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분노를 일으키는 흉악범, 반역자, 살인마 등을 다룬 조선일보 기자 유석재의 '악인전'
해방 후 이병도와 신석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사회 전 분야에 진출한 유사역사학 카르텔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대는 일제가 언론,집회,출판,결사의 권리를 제한한 이른바 '무단통치시대'였습니다. 자유가 말살되고 언론에 대한 통제와 결사의 자유가 금지된 때였고, 유일하게 허가 된 단체는 1916년 조직된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뿐입니다. 1920년 친일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 회원을 중심으로 '조선일보'가 창간됩니다.
대정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의 '대정(大正)'은 다이쇼 일왕의 연호입니다. 1933년 금광사업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이후 현재까지 방씨 일가가 소유입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민족지(民族紙)'임을 강조했지만, 대일항쟁기 조선일보가 한때 항일 논조를 보인 적이 있지만, 적극적인 친일매국 행각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1940년 8월 폐간된 조선일보는 1945년 10월 복간합니다. 조선일보는 이승만 찬양뿐만 아니라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도 찬양했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무차별 폭행과 학살을 당한 시민들을 불순분자, 폭도, 극렬분자 등으로 매도했습니다. 2015년 12월 12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교육부와 교육위원회 업무보고 때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박지향 이사장을 상대로 질의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라는 유석재는 '악인전'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9회까지 흉악범, 살인마, 반역자 등을 다룬 시리즈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유사역사학 카르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악인전' 10회는 "극우·극좌가 열광하는 '국뽕'의 최고봉... 환단고기 창작자 이유립"으로 아주 충격적인 제목입니다.
유사역사학 카르텔의 막강한 파워를 만천하에 드러내려고 그랬는지 <환단고기> 발행인인 이유립 선생을 매관매직과 고종황제 독살을 계획한 김홍륙, 대몽항쟁기와 대일항쟁기 반역자, 살인마 우순경, 친일파 변절자가 된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 외무부 장관에서 월북한 반역자, 90여 명을 살해한 조선 선조의 6남 순화군 등 흉악범과 살인마와 반역자와 동급으로 취급하며 '거대한 사기극'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문제가 되는 기사는 유석재 기자가 작성한 "여순·환단고기 이어 4·3까지 대통령이 불붙인 역사 논쟁' 기사입니다. 조선일보의 '역사문화전문기자' 유석재는 기사 내용에 "최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 '환단고기는 왜 연구하지 않냐'고 질책한 것 등 역사 이슈를 불필요하게 전면에 부각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유석재가 주장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 환단고기는 왜 연구하지 않냐고 질책'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워딩(발언)은 100% 가짜뉴스입니다. 유튜브 등 영상을 확인하면 절대 그런 발언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시작된 유사역사학 카르텔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 조작 말살했습니다. 친일식민사학자 신석호가 깔아놓은 고려대에서 식민사학을 배운 후학이라 그런지 몰라도 없는 사실을 마치 있는 것처럼 왜곡해 놓았습니다.
前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면서 동아일보 친일 행적을 비판한 이부영 전 국회의원의 주장처럼 조선일보는 '시대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변신한 변신의 귀재'입니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발언을 왜곡하거나 조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역사를 전공한 기자가 20여 년 경력을 시궁창에 처박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주장을 했는데 몇 가지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①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이 책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비밀스럽게 전해지다가 그때 계연수의 주중에 들어갔단 말인가. 그것도 알 수 없다."라는 주장.
팩트체크: 대학원까지 역사를 전공한 자가 기본이 안 됐고, <환단고기>를 안 읽고 비판하나?
조선일보는 검증도 안 하고 내보내나?
유석재가 기사 작성 때 인용한 임승국 '한단고기'에도 '범례'에 사료 입수 경로를 설명해 놓았습니다.
<환단고기> 첫머리 '범례(凡例)'에서 밝혔습니다.




② "당대의 어느 누가 남긴 기록에서 '계연수'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연수가 과연 실존 인물인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라는 주장.
팩트체크: 1920년 중국 북경에서 간행되어 전 세계 29개국 150여 개 대학에 보내진 전병훈 선생의 <정신철학통편>, 1921년 11월 단군교 기관지인 <단탁> 창간호에도 계연수 선생이 등장합니다.
③"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는 환단고기 바깥 어디에도 기록이 보이지 않는 책이다."라는 주장
팩트체크: 1915년 출간된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 서언에 "옛 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고려 말 행촌 이암 선생이 지은 <단군세기> 서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④"국가, 문명, 권리, 인류, 전 세계, 세계만방, 남녀평권 같은 근대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등장하는데 이르면 아연해진다."라는 주장
팩트체크: 12월 30일 발행한 본 블로그 '환단고기 고대기록에 국가 원시 문화 인류 등 근대 용어 사용 환빠 논쟁'을 참조하면 됩니다. 소위 '학자'와 '기자'라는 자들이 사실 확인과 검증 절차를 무시하고 유사역사학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 막무가내식 주장만 합니다.




⑤"고고학적 근거는 또 어떠한가. 환국이나 배달국이 존재했다는 시기의 동아시아는 신석기시대인데 국가나 문명이 어떻게 출현할 수가 있는가."라는 주장
팩트체크: 환국과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영역에서 발견된 홍산문명의 실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은 중국 문명 밖으로 오랜 세월 오랑캐의 땅이라고 여긴 지역입니다. 중국은 홍산문명의 실체를 몰라 '신비의 왕국'이라고 규정했다가 지금은 역사 왜곡으로 중국사로 편입했습니다.
⑥"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인 어마어마하게 큰 나라에 살면 사람들이 위대해지나?"라는 주장
팩트체크: 환국은 12개 나라로 구성된 국가입니다. 지금의 직선거리 개념이 아니라 고대에는 꾸불꾸불한 비포장길을 말(馬) 타고 산 넘고 물 건너 하루에 가는 거리 약 100리(40km)로 계산해서 500일을 가면 5만 리가 됩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지명이 등장하는 중국의 '진서(晉書) 권 97 열전 제67' 내용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S7562q3z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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