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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 근대적 용어 사용을 주장한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by 도생 2022. 3. 26.

매국의 역사학을 향해 진실에 눈을 질끈 감은 그들만의 세상, 한국역사연구회 前 회장

<환단고기>에 근대적 용어 사용을 주장한 무식한 전문가?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무식한 자가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다.>

보통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지식이 크게 필요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직장에서 맡은바 직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선배와 동료로부터 관련 지식과 노하우 등을 습득합니다. 그러나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학계에서 '학문연구와 학술 진흥을 위하여 일정한 능력을 갖춘 자'라고 정의하는 소위 '박사' 학위 소지자는 반드시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어 사리 판단도 못하는, 그야말로 대책 없는 언행을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속언(俗言)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입니다. '무지(無知)'의 문자적 의미는 '아는 것이 없다'로, '일자무식'이라는 말처럼 본래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무식(無識)'의 문자적 의미는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다'입니다.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문가인 '박사'라면 전공 분야와 관련된 것은 알아야 합니다. 학자로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상식을 모르면 진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한국역사연구회 前 회장이며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하일식은 모 언론에 "<환단고기>는 근대적 용어가 많이 나오는 점등으로 학계의 사료 비판을 거쳐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로 일찍이 판명된 상태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초등학생도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을 검증하지 못하는 환단고기 위서론자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충직하게 따르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식민사학 카르텔에는 언론 카르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민사학 언론 카르텔은 주류 강단사학과 그 밑에서 앵벌이를 하며 떡고물을 받아 먹는 식민사학 홍위병들에게 주기적으로 원고 청탁과 연재 지면을 주는 등 식민사학을 더욱 공공히 하기 위해 앞다투어 <환단고기> 근대적 용어 사용했다는 거짓 프레임을 씌워 주기적으로 되새김질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이며 前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지낸 하일식이 자신은 한국사만 연구한 사람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일식의 논문 중에는 고대 한국과 중국 관련 논문이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 고대사에 전문 지식이 없어도 역사학자라면 한중일 사서를 비교 검증하기 때문에 스스로 무식하다고 주장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전 회장이며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하일식의 주장처럼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환단고기>에 근대적 용어를 사용한 것 등이 위서 판단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박사 학위 증서는 모두 쓰레기통에 쳐박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일식이 회장을 역임한 한국역사연구회에는 한국의 현대사, 중세사, 고대사뿐만 아니라 중국사 연구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억지 주장도 최소한의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

하일식을 비롯한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환단고기>가 근대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한국 역사학계 집단이 무식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나라 한국사 교수들은 현대사, 근대사, 중세사, 고대사 등 전공과 상관없이 <조선왕조실록>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에서 조선시대를 언급하지 않는 역사학자를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일제 식민사학 카르텔 중 하나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번역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손가락 몇 번만 클릭하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굳이 중국 사료를 언급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찬사서인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그들이 주장한 근대적 용어가 여러 차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를 소위 '중세사'로 분류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근대적 용어라고 주장한 몇 개만 살펴보면 '문화(文化)'는 <정종실록>의 정종 2년 7월 2일을 비롯하여 <성종실록>의 성종 10년 8월 25일, '국가(國家)'는 <태종실록>의 태종 5년 6월 3일, '세계(世界)''만방(萬方)'은 <세종실록>의 세종 20년 2월 19일, '인류(人類)'는 <세종실록>의 세종 21년 12월 17일, '산업(産業)'은 <정종실록>의 정종 2년 7월 2일, <태종실록>의 태종 2년 11월 8일 등 초등학생도 다 알 수 있는데 근대적 용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1909년 환단고기 등사본을 발굴한 자는 하일식과 같은 한국 주류 역사학자>

하일식은 연세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신라사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입니다. 연세대 사학과 강사로 있다가 2000년 조교수가 된 하일식은 <환단고기>는 책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환단고기>를 출간한 이유립 선생, 1949년 초간본 <환단고기>를 필사한 오형기 선생이 있습니다.

 

 

또한, 1966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유립 선생의 문하에서 1911년 편찬된 <환단고기> 초간본으로 공부한 양현종 선생, 오형기 필사본의 오탈자를 교정하여 1983년 발행한 배달의숙본, 그리고 이유립 선생과 직접 만남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주류 강단사학자들에게는 사람이 아니라 형체도 없는 그림자라는 주장과 같습니다.

 

 

 

 

 

 

하일식은 자신이 얼마나 무식한지 세상에 자랑하듯 1911년에 편찬됐다는 <환단고기>는 1915년 상하이에서 출판된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를 베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위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라는 자의 말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 서문에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없어질 수 있으나 역사는 없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라고 기술했습니다.

 

 

박은식 선생은 옛사람의 말씀을 인용하여 <한국통사> 서문에 넣은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1911년, <한국통사>는 1915년 편찬됐습니다. 2019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환단고기> 등사본을 발견한 이명우 운룡도서관 이사장님의 학술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1909년에 나온 <환단고기> 등사본은 <태백일사>와 <삼성기 下)가 빠져 있고 1983년 배달의숙본 <환단고기> 내용과 90% 이상 같습니다. 어이없는 사실은 1909년에 나온 <환단고기> 등사본을 먼저 발견한 인물은 주류 역사학계의 한 사람이었는데, <환단고기> 등사본 소유주에게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광주편: 28, 29, 30회 환단고기 위서론을 넘어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bnnKHhbOQ8 

<동서양 문화원전의 성립과 보정 작업 중요성>

https://www.youtube.com/watch?v=UTHx7rcbY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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