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은 개벽중

조선왕조실록의 대금황제 이징옥의 난

by 도생(道生) 2016. 11. 12.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가 편찬한 조선왕조실록 노산군일기(단종실록) 

대금 황제(大金黃帝) 이징옥의 난

 

 

 

 

 

 

 

 

 

 

 

 

 

 

 

조선왕조실록의 노산군일기(단종실록)는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수양대군)의 신하가 편찬한 실록이다.

한마디로 노산군일기는 승자가 기록한 역사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 고종과 순종을 제외한 25명 왕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의 26대, 27대 왕이면서 대한제국 초대와 마지막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실록은 일본 제국주의의 손에 의해서 쓰였기에 조선왕조실록에 넣지 않는다.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에서 조선 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다.

25명의 왕 중에 폐위된 노산군(단종), 연산군, 광해군의 기록은 노산군일기,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로 편찬되었다.

노산군일기는 240여 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 단종의 묘호를 올리면서 단종실록이 되었다. 

 

 

 

 

 

 

 

 

 

 

 

 

 

1453년(단종 1) 10월 10일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는 왕위찬탈을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킨다.

계유정난(癸酉靖亂)은 수양대군 일파가 계유년의 혼란함을 바로잡은 것이 아니라, 수양대군과 그 일파가 계유년을 어지럽게 만든 사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징옥은 실록마다 사뭇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징옥은 1399년 조선 2대 왕 정종이 즉위한 해에 경상도 양산에서 태어났다.

 

이징옥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태종실록』이다.

이징옥은 1414년(태종 14) 당시 직업군인이었던 갑사(甲士)를 시작으로, 1416년 태종이 친히 주관하는 친시무과에 장원급제한다.

조선왕조실록 이징옥은 『세종실록』에 백 수십 번, 『문종실록』에는 약 30차례 정도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 노산군일기(단종실록)에 대금 황제를 칭하고 난을 일으켰다는 이징옥을 세종실록문종실록에는 대체로 가효국충(家孝國忠)을 한 인물로 나온다. 이징옥은 관직 대부분을 북쪽 변방에서 무장으로 공을 쌓았다.

 

세종 14년(1432) 병조참판과 접반사(외국사신 접대)로 있을 때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조선 출신 환관 윤봉의 횡포에 맞서다 부처 되기도 했다. 용맹한 무장 이징옥은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할 때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징옥은 세종대왕과 문종대왕 재위 시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하였고, 모친상과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3년 상을 치르기 위해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두 임금은 뛰어난 용맹과 많은 경험을 축적한 이징옥의 사직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징옥은 34살이 되던 세종 14년(1432)에 종2품 병조참판에 올랐고, 경상우도 도절제사, 평안도 도절제사를 거쳐 54살 되던 1452년(문종 2) 함길도 병마 도절제사로 봉직할 때 문종대왕으로부터 종1품 숭정대부의 품계까지 받는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양대군 스스로 영의정에 올라 단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만든다.

 

 

 

함길도 도절제사로 있던 이징옥은 김종서와 함께 북방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장으로 수양대군에게 큰 화근이 될 수 있었다.

수양대군은 먼저 평안도 도절제사 박호문을 함길도 도절제사로 임명하면서 이징옥을 파면하고 유배시키려 했다.

 

그동안 여러 번 사직 상소를 올렸을 때는 윤허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직은 면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징옥은 박호문에게 다시 돌아간다. 다시 돌아온 이징옥을 본 박호문이 이징옥을 죽이려다 본인이 죽고 만다.

대금 황제를 칭하고 난을 일으켰다는 이징옥은 1453년 10월 19일 함길도(함경도) 종성에서 잡혀 죽는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가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에는 10월 11일에 이징옥을 파직과 함께 유배시키라고 하였고, 10월 19일에 이징옥과 아들 삼형제를 잡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징옥은 불과 10일 안에 파직에서 대금 황제에 올랐다가 죽었다는 말이 된다.

이징옥은 김종서, 황보인 등과 결탁하여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단종실록』에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금 황제의 헛꿈을 꾸고 이징옥이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어린 임금 단종에 대한 충성심이었는지, 아니면 수양대군 일파의 역모를 진압하려 했는지, 이징옥 스스로 대금 황제에 올랐는지 승자가 기록한 역사 조선왕조실록은 이징옥을 대역죄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문종대왕은 재위 시 가효국충(家孝國忠)을 한 이징옥을 중용하였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6권, 단종 1년 5월 15일(1453년)

한명회와 홍달손이 세조를 알현하였다. 홍달손이 말하기를

"내가 선사포에 있을 때 함길도에서 온 자가 말하기를, '이징옥이 비밀히 이경유로 하여금 경성의 병기를 서울에 옮겨 가도록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미친 말이라고 하였으나 과연 사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반역을 꾀하는 것이 분명하니, 하늘은 속일 수가 없고 일은 의심할 것 없는 데에 있는데, 어찌 번거롭게 의논하겠습니까?"

하니, 세조가 마음으로 허락하여 홍달손에게 활을 주고 이와 더불어 음식을 먹었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7권, 단종 1년 7월 1일(1453년)

이징옥을 판중추원사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8권, 단종 1년 10월 10일(1453년)

세조가 손을 잡고 최항에게 이르기를

"황보인, 김종서, 이양, 민신, 조극관, 윤처공, 이명민, 원구, 조번 등이 안평대군에게 당부하고,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 경성 부사 이경유, 평안도 도관찰사 조수량, 충청도 도관찰사 안완경 등과 연결하여 불궤한 짓을 공모하여 거사할 날짜까지 정하여 형세가 심히 위급하여 조금도 시간 여유가 없다. 김연, 한숭이 또 주상 곁에 있으므로 와서 아뢸 겨를이 없어서 이미 적괴 김종서 부자를 없애고 그 나머지 지당을 지금 아뢰어 토벌하고자 한다."

 

 

 

10월 11일(1453년)

'상호군 송취를 의금부 진무로 삼아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을 압령하여 평안도에 안치하게 하였다." 

 

 

10월 17일

"안치한 사람 정분, 조수량, 안완경, 조충손, 지정, 이보인, 이석정, 이의산, 박하, 조완규, 조순생, 한숭, 이징옥...  등에게 아울러 고신을 추탈하라." 

 

 

10월 21일

"청컨대 이징옥, 이세문 등을 극형에 처치하고, 김문기, 권수를 또한 법으로 논하소서." 

 

 

10월 25일

이징옥이 이선문을 불러 말하기를

"이 땅은 대금황제(大金黃帝)가 일어난 땅이다. 때에는 고금(古今)이 있으니 영웅도 다름이 없다. 내가 지금 큰 계책을 정하고자 하니, 너는 조서를 초안하라... "

 

"대금(大金) 이후로 예의가 폐하고 끊어져서 여러 종류의 야인들이 혹은 무죄한 사람을 죽이고, 혹은 부모를 죽이어, 화기를 상하게 하므로, 하늘이 헤아려 다스리라고 유시(諭示)하였다. 짐(朕)이 박덕으로 천명(天命)대로 한다고는 보증하기 어려우나, 감히 스스로 마지못하여 그 위(位)에 오른 지가 대개 또한 해가 넘었다. 지금 하늘이 다시 유시하시니, 내가 감히 상천(上天)의 명령을 폐하지 못하여 모년월일(某年月日) 새벽녘에 즉위하였으니, 경내의 대소 신민은 마땅히 그리 알라."   

 

 

10월 27일

19일 밤 계교로써 이징옥과 그 아들 세 사람을 사로잡아 죽였다.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9권 단종 1년 11월 8일

"이징옥은 '짐'이라 칭하고, '칙'이라 칭하여 참람하게 황제에 비겼으니, 우리나라의 죄인일 뿐만 아니라 천하의 대역입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사상, 국방, 종교, 문화, 법률, 사회 등 조선왕실에서 일반백성의 삶에 이르기까지 국정 전반의 역사 기록이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단종실록(노산군일기)을 보면 당시 왕이 아니었던 수양대군을 왕, 즉 세조로 기록하고 있다.

연산군에 이어 다음 보위에 오른 중종을 연산군일기에서는 진성대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