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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충신불사이군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 단종복위운동

by 일신우일신 도생 2016. 11. 6.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이개, 유응부, 유성원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운동

 

 

 

 

 

 

 

 

 

 

 

 

 

 

 

 

세종대왕, 문종대왕, 단종대왕의 신하로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 발각되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개를 죽음으로 끝까지 지킨 사육신은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 취금헌(醉琴軒) 박팽년(1417~1456), 백옥헌(白玉軒) 이개(1417~1456), 단계(丹溪) 하위지(1412~1456), 낭간(瑯) 유성원(미상~1456), 벽량(碧梁) 유응부(미상~1456) 여섯 분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는 단종을 보필하던 김종서, 황보인, 남지 등 수많은 사람을 역모로 몰아 죽였다.

왕위찬탈의 전초전에 성공하고 조정에 입성한 계유정난 세력은 본격적으로 단종을 압박한다.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수양대군을 추종하는 정인지, 신숙주, 권람, 한명회 등이 돌아가면서 단종에게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넘겨줄 것을 강요한다.

1455년(단종 3)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15살의 조선 6대 왕 단종대왕 이홍위는 수양대군에게 전위(傳位)한다.

 

 

 

 

 

 

 

 

 

 

 

 

 

 

 

 

1455년(단종 3) 6월 10일 경복궁 경회루에서 문무백관이 조선 6대 왕 단종대왕 이홍위에게 마지막 예(禮)를 올렸다.

성삼문은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하였고, 박팽년은 자살을 하려 했으나 성삼문의 설득으로 후일을 기약한다.

 

조선 7대 왕 세조는 단종에게 공의온문(恭懿溫文), 장순왕후에게는 의덕(懿德)의 존호를 올렸으나 두 사람은 받지 않았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이 주도한 단종복위운동이 전개되었다.

명나라 고명 칙사 송별연회에서 세조(수양대군)와 한명회, 정인지 등 계유정난을 일으킨 역적들을 죽이기로 하였는데, 연회가 취소되자 지레 겁을 먹은 정창손의 사위 김질이 장인에게 밀고하였고, 정창손은 세조에게 달려가 보고한다.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충절을 목숨 바쳐 지킨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는 집현전 학사다.

세조는 인품과 학문과 지혜가 뛰어난 집현전의 대학자 성삼문과 박팽년을 회유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단종복위운동을 하다 붙잡힌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은 세종대왕, 문종대왕, 단종대왕의 신하로서 수양대군(세조)을 왕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존칭도 사용하지 않았을뿐더러 성삼문에게 세조는 왕위를 찬탈한 역적 수양대군이었다.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 사육신과 단종복위운동의 관련자는 모두 처형됐다.

사육신은 사지를 수레에 매고 찢어 죽이는 거열형을 당했고, 시신은 조선 팔도를 떠돌며 조리돌림 당하였다.

 

단종복위운동을 벌이다 발각된 사육신의 부모, 형제, 아들, 손자 등 직계가족은 모두 처형되어 절손(絶孫)이되는 멸문지화를 당했다. 재산은 몰수되고 사육신의 4촌과 5촌 친척까지 유배되었고, 여인들은 노비(관비)가 되었다.

 

 

야사에서는 박팽년과 하위지의 후손이 살았다고 전하기도 한다.

서울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는 언제 누가 썼는지 모르고,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사육신은 역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사육신의 복권은 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에 수양대군(세조)의 후손으로 임금이 된 왕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 19대 왕 숙종대왕에 의해 단종대왕과 정순왕후 복위와 함께 사육신 등이 복권되었고, 조선의 개혁군주 22대 왕 정조대왕은 안평대군, 금성대군, 성승 등 단종복위운동을 벌이다 역적으로 몰려 죽어간 사람들을 복권 추증하였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개로 멸문의 화를 당한 사육신은 다음과 같이 추증되었다.

 

 

증 이조 판서 행 승정원 우승지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증 이조 판서 행 형조 참판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

증 이조 판서 행 집현전 직제학 충간공(忠簡公) 이개(李塏),

증 이조 판서 행 예조 참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증 이조 판서 행 성균관 사예 충경공(忠景公) 유성원(柳誠源),

증 병조 판서 행 도총부 부총관 충목공(忠穆公) 유응부(兪應孚)

 

 

 

 

매죽헌(梅竹軒) 성삼문

 

이 몸이 죽고 죽어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까마귀 눈비 맞아 희난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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