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조선통감부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총독부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도둑질

by 도생(道生) 2021. 12. 4.

역사서를 강탈해 만든 조선총독부 도서관과 역사 왜곡과 조작에 누더기가 된 한국사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도둑질

 

 

 

 

 

 

 

유적, 유물과 함께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문헌 사료입니다. 유적, 유물, 문헌 사료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교차 검증할 수 있습니다. 1906년 근대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도서관 2곳이 개관합니다. 민간이 주도하여 설립한 평양의 사립도서관 '대동서관'과 친일파가 주도하여 설립한 한양(서울) '한국도서관'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관리 운영했습니다.

 

 

1906년 평양에 개관한 대동서관은 1910년 강제 병탄과 함께 폐관됩니다. 서울의 한국도서관은 1910년 2월 국립도서관인 '대한도서관'으로 확장이 결정됐지만, 1910년 강제 병탄과 함께 폐관됩니다. 한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10여만 권의 장서는 모두 몰수되어 조선총독부 취조국으로 이관됐습니다. 이후 1923년 개관한 조선총독부 도서관으로 이관됐고, 1928년 일제의 충직한 상급 노예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다시 이관됩니다.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우리나라를 영구적으로 식민지배하기 위해 한국사 왜곡 조작을 지시하고 실행한 우두머리입니다.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과 총독인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한국의 문헌 사료와 문화재를 도둑질한 희대의 도둑놈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는 조선 서지학(書誌學) 연구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는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 조선 왕실의 기증이라며 규장각 사서를 몇 수레를 가져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1965년 서울대 중앙도서관(규장각)을 정리하던 중 발견된 1911년 조선총독부 취조국 문서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더욱이 일제의 도둑질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선통감부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 사서를 일본으로 강탈해 간 사실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에게 보고까지 되었습니다. 조선총독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도 엄청난 양의 우리나라 사서를 비롯한 문화재를 도둑질해갑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민관군은 한결같이 소중한 우리나라의 역사서와 문화재를 도둑질해갔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도둑질을 밝힌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가 고려 말부터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서를 찾기 위해 5곳을 조사했는데 불과 다섯 군데에서 약 50,000여 권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고서가 일본에 있는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1980년 이만열 교수가 지은 <박은식> 359쪽에도 일제 조선총독부가 우리 국사책을 압수한 내용이 나옵니다. 일본 국내청의 황실도서관인 소료부에 한국사 관련 문헌 자료가 있는 것은 재판을 통해 확인됐지만, 절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조선총독부 초대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은 조선통감부 이토 히로부미가 울고 갈 정도로 신라, 고려, 조선 시대 등 국보급 문헌자료 수만 권과 수천 점의 문화재를 빼돌렸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1919년 일본에서 병사합니다. 데라우치 가문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도서관이 건립됐는데 1946년 경영이 어려워지자 야마구치현과 대차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야마구치여자대학(현 야마구치현립대학) 부속도서관인 데라우치 문고가 되었습니다.

 

 

2011년 12월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왕실의 규장각에서 몰래 빼돌려 일본으로 도둑질한 도서 중 일부만 반환됐습니다.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빼돌려 야마구치현립대학에 있던 우리의 문화제도 대부분 일본에 그대로 있고 일부만 경남대에 기증 형식으로 반환됐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다케를 비롯해 한국의 사서와 문화재를 도둑질한 일제 민관군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침략과 영구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내세우기 위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조작하기 위함입니다. 불온서적 압수와 금서 지정 등으로 한국인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사서를 못 보게 하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한국사를 누더기로 만들었습니다.

 

 

일제의 충직한 상급 노예를 배출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인 서울대 규장각과 문화재청 등은 일제가 도둑질한 우리의 수많은 사서와 문화재 환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 주류 역사학계와 문화재청, 박물관 등 역사관련 단체가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매국사학 카르텔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1901년 일본인이 부산에 세운 '홍도회도서실'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고 주장합니다. 부산의 홍도회도서실은 일제 군국주의 신념을 전파한 홍도회의 일본인이 설립한 곳입니다, 이러한 군국주의 성향의 단체가 만든 곳을 우리나라 최초의 공공도서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현재의 부산시립도서관 전신이 홍도회도서실입니다. 

 

 

 

 

 

<환단고기북콘서트 경주편 - 21, 22회 신라 천년 역사의 비밀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I_OU0gY80Qc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