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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2

대명사대주의가 자초한 정묘호란 병자호란 대명(大明)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자초한 국란 동아시아의 신흥 강대국 후금(청나라)의 조선 침략전쟁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1616년(광해군 8) 여진족 누르하치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후금(後金, 청나라)을 세웠다. 후금(後金)은 명나라와 전쟁 중이던 1636년(인조 14) 청나라로 나라이름을 바꿨다. 1624년(인조 2) 이괄이 난을 일으킨지 한 달도 못되어 실패로 끝났지만, 그 여파로 후금(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인 정묘호란(1627년, 인조 5)이 일어난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선은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1618년(광해군 10)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후금(청나라)이 명나라를 공격하면서 명청전쟁(1618~1644)이 시작됐다. 광해군은 비록 쇠퇴하고 있었지만 강대국인 명.. 2016. 12. 11.
후금(청나라) 조선침략, 정묘호란 병자호란 한양 도성(都城)을 3번씩이나 버리고 도망간 인조의 굴욕과 치욕 후금(청나라)의 조선 침략전쟁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조선왕조 5백 년 역사에서 3번씩이나 한양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은 조선 16대 왕 인조(1595~1649, 재위 1623~1649)가 유일하다. 인조는 내란(內亂) 이괄의 난과 후금(청나라)의 조선 침략 전쟁인 정묘호란(1627년, 인조 5)과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15)의 외침(外侵) 때 도주했다. 인조반정의 명분 중 하나가 광해군이 명나라와 의리를 저버리고 오랑캐 야만족 후금(청나라)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보위에 오른 인조와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서인(西人)은 배금친명(排金親明)의 외교정책을 고수한다. 광해군이 국정운영에서 폐.. 2016.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