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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명언

by 도생(道生) 2015. 10. 31.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E=mc^2)을 발표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명언

 

 

 

 

 

 

 

 

 

2015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10년이 되는 해이며, 2016년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10년이 되는 해이다. 독일에서 출생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유대인 탄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난민 출신의 과학자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가톨릭을 신앙한 부모와 함께 17세까지 독일에서 살며 학교에 다녔다.

다섯 살에 아버지가 준 나침판이 한곳만을 일정하게 가리키는 것을 보고 자연의 신비적인 힘에 이끌렸던 소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어린 시절 반유대주의로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인슈타인은 가족의 이탈리아 이주와 함께 위스 아르고비안 주립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한다. 당시 17세의 아인슈타인은 '만약 빛의 속도로 달리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라는 상상을 하였다고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 수학과 과학부에 입학하면서 같은 학부 출신의 네 살 연상 부인 밀레바 마리치를 만난다. 

학교를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무직자로 있다가 어렵게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하고 가정교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스위스 베른의 특허 심사관으로 취직하며 안정된 생활 속에서 본격적으로 물리학 연구에 몰두하며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 밀레바 마리치와 1902년 첫 번째 아이(딸 리제)를 낳고 1903년 결혼하였다. 1904년 둘째 아이(아들 한스 알베르트)를 낳고 1910년 셋째 아이(아들 에두아르트)를 낳았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1919년 이혼하게 된다.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고전역학과 기존의 세계관을 뒤흔들어놓은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는 불과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아내였던 밀레바 마리치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과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에 깊이 관여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이유는 초기 논문에 아인슈타인과 마리치 두 사람이 공동저자로 되어 있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부인 마리치와 별거 중이던 시기에 사촌 누이 엘자 뢰벤탈과 동거를 시작하여 이혼과 함께 두 번째 결혼을 한다.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상금 전액을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 위자료와 양육비로 지급한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교수, 프라하 찰스 대학교와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환교수, 미국 프퍼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를 역임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대학교 고등연구소 교수로 재직하다 은퇴한다. 

 

 

 

 

 

 

 

 

평화주의자였으며 사회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은 미국 반공주의자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유대교 야훼를 부정하였던 무신론자였으나 1945년 자신의 달라진 가치관을 담은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낸다.

 

 "나는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우리의 지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에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동료 과학자 가이 래너에게 보냈다고 한다.

 

 

 

 

 

 

 

 

세 살 때까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고등학교 중퇴에 대학은 재수해서 들어가고 물리학 공부는 대학 학부시절이 전부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천재과학자, 혹자는 예수 이후 가장 위대한 유대인이라고 하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자기가 죽거든 자신을 화장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뿌려달라고 유언하였으나 죽어서 자신의 뇌를 도둑맞는지개벽하는 사건이 당하게 된다.

 

토마스 하비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유가족들 모르게 고인의 뇌를 훔쳐 달아나 뇌를 촬영하고, 240조각으로 잘라 연구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달아나 연구한 것이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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