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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링컨 대통령의 흑인 노예제도 폐지와 미국 남북전쟁(내전)

by 도생(道生) 2016. 8. 6.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분열과 대립의 상황, 링컨 대통령의 흑인 노예제도 폐지와 

미국 남북전쟁(1861~1865, 내전內戰)

 

 

 

 

 

 

 

 

 

 

 

 

미국의 남북전쟁은 미국이 유일하게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한 것이 아니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내부 분열과 첨예한 대립이 만든 내전(內戰)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미국 북부의 흑인 비율은 전체의 약 1%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도시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다.

반면 미국 남부 지역은 흑백인종 포함하여 전체인구의 약 30%가량이 흑인이었고전체 흑인의 95% 몰려 있었다.

한마디로 흑인 노예를 부리는 농장주 대다수가 남부 백인이고 흑인 노예의 절대다수 미국 남부지역에 편중되어 있었다.

 

 

 

 

미국 남부에 흑인이 편중되어 있었던 이유는 남부와 북부의 경제 구조 차이다.

미국의 북부지역은 건국(1776) 전후에는 무역과 공업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지역민들로 노동력이 충당되었으나 남북전쟁(1861~1865)에 즈음하여서는 산업화, 도시화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업 중심으로 도시화한 미국 북부에서는 다수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흑인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게 되었다.

농경 중심의 미국 남부는 18세기 말에 발명된 조면기(목화에서 솜을 분리하는 기계)로 흑인 노예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백인 농장주는 돈 벌어주고 마음대로 부려 먹을 흑인 노예가 계속 필요했다.

 

 

 

 

 

 

 

 

 

 

 

 

미국의 남북전쟁(내전) 노예제 폐지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이 내전으로 치달을 정도로 최악의 분열과 대립을 시작한 것은 1780년 펜실베이니아 주의 노예해방법이 통과되면서부터다.

이후 미국 북부의 여러 지역에서 흑인 노예제도 폐지가 되었다

 

 

 

미국 부지역과 남부지역의 갈등이 지속하던 중 1820년 북위 3630분을 경계로 미국 북부는 노예제도 폐지한 지역으로남부는 노예제도를 존속한다 미주리 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이 협정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던 미국은 새로운 영토가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한다

미국의 내전(內戰)인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1846~1848)에서 승리하며 서부와 남부 지역 영토를 확장했다. 미국이 전쟁에서 얻은 새로운 영토에 노예제를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또다시 대립하며 분열한다.

 

 

 

 

 

 

 

 

 

 

 

 

당시만 해도 미국 흑인 노예제도는 연방의 권한이 아니라 ()의 법에 따랐다.

미국은 국가보다 식민주의 시절 주()가 먼저 만들어졌고 합병한 주()가 모여 영국과의 독립전쟁에 승리하며 국가를 건국한 특수성 때문에 각 주()마다 권한(권리)이 있었다.

 

 

이러한 논리를 주장하는 () 정부는 연방 정부와 계속 대립하였다.

미국 내부는 이런 이해관계로 지역적 분열과 정치적으로도 첨예하게 대립하다 미국 남부 지역의 주()가 하나 미국 연방을 탈퇴한다

 

 

 

 

 

 

 

 

 

 

 

 

1860년 미국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남부에서는 링컨 대통령 당선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흑인 노예제도 확장을 반대하였던 링컨이 혹시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할까 봐 우려했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흑인 노예제도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흑인 노예제도가 미국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 가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뒀던 정치인이다.

 

 

 

미국 제15대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퇴임을 얼마 앞둔 186012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가 가장 먼저 연방 탈퇴를 선언하였다.

 

뒤를 이어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 플로리다, 앨라바마, 조지아 주() 등 미국 남부의 총 7개 주()186128일 아메리카 연합국(남부 맹방)이라는 국명으로 정부를 수립한다. 이후 아칸소, 버지니아,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주(州)가 연방을 탈퇴하여 아메리카 연합국에 가입하였다.

 

11개 주()가 연합한 아메리카 연합국의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 부통령은 알렉산더 스티븐스였다.

 

 

 

 

 

 

 

 

 

 

 

 

 

미국 북부지역의 23개 주()의 약 22백만 명 인구의 아메리카 합중국과 미국 남부지역의 11개 주() 연합한 약 9백만 명에 달하는 아메리카 연합국의 미국 남북전쟁은 만 4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북부군의 승리로 끝났다.

 

 

18644월 사우스캐롤라니아 포스트 섬을 시작으로 전쟁 초기 남부군이 일부 지역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북부군은 백인을 비롯한 유럽 출신 이민자와 흑인이 포함된 다수 군인, 그리고 산업화와 경제적인 뒷받침을 바탕으로 신무기와 다량의 군수물자를 동원하여 결국 남북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기 전() 1863년 링컨 대통령은 흑인 노예제도 폐지의 노예해방을 선언한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5년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노예해방과 1867 14조의 시민권보장, 1870년 제15조의 투표권 부여로 흑인 노예제도는 완전하게 폐지되어 약 4백만 명의 흑인이 노예라는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미국의 내전 남북전쟁에서100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전쟁 중 약 62만 명의 사망자 가운데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보다 질병으로 말미암은 사망자가 더 많았다. 미국의 내전 남북전쟁은 미국이 건국 후 240년 동안 치른 전쟁 중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최악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정치적, 사회적으로 급속하게 변모하며 산업화를 이룬다.

남북전쟁을 끝나고 국가 재건에 돌입한 미국은 대륙을 연결하는 철도와 서부개척 등 국토개발과 공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실공히 제국주의로 발돋움한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의 흑인 노예제도 폐지와 미국의 남북전쟁(내전) 흑인 노예해방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익을 좇은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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