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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3대 도적(의적) -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

by 도생(道生) 2016. 11. 10.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 연산군 때 홍길동, 명종 때 임꺽정(임거정), 숙종 때 길산

 

 

 

 

 

 

 

 

 

 

 

 

 

 

 

조선왕조시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3대 도적(의적) 홍길동과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실존인물이다.

조정에서는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이 무리를 이끌고 재물을 도둑질 도적으로 보았고, 백성과 일부 야사에서는 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왕조시대 3대 도적(의적)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국정이 문란하고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에 나타난 도적들이다.

혹자는 홍길동과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모두 도적에 불과했으며, 소설에 의해 의적으로 미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연산군 때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한 홍길동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연산군 6년(1500) 홍길동 무리를 소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1498년(연산군 4)은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가 발생하였다.

 

 

공신(훈구)세력에 의해 많은 사림(士林, 선비)세력이 희생을 당하였고, 이때는 연산군의 향락과 폭정이 한참인 시기였다.

조정과 지방에는 부정부패가 가득했고, 탐관오리에게 수탈당해 도탄에 빠진 백성은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홍길동(洪吉同)이란 이름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중종실록, 선조실록에 등장한

선조와 광해군 때 활동했던 허균이 지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서 영웅과 같은 의적으로 묘사했고, 숙종 때 인물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도적으로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39권 연산군 6년(1500)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명종 때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한 임꺽정(임거정)

 

 

문정왕후와 윤원형, 정난정 등이 명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들고 권력을 전횡하며 국정을 농단하던 시기였다.

명종이 왕위에 올라 20년 후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과 정난정이 유배지에서 자살하여 죽기까지 조선은 무법천지였다.

 

 

문정왕후와 윤원형, 정난정과 그 일파 때문에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고 도적으로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에 명종 17년(1562) 임꺽정 등이 잡혔다는 기록이 나온다.

 

 

 

 

허수아비 왕으로 살다간 명종은 실록에 보면 "국가에 반역한 큰 도적 임꺽정 등이 이제 모두 잡혀 내 마음이 매우 기쁘다."라고 하였다. 명종은 자신의 무능과 실정, 어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외삼촌의 첩에게 조선이 농락당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둑질한 결과만 보고 참으로 어리석은 말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27권 명종 16년(1561)

사신은 논한다.

"국가에 선정(善政)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으며, 기한(飢寒)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연명(延命)하려고 도적이 되었다면,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요 그들이 죄가 아니다.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

 

 

 

 

명종의 실정(失政)과 문정왕후와 윤원형과 정난정 일파가 권력을 전횡하고 국정을 농단하였다.

대학자이며 영남학파 거두인 남명 조식이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파격적인 상소를 올린다.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19권 명종 10년(1555)

"전하의 국사(國事)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하여 천의(天意)가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자전(慈殿, 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단지 선왕의 한낱 외로운 후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23권 선조 22(1589)

"옛날에는 하나의 윤원형이 기탄없이 탐욕을 부려 흉포한 자를 임용하자 안으로는 임꺽정(林巨正)의 난을 빚어내었고, 밖으로는 을묘왜변(乙卯倭變)을 초래하였습니다."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숙종 때 황해도 구월산 일대에서 활동한 장길산

 

장길산은 숙종 때 황해도 구월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도적이다.

장길산은 평안도 양덕과 함경도 두만강 유역까지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것으로 나온다.

숙종은 장길산을 잡아들이라는 특명을 내렸지만, 장길산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장길산이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언급된 시점은 숙종 18년(1692)이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에 3번 나오며, 조선왕조시대 중죄인의 조사와 판결을 기록한 추안급국안과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등에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숙종 21년(1695)에서 숙종 25년(1699)까지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흉년이 들고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숙종과 조정 신료는 백성을 진휼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내면서 도적이 되지 말 것을 당부하였지만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도적이 된 자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1697)

"극적(劇賊) 장길산은 날래고 사납기가 견줄 데가 없다. 여러 도(道)로 왕래하여 그 무리들이 번성한데, 벌써 10년이 지났으나,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양덕(陽德)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체포하려고 포위하였지만 끝내 잡지 못하였으니, 역시 음흉함을 알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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