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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왕의 묘호 조(祖)와 종(宗)의 차이

by 도생(道生) 2016. 9. 3.

근세조선 27명 왕의 묘호(廟號) - 조(祖)와 종(宗)과 군(君)의 차이

 

 

 

 

 

 

 

 

 

 

 

 

 

 

유자(儒者, 유교)의 나라 조선은 군사부일체 가치관을 주장하는 성리학의 나라다.

그래서 군주(君主)는 왕이며 스승이며 어버이였다.

 

 

나라의 녹을 먹는 신하와 백성은 지존한 임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왕을 부를 때는 전하(殿下)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또, 왕의 이름은 일반백성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를 사용하였으며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일반백성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지방을 써서 제사를 모시고,

관직에 있다가 돌아가신 조상님에게는 살아생전의 관직명을 써서 모시고 제사를 지낸.

 

 

 

부모와 조상이 돌아가시면 지방(위패)를 써서 제사를 모시듯, 임금이 승하하면 묘호(廟號)를 쓴 신주(神主)를 종묘에 봉안한다.

묘호(廟號)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왕이 승하하고 신위를 종묘에 안치할 때 선왕의 공덕을 기려 붙여지는 이름이다.

 

종묘에 봉안된 조선 역대 왕들의 신위에는 조(祖)와 종(宗)의 묘호가 붙는다.

현재 종묘에 봉안된 조선왕의 묘호는 조(祖)와 종(宗)의 차이가 있다.

 

조선왕의 신주와 함께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로 추존 황제(황후) 및 고종황제, 순종황제와 황후의 묘호가 모셔져 있다.

 

 

 

 

 

 

 

 

 

 

 

 

조선의 25명 왕 중에서 묘호(廟號)에 조(祖)가 붙은 임금은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의 대왕이 있고,

묘호에 종(宗)이 붙은 임금은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예종, 성종, 중종, 인종, 명종, 효종, 현종, 숙종, 경종, 헌종, 철종 등 16명의 대왕이 있다.

 

 

조선의 26대 왕과 27대 왕인 고종과 순종은 1897년 고종이 중국(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제후국)에서 자주독립국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기 때문에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로 모셔져 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대왕과 고종황제의 윗대 다섯분 왕의 신위는 황제로 추존되어 있고 왕비는 황후로 추존되어 있다.

 

 

 

 

노산군으로 격하된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숙종 때 단종으로 추존되어 종묘에 봉안됐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폭정으로 임금의 자리에서 폐위되어 조(祖)와 종(宗)의 묘호를 받지 못하고 군(君)이 되었다.

그래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종묘에 모시지 않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대 임금의 기록을 『태조실록』, 『정종실록』 등으로 편찬됐다.

그러나 왕에서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은 『연산군일기(日記)』, 『광해군일기』로 편찬됐다.

 

 

 

 

 

 

 

 

 

 

 

 

 

본래 조(祖)와 종(宗)의 묘호는 황제국(皇帝國, 천자국天子國)만이 사용할 수 있다.

 

고려가 황제국일 때는 조종(祖宗)의 묘호를 사용하였으나,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이 된 후로는 조종의 묘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원나라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의미로 고려 왕의 이름에 모두 '충(忠)' 자를 붙였다.

 

 

 

황제국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와 2대 황제 순종황제를 제외한 조선의 25명의 왕은 조선이 명·청나라의 제후국이기 때문에 조종의 묘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도 4대 조상을 추존할 때 목왕, 익왕, 도왕, 환왕으로 추존했다.

황제국 명나라는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강헌왕의 시호를 내렸다.

황제국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제후국의 나라 조선의 왕이 승하하면 '0 0 왕(王)'의 시호를 내렸다.

 

 

조선이 명나라에 사대(事大)하였지만, 조선 건국 초기를 제외하면 조선(대한제국)이 문을 닫을 때까지 조종의 묘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1대 왕(이성계)에게 태조(太祖)의 묘호가 붙여졌다.

그리고 조선왕의 묘호 조(祖)와 종(宗)은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의 후대 왕이 선대왕의 묘호를 종(宗)에서 조(祖)로 바꾸기도 한다.

군력자의 의지에 따라 묘호가 바뀐 사실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종법(宗法) 질서에는 '창업지군칭조', '계체지군칭종', '조공종덕', '입승왈조 계승왈종' 등의 기준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올바르게 적용된 것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라 한다. 

태조 대왕 이후 선대왕의 묘호를 정하면서 여러 기준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창업지군칭조(創業之君稱祖)

새롭게 나라를 연 임금을 조(祖)라 한다.

 

조선왕 27명 중 묘호에 조(祖)가 붙은 임금은 7명이다.

 

 

 

 

계체지군칭종(繼體之君稱宗)

부자간, 즉 직계로 임금(왕)이 계승되었을 때 종(宗)이라 한다.

 

묘호가 먼저 올려진 조선의 3대 왕 태종은 2대 왕 정종의 아들이 아니었고, 11대 왕 중종 역시 연산군의 아들(세자)가 아니다.

 

 

 

 

입승왈조(入承曰祖) 계승왈종(繼承曰宗) 

세자가 아닌 사람이 임금이 되면 조(祖)라 하고, 세자가 왕위를 계승하면 종(宗)이라 한다.

 

순조는 정조의 세자였다가 조선의 23대 왕이 되었으나 묘호에 조(祖)가 붙었다. (철종 때 바뀜)

 

 

 

 

유공왈조(有功曰祖) 유덕왈종(有德曰宗) = 조공종덕(祖功宗德)

공이 있는 임금을 조(祖)라 하고 덕이 있는 임금을 종(宗)이라 한다.

 

조선의 14대 왕이 승하하자 광해군은 선종(宣宗)의 묘호를 올렸다가 광해군 8년에 선조(宣祖)로 묘호를 바꾼다.

인종은 효종에 의해 인조(仁祖)로 묘호가 바뀌었다. 

 

 

 

 

 

 

 

 

 

 

 

 

 

 

순종(純宗)은 1857년(철종 8년) 순조(純祖)로 묘호가 바뀌었고,

영종(英宗)은 1889년(조선 고종 26년)에 영조(英祖)로 묘호가 바뀌었다.

정종(正宗)은 1899년(대한제국 광무 3년)에 정조(正祖)로 묘호가 바뀌었다.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있던 조선의 3대 왕 태종은 2대 왕 정종이 승하했을 떄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정종이 승하할 때 왕(세종 1년)이었던 세종 역시 조선의 2대 왕 정종에게 묘호를 올리지 않는다. 

정종은 260여 년 동안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종 묘호를 올리게 된다.

 

 

 

 

조선의 4대 왕 세종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태종(太宗)이란 묘호를 올린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와 버금가는 위격으로 태종 묘호를 올렸다.

 

 

종법(宗法) 제도에서 묘호를 붙일 때 태(太)자는 나라를 창업한 시조와 2대 군주에게만 붙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조선의 2대 왕 공정 대왕(정종)은 260여 년간 묘호도 없이 종묘에 모셔졌고, 3대 왕인 이방원에게 태종의 묘호가 붙여졌다.  

처음과 시작이라는 의미가 담긴 태(太)는 조선 왕조에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두 임금묘호에만 클 태(太)자가다.

 

 

 

 

 

 

 

 

 

 

 

 

조(祖)와 종(宗)의 문제는 후대로 갈수록 조(祖)를 높게 보는 경향이 생겼다.

바로 조종공덕(祖宗功德) 때문이다.

종(宗)의 묘호가 붙은 왕의 묘호를 조(祖)로 바꾸기 위해 후대 왕이 선대왕의 공덕을 부풀리는 일도 발생한다.

 

 

 

조선의 왕들 묘호는 모두 대왕이다.

조선 26대 왕 고종이 제후국 조선에서 천자국(황제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를 태조고황제로 추존하였고 윗대 5대조 묘호를 황제로 추존하였다.

 

 

 

종묘에 봉안된 조선왕의 묘호 조(祖)와 종(宗)의 차이에서 나타나듯, 조종(祖宗)의 변천사를 보면 조선 왕실의 종법(宗法) 질서에 기준과 원칙이 있는 것 같으나 시대와 환경, 그리고 권력자(임금)와 힘을 가진 권력세력(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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