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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크메르제국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by 도생(道生) 2017. 11. 11.

힌두교와 불교가 혼합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크메르제국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와 현대사의 비극 킬링필드 대학살이다.

 

크메르제국은 9세기 초부터 15세기 중엽까지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남아시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으로 현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을 남겼지만, 크메르제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킬링필드 대학살은 1975부터 1979년까지 급진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로 200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이 학살을 당했고, 약 6만여 명의 승려가 학살됐다.

 

 

 

 

 

 

 

 

 

 

캄보디아는 미얀마와 함께 대표적인 불교국가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힌두교와 불교 등이 공존하고 있었다.

크메르제국 통치 당시 통치자의 종교와 주변국의 침략과 민심 등에 의해 종교의 주도권이 바뀌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현재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에 있지만, 크메르제국 당시에는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지배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크메르제국을 세우고 인도차이나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크메르제국을 세운 자야바르만 2세(재위 802~850 추정)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르야바르만 2세(1113~1145)다. 

크메르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며 가장 번성한 제국을 만든 자야바르만 7세(1125~1215)로 불교를 신앙했다.

 

 

 

 

 

 

 

 

 

자야바르만 7세 이후 크메르제국의 국력은 점차 피폐해져 갔다.

 

 

혹자는 크메르제국이 멸망한 이유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지속하면서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에 멸망에 이르렀다고 주장도 있고, 샴족에 의해 앙코르와트 유적이 파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크메르제국의 앙코르와트는 밀림에 속에 묻히게 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영광이 살아있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이 문을 닫은 지 수백 년이 지난 1860년 프랑스의 앙리 무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제국의 전성기였던 12~13세기경에 만들어진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된 건축물이다.

 

 

혹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가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개인과 단체 등이 각기 선정 기준을 정해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크메르제국이 건설한 앙코르와트를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어 왕의 도시, 즉 도읍을 뜻하는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합성된 말이다.

우리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앙코르와트는 여러 곳에 산재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두 종교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크메르제국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대부분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크메르제국의 건축물 앙코르와트는 약 40년의 기간 동안 수십km 떨어진 곳에서 수천 개의 돌을 운하를 통해서 운반해 신전과 궁전을 지은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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