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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성공한 쿠데타 조슈번과 사쓰마번 무사의 막부정권 타도 메이지유신

by 도생 2022. 7. 16.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대한제국을 침략한 히데요시 충성파 후예들

성공한 쿠데타 조슈번과 사쓰마번 무사들이 막부정권을 타도한 메이지(명치)유신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는 재위 중 두 번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합니다. 선조 25(1592)년 임진왜란은 35(1597)년 정유재란으로 이어져 7년 동안 조선 팔도가 일본군에 유린당했습니다. 조선 선조 35(1598)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현재 경상남도 남해 관음포 앞바다에서 조선과 일본 수군이 마지막으로 맞붙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일본 사쓰마번 병사의 조총을 맞고 전사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8년 음력 8월 18일(양력 9월 18일) 사망했고, 조선과 전쟁이 끝나자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세력을 규합해 도요토미 히데요시 추종 세력과 전쟁을 벌입니다. 1615년 오사카 전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멸망시키고 쿠데타에 성공한 도쿠가와 가문은 메이지(명치) 유신이 일어날 때까지 260년 동안 일본의 실질적인 권력의 주인이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동군에 맞섰지만, 패배한 서군은 조슈번과 사쓰마번 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성파 집단입니다. 이보다 앞선 1600년 일본 내전사에서 가장 큰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동군에 맞선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던 모리 등 영주들이 배신하면서 패색이 짙어졌지만, 사쓰마번 1,500명은 후퇴하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쓰 본진을 뚫고 집으로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사쓰마번 1,500명 군사 중 집으로 돌아온 병사는 80여 명에 불과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동군과 용맹하게 싸운 서군의 사쓰마번(현재 구마모토현) 다이묘(영주) 시마즈 요시히로를 그대로 다이묘로 유지해줬고, 배신한 모리 가문의 조슈번(현재 야마구치현)은 130만 석에서 4분의 1로 축소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 가문은 성공한 쿠데타로 막부정권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후 앙숙 관계가 된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무사들은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손잡고 1868년 메이지(명치)유신을 일으켰고 260년을 이어온 막부정권은 붕괴합니다. 

 

 

일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고 근대사를 이끈 영웅으로 추앙하는 사카모토 료마(1835~1867)의 중재로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무사들은 막부타도를 기치를 내걸고 메이지(명치)유신이라는 성공한 쿠데타를 만들었습니다. 메이지(명치)유신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추종한 충성파 후예들이 개항과 쇄국의 투쟁 과정에서 260년 만에 주군의 복수를 한 사건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때 '가도입명(假道入明), 즉 명나라를 치는데 길을 빌려달라'라는 구실로 조선을 침략했듯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성파 본거지인 조슈번의 요시다 쇼인(1830~1859)은 한국을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합니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는 일본 정치권력을 쥔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일본 육군 창설자로 군부를 장악한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 얼마 전 죽은 아베 신조의 고조부로 경복궁을 침입해 고종을 인질로 잡았던 오시마 요시마사(1850~1926) 등은 한국 침략의 원흉들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신 집안의 후예들인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무사들이 모여 막부정권을 타도한 메이지(명치)유신은 뒷말이 무성합니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상을 나열했습니다. 15번째 죄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일왕의 친아버지인 '고메이 일왕'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은 4척의 군함을 에도만(현재 도쿄)에 정박하고 일본에 개항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개화파와 쇄국파로 나뉘었고 고메이 일왕은 쇄국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1854년 막부정권은 고메이 일왕에 보고 없이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때부터 일본 하급 무사들이 막부정권 타도를 외치며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을 전개하면서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일본 왕을 받들어 막부정권을 타도하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자'는 운동은 일본 전국으로 확산했고, 1862년 고메이 일왕의 이복동생인 가즈노미야 지카코와 결혼한 막부정권의 도쿠가와 이에모치 쇼군은 1866년 조슈번 정벌을 위해 출정했지만, 7월 오사카에서 병으로 죽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후예들과 도쿠가와 이에야쓰 막부정권 후예들의 죽고 죽이는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사적으로 도쿠가와 이에모치 쇼군의 손위 처남인 고메이 일왕마저 1867년 1월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1868년 사쓰마번, 조슈번, 도사번 무사들이 주축으로 메이지(명치)유신을 성공시키면서 성공한 쿠데타가 됩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38, 39, 40회 부경대편-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XK8Tjt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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