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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왕조실록

by 도생(道生) 2016. 9.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전주 이씨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太祖)다.

조선은 1대 왕 태조 이성계로부터 대한제국(조선 27대 왕)의 마지막 순종황제까지 총 519년 동안 지속한 단일왕조였다.

 

 

근세조선(朝鮮)의 창업자 1대 왕 태조 이성계(1392년)로부터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25대 왕 철종(1863년)에 이르기까지 472년, 172, 280일간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이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한 편년체 형식으로 총 1,893권 888책의 근세조선 역대 왕조 실록을 모두 합쳐 조선왕조실록이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간 단일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세계 최장의 기록이다.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관한 기록이 모두 담겨 있고 왕으로부터 일반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가 수록된 가히 한 나라의 정보가 담긴 도서관이며 백과사전이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근 5백 년의 단일왕조 역사기록이라는 의의와 함께 공정성과 객관성에서도 인정받았다. 독립적으로 진실에 가까운 역사를 기록한 사관이 편찬한 실록이기 때문이다.

 

 

 

 

 

 

 

 

 

 

 

 

선왕(先王)이 승하하면 당시의 기록을 바탕으로 실록을 편찬하였고, 실록 편찬에 기초가 된 자료는 시간이 흐르면서 추가되었다.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조보,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 사초(史草)를 토대로 실록청을 설치하여 실록을 편찬했다.

 

 

조선의 왕조차도 선왕에 대한 실록을 함부로 볼 수 없었다. 오직 사관만이 사초를 기록, 편찬하고 볼 수 있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사관이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의견을 기록한 사필(史筆, 사론)이 수록되어 있다.

 

 

왕의 권좌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기록은 실록이라 하지 않고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로 되어 있다. 비운의 왕 단종은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로 편찬되었다가 숙종 때 단종실록으로 개수(改修) 편찬된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은 1897년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제후국(諸候國)에서 황제국(皇帝國)으로 국격을 높였다. 대한제국은 조선 왕조의 혈통 및 국가 운영모든 제도를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에 고종황제를 조선의 26대 왕, 순종황제를 조선의 27대 왕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조선 26대 왕)와 순종황제(조선 27대 왕)의 실록은 없다.

왕의 실록은 왕이 붕어(崩御, 승하)한 후 다음 왕이 선대 왕의 실록을 편찬한다.

 

 

 

 

 

 

 

 

 

 

 

 

총칼을 앞세운 일본 제국주의가종황제가 재위 중이었던 109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찬탈하였고, 1910년에는 국권까지 강제로 찬탈하여 선대 왕(황제)의 실록을 편찬할 후대 왕(황제)이 없었기 때문에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은 없다.

 

 

혹자는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조선왕조실록에 포함하지만, 절대 아니다.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에 대한 기록은 실록이라 말할 수도 없고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다른 왕들의 실록처럼 조선(대한제국)의 사관에 의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편찬한 기록물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가 자기들 입맛대로 조작하고 왜곡하며 만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왕과 권력을 잡은 당파와 상관없이 사관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누락하지 않은 깐깐하고 엄정하게 실록을 편찬했다는 것은 사실과 약간 차이가 있다. 

 

때론 권력의 힘으로 일부 수정되고 개수실록이라 하여 재편찬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고, 실록의 상당 부분이 왕실 중심으로 편중되었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이 조선의 모든 역사를 온전하고 진실하게 기록한 절대적인 역사서라고는 할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 때부터 실록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조선의 4대 왕 세종대 때 조선왕조실록을 4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4대 사고 체제가 만들어져 왕조 실록을 나누어 보관한다.

 

 

한양의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에 나누어 보관하던 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한양, 충주, 성주 사고가 방화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전주 사고에 있던 실록만 정읍 태인에 살던 안의(64세), 손홍록(56세) 두 사람이 가솔들을 데리고 전주로 가서 실록을 정읍 내장산 은봉암에 숨겨 놓아 보존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주본을 바탕으로 복간된 실록은 4대 사고는 태백산, 묘향산(後 적상산), 오대산, 강화도 마리산(後 정족산) 등 산속 깊은 곳에 실록이 보관된다.

 

 

일제강점기 오대산에 보관되어 오던 사고본을 일본 제국주의가 훔쳐서 갔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화재로 대부분 불탔다며 불과 27책만 반환하였다. 그런데 1980년대 일본 도쿄대 도서관에 몰래 보관하던 중종실록 29책, 선조실록 8책, 성종실록 9책 등 전체 47책이 보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1960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1965년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라는 조항이 담긴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하였고, 이 때문에 일본이 약탈해간 소중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반환 청구권도 소멸하였다. 그래서 일본 도쿄대는 일제강점기 반출하여 숨겨왔던 오대산본을 대한민국에 정식으로 반환을 하지 않고 기증형식을 취하여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정족산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고, 태백산본은 부산기록관(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가져가 김일성종합대학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왕조실록을 1973년 12월 31일 국보 제151호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지금의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안의, 손홍록 두 사람이 없었다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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