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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열전 - 진표율사 망신참법 지장보살의 가호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5. 6. 24.

증산도 『도전道典』 인물 열전

진표율사 - 2. 미륵불 친견을 위해 인류 역사에 가장 극단적인 수행방법,

망신참법(亡身懺法)의 구도(求道) 열정으로 지장보살의 가호를 받다.

 

 

 

 

 

 

 

 

 

 

 

 

진표율사가 부안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며 기도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미륵부처님의 계법(戒法)을 구하며 초인적인 열정을 발휘하며 구도에 정진하였으나, 진표율사가 백척간두 부사의방장 절벽에서 공부를 한 지 3년이 되어도 하늘로부터 어떠한 암시적인 한소식을 듣지 못하고 깨달음도 얻지 못하자, 좌절과 울분을 참지 못해 죽을 결심하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게 된다.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던 몸이 땅에 떨어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청의 동자가 진표율사를 부사의방장에 다시 올려놓고 사라지게 된다. 

 

 

이에 용기를 크게 얻고 더욱 분발하여 생사(生死)를 걸고 3.7일(21일) 정성공부에 정진하게 된다.

이때 진표율사가 선택한 수행법은 인류 역사에 가장 극단적인 수행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 - 자신의 몸을 돌로 계속 두들겨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는 참회하는 수행법)이었다.

 

 

 

 

 

 

 

 

 

 

 

망신참법보다 더 진실하게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참회하는 법은 달리 없었으며, 일심을 향한 혈심(血心) 수행법이었다.

오체(五體 -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 곧 온몸)를 바위에 던지듯 절을 하며, 돌로 온몸을 찧어대3일이 지나자 한쪽 팔과 두 무릎이 뚫어져 나간 자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떨어진 힘줄이 드러난다.

 

 

이미 생사를 뛰어넘는 일념으로 시작한 수행에는 그 어떤 장애물도 있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온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부서지는 극한의 고통도 진표율사의 구도에 대한 열정 앞에서는 한낱 금방 사라질 연기와 같았다.

 

 

 

 

 

 

 

 

 

 

망신참법을 한 지 7일째 도던 날 밤, 진표율사의 하늘을 꿰뚫는 지극정성이 마침내 하늘을 감동하게 된다.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만신창이가 된 진표율사 앞에 홀연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내려와 가호해 주니 몸이 다시 회복된다.

 

 

지장보살은 진표율사에게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로다.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것을 내리노라."라며 가사와 바리때를 전하고 직접 정계(淨戒)를 내려준다.

 

 

 

 

 

 

 

 

 

 

진표율사는 그 신령스러움에 용기백배한다.

그러나 진표율사는 본래 뜻이 지장보살에 있지 않고 미륵부처님에게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발심하며, 능가산 영산사(靈山寺)로 장소를 옮기게 된다. (변산 개암사 뒷편에 있 우금바위 밑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굴 등 3개의 굴이 있는데 그곳으로 추정된다.)

 

 

 

 

 

 

 

 

 

득수반지미족기 得樹攀枝未足奇 현애살수장부아 懸崖撒手丈夫兒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이 기특할 것도 없고,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장부로다.

(송나라 선승 야보冶父, 도천道川의 금강경 주석 中)라는 말처럼 그는 크게 죽기로 결심했다...

(계속)

 

 

 

 

 

 

 

2015년은 북방 불기(佛紀)로 3042년과 남방 불기(佛紀)로 2559년

 

 

 

"출가자가 석가의 성명과 출생, 입멸의 연월을 모르는 것은 마치 아버지의 성명과 생몰 일시를 모르는 불효 막대한 것과 같다."라고 고려 시대 무기라는 승려는 말했다.

 

 

 

 

북방 불기는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던 불기이다.

 

남방 불기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 소승불교에서 사용하던 불기이다.

 

 

 

기존에 북방 불기를 사용하여 오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나라들이 남방 불기로 전격적으로 바꾸게 된 것은, 1956년은 불멸 2500년(남방 불기)이 되는 해를 맞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1950년 창립)에서 불교 각국의 통일적 불기(佛紀) 사용을 의결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6차 회의에 처음 참가한 후 남방 불기를 채택했다. 이 회의에 이청담(1966년 6대 종정에 취임) 스님 등 3명이 참가하였다.

 

 

중국에서 석가불의 생존연대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 자료로 흔히 인용되는 것은 수나라 때(597) 비장방이 지은 역대삼보기이다. 역대삼보기에는 고구려 평원왕 때 고구려의 승려 의연이 당시 북제의 이름 높은 법상에게 석가불의 생애와 불교사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은 후일 당나라 때 유명한 법림(法琳, 572~640)법사에 의하여 재확인되면서 북방 불기로 굳어지게 된다.

 

 

 

 

 

북방 불기의 기원이 되는 의연과 법상의 대화

 

 

고구려의 대승상 왕고덕은 깊은 믿음을 간직하고 대승불교를 존중하였으며, 불교의 가르침이 나라 구석에까지 미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시말과 연유,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연대와 제왕의 대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 조목들을 적어 의연을 보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오게 했다. 그 조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석가불이 열반에 든 이래 지금까지 몇 년인가? " 법상이 대답하였다.

 

"부처는 주 소왕 24년 갑인년에 태어나서, 19세에 출가하고, 30세에 성도 하였다. 이때는 목왕 24년 계미년에 해당하는데 목왕이 서방에 화인(化人-부처)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곧 그곳으로 가서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것을 징험으로 여긴다. (그 후) 49년 동안 세상에 머물다 멸도했으니 지금 제나라 무평 7년(서기 576년)까지 무릇 1,465년이다. (역대삼보기 권 12 대정장 49, 104-105)

 

 

 

 

 

 

 

 

 

 

 

 

 

우리나라 선종의 3조인 보조선사(880년 열반)의 비를 보면 헌앙왕 3년(859년)이 석가 입멸 후 1808년이라는 아주 귀중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불멸 BCE 949설과 일치한다. 현재 불기로는 보물 제158로 보조선사비의 주인공인 동국 선종 제3조의 역사를 수용하지 못한다.

 

 

 

정통(正統) 조사(祖師)는 석가부처 이후 마하가섭부터 28조 보리 달마, 그리고 이후 육조 혜능까지 삼십삼 명의 조사가 면면히 내려온다. 그런데 중성점기(衆聖點記)를 사용할 땐 33 조사 중 적어도 아래의 9명이 빠지게 된다.

제1조 마하가섭존자, 제2조 아난존자, 제3조 상나화수존자, 제4조 우바국다존자, 제5조 제다가존자, 제6조 미차가존자, 제7조 바수밀존자, 제8조 불타난제존자, 제9조 복타밀다존자

 

 

삽십삼(33) 조사와 연대기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1963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불기를 채용하자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즉 중성점기를 바탕으로 한 불기를 사용한다면 석가부처는 10대 법손인 복타밀다존자의 사후 2년 뒤에 입멸하는 셈이 된다. 대승불교의 근거가 되는 선사(禪師), 즉 조사(祖師) 맥이 통째로 부정되는 것이다.

 

 

 

 

중성점기(衆聖點記)를 주장하는 다까구스의 설은 일본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다까구스는 그의 저서 아시아 민족의 중심사상(인도 편)'에서 불멸 기원이라는 제목 아래 중성점기설을 채택하게 된 동기와 필요성을 자세히 밝혔는데 다음과 같은 엉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기원(紀元)이 불(佛)보다 좀 오래되었고, 공자보다도 오래되었다.…

일본을 대승상응(大乘相應)의 땅이라 하여 모두 일본을 중심으로 하게 되므로, 일본의 연대를 말함에서도 신무 천황이 석가여래보다 후가 되며 공자보다 후가 된다고 하면, 일본의 지위에도 관계가 되므로 다소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느 기원이라도 다소는 틀린다. 야소교(기독교)의 기원에 있어서도 조금 틀린 것이 있다. 틀린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국가가 정한 것이라고 가르친 이상에는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연구를 주장하여 이것을 번복하려는 생각은 학자나 보통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니 그것을 우리는 심득(心得)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대의 연구는 금물(禁物)이라고 생각한다. 전설은 연구의 결과에 너무 멀지 않은 것이 제일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성점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남방 불기를 사용할 경우 석가부처는 공자보다 14살 연장이 되고, 노자보다 오히려 40살 연하가 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이럴 때 공자나 노자는 석가와 동시대의 인물이 되어 서방에 대성인이 있다는 『서승경(西昇經)』이나 『열자전(列子傳)』 같은 모든 기록들은 하루아침에 위서가 되고 만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말법(末法) 시대의 실상

 

불기(佛紀) 문제를 보면 시대에 대한 현주소가 나온다. 미래에 대한 석가부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월장경이다.

 

 

"내가 사라진 뒤 5백 년까지는 그리고 모든 비구가 나의 법에 있어서 해탈이 견고해지려니와,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바른 법에 선정 삼매만이 견고하게 머물 것이며,

또 그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많이 듣게 됨으로써 견고할 것이며,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탑이나 절을 많이 세우므로 견고히 머물 것이고,

다음 5백 년은 나의 법에 있어서 힘 싸움과 말다툼이 일어나 깨끗한 법은 없어지고 그 견고한 것이 줄 게 되리니 분명히 알아라,

 

청정한 사나이여, 그 뒤로부터는 비록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 가사를 입더라도 금계를 파괴하고 법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비구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리라."

 

 

석가모니 부처는 5백 년 마디로 불법이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사후 1500년이 지나면 법란(法亂)을 겪게 되고 파계 승가가 많이 출현하여 말법(末法)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북방 불기이든 남방 불기든 이미 말법 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북방 불기로 보면 갑인(甲寅, 1974)년이 불탄 3000년 올해(2015년)는 3042년이 된다. 따라서 석가 입멸 후 1500년 후부터 시작되는 말법 시대도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때를 특히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언론과 주변의 입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들어왔던 불법이 무너지고 승려가 타락하는 모습을 3천 년 전의 석가모니 부처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불법이 점차 무너지리라. 그때엔 살아가기 위하여 중이 되고, 삼승(三乘)을 기원하지 않고 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탐욕에다 명리를 추구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타인을 질투하며, 학문 수행의 길에서 멀리 물러나고 선행도 하지 않으며, 낮에는 남의 욕을 하고 그것을 즐기며 밤에는 잘도 잔다."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들에게 제시한 인류의 희망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미래불이요, 구원의 부처요, 희망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의 출세 소식이다.

말법 시대가 극에 달하면, 미륵부처님이 지상에 내려와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 불교 구원관이다.

이것이 바로 소승(小乘)이나 대승(大乘), 남전(南傳)이나 북전(北傳) 할 것 없이 모든 종파를 초월해서 전하는 불교 구원관의 최종 결론이다.

 

 

 

증아함경』, 화엄경에서는 석가부처 이후 3천 년에 미륵불이 오신다고 하였다.

 

경전에 나오는 우담바라는 3천 년에 한번 피는 꽃으로 사실은 석가 이후 3천년 만에 오시는 미륵불을 비유한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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