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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환단고기 - 불세출의 영웅, 연개소문

by 도생(道生) 2014. 1. 14.

『환단고기』 - 위대한 혁명가이며 불세출의 영웅 연개소문

 

 

 

 

 

 

 

 

 

 

 

오늘날의 역사교과서 왜곡

 

오늘날 역사교과서를 보면,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신라와 당나라에 맞섰고,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삼아 쳐들어온 당태종을 안시성에서 물리쳤으나, 연개소문 사후 지도층이 분열하면서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런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삼국사기 기록을 따른 것인데,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영류왕을 죽인 흉악한 역적이며 고구려의 멸망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기록했다.

 

김부식은 중국을 제압하던 고구려를 적대국으로까지 표현하며 신라통일을 정당화하였다.

철저한 사대주의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연개소문은 이후 유교를 중하게 여기던 조선 시대까지 왕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았다.

 

 

 

 

 

 

 

 

 

 

 

『환단고기』 - 『태백일사』의 저자 이맥의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

 

그러나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연개소문에 대한 이야기가 십여 쪽 분량으로 길게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이맥 선생은 연개소문을 비중 있는 인물로 다루었다.

 

연개소문은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혀 인재로 양성되었는데 몸집이 웅장하고 의기가 호탕했다.

하사받은 상은 반드시 나누어 주고 법을 집행할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엄격하여 주위 사람들이 딴마음을 품지 않고 모두 감복하였다. 그는 당나라에 능히 대적하는 자를 영웅으로 여기고 민족을 음해하는 자를 소인으로 보는 인물이었다.

 

 

 

 

고구려 영류제와의 갈등

 

영양열제瓔陽烈帝의 이복동생인 영류제營留帝는 618년 제위에 오른 후, 친당정책을 취했다.

당나라의 도교를 수입하여 퍼뜨리고 수십만의 백성을 무리하게 동원하여 천리장성을 쌓았다.

이것은 이전에 고구려 제왕들이 행했던 주체적인 대외정책과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이에 연개소문은 영류제에게 도교 강론을 그만두도록 청원하고 장성 쌓는 일을 중지하도록 간절히 아뢰었다.

그러나 임금은 이를 매우 언짢게 생각하고 오히려 연개소문의 군사를 빼앗고 그를 죽이려고 대신들과 의논했다.

 

당나라에 대해 굴욕적인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던 영류제와 귀족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안 연개소문은 중대 결단을 했다. 술과 음식을 차리고 열병식에 대신들을 초대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영류제는 몰래 달아나다가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

 

 

 

보장제를 세워 당태종과 맞서다.

 

연개소문은 영류제의 조카를 보장제로 세우고, 자신은 대막리지가 되어 강경한 외교정책을 행하여 주위 여러 나라를 침략하는 당에 맞섰다. 그 후 당태종이 침략해오자 연개소문의 공격명령을 받은 양만춘은 안시성에서 당태종의 왼쪽 눈을 적중시켜 승리를 거두고 나라를 구했다.

 

 

 

역사혁명가 연개소문의 정신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를 읽어보면 연개소문의 정신을 새롭게 알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당나라가 강성해지는 것에 대비하여 백제의 성충과 신라의 김춘추를 초청하여 핏줄이 같은 삼국 겨레가 힘을 모아 당나라를 물리치자고 설득한 내용과 임종 직전에 아들 (연)남생과 (연)남건을 불러 형제가 서로 화합하라고 유언한 내용이 그것이다.

민족의 주체성을 확보하고 같은 핏줄끼리 화합하자는 정신이다.

 

 

 

이런 연개소문의 정신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신채호와 박은식에 의해 "위대한 혁명가,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재평가받았다. 수나라 130만을 물리친 을지문덕과 마찬가지로 당나라의 침략에서 고구려를 지켜낸 연개소문은 불세출의 영웅으로 재평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증산도 월간『개벽』 통권 203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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