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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임진왜란 의병장과 의병 승병 활동

by 도생(道生) 2016. 11. 18.

임진왜란 당시 국란(國亂)극복의 주역 의병장과 의병, 승병 활동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후 200년 만에 닥친 큰 전쟁, 즉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임금은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했고, 조정 신료들은 임금을 보좌한다는 명분으로 함께 도주했다.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나라와 백성을 버리자 분노한 백성은 궁에 불을 지른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는 왜군에게 조선 관군은 추풍낙엽처럼 연전연패한다.

임진왜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나라를 구한 대다수의 구국 영웅은 의병장과 의병, 그리고 승병들이다.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 김시민 장군 등이 승전할 때 옆에서 조선 관군과 혼연일체가 되어 목숨 걸고 활동한 이들이 바로 조선의 백성과 의병, 승병이다.

 

 

 

 

 

 

 

 

 

 

 

 

 

 

임진왜란 초기 의병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으나, 전란이 길어지면서 의병 세력도 커지고 조직화하여 활동반경도 넓어진다.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른 백성은 호미와 낫을 들고 나섰다.

 

조선의 유학자 붓 대신 칼을 들었고, 승려는 목탁 대신 칼을 들었다.

팔도에서 봉기한 의병을 조직화하여 왜군과 전투에서 진두지휘한 사람은 유학자, 전직 관료, 승려, 일부 현직 관리 등이었다.

 

 

 

 

 

 

 

 

 

 

 

 

 

 

왜군과 조선 관군과의 전투는 예정된 전투였다.

일본이 가도입명(假道入明, 명나라를 치려 하니 길을 비켜 달라.)의 명분으로 일으킨 전쟁이라 명나라와의 한 판 승부도 예상했었다.

 

 

왜군은 임진왜란에서 큰 실책 두 가지를 범했다.

불멸의 영웅으로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을 얕잡아 본 것과 전혀 예상치 못한 의병의 활동은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 일대에서 연전연승하며 제해권을 장악할 때, 조선 팔도 곳곳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전장을 누빈 의병과 승병 등은 왜군을 괴롭혀 조선 정 전략에 큰 차질을 빚게 한다. 연전연패하던 조선 관군이 재기기회를 만들어줬다.

 

 

 

 

 

 

 

 

 

 

 

 

 

 

임금과 조정 대신이 나라와 백성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때 조선의 백성이 의벼오가 승병이란 이름으로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조선 팔도 각처에서 일어난 의병과 승병은 왜군을 격파하며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의병장은 조헌, 곽재우, 고경명, 김덕령, 정인홍, 정문부, 김천일, 이정암, 유팽로, 최경회, 조호익, 김면, 권응수, 양덕록, 홍계남, 이우, 김경백, 심대, 전승업, 이대임, 서방경, 조경남, 장지현 등 수많은 의병장이 의병을 모집하고 조직화하여 왜군을 무찔렀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 등은 승병(승군)을 조직하고 지휘하여 임진왜란에서 맹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관군보다 더 많은 숫자의 의병과 승병이 활동했고, 승전보를 올린 곳에는 의병과 승병이 있었다.

명나라와 일본의 강화협상이 시작되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의병을 관군에 편입시키거나 해체해 버린다.

자신들이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간 까닭에 혹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난 의병장 김덕령과 정문부는 반역죄로 죽었고,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도 반역자로 몰렸다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임진왜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 전쟁을 끝낸 주역은 선조나 명나라 원군, 류성룡 같은 이들이 아닌 바로 의병과 승병, 의병장과 같은 조선의 백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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