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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을사늑약(을사조약)

by 도생(道生) 2016. 10. 23.

탐욕에 눈먼 제국주의 국가 일본과 미국의 밀약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대한제국 외교권 강탈사건 1905(을사乙巳)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사조약)

 

 

 

 

 

 

 

 

 

 

 

 

 

 

 

밀약(密約)은 약속을 한 두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맺은 비밀 약속이다.

늑약(勒約)은 소와 말에게 굴레를 씌워 억지로 끌고 가듯 무력 또는 강압에 의해 억지로 맺은 불평등한 강제협정을 말한다.

반면, 조약(條約)의 문자적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 간에 합의된 내용을 문서에 명시적으로 기록한 국제협정을 말한다.

 

 

 

격변의 20세기 초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영토 확장과 탐욕에 눈이 멀어 식민지 쟁탈전에 미쳐 날뛰던 시기였다.

동서양 제국주의 국가는 약소국 침탈을 위해서 침략전쟁도 불사했고 식민지 확대를 위해 제국주의 국가 간에 야합도 했다.

 

 

 

 

 

 

 

 

 

 

 

 

 

1904년 2월 8일 여순항 해전으로 러일전쟁을 시작한 일본 제국주의는 1904년 2월 23일 총칼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한다. '한일의정서'는 대한제국이 일본을 돕도록 한반도를 일본의 군사 기지화하는 내용이다. 

 

 

1904년 8월 22일 일본 제국주의와 대한제국 간에 '제1차 한일협약(한일 외국인 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이 체결된다.

대한제국의 외교 문제를 사전에 일본과 협의하여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조약 = '제2차 한일협약' 을사늑약)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 전쟁이었으며, 한반도는 두 나라의 영토 확장 쟁탈전의 중심에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의 러일전쟁은 1904년부터 시작됐고, 1905년 5월 일본이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파한 쓰시마 해전 승리로 '포츠머스 조약'에서 유리한 입장이 된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러시아가 물러간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는 1905년 7월 29일 대한제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미국 제국주의와 극비리에 밀약을 맺는다.

 

 

 

 

 

 

 

 

 

 

 

 

 

 

일본 제국주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 장관이 밀약한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 제국주의는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서로 묵인하고 인정한다는 침략자들의 야합이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일본 총리와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미국 제27대 대통령(1909~1913)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는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의 항구 포츠머스에서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한다. 일본과 러시아의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은 한반도에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1905년 9월 5일 일본과 러시아의 '포츠머스 조약' 이전인 1905년 7월 29일 일본과 미국은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반도를 일본 제국주의의 대한제국 침탈을 묵인하고 인정하는 야합을 했다.

 

 

 

 

1882년(고종 19) 조선과 미국 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됐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제1조는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 및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조선(대한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제3국으로부터 부당하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서로가 문제 해결을 위해 돕니다는 의미다. 조약은 국제법에 따라 국가 간에 합의된 내용을 명시한 약속이다.

 

미국은 조선(대한제국)을 버렸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 간 약속인 조약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국가 간의 조약은 안 지킨 미국은 태생부터가 총칼로 시작한 나라이며 지구촌 역사에서 가장 많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전쟁을 하는 나라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에 이어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외교권을 강탈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맺는다.

일본 제국주의와 대한제국 사이에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늑약(을사조약)'은 국제법상 두 나라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합에 의한 협정이 아니므로 '을사보호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 맞다.

 

 

 

'을사늑약(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강탈당한 대한제국은 실질적인 통치권을 상실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일제의 특명전권대사로 온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겁박에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법무대신 이하영, 탁지부(기획재정부 장관)대신 민영기, 참정대신(총리) 한규설은 을사늑약(을사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대한제국 대신(장관) 8명 중 을사늑약(을사조약)에 찬성하고 서명한 외무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내무대신 이지용,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이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 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강압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을사조약)'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자필 서명과 옥새가 찍혀 있지 않다.

'을사늑약(을사조약)'은 대한제국 각료(을사오적)의 형식적인 의결만 있고, 공식적인 명칭도 없다.

외무대신일본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관인있다.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늑약(을사조약)'은 일본 제국주의가 불법적이고 강압적이며 불평등한 늑약(勒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1905년 11월 22일 조선통감부(조선총독부 전신)를 설치하고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초대 총감으로 부임한다. 

 

 

 

일본 제국주의는 '을사늑약(을사조약)'이 한일간에의가 잘 이루어진 조약인 것처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고종황제가 조약체결 당시 자리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학부대신(교육부장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은 '을사늑약'을 '보호조약'이라고 주장했다.

친일 매국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보호조약'은 광복 후 이희승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을사보호조약'이 되었다.

 

 

 

 

'을사늑약'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한 행위였지만, 그미국과 일본이 상대방 국가가 필리핀과 대한제국 침탈을 묵인하고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먼저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을 맞은 지 7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을사늑약'을 '을사보호조약'으로 기술되어 있는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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