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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복자 몽골제국 칭기즈칸(테무진) 명언

by 도생(道生) 2016. 1. 9.

탁월한 지도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위대한 정복자 몽골제국 칭기즈칸(테무친) 명언

 

 

 

 

 

 

 

 

 

 

현재의 몽골에서 과거 몽골제국 영화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몽골 초원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시아와 유럽, 세계를 제패한 몽골제국 칭기즈칸을 위대한 정복자라 말한다.

 

20년 전 미국의 위싱턴 포스트 지와 타임 지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난 1천 년간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인류 역사를 바꾼 인물로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테무친)을 꼽았다.

 

 

칭기즈칸을 무자비한 살육과 약탈을 일삼은 정복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몽골제국이 아시아와 유럽을 제패할 당시만 해도 몽골제국에는 글자가 없었다. 후대에 몽골제국에 점령 당한 주변국의 역사기록에 칭기즈칸이 약탈과 살육을 자행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세계를 제패한 정복자 몽골제국 칭기즈칸은 솔선수범의 자세와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었다.

포용력과 통솔력과 인재 발탁에는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능력이 있는 부하는 신뢰와 함께 권한도 주었다.

 

엄정한 공덕 평가는 부하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조직력을 극대화하였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부하들과 함께 공유하였고, 철저한 현실주의 감각과 날카로운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몽골제국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하며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말을 타고 적진을 헤쳐나가는 유목민 특유의 적의 허를 찌르기동력과 필사의 결의, 그리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황색공포라고 표현한다.

 

 

칭기즈칸의 몽골군대는 상대방과 전투에 일하기 전 약한 적이든 강한 적이든 주도면밀하게 탐색하여 적군에 대해 세심하게 정보를 파악하였다. 또 몽골군대는 상호 부대 간 유기적인 배치와 함께, 보급 체계와 무기체계의 단순화는 원거리 원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은 정복하는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고 주변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몽골제국이 초기 정복에는 약탈에 가까운 습격의 개념에 가까웠다고 한다.

여러 문제점이 생기는 것을 본 칭기즈칸은 개인적 약탈을 금지하고 전쟁 전리품을 군사들의 전투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도록 한다.

칭기즈칸을 비롯한 지휘관 누구도 호의호식을 금지하고, 칭기즈칸을 포함한 모두가 급에 관계없이 이름을 부르도록 하는 평등의 원칙을 세웠다.

 

이는 전체구성원을 하나로 결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쟁 중에 전사한 몽골군은 반드시 시체를 찾아와 죽어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고,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전쟁에 임했다.

 

 

 

 

 

 

 

 

 

 

칭기즈칸은 유라시아대륙 점령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였다.

몽골군 편성과 행정을 하나로 하여 10명을 한 단위로 묶고, 10단 위를 또 한 단위로 묶는 특유의 방식을 사용하였다.

또 백호장 천호장 제도를 두어 점령지를 체계적으로 묶어 나갔다. 1~2억 정도의 유라시아 점령지를 불과 4~10만 몽골 기병들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을 후대의 역사가들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내 자손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

칭기즈칸의 이 말은 그대로 적중했다.

 

 

최근 고구려학술대회에서 세계를 제패한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이 대진국(발해)의 대야발 후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야발은 아버지 대중상과 함께 대진국(발해)을 세운 대조영의 동생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記 편에는 4세 오사구 단군께서 단군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에 봉하였으며 지금의 몽골족은 그 후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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