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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쟁(페르시아만 전쟁) - 미국 참전

by 도생 2016. 8. 28.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 - 걸프 전쟁(페르시아만 전쟁, 1차 걸프전) 미국 참전

 

 

 

 

 

 

 

 

 

 

 

 

 

1968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군사 쿠데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사담 후세인은 정치적 기반을 굳혀가며 이라크 내에서 제2인자로 자리 잡았다. 1977년 이라크 부통령에서 1979년 바크르 대통령이 사임하자 제5대 이라크 대통령이 되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1980년 이란을 침공하면서 8년 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을 벌어진다.

이란은 1979년 팔레비 왕조의 입헌 군주제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으로 시아파 지도자 사이이드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고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표면적으로는 1975년 이란과 이라크 두 나라 간에 체결된 국경협정(알제협정)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하지만, 사실 이라크의 소수 종파인 수니파 출신의 후세인은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신정(神政)체제가 중동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고 페르시아만 지역의 패권을 잡기 위해 이란을 침공한 것이다.

 

 

 

 

1970년대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남겼던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팔레비 왕의 미국 입국을 허가한다. 이 문제로 이란의 일부 강경파가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였고, 미국 외교관 등 70여 명이 인질이 된다.

 

미국은 즉각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가하였고, 미군 특공대의 인질구출작전 실패, 수차례의 협상 결렬 등이 이어지다가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서로가 타협점을 찾아 미국대사관 점거 인질이 석방되었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으로 끝이 났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소련, 영국과 프랑스 등은 100만 명 이상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막대한 무기를 팔아 돈을 벌었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최신무기를 수입하여 이란-이라크전쟁에 사용하였고, 이란과 감정이 좋지 않았던 미국 역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한다. 이라크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쿠르드 반군 수만 명이 희생될 때도 미국은 그냥 묵인하였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자본주의 국가가 판매한 무기를 구매하고 군사적 도움을 받은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을 통해 중동의 군사대국이 된다. 이라크는 상비군과 예비군을 포함하여 약 150만에서 200만 명에 가까운 군사와 서방 자본주의 국가가 판매한 최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른바 걸프 전쟁(페르시아만 전쟁)의 명분은 쿠웨이트가 원유를 과잉공급하여 국제유가를 하락시켰다는 것이었다.

 

이라크의 불법적인 쿠웨이트 침공에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제재에 들어갔고, 미국이 주도한 34개 다국적 연합군이 편성되어 이라크에 반격하였다.

 

 

 

 

 

 

 

 

 

 

 

 

 

미국은 걸프 전쟁 중에 약 54만 명이 병력을 동원하며 참전하였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였다.

 

미국은 걸프 전쟁(페르시아만 전쟁) 참전 초기 쿠웨이트와 국경이 인접한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 방어와 미국 군사시설 구축의 '사막의 방패' 작전을 실행하였고, 이후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의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감행한다.

 

 

 

 

 

 

 

 

 

 

 

 

유엔 안보리는 1991년 1월 15일까지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고, 1월 17일부터 다국적군은 약 한 달간 이라크군에 대하여 대대적인 공습을 하였다.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전쟁 중에 쿠웨이트 유정(油井) 700여 개가 불에 타 환경오염으로 한동안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1991년 2월 28일 다국적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걸프 전쟁(페르시아만 전쟁, 1차 걸프전쟁)은 끝이 난다.

이라크는 피해보상 및 유엔 안보리 결의안 등 5개 요구조건을 수용한다. 

 

 

 

 

 

 

 

 

 

 

 

 

다국적군의 전쟁 비용은 약 6백억 달러에 달하였고, 절반 이상을 사우디아라비아가 충당하였다.

다른 전쟁에서도 그랬지만 걸프 전쟁(페르시아만 전쟁)에서도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지구촌의 다른 지역은 제외하더라도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하던 중동의 국가들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걸프 전쟁(1990~1991)을 겪으며 현재까지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최신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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