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학계가 절대 읽지 말아야 할 '금서(禁書)'로 만든 <환단고기>
주류 강단사학계가 다 아는 1911년 원본, 초간본을 증명할 등사본 발견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리자이나대학교 비종교학 교수로 재직했던 오강남 명예교수는 성서학자 중에서 기독교 <성경>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보는 학자는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은 세상에 다 알려졌듯 상당 부분이 누가 언제 어디서 썼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구약 성서>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수메르 신화와 아주 유사하고, <신약 성서> 중 절반 가까이를 사도 바울과 제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강남 명예교수는 성서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학자들은 기독교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를 '사이비'라고 매도하지 않고, 누구도 가치 없는 문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국 사마천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史記>의 본래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 우리나라 국보로 지정된 김부식이 편찬을 주도한 <삼국사기> 라고 알려진 한국의 <삼국사三國史>,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모두 원본이 없습니다. <사기>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첨삭과 교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80년 동안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식민사학이 절대 읽어서는 안 되고, 연구는 더더욱 안 되는 금서(禁書)로 낙인찍은 사료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1911년 운초 계연수 선생이 다섯 권의 역사서를 하나로 엮어 편찬한 <환단고기>는 독립운동가이자 스승인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받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환단고기> 원본, 곧 초간본은 내용을 나무에 새겨 찍어낸 목판본입니다.
2019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에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님을 입증하는 사료의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명우 운룡도서관장은 <환단고기> 원본을 증명할 '환단고기 등사본'을 발견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1968년 독립장이 추서된 해학 이기(1848~1909) 선생께서 1909년 7월 13일 절식(絶食) 끝에 순절하셨기 때문에 '환단고기 등사본'을 감수하였을 때는 1909년 이전으로 추정합니다.
한국 역사학계가 <환단고기>는 1979년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 창작해 만든 위서라고 주장하며 금서로 만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단국대학교 초대 학장을 지낸 장도빈(1888~1963) 선생께서 1962년 다섯째 아드님인 장치순 중앙대 명예교수에게 <환단고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심당 이고선 선생은 1924년 집필한 <환단세감>의 참고 문헌에 <환단고기>를 넣었습니다.





1911년 <환단고기> 목판본 30권이 간행됐지만, 아직 원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기주왈(李沂註曰), '해학이기주왈(海鶴李沂注曰)'이란 문장 '등사본' 곳곳에 있기 때문에 해학 이기 선생께서 감수한 초고에 해당하는 '환단고기 등사본' 발견은 초간본과 차이가 있지만, 원본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주류사학이 <환단고기>를 금서(禁書)로 만들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지금 당장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 금서(今書)입니다.
이명우 운룡도서관장은 '환단고기 등사본'을 발견했을 때 겪었던 충격적인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이명우 이사장이 '등사본' 존재를 알고 찾아갔을 때 먼저 복사해 간 사람이 '자기가 등사본을 논문으로 발표할 때까지 절대 공개하지 말고, 복사도 해주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사실입니다. '환단고기 등사본'의 존재를 알고 복사까지 해서 가져간 인물은 '환단고기 등사본'을 존재를 숨기고 '환단고기 위서론'으로 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등사(謄寫)'란 기름 먹인 원지를 철판에 올려놓고 철필로 긁어 글씨를 쓴 뒤 이 원지를 등사판에 붙이고 나서 시커먼 콜타르 같은 잉크 묻힌 롤러를 굴리면 종이에 글씨가 찍혀 나오는 것으로, 복사기가 등장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 많이 사용됐습니다. 일례로 대일항쟁기 삼일만세혁명 때 독립선언서가 인쇄소에서 인쇄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등사판으로 복사본을 찍어 냈습니다.
<불경>, <논어>, <도덕경>, <장자>, <열자> 등 많은 고전도 여러 사람에 의해 첨삭과 교정이 이루어지면서 누가 어느 부분을 썼는지조차 모릅니다. 오강남 명예교수는 최근 '환단고기 위서론' 문제를 보고 한국 역사학계가 유독 <환단고기>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연구 자체를 봉쇄하려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생각해 볼 가치가 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O-FT17nx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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