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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3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강점기 일본의 최북단 섬 홋카이도(북해도北海島) 탄광과 군사시설 건설현장 등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북해도(홋카이도)는 본래 아이누가 살던 섬으로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1868년 메이지유신 때 만들어진 일본 제국 헌법에서도 북해도(홋카이도)는 일본 영토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제국 헌법에는 조선(대한민국)의 독도, 유구 열도(오키나와 유구왕국), 사할린, 쿠릴열도(북방 4도) 역시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부분 교과서와 학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북해도(홋카이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북해도(홋카이도) 개척 역사는 왜곡된 것으로 일본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자국의 영토가 아닌 곳을 힘으로 개척한다는 것은 식민지.. 2017. 7. 29.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2)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長生炭鑛) - (2)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가 석탄 채굴작업을 한 장생탄광은 해저탄광으로 당시 여느 탄광처럼 비좁고 어두웠으며, 높은 습도와 고온의 열기 속에 속옷(훈도시)만 걸친 채 석탄 채굴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작업 현장은 지역을 불문하고 생지옥이었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대부분의 조선인 노무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도 일부 있었다. 일본인과 조선인 등 1천 명 남짓 일하던 장생탄광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숙소에서 너덧 평 되는 방.. 2017. 7. 23.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1)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강제노역) 피해자와 장생탄광 - (1) 석탄산업은 조선과 철강 등과 함께 일본의 산업 혁명을 주도했던 근대화의 상징이다. 석탄산업은 일본 제국주의가 군사 대국화와 팽창주의 과정에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된 산업 중 하나다. 산업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하는 군사적 목적의 전쟁에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강제징용 피해자는 석탄산업뿐만 아니라 조선과 철강산업을 비롯한 공사장, 벌목장, 군수기지 건설 현장 등 인력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수물자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안전보다는 생산량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도 많.. 2017.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