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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제강점기 일본의 강제징병 군인 군무원(군속) 학도병

by 도생(道生) 2017. 6. 10.

일제강점기 일본의 강제징병으로 전쟁터로 내몰린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군속), 학도병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인을 전쟁에 강제동원하여 군인(학도병 포함)과 군속(군무원)으로 끌려간 정확한 통계는 없고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 및 양국 단체마다 각기 추정하는 숫자에는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강제동원, 강제연행으로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의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현재나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대한민국과 일본 정부의 무관심, 행위를 부정하고, 기록을 폐기하고, 기록이 사라졌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1930년대는 일제에 의한 한민족 말살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면서,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인적·물적 수탈정책을 펼쳤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 제국주의는 전장을 확대하였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부족한 병력을 충원해야 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였던 조선인을 강제 징병하기 위해 1937년 12월 조선인 특별지원병제를 공포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병은 1938년 초기 지원병 형식을 취했지만, 이미 일본군 내부에서는 강제동원을 결정한 사안이었고, 자발적으로 지원한 사람도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일제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지원한 사람들이다.

 

강압적인 강제연행과 친일파 조선인을 앞세워 회유하면서 조선인은 일본군 군복을 입고 전쟁에 투입되었다.

 

 

 

 

 

 

 

 

 

 

1938년 2월 육군 특별지원병, 1943년 8월 해군 특별지원병제, 1943년 10월 학도지원병제, 1942년 5월 육·해군 강제징병(1944년 4월 시행) 등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일본군대로 끌려간 조선인은 약 2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의 강제징병으로 일본군대에 끌려간 조선인 외에 준병력으로 강제동원된 민간인 군속(군무원)도 많았다.

군속(군무원)으로 강제연행된 사람, 강제노역(징용)으로 끌려갔다 군속이 된 사람 등 조선인 군무원은 약 4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제징병으로 강제동원 된 조선인 일본군(학도병 포함)과 조선인 군속(군무원) 약 60여만 명 중 약 30%가 사망 또는 행방불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인 군무원(군속)은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력은 아니지만, 민간인이면서 준병력이다.

일본군 아래에서 기본적인 군사훈련 등을 받고 일본이 점령한 곳의 포로수용소 감시원, 군기지 건설 작업, 문관 등으로 근무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병으로 끌려가 일본군이 되고, 일본군 군속(군무원)이 되었지만, 일본과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똑같은 일본인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제가 패망하고 나서 일본군대와 일본군 군속(군무원)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중 일부는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죽음을 맞기도 했다.

 

일본군대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은 일제가 패망하면서 미군의 포로가 되고, 소련군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병으로 끌려간 조선인 본군(학도병 포함)과 군속(군무원) 명부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1971년, 1991년, 1992년 세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에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강제징용된 24만여 명의 조선인 군인과 군속(군무원) 명부와 2만여 명의 사망자 명부, 강제노역(강제징용) 명부를 포함하여 약 37만여 명으로 명부를 전달했다.

 

 

일본 정부가 전달한 약 37만여 명의 명부 외에 태평양 전쟁 말기였던 1945년 초부터 8월까지 일본에 의해 강제징병 된 조선인 군인과 군속(군무원) 명부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없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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