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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성군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 여흥 민씨

by 도생(道生) 2016. 10. 6.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며 성군(聖君) 세종대왕의 어머니, 여장부 원경왕후 여흥 민씨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며, 조선 4대 왕 성군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는 여흥 민씨다.

조선왕조에서 여흥 민씨 집안 규수가 조선의 국모(國母)인 중전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 총 4명이다. 

 

 

 

조선의 19대 왕 숙종대왕의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도 여흥 민씨이며,

조선의 26대 왕이며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황제의 황후 명성황후도 여흥 민씨이고.

조선의 27대 왕이며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황제의 황후 순명황후도 여흥 민씨다.

 

 

 

 

 

태종 이방원은 2살 연상의 원경왕후 여흥 민씨와 혼례를 올렸다. 

두 사람의 혼례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 것이기도 했으며 또한, 정치적 동반자와의 만남이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는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처 여흥 민씨를 정녕옹주(靖寧翁主)로 책봉한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여흥 민씨는 양녕대군 이제, 효령대군 이보, 충녕대군 이도, 성녕대군 이종과 정순공주, 경정공주, 경안공주, 정선공주 등 4남 4녀를 두었다.

 

 

 

 

 

 

 

 

 

 

 

 

 

 

원경왕후 여흥 민씨는 남편 이방원을 조선의 3대 왕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총명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도록 뒤에서 심혈을 기울인 내조자이며 정치적 동반자였다.

원경왕후의 동생 민무질, 민무구 형제도 매형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큰 공을 세웠다.

 

 

 

 

 

조선 창업 초기였던 조선은 아직도 고려왕조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었고 이곳저곳에서 고려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태종 이방원에게는 무엇보다 왕권을 강화하고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태종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정안정을 위해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비정한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

조선의 밝은 미래 태평성대를 열기 위해 조선을 기틀을 다지는 과정 태종 이방원은 타고난 영민함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공신과 외척(처족)을 처단한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태종 이방원 자신이 다 받았으며 탄탄한 왕권과 국정안정의 기틀이 다져진 가운데 성군 세종대왕이 나왔다.

 

 

 

 

 

 

 

 

 

 

 

 

 

 

조선의 창업공신과 함께 태종의 처족, 즉 원경왕후의 동생 민무구, 민무질 형제도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조선왕조를 하루빨리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한 태종 이방원에게 처남들을 숙청했다.

 

 

 

 

태종 이방원은 창업 공신과 외척도 왕권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거침없이 처단했다.

권력은 부모 형제 처자와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태종 이방원의 극약처방이었다.

 

 

태종 이방원은 선위(禪位)를 핑계로 권력에 빌붙으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냈다.

특히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왕세자(양녕대군)가 다음 보위에 오르면 민씨 일가 외척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왕세자였던 큰아들 이제(양녕대군)는 아버지 태종 이방원과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국, 양녕대군 때문에 권력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원경왕후의 동생이며 왕자와 공주들의 외삼촌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아버지 민제는 마음에 병을 얻어 죽었고, 민무휼과 민무희도 남편 이방원에 의해 죽었다.

 

 

 

 

 

 

 

 

 

 

 

 

 

 

 

 

아들 양녕대군이 원인이 되어 남편 태종 이방원의 명에 의해 원경왕후 여흥 민씨 가문은 멸문의 화를 입는다.

친정동생들이 관련된 일련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원경왕후 민씨는 폐위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인생의 반려자와 정치적 동반자였던 남편을 조선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받쳤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와 친정이 멸문의 화를 입은 것이었다.

 

 

 

 

새 나라 조선이 건국되고 남편 이방원이 조선의 3대 왕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된 원경왕후 여흥 민씨는 꿈이 이루어진 듯했다.

그러나 정치적 동반자였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친정이 멸족의 화를 당하고 자신마저 고립되는 상황에서 정치와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며 보냈다.

 

 

 

 

 

 

 

 

 

 

 

 

 

 

 

1418년 왕세자였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조선의 4대 왕 세종으로 즉위한다.

1420년(세종 2년)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며, 조선의 4대 왕 성군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 여흥 민씨는 56세를 일기로 승하한다.

 

 

 

 

고려 명문가의 딸로 태어난 여흥 민씨는 대담하고 당찬 여장부였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남편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였다.

 

말년에 불교에 귀의한 원경왕후 여흥 민씨는 아버지와 4명의 동생, 그리고 요절한 막내아들 성녕대군의 명복을 빌며 조선의 국모로 살았던 21년간의 영욕의 세월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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