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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본 731부대의 악마의 무기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

by 도생(道生) 2017. 9. 10.

악마의 부대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만든 악마의 무기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

일본과 추악한 뒷거래를 통해 자료를 모두 받아 악마의 무기 생물화학무기 최대 보유국이 된 미국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화학무기인 염소가스를 사용했다.

이후 연합군과 독일군은 서로 뒤질세라 상대방에게 대량살상무기인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약 130여만 명이 죽었다.

 

이를 계기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과 1925년 제네바 의정서를 통해 대량살상무기로 악마의 무기인 생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세계 최초의 세균전은 몽골군이 흑해 연안의 카파 성에 흑사병에 걸려 죽은 시신을 투석기로 던진 것이라고 한다.

이 사건은 가장 원시적인 세균전이라 할 수 있다.

 

근대사에서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페스트균을 배양하여 감염시킨 벼룩을 중국에 살포하고, 포로와 생체실험자(마루타)에게 주사로 각종 세균을 주입했고, 여러 화학무기를 시험했다.

 

 

 

 

 

 

 

 

 

 

 

악마의 부대 일본 관동군 731부대 창설을 주도한 이시이 시로는 일제의 도쿄제국대학(동경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인텔리다.

이시이 시로는 일본 육군 군의학교 교관으로 들어가 대량살상무기인 악마의 무기 생화학무기 개발을 시작한다.

 

이시이 시로는 일본 육군 군의학교에 관동군 731부대의 모체가 되는 방역연구소(세균연구실)를 열고 악마의 무기인 세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이시이 시로는 악마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직의 규모를 키워나갔고, 급기야 일본 대본영(일본군 최고 통수기관)에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를 제조하는 부대를 창설할 것을 요청한다.

 

침략야욕에 눈이 먼 일본 제국주의는 1931년 만주사변을 조작하고 1932년 허수아비 푸이를 내세워 괴뢰국 만주국을 세웠다.

일본 관동군은 만주를 점령하여 또 다른 침략전쟁을 준비한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명령에 따라 1933년 만주 흑룡강성 난강구에 악마의 부대 일본 관동군 731부대를 창설된다.

 

 

이시이 시로는 하얼빈에서 70km 정도 떨어진 배음하(背陰河)의 중국 마을에 부속 실험실(도고 부대)도 만든다.

그러나 생체실험을 당하던 중국인 일부가 도망가면서 세균무기가 발각됐고, 급기야 한중 항일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일본 관동군은 도고 부대를 해산한다.

 

 

 

 

 

 

 

 

 

 

1935년 일본 관동군은 흑룡강성 평방(平房)에 악마의 무기를 제조하고 시험할 대규모의 시설을 만든다.

 

평방의 731부대는 부대 사무실을 비롯하여 일본군 관사, 비행장, 감옥,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 연구와 제조, 실험을 위한 각종 시설을 만들어 악마의 무기를 대량생산 준비를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아는 731부대의 모습이다.

 

 

 

1936년에 이시이 시로는 일본 관동군 방역급수부대로 불렀고,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특명을 받아 3천 명까지 인원을 보충한다.

1941년 일본 대본영 참모본부의 지시만 받는 특수부대로 731부대로 이름을 바꾼다.

 

 

악마의 무기를 제조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대량살상무기 생물화학무기를 미군과 영국군 등 연합군 포로와 소련인과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일본 관동군 731부대 내에서 악마의 무기인 생화학무기 생체실험 대상이 된 이른바 마루타는 약 3천여 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일본이 저지른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중에도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가 파악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사용됐다고 한다.

 

 

 

악마의 무기를 만든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부대장은 부대를 창설한 이시이 시로가 1936년 광동군 방역급수부대 부대장을 맡은 이래 1942년 7월까지, 1942년 8월부터 1945년 3월까지 기타노 마사지가 한동안 731부대 부대장을 맡았다.

 

이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이시이 시로가 일본 관동군 731부대 부대장을 맡았다.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를 연구, 제조, 사용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8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731부대의 헌병대를 비롯하여 린커우, 무단강, 쑨우, 하이라얼, 다롄에 162부대, 643부대, 673부대, 543부대, 319부대 등의 지부가 있었다.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만주를 공격해 들어오자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부대 내에 있던 생화학무기 실험 대상자를 살해하고, 인체를 해부하고 토막 낸 수많은 인체 표본과 생화학무기 실험에 사용된 쥐와 벼룩, 그리고 자료를 소각하고 건물을 폭파하는 등 증거를 인멸했다.

 

 

 

악마의 무기인 생화학무기와 함께 또 다른 대량살상무기가 핵무기다.

핵무기 최대 보유국은 러시아지만, 미국은 러시아와 버금가는 핵무기를 보유함과 동시에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 세계 최대 보유국이다.

 

 

 

 

 

 

 

 

 

 

미국이 어쩌다가 악마의 무기인 생물화학무기 최대 보유국이 되었을까?

 

일본 관동군 731부대를 창설하고 부대장이 된 이시이 시로에게 도쿄 전범재판, 즉 극동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본 관동군 731부대가 그동안 악마의 무기 생화학무기 제조와 전투 중 사용한 기록과 잔인한 인체실험 등 모든 자료를 넘겨받기로 했다.

 

 

 

혹자는 미국과 일본 관동군 731부대 이시이 시로 부대장과 추잡한 흥정을 악마의 거래라고 한다.

악마의 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악마가 된 미국과 미국인으로 연합군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대량살상무기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사용한 악마의 부대 일본 관동군 731부대 이시이 시로 부대장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기소하지 않고 면죄부를 줬다.

 

 

악마의 무기를 연구, 제조, 사용하여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 관동군 731부대 이시이 시로(1892~1959) 부대장은 미국의 큰 은혜를 입고 천수를 누리다가 1959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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