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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용호대사 북창 정렴(정북창)의 용호비결과 궁을가

by 도생(道生) 2016. 6. 25.

입산(入山) 3일(三日)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

용호대사 북창 정렴(정북창)의 용호비결(북창비결)궁을가(弓乙歌)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대도인(大道人) 북창 정렴(1506~1549), 용호대사 정북창은 지금의 충청남도 온양(아산) 사람이다.

현재의 아산 외암민속마을 바로 뒤쪽에 있는 설화산(雪華山)에 들어간 지 불과 3일 만에 유불선(儒佛仙)에 정통하였다 한다.

 

 

 

 

 

전설의 역사를 만든 천하의 귀재(鬼才) 용호대사(龍虎大師) 정북창

 

 

북창 정렴은 생이지지(生而知之), 즉 배우지 않고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았다고 전하나 그건 정북창이 타고난 능력과 재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정북창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靈的)으로 뛰어났으며, 총명함과 뛰어난 자질로 자신이 갖춘 능력과 재주를 십분발휘하여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안 무불통지(無不通知)한 천재이며 대학자요 대도인(大道人)이었다.

 

 

 

용호대사 정북창은 도(道)를 닦으러 산에 들어간 지 불과 3일 만에 천하의 모든 일을 알게 됐다고 전한다.

선가(禪家, 불교)의 육통법(六通法)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사흘 동안 정관(靜觀) 하더니, 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 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정북창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를 바탕으로 천문, 지리, 음률, 수학, 한문, 복서, 의약과 외국어 등에도 능통했으며 귀신과 짐승의 소리도 알아들었다고 한다.

 

 

 

 

 

 

 

 

 

 

 

 

선가(仙家)의 수련서 용호비결과 미래 예언서 궁을가

 

 

 

용호대사 북창 정렴은 조선 시대 도가(道家, 도교) 내단(內丹) 사상, 즉 단학(丹學)의 중시조(中始祖) 또는 비조(鼻祖)로 평가받고 있다.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3대 기인(奇人)으로 불린다.

 

 

현재도 선가(仙家, 도교, 단학)에서는 필독서로 정북창이 저술한 최고의 신선술(神仙術) 수련서 용호비결(북창비결)과 미래 예언서 궁을가(弓乙歌)가 전한다. 궁을가(弓乙歌)는 천지의 운행 원리를 바탕으로 4·4조로 된 장편가사이며 4음보 1행으로 총 341행의 예언서이다.

 

 

 

 

음악과 무용의 담당 청이었던 장악원(掌樂院) 주부, 천문·지리·책력의 담당 청이었던 관상감(觀象監)과 의약과 치료 담당 청이었던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겸직할 정도로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중종이 위독했을 때는 내의원에서 천하의 명의라고 천거할 정도였고, 인종이 위독했을 때도 직접 진찰할 정도였다.

 

 

성군(聖君)의 자질을 갖추었으나 재위 9개월 만에 붕어한 인종은 세자시절부터 공부방 병풍에 '우의정 정북창'이라 써놓고 조선을 이끌어갈 정승으로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암 송시열과 예송 논쟁으로 유명한 대학자 미수 허목 선생은 미수 기언(眉叟記言)에서 정북창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정렴은 남과 더불어 말할 때에는 단 한마디라도 공자(孔子)의 학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이미 그 깨달음은 중(선禪)과 같고, 그 행적은 노자(老子)와 같았으나,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한결같이 성인(聖人)으로 종(宗)를 삼아서였을 것이다."

 

 

 

 

자신의 수명을 친구에게 떼어주고 44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대학자, 대도인(大道人) 용호대사 북창 정렴

정북창은 죽음에 이르러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위로하는 만사(挽詞, 죽은 사람을 위해 쓴 글), 자만(自挽) 시(詩)를 남긴다.

 

 

일생독파만권서(一生讀破萬卷書) 일생 만 권의 책을 독파하고

일일음진천종주(一日飮盡天鍾酒) 하루에 천 잔 술을 마시었네.

 

고담복희이상사(高談伏羲以上事) 복희씨(伏羲氏, 5600년 전) 이전 일을 고고하게 담론하고

속설왕래불괘구(俗說往來不掛口) 속설은 입에도 담지 않았네.

 

안자삼십칭아성(顔子三十稱亞聖) 안자(顔子)는 삼십을 살아도 아성(亞聖)이라 불리었는데,

선생지수하기구(先生之壽何其久) 선생의 나이는 어찌 그리 길더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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