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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행3

일제의 만행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과 만인갱 대학살 일제의 만행 남경대학살(난징대학살)과 만인갱(萬人坑) 대학살 중국 정부는 70여 년 동안 대일항전 기간을 1937년 중일전쟁부터 1945년까지 8년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의 대일항전 기간을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까지 14년이라고 하며 기존 주장을 바꿨다. 중국 정부는 1894년 12월 불과 나흘 동안 저지른 여순대학살부터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과 만인갱 대학살을 비롯하여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중국인 사상자 수가 군경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무려 3,50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인 대학살 만행이 시작된 것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 만주 요녕성(량오닝성)의 여순(旅順) 지역에 살던 중국 민간인을 대학살 하면서부터다. 일반적으로 중일전쟁 당시 일제가 저.. 2017. 9. 2.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일제의 한국인 강제징용자 대학살 만행, 폭발로 위장한 집단살인 사건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1937년 12월부터 약 6주간 자행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은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행은 중국인에 국한되지 않았다. 1876년 일제와 불평등 강화도조약을 맺은 이후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인 약 8백만 명이 일제의 잔혹한 만행에 대학살 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만 해도 약 30만 명의 한국인이 일제의 총칼 아래 죽어갔다. 조선의 관군도 동학 농민혁명군 진압에 동원됐지만, 일제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며 당시 최신식 연발 기관총 난사해 대학살을 자행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에도 일제의 잔혹한 대학살 만.. 2017. 8. 20.
일제의 잔학한 만행 간도참변(경신참변, 간도대학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패배한 일제가 간도의 조선인을 무차별 보복 학살한 만행 간도참변 일제의 잔학한 만행 간도 대학살(경신참변) 1920년 6월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을 비롯하여 안무 장군의 국민회군,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3형제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는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에 승리를 거뒀다. 독립군에 패한 일제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을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1920년 8월 일본군은 먼저 중국 영토였던 만주에 들어갈 명분을 만들기 위해 중국 마적단을 매수하여 훈춘성을 공격해 중국인과 조선인 등을 죽이고, 일본영사관을 습격하게 하였다. 훈춘사건을 조작한 일본군은 수만 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 1920년 10월에는 대한독.. 2017.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