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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조선 시대 4대 사화 - 을사사화(윤임 윤원형 대윤과 소윤 외척)

by 도생(道生) 2016. 10. 31.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의 재앙)

1545년(명종 즉위년) 왕실의 외척 세력 윤임과 윤원형

대윤과 소윤의 권력 투쟁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11대 왕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이 1544년 승하하고, 조선 12대 왕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이 재위 8개월 남짓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한다.

 

1534년 조선 13대 왕으로 즉위한 명종 이환(1534~1567, 재위 1545~1567)은 재위 23년의 대다수를 허수아비 왕으로 보냈다.

 

 

 

 

조선 11대 왕 중종은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을 두었다.

중종의 조강지처 단경왕후 신씨(1487~1557, 재위 1506년 9월 2일 ~ 9일)는 중종이 즉위한 지 7일 만에 반정공신들에 의해 폐위됐다.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1491~1515, 재위 1507~1515)는 인종을 낳고 불과 7일 만에 승하한다.

중종의 두 번째 부인 장경왕후 윤씨의 친정 형제 윤임 일파를 대윤(大尹)세력이라 한다.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1501~1565, 재위 1517~1544)는 장경왕후 승하하고 2년 뒤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의 세 번째 부인 문정왕후 윤씨의 친정 형제 윤원로, 윤원형 일파를 소윤(小尹)세력이라 한다. 

 

 

 

 

 

 

 

 

 

 

 

 

 

 

윤임을 비롯한 유관, 유인숙 등의 대윤(大尹)세력과 윤원형을 비롯한 윤원로, 윤개 등의 소윤(小尹)세력은 공적으로는 인종과 명종의 외척 세력이면서 사적으로는 두 집안이 파평 윤씨 친척관계였다.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을사사화는 대윤세력과 소윤세력 왕실 외척의 권력투쟁에서 비롯됐다.

중종 재위 시부터 다음 보위를 놓고 대윤세력과 소윤세력이 권력투쟁을 벌였다. 

 

중종과 장경왕후의 아들 이호(인종)는 1515년에 태어나 1520년(중종 15) 6살에 왕세자로 책봉됐다.

중종과 문정왕후의 아들 이환은 문정왕후가 왕비가 된 지 17년 만인 1534년(중종 29)에 태어났다.

 

이복형제인 인종과 명종은 19살의 나이 차이가 났다.

인종과 명종 두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파평 윤씨 대윤과 소윤의 외척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에 중종 14년(1519) 일어난 기묘사화 이후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앙금이 쌓여 있었다.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을사사화(1545, 명종 즉위년)는 이러한 정치 구도 속에서 일어났다.

 

 

 

 

 

 

 

 

 

 

 

 

 

 

중종과 장경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 효혜공주는 김안로의 둘째 아들의 부인이다.

 

김안로는 장경왕후의 아들 왕세자 이호(인종)를 보호하기 위해 대윤(大尹)의 윤임과 손을 잡고 소윤(小尹)의 윤원형과 윤원로를 권력의 중심에서 밀어냈다. 김안로(1481~1537)는 문정왕후까지 폐위시키려다 중종에 의해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1544년 중종이 죽고 인종이 보위에 오를 때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 윤씨의 친정 일족이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 12대 왕 인종이 즉위 8개월 남짓에 갑작스럽게 승하하고, 12살의 경안대군 이환이 13대 왕으로 명종으로 즉위하면서 정국은 돌변한다.

 

 

 

 

문정왕후 윤씨가 명종을 수렴청정하고 소윤의 윤원형 일파가 권력을 장악한다.

 

1545년(명종 즉위년) 문정왕후와 소윤의 윤원형과 요부 정난정은 정순붕, 임백령, 등과 손을 잡고 대윤의 윤임을 비롯한 유관, 유인숙 등을 역모죄로 몰아 죽였다. 월산대군(세조의 큰아들, 덕종 추존)의 손자 계림군도 처형됐다. 

대윤 세력은 을사사화로 몰락했다.

 

 

 

 

 

 

 

 

 

 

 

 

 

 

을사사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윤과 기득권 훈구세력은 인종에 의해 등용된 사림(士林, 선비)세력을 제거했고, 1547년 소윤의 윤원형 일파가 조작한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사림세력은 큰 화를 입었다. 이때 중종의 서자 봉성군도 죽었다.

 

중종의 부인이면서 선대 왕비(장경왕후)와 후대 왕비(문정왕후)의 외척 세력 대윤과 소윤의 싸움에 조선의 선비들도 큰 화를 입었다.

 

 

 

 

 

문정왕후 윤씨의 비호 아래 소윤의 윤원형과 요부 정난정은 권력을 전횡하여 숙적들은 역모와 온갖 누명을 씌워 제거하는 한편 부정부패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죽고 소윤의 윤원형과 정난정이 유배지에서 자살하면서 대윤과 소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파평 윤씨 가문 외척 세력 대윤과 소윤은 권력의 주도권을 잡는 권력 투쟁이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을사사화(1545년, 명종 즉위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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