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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종묘와 사직단(종묘사직)

by 도생(道生) 2016. 9. 4.

조상신에게 제사 지낸 종묘(宗廟)와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社稷壇)

종묘사직(宗廟社稷) - 종사(宗事)

 

 

 

 

 

 

 

 

 

 

 

 

 

 

종묘(宗廟)와 사직단(社稷壇)에서 행해진 종묘제례와 사직대제 문화가 유교의 유습(遺習)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경건하고 엄숙하게 법도에 맞춰 절도있게 진행되는 종묘제례와 같은 문화가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화려하게 꽃피웠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 2,500여 년 전 유교를 창시했다는 공자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동방에서는 하늘의 상제님과 나를 낳아준 육신의 하나님으로서 조상님을 모시는 전통문화가 있었다. 

 

종묘와 사직단의 제례 문화는 천도(天道)의 이상을 땅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유교가 역사의 흐름과 함께 국가와 사회제도, 인간 삶의 문화로 정립한 것이다. 

 

 

 

 

 

 

 

 

 

 

 

 

하늘의 상제님과 조상님을 모시는 문화는 인류 창세 역사부터 시작하였다.

한민족과 중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는 하늘에 천제를 올린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의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종묘와 사직단은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을 따라 만들어졌다.

음양오행 사상은 약 5,600년 전 태호복희씨로부터 시작된다.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천황의 12번째 아드님이시다.

 

 

 

 

종묘제례와 사직대제는 예악(禮樂) 문화다.

 

예(禮)는 질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의 질서가 예의다.

예는 공경하고 보은(報恩)하며 분별(구별)하여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악(樂)은 조화(造化)요 화합하여 하나가 됨이다. 조화(造化)는 하모니(harmony)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모두 조화롭게 상생하여 하나 되는 것이 악(樂)이다.

 

 

종묘와 사직단이 만들어지고, 종묘제례와 사직대제가 행해진 사상적 문화적 근간이 바로 인류 창세 역사의 천제문화(天祭文化)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종묘(宗廟)와 사직단(社稷壇)은 조선의 최고 제례시설로 가장 신성한 곳이다.

1395년 경복궁, 종묘, 사직단이 함께 건립되었다.

'종묘사직'은 왕이 정사를 보던 경복궁과 함께 국가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우리가 TV 사극을 보면 신하가 임금에게 "종사(宗社)를 돌보소서"라는 말을 하는 데 이때의 '종사'는 '종묘사직'을 일컫는다.

그래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은 나라와 왕실을 모두 아우르는 범칭(汎稱)이다.

 

종사(宗社), 즉 '종묘사직'은 돌아가신 조선의 역대 왕(왕비)토지와 곡식의 신(神), 즉 조상신(神) 자연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임금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경복궁(景福宮)은 조선 왕조의 첫 궁궐이며 왕이 정사를 보는 조선의 중심이다.

종묘(宗廟)와 사직단(社稷壇)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에 따라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단이 있다.

 

 

 

 

 

 

 

 

 

 

 

 

종묘는 조선 왕조 임금의 정통성과 정신적 근간이다.

 

종묘(宗廟)는 조선(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봉안된 곳이다.

종묘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고 1395년에 정전(正殿)이 완공됐다.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은 1421년(세종 3)에 지어졌다. 종묘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광해군(1608년) 때 다시 지어졌다.

 

 

 

 

본래 정전에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와 현 임금의 4대조에 해당하는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다. 그리고 4대가 넘어가면 영녕전으로 옮겨 모셨다. 그러나 후대 임금이 자신의 정통성과 선대 임금의 공덕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 원칙은 깨졌다.

 

 

두 곳 모두 돌아가신 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지만, 일반적인 사당이 아닌 임금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모셔진 대궐이란 의미다.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에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모셔진 또 다른 대궐이다.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선포로 황제(皇帝)로 추존된 신주를 정전에 봉안한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고황제를 비롯하여 정조선황제(정조), 순조숙황제(순조), 문조익황제(헌종의 父 추존), 헌종성황제(헌종), 철종장황제(철종), 고종태황제, 순종효황제의 신주와 황후들의 신주(神主)가 모셔져 있다.

 

 

 

1931년 일본 제국주의는 동궐(동쪽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과 종묘(宗廟) 사이를 관통하는 길을 만들어 종묘의 북신문(北神門)이 사라졌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으로 만들어진 도로가 지금의 율곡로다. 종묘는 가로 109m, 세로 69m, 대 위에 가로 길이가 101m로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종묘의 공민왕 신당에는 고려의 공민왕과 왕비 노국공주도 모셔져 있다.

종묘의 공신당에는 창업 공신 조준, 이지란을 비롯하여 율곡과 퇴계 등 83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宗廟)는 1963년 사적 125호로 지정됐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01년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직단(社稷壇)은 땅의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다.

사(社)는 토지의 신(神), 직(稷)은 곡식의 신(神)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神, 국토지주國土之主)에게 제사를 지내는 국사단(國社壇)은 동쪽, 곡식의 신(神, 오곡지장五穀之長)에게 제사를 지내는 국직단(國稷壇)은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서울 사직단 대문은 1963년 보물 177호로 지정되었고, 사직단은 같은 해에 사적 121호로 지정되었다.

한양 한 곳에만 있던 종묘와는 달리 사직단은 팔도(八道)의 부목군현 등 300여 곳에 설치하여 제사를 올렸다.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으로 팔도(八道)에 있던 사직단이 허물어져 사라졌다.

 

 

 

 

 

 

 

 

 

 

 

 

일본 제국주의는 1911년 사직대제(社稷大祭)를 폐지하였다.

1922년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이었던 사직단에 사직공원을 만들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공원 조성을 이유로 사직단 주변에 있던 13개의 전각을 훼손하고 철거해 버렸다.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땅의 신(神)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은 정방형 제단으로 네모난 모양이다.

사직단이 네모난 모양을 한 것은 하늘은 원만하고 땅은 방정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단(天壇)은 둥근 원형, 지단(地壇)은 반듯한 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단 형식은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이다.

 

 

 

 

 

 

 

 

 

 

 

 

 

황제(皇帝)는 천자(天子)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 하늘의 상제님을 대행하여 인간을 다스린다)로서 하늘의 아들이다.

 

하늘의 신(神), 즉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제국 황제(천자)만이 천단(天壇)에 올라 천제를 올릴 수 있다.

중국(명나라 청나라)의 속국(제후국)이었던 조선은 명나라의 압력에 세조 10년(1465년) 하늘에 천제(天祭)를 올리던 제천단이 폐지된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은 1897년 천하 만방에 자주독립국임을 알리며 황제(천자天)의 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한다.

고종황제는 원구단(圓丘壇, 환구단)을 지어 우주의 주재자이신 하늘의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렸다.

 

1912년 일본 제국주의는 철도 호텔을 짓는다며 원구단(환구단)을 철거하였다.

환구단의 위치는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로 현재는 황궁우(皇穹宇)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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