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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14대 왕 선조대왕(붕당정치) 이연

by 도생(道生) 2016. 9. 18.

근세조선 14대 왕 선조(宣祖)대왕(붕당정치) 이연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1552~1608)은 조선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의 사후(死後) 양자(養)다.

명종대왕과 왕비 인순왕후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13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명종은 7명의 후궁 사이에서도 아들을 얻지 못하고 끝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선조대왕 이연이 조선왕조 최초로 방계(傍系)혈통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후사가 없었던 명종대왕의 보위를 이을 사람으로 일찍이 낙점되었던 조선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은 조선 11대 왕 중종대왕 이역과 후궁 창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군 이초의 셋째 아들이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은 1567년 16살에 즉위하여 13대 왕 명종대왕의 왕비 인순왕후가 약 1년간 수렴청정하였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랐고 직계가 아닌 방계로 왕위에 올랐지만, 선조대왕 이연은 위축되거나 기득권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국정을 펼쳐나갔다.

 

 

 

훈구세력과 척신 세력을 조정에서 밀어내고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같은 사림 세력을 대거 중용했다.

과거제도 현량과를 부활시키고,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를 복권하여 영의정으로 추증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등에 의해 피폐해진 민심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국정을 쇄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선조대왕이 중용한 사림 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붕당(朋黨, 이념과 이해관계로 나누어진 선비 집단) 정치를 이루게 된다.

 

사림 세력의 동인과 서인이 분열된 것은 이조전랑의 자리를 놓고 김효원(동인)과 심의겸(서인)의 알력싸움에서 비롯됐다.

선조대왕의 근시안적 판단인지 조정 대신들의 밥그릇 싸움인지 조선 조정은 붕당정치로 싸움판이 되었다.

 

동인은 주리론의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제자였고, 서인은 주기론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제자들이었다.

 

 

 

 

 

1589년 정여립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으로 시작된 기축옥사(己丑獄事) 피바람이 일어난다.

 

1589년 정여립은 자결했지만, 역모사건은 3년 동안 진행됐고 그 파장으로 동인은 큰 희생을 치렀으며 기축옥사로 무고한 사람도 죽었다. 기축옥사를 계기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됐다.

 

동인(남인과 북인)과 서인의 붕당정치는 임진왜란 중에도 소용돌이에 빠져들며 싸움이 계속됐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만 200년이 된 1592년 4월 13일 조선 건국 이후 최대의 국난이 닥쳤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신무기로 무장한 20만 명의 대군은 부산포에 상륙하였고 불과 20만에 조선왕조의 도성 한양을 점령한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연은 일부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도 한밤중에 도성을 몰래 빠져나와 도망갔다.

왜군이 2달 만에 평양을 함락하자 선조대왕은 의주로 도망갔다.

 

 

 

 

백성의 눈에는 조선의 왕도 없었고 충성스러운 신하도 없었다.

오직 종묘사직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도망가는 불쌍한 인간들뿐이었다.

 

참혹함 속에서도 승리를 전해준 곳은 바다의 이순신 장군, 권율과 김시민 등의 극소수 장군들과 조선의 백성으로 의연히 일어난 의병들이었다.

 

 

 

 

 

 

 

 

 

 

 

 

 

 

1593년 조선의 간청으로 명나라 군대가 임진왜란에 개입하면서 왜군은 양 도성을 버리고 남하한다.

일본과 명나라는 강화회담에 들어가고 전선은 고착화된다.

 

그러나 강화회담이 결렬되면서 일본의 2차 침공이 일어난다. 바로 정유재란(1597년)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이 사망하면서 왜군이 철수하며 전쟁은 끝이 난다.

 

 

 

 

1598년 7년간의 길고 긴 전쟁을 끝낸 조선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은 잿더미가 됐고, 실록은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불탔다.

경작지의 3분의 1일 파괴되고, 사망자가 최대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1599년 대신들의 반대에도 여진족을 토벌한다.

재위 중 주자대전 교정본 소학언해』 등을 간행하였다.

 

선조대왕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선조 이후 조정은 반목과 대립의 붕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선조대왕 때부터 시작된 붕당정치의 폐해는 단순히 정치적 이념과 의견 대립이 아닌 피바람을 예고한다.

 

  

 

조선의 14대 왕 선조대왕 이역은 1608년 승하하였다.

묘호는 '선종(宣)'에서 광해군 8년 '선조(宣祖)'로 바꾸었고, 시호는 ‘선조소경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계통광헌응도융조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啓統光憲凝道隆祚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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