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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티베트 대학살과 망명한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

by 도생(道生) 2015. 9. 13.

중국의 티베트 대학살과 망명한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티베트와 중국의 악연은 현재 중국의 역사에서 전하는 기록으로는 토번 왕국(吐蕃, 옛 티베트)과 당나라 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최선봉에 섰던 당나라 최고 무장 설인귀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황제의 명을 받아 12만 대군을 이끌고 4,000m 고원지대 토번 왕국(티베트) 정복에 나섰다가 대패하고 돌아온다.

 

 

티베트 불교는 인도로부터 들어왔으나 7세기 송첸 감포 왕 때 티베트 불교 체계화되며 불교가 자리잡게 된다.

송첸 감포 왕은 당나라 태종의 양녀였던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하였고, 티베트 왕의 제2 왕비가 된 문성공주는 결혼을 하면서 당나라의 선진 문물과 불교관련 문화를 가지고 가서 송첸 감포 왕의 티베트 불교 기초를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이후 당 현종의 명을 받은 고선지(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장군에 의해 토번(티베트)의 영향권 아래 있던 소국들을 접수하여 티베트의 힘이 약화하였으나 고선지 장군이 탈라스 전투에서 대패한 후 토번 왕국(티베트)은 힘을 되찾게 된다.

힘을 기르고 영토를 확장하던 토번(티베트)은 안녹산의 난 때 20만 대군을 출정시켜 당나라 수도 장안을 잠시 점령하기도 하였다.

 

 

티베트는 몽골 제국(원나라) 영역 확장 때 약 150년간 몽골의 영향력 지배 아래 있었지만, 몽골에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이때 중국 한漢족은 몽골에 점령당했다.

 

 

 

 

 

 

 

 

동몽골의 알탄 칸은 당시 티베트인들에게 살아 있는 부처로 존경받고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까지 추앙받던 고승 남갸초에게 '와치르다라 달라이라마'라는호(尊號)를 봉헌한다.(영적인 스승, 바다와 같은 지헤를 가진 스승)

 

이것이 로 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 정치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쇠남갸초는 자신보다 앞선 환생했던 게뒨줍파를 제1대 달라이라마로, 게뒨 갸초를 제2대 달라이라마로 규정하고 자신은 제3대 달라이라마가 되었다.

 

 

 

 

 

 

 

 

청나라 때도 티베트는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티베트는 독립하였으나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은민지를 넓혀가던 시기라 척박한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티베트의 독립국 선언에 귀를 기울이는 나라는 없었다. 특히 중국은 티베트의 독립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1935년 티베트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텐진 갸초는 1940년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달라이라마 궁전으로 불리는 포탈라 궁의 주인이 된다.

 

 

 

 

 

 

 

 

중국공산당은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으로 몰아내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하였다.

 

중국은 티베트에 예전의 지배권을 주장하며 1950년 10월 티베트를 침략하여 점령하였고, 이듬해인 1951년 평화적인 해방이라는모양새를 보이기 위해 '십칠조 협의'를 체결하며 강제 합병하였다. 중국은 '17조 협정'을 어기고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중국은 엄청난 약탈과 파괴가 자행되었다.

 

 

 

 

 

 

 

 

1959년 중국의 강압적인 통치에 반발한 티베트 봉기는 불과 이틀 만에 끝났으나 중국군에 의해서 티베트 왕궁이며 세계문화유산이 된 포탈라 궁 앞에서만 약 1만 5천 명이 사살됐으며 약 8만여 명이 숨져갔다. 1966년에도 포탈라 궁이 있는 라사 지역에서 약 8만 6천 명을 대학살 되었다.

 

티베트의 불교 최고 지도자로 정신적 지도자이며 정치적 지도자였던 달라이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티베트 인도 망명 정부를 만들게 된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60만 명 이상의 승려중 11만 명이 고문으로 죽어갔으며, 25만 명 이상이 승적을 박탈당하고 구금되고 강제노역으로 끌려갔다. 1966년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1950년대에는 티베트 전역에 6천 개 이상의 불교 사찰과 수도원이 불과 5개의 불교 사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이때도 약 8만여 명이 숨졌다.

 

 

 

 

 

 

 

 

중국인들의 잔혹한 만행은 나치와 일본 제국주의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승려의 입에 옷을 구겨 넣었으며, 중국군은 넘어진 승려에게 대소변을 보았고, 평생 살생을 금기시하는 승려에게 제자가 스승을 살해하도록 하였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도록 하였으며, 부부가 사람들 앞에서 성교를 강요하였으며 남편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였고, 비구니를 강간하고 비구와 비구니 승려가 대로변에서 성교하도록 강요하였고, 신성한 불상을 녹여 사람을 죽이는 총탄을 만들었다.

 

 

 

 

 

 

 

 

수많은 불교문화 유산을 중국인과 그들의 강압에 못 이긴 티베트인들의 손으로 부숴버리게 만들었고, 불경을 새겨 넣은 마니석(瑪尼石)을 변기로 만들고, 불교 사원 경내에 가축을 도살하는 도살장을 만들고, 성스러운 사원을 돼지우리로 만드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학살과 고문, 착취, 인위적 낙태와 불임수술, 고의적이고 계획적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게 만들었으며, 중국 한漢족의 티베트 대이주 정책과 티베트인의 인종차별, 약탈과 환경파괴 등으로 산림이 황폐해졌다.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무지막지한 살육과 파괴 약탈과 강간 등과 함께 티베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종교와 문화, 언어 등 철저한 말살정책을 펼친다. 그들이 남경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당했던 것보다 더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난징대학살(남경대학살)에 이은 또 하나의 대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중국이 티베트를 강제 점령한 후 현재까지 수차례의 탄압과 무자비한 살상으로 약 12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잔혹한 만행 아래 대학살 되었고, 중국의 티베트에 대한 만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이며 티베트인의 정신적이고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 톄진 갸초는 오늘도 티베트 독립을 위해 평화와 비폭력을 가르치며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평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달라이라마 14세는 중국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도 티베트 문제를 평화적 해결하는데 앞장서온 공로를 인정받아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중국 내 600만 명의 티베트인들은 낙후된 서부지역에 살고 있으며, 티베트 자치주에는 약 300만 명이 살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600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사는 곳에 2,500만 명의 한漢족을 이주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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