로 위장한 집단살인 사건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자행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은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은 중국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1876년 일제와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맺은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인 약 8백만 명이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대학살 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만 해도 약 30만 명의 한국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죽어갔다. 조선의 관군도 동학 농민혁명군 진압에 동원됐지만, 일제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며 당시 최신식 연발 기관총 난사해 대학살을 자행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에도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 2017. 8. 20.
사상 최악의 해양 대참사(해난사고)와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사상 최악의 해양 대참사(해난사고)와 폭발 원인과 진상규명이 안 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아프리카 난민과 시리아 난민 보트가 전복되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숨지는 해난사고 소식을 방송을 통해 가끔 접한다. 이런 해양 대참사와 다름없는 해난사고 소식은 단지 가난한 나라, 힘없는 나라의 불법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죽음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잊힌다. 반면 정치, 경제, 군사 강대국의 국민 수십, 수백 명이 해난 사고로 죽거나 다치면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지나칠 정도로 떠들썩하게 사건을 집중보도하고 희생자를 추모한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본질에서 같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된 이 시대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전쟁 중에 민간 소유의 배와 국가 소유의 전.. 2017.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