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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단군왕검 고조선 건국 년도 단군기원 기원전 2333년

by 도생 2021. 4. 24.

중국과 일본의 역사 조작을 묵인 방조하면서 뒷전에서 부추기고 있는 주류 강단사학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 단군기원 기원전(BCE) 2333년이 가짜라는 한국 역사학계

 

 

 

 

 

 

 

 

 

중국은 소위 '하상주단대공정'을 통해 BCE 약 2000년경 건국한 하나라, BCE 약 1600년경 건국한 상나라, BCE 역 1000년경 건국한 주나라 역사 연대를 조작했습니다. 또한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 북부여, 고구려, 대진국 등 한韓민족의 고대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역사조작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중국은 '문명탐원공정'으로 한韓민족의 시원 역사까지 도둑질해갔습니다. 중국은 '하상주단대공정'과 '동북공정'과 '문명탐원공정'을 통해 약 1만 년 전의 시원문명부터 대진국(발해)의 역사까지 약 9천 년의 역사를 훔쳐 갔습니다. 중국이 역사 조작을 통해 우리 역사를 도둑질할 때 묵인과 방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부추긴 세력이 한국의 역사학계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중국의 역사 왜곡과 조작에 발맞추기 위해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를 부정합니다. 다시 말해 단군기원 기원전(BCE) 2333년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부정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사용하던 단기(檀紀, 단군기원)의 기년법(紀年法)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세력이 '연호에 관한 법률안'을 공포하면서 1961년 단군기원의 기년법을 폐지하고 서력기원의 기년법을 사용해왔습니다.

 

 

 

 

 

 

 

 

서양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성자의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서력기원(西歷紀元)은 예수 성자의 탄생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서력기원을 줄여서 기원전 또는 서기라는 하는데,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종교적인 기년법입니다. 단군기원이란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해부터 계산한 기년법일 뿐 '연호(年號)'가 아닙니다. 연호는 각 임금의 즉위한 해에 붙이는 이름입니다.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한 년도는 무진(戊辰)년이 맞습니다. 우리가 단군기원을 기원전 2333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력기원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서력기원을 기준으로 역으로 단군기원을 계산한 것입니다. 60갑자로 계산하면 무진년은 기원전 2333년이 맞습니다. 

 

 

소위 '고조선 1호 박사'라는 타이틀과 다르게 단군은 신화라고 주장하는 송호정을 비롯하여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한국 주류 강단사학계의 얼굴마담 노릇을 하는 자칭 '소설가'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십분발휘해 <동국통감>을 편찬할 때 서거정이 정치적인 결정으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를 썼다는 무지막지한 주장을 합니다.

 

 

 

 

 

 

 

 

자칭 '소설가'는 단군기원이 기원전 2333년으로 결정된 것은 조선 성종 때 서거정 등이 편찬한 관찬사서 <동국통감>에서 제시된 년도라고 무식한 소리를 합니다. 고려 때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본문과 주석에서 <고기>를 인용하여 "요임금 즉위 후 50년 경인년"과 <위서>를 인용하여 "요임금 즉위와 같은 때"라고 썼습니다.

 

 

고려 말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는 "제요(帝堯)와 함께 무진년에 일어났다.", 조선 초기 권람은 <응제시주>에서는 "단군이 요임금과 같은 무진년에 즉위했다.", 조선 세종 때 권제 등이 편찬한 <동국세년가>에서는 "단군께서 무진년에 개국했다."라고 일관되게 나옵니다.

 

 

<동국통감>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됐습니다. 일연과 이승휴는 고려 때 사람이고, 권람은 세조 11년에 사망한 사람입니다. 조선의 9대 임금 성종은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증손자입니다. 다시 말해 <동국통감>이 편찬되기 이전의 역사서는 모두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가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라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짜역사를 퍼트리며 국민을 대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자칭 '소설가'는 서거정이 한때 중국 요임금의 당나라 건국 년도를 무진년에서 갑진년, 갑진년에서 무진년으로 바꾼 것이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합니다. 단군조선에서부터 고려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일어난 일개 해프닝이 마치 역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애처로울 뿐입니다.

 

 

일제 식민사학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서울시립대에서 고조선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동북아역사재단 박선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지 몰라도 역사를 조작해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단대공정, 동북공정, 탐원공정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중국학계가 고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만 합니다.

 

 

일제 식민사학을 신봉하는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과 자칭 '소설가' 등이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를 트집 잡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실존 역사인 단군왕검의 고조선을 '신화'로 만든 일제 식민사학을 진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하기 전까지 어떤 역사서에도 '신화'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보배단지인 <환단고기>는 갑진년과 무진년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태백일사>의 <삼한관경본기>에는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년도 갑진년설(서력기원 2357년)과 무진년설(서력기원 2333년)이 모두 나옵니다.

 

 

"<고기古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단군왕검이 14세 되던 갑진(신시개천 1541, BCE 2357)년에 웅씨 왕이 그 신성함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천거하여 '대읍국(大邑國)'의 국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 때에 단국(檀國)에서 돌아와 아사달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터에 이르시니 온 나라 백성이 천제의 아들로 추대하였다, 구환족을 합쳐서 하나로 통일하시고 신성한 덕화가 멀리까지 미치니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사와라 환웅(13세) 웅족 여왕의 후예를 여(黎)라 하였는데, 처음으로 단허(檀墟)에 봉함을 받아 왕검이 되었다. 왕검이 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영토가 점점 넓어졌다. 여러 지역 왕검이 와서 방물을 바쳤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 명이었다. 그 뒤 460여 년이 지나 신인(神人) 왕검이 출현하여 백성에게 신망을 크게 얻어 비왕(裨王, 부왕)에 올라 24년간 섭정하였다. 웅씨 왕이 전쟁에서 죽자 왕검이 드디어 그 자리를 계승하여 구환(九桓)을 통일하였다. 이분이 단군왕검이시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단군께서는 두 번의 즉위를 합니다. 첫 번째는 대읍국의 부왕(비왕)으로, 두 번째는 고조선을 건국하여 단군왕검으로 즉위한 것입니다. 두 번의 즉위 사건을 하나로 만들려고 보니 답이 안 나온 것입니다. <환단고기>만이 유일하게 이 두 번의 즉위를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임금과 같은 때 즉위"는 기원전 2357년(깁진) 단군께서 대읍국의 비왕으로 즉위한 해입니다.

"무진년 즉위"는 기원전 2333년 구환일통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년도, 고조선의 제황(帝皇) 단군왕검으로 즉위한 해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편 -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16, 17, 18회>

www.youtube.com/watch?v=4gyRISzyL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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