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 왕위찬탈 계유정난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6. 11. 5.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 이유와 압구정 한명회의 왕위찬탈사건 - 계유정난(癸酉靖難)

 

 

 

 

 

 

 

 

 

 

 

 

 

 

 

 

조선 6대 왕 단종대왕 재위 1년(1453, 계유년)에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가 주도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이 발생한다.

 

 

 

조선 7대 왕 세조, 조선 8대 왕 예종, 조선 9대 왕 성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천하를 호령했던 한명회(1415~1487)의 호가 압구정이다. 

 

연산군 때 쓰인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에는 한명회의 호를 압구정(鷗亭)이라 기록하고 있고, 한명회가 만든 정자를 압구정(鷗亭)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정2품 예문관(홍문관)대제학(장관급)을 지냈다.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 한명회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조실부모하고 가세가 점점 기울어 갔다.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다 38세에 음서제(공신 자제를 특별 채용)로 개성에 있는 경덕궁 지기가 된다.

 

압구정 한명회는 동문수학하여 막역한 사이였던 권람(1416~1465)을 통해 신숙주와 수양대군(세조)을 만나면서 계유정난을 구체적으로 모의한다. 

 

 

 

 

 

 

 

 

 

 

 

 

 

 

조선 6대 왕 문종은 승하하기 전 고명대신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종서, 황보인, 남지 등이 섭정하였는데, 모든 일을 자신들이 결정해 놓고 결제할 곳에 노란 표시를 해두는 이른바 '황표정사'가 문제가 되었다. 수양대군(세조)을 비롯한 왕족들이 보기에 단종을 마치 허수아비로 만든 것 같아 불평불만이 쌓여갔다.

 

 

 

 

조선 5대 왕 문종대왕 이향

http://gdlsg.tistory.com/1524

 

 

 

 

김종서, 황보인, 남지의 측근이 조정의 요직에 앉아 권력의 주도권을 잡자 집현전 학자들도 비판할 정도였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세조)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조선 6대 왕 단종대왕(노산군) 이홍위

http://gdlsg.tistory.com/1525

 

 

 

수양대군(세조)은 권람으로부터 한명회를 소개받아 교류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허심탄회하게음을 열었다. 

수양대군(세조)과 한명회는 종묘사직(왕과 조선)을 위해 거사하기로 한다.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가 주도한 계유정난은 왕위찬탈사건은 전초전이다.

압구정 한명회는 직접 살 사람과 죽일 사람을 결정한 살생부를 만들었고, 1453년(단종 1) 10월 10일 거사를 시행한다.

 

 

조선 7대 왕 세조대왕 이유

http://gdlsg.tistory.com/1526

 

 

 

 

 

 

 

 

 

 

 

 

 

 

계유정난의 명분은 김종서와 조정 대신들이 안평대군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역모사건이다.

정도전이 저술한 『조선경국전』은 조선 9대 왕 성종 때 조선의 통치법전 경국대전』으로 완성되어 편찬되었다.

『경국대전』에 '역모한 자는 삼족멸문지화(三族滅門之禍)한다.'라고 되어 있다.

 

 

 

왕위찬탈을 위해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역모사건으로 치밀하게 계획했다.

삼정승 황보인, 김종서, 남지를 비롯하여 이양, 조극관, 윤처공, 이명민 등 많은 조정 신료들을 죽이고, 반대파 대신들을 숙청하였다. 동생 안평대군과 아들은 강화도로 유배 보내 사사했다.

 

 

계유정난에서 죽은 사람들은 역모죄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한 직계가족은 처형됐다. 가족과 친척은 노비가 되었으며 재산은 몰수됐다. 스스로 영의정에 오른 수양대군(세조)과 계유정난에 참여한 사람들이 조정의 요직을 차지한다.

 

 

 

 

 

 

왕위찬탈의 서막을 알린 계유정난의 주역으로 세조, 예종, 성종 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압구정 한명회의 권세가 얼마나 컸던지 그의 한 마디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고 하였다.

 

한명회의 호 압구정(押鷗亭)은 '새(갈매기)를 누르는 정자'라는 의미다.

한명회가 세운 정자 압구정(狎鷗亭)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새(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는 의미다.

한명회의 압구정 정자가 있던 현재의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은 압구정(狎鷗亭) 한자로 표기한다.

 

 

 

 

 

 

 

 

 

 

 

 

 

 

황해도 개성의 이성계 본가(경덕궁) 보초에서 왕위찬탈사건 서막인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세조)을 조선의 조선 7대 왕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압구정 한명회다.

 

 

 

셋째 딸을 조선 8대 왕 예종의 왕비로 만들었고, 넷째 딸을 조선 9대 왕 성종의 왕비로 만들었다.

한명회의 손자 한경침은 성종의 서녀(공신옹주)와 가례를 올렸다. 한명회와 성종은 사적으로 장인과 사위이면서 사돈관계가 된다.

1485년(성종 16) 명나라 사신을 압구정으로 사사로이 불렀다가 탄핵당하였고, 1487년(성종 18)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계유정난과 세조 즉위에서 받은 공신첩, 임금의 장인으로서 부원군, 일인지라 만인지상의 영의정까지 오른 압구정 한명회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조선의 3대 간신, 조선 최고의 책략가(지략가), 조선 최고 처세의 달인,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사건인 계유정난 역모의 주동자,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 등 다양하다.

 

 

 

 

계유정난(癸酉靖亂)은 1453년(단종 1) 계유년에 발생한 난(亂, 난리 또는 역모)을 바로잡았다는 의미다.

김종서와 황보인, 안평대군 등의 역모(모반)사건을 수양대군과 한명회 등이 나서서 평정했다는 의미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 정인지, 신숙주 등 왕위찬탈세력이 만든 말이다.

 

 

 

 

조성왕조실록 『성종실록』 56권 1475(성종 6년)

 

좌의정(左議政) 한명회(韓明澮)신증강목통감(新增綱目通鑑),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 신증본초(新增本草)』, 요사(遼史)』, 금사(金史)』, 유향(劉向)의 설원(說苑)』, 구양수(歐陽脩)의 문충공집(文忠公集) 각 1질(帙)과 경회루(慶會樓),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장서각(藏書閣)의 편액(扁額)과 용뇌(龍腦) 1기(器), 소합향유(蘇合香油) 2기(器), 먹[墨] 2봉(封) 및 중국 조정의 문사(文士)가 압구정(鷗亭)과 화답한 시축(詩軸)을 올리고...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