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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붕당정치의 전개와 폐해-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by 도생(道生) 2016. 10. 27.

 

조선왕조 붕당정치(사색당파)의 전개와 폐해

동인에서 분열된 남인과 북인, 서인에서 분열된 노론과 소론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왕조는 몇몇 무장(武將)을 제외하고는 선비가 조선 창업을 주도했고, 조선 패망에 직접 관여했다.

 

 

 

조선은 성리학(주자학)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경영하였다.

조선의 군주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한편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다.

 

  

 

 

조선의 선비 역시 군주와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통해 천지의 이치(자연의 법칙)를 공부하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군주(임금)를 보필하고 국가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성리학적 이상국가 건설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을 잘못한 일부 선비는 권력에 대한 탐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권력 투쟁을 일삼고 권력을 전횡한다.

 

 

 

 

 

 

 

 

 

 

 

 

 

 

조선 중엽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이 기호학파를 이끌었고,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영남학파를 이끌었다.

율곡, 성혼, 퇴계, 남명 등 각기 학파가 있었지만, 큰 틀에서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구분된다.

지역적으로는 경기도, 충정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가 양대산맥을 구축했다.

 

 

 

우주의 법칙을 공부하는 것이 성리학(주자학)이다.

단순히 관념적인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질서(법칙)가 인류 역사와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나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을 본질과 현상, 즉 체(體)와 용(用)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해석하는 방식의 차이가 주기론과 주리론이다.

 

 

 

주기론(主氣論,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기호학파와 주리론(主理論,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영남학파가 붕당정치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나, 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됐다고는 할 수 없다.

 

 

 

 

 

 

 

 

 

 

 

 

 

 

 

붕당정치의 전개 - 동서분당(東西分)

 

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은 김효원과 심의겸 때문이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영남학파 출신이 김효원이다.

심의겸은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 14대 왕 선조 때 이조전랑의 자리를 두고 대립한 김효원과 심의겸에 의해서 붕당정치가 동서로 분당하였다.

 

 

조선의 선비 세력이 정치적으로는 동서로 분당하였고, 학문적으로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분열됐다.

붕당정치의 전개가 처음에는 이조전랑 자리문제로 시작되었다.

그래도 초기에는 학문과 사상적 대립격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쟁의 도구가 되었다.

 

 

왕이 기거하는 궁궐을 중심으로 동쪽에 사는 김효원과 지지자는 동인이 되고,

궁궐을 중심으로 서쪽에 사는 심의겸과 지지자들이 서인이 되었다.

동인의 주류는 영남학파였고, 서인은 기호학파가 주류를 이뤘다.

 

 

 

 

 

 

 

 

 

 

 

 

 

 

붕당정치 - 동인은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

 

 

동인은 선조 때 정여립 역모 사건을 계기로 이산해 등의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유성룡, 이덕형 등 남인으로 갈라졌다.

동인에서 분파된 북인은 남명 조식을 따르던 사람이 주류를 이뤘고, 남인은 퇴계 이황을 따르던 사람들이 주류를 이뤘다.

 

 

선조의 아들 영창대군이 태어나고 북인은 광해군지지 세력 대북파와 영창대군 지지세력인 신진 세력인 소북파로 분열한다.

 

 

 

 

 

 

 

 

 

 

 

 

 

 

붕당정치 -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 사색당파 형성

 

 

 

서인은 조선 19대 왕 숙종 때 와서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하였다.

서인 세력은 스승 송시열의 노론과 제자 윤증의 소론으로 갈라진다.

 

노론은 영조 때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강경 벽파와 온건 시파로 분열한다.

 

 

조선왕조 붕당정치의 사색당파(四色黨派)라 함은 동인에서 분열된 북인과 남인, 서인에서 분열된 노론과 소론을 일컫는다.

그러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대북, 소북 등 붕당정치의 폐해는 날로 커졌다.

 

 

 

 

 

 

 

 

 

 

 

 

 

 

 

붕당정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성종 때 공신과 외척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士林, 선비)이 등용되기 시작하면서 붕당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러나 일당독재 정치세력을 견제하고 균형적인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상대파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기 위한 싸움(당쟁)으로 전락하면서 붕당정치의 폐해가 발생하였다.

 

 

 

국론이 분열되고, 나라의 이익보다는 자신이 속한 붕당의 이익을 좇게 되면서 극단적 당쟁의 폐가 발생하기도 했고, 때론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상대와 다른 사람을 음해하기도 했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붕당은 상대파를 무참하게 숙청하는 사화(士禍)를 만들기도 했다.

사화(士禍)는 권력을 독점하려는 치열한 정권 다툼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이다.

 

 

 

붕당정치가 부정적인 면만 부각 돼서 그렇지 긍정적인 면도 많다.

무엇보다 조선 왕조가 500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온 것도 군주를 보필한 신하(선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왕과 외척 세력과 공신 세력의 횡포를 견제하는 등 조정과 균형을 잡는 역할도 하였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는 환국정치에 붕당을 이용하기도 했다.

영조와 정조는 붕당정치의 폐해를 보았기 때문에 탕평책으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한다.

 

 

 

 

 

 

 

 

 

 

 

 

 

조선의 몰락 - 붕당정치보다는 외척 세도정치가 가장 큰 원인

 

 

 

붕당정치가 전개되고 그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때는 조선 23대 왕 순조 재위하던 때에 이르러서다.

정치적 대립과 견제의 붕당정치가 급기야 세도정치로 변질하면서 권력은 특정인에게 집중되고 조선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조선 패망에 붕당정치의 폐해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그보다는 조선 후기 근 100년간 지속한 외척 세력의 세도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순조와 효명세자 이영의 대리청정, 헌종과 철종, 고종과 순종에 이르는 100여 년 동안 반남 박씨,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세도정치 세력이 조선 왕조 몰락을 가져왔다.

 

세도정치 세력이 노론과 관련된 인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순조 이후는 붕당정치보다는 왕실의 외척 세도정치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여 전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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