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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by 도생(道生) 2014. 7. 5.

지금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제갈공명의 도덕성 우선의 리더십

 

지금부터 약 1,800여년 전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 황제 유비의 명재상으로, 뛰어난 전략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정치가이다.

비록 역사의 흐름, 즉 대세가 그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제갈공명의 리더쉽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귀감이 되고 있다.

 

"천하를 제패했더라도 도덕성과 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이 한마디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의 각 분야 고위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슴에 담아 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위정자들이 불법, 탈법, 위법 행위를 밥 먹듯이 하는데, 정작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는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손가락질 받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세상이 병들었다.

 

"그것은 관례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한다, 이건 죄도 아니다,  너도 하면서 왜 그러냐" 등 인간의 도덕성과 국민들과의 신의를 헌신짝 버리듯  땅에 던져 버리고 인간이라는 짐승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인간들이 각골명간해야 할 말씀이다.

 

 

 

 

 

제갈공명의 일관된 신념과 도덕성의 리더십

제갈공명!

그는 만고의 지략가이다. 뿐만아니라 탁월한 행정가, 상식을 뛰어넘는 발명가였고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가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일관된 신념과 도덕성에 바탕을 둔 리더쉽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유비 진영을 어엿한 삼국의 하나로 일어설 수 있게 하였다.

 

그는 원칙에 충실한 리더로서 인재기용에 있어 도덕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조조가 유재시거(唯才是擧)라 하여 능력만을 중요시했던 데 비해, 제갈공명은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기용했다.

또한 처음부터 한나라의 회복이라는 천하통일의 일관된 신념(삼고초려로 유비와 만난 27세 때부터 오장원에서 죽을 때 까지 27년간)을 간직하며 변절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정책에 책임을 지고 신상필벌과 믿음을 근본으로 하는 리더쉽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감한 개혁정책을 감행함으로써 경제 살리기에 성공하여 백성들을 잘 살게 하였으며, 국토를 넓힌 후에는 포용과 화합의 리더쉽을 보여주었다.

 

제갈공명이 발탁했거나 중용한 인물등을 보면 모두 한결 같이 도덕성을 갖춘 인물들이다.

위(魏)의 진영에는 인재가 많았지만, 촉(蜀)의 진영은 인재에 항상 갈급증을 느꼈다.

좁은 익주 한 곳에서만, 그것도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등용하다보니 정작 쓸 수 있는 인재는 늘 부족했던 것이다.

반면에 조조는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는 인재 기용 때문에, 간사한 자들이 드나들고 반역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예로 조조는 아첨하는 동소의 말에 귀를 귀울인 탓에 위왕이 되고, 나중에는 '한실의 찬탈자'라는 역사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전에는 그의 카리스마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사마의의 쿠데타로 왕조가 뒤엎히고 말았던 것이다.

 

 

제갈공명은 신념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사에 힘썻으며, 정책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였다.

삼국시대 말, 그는 위나라 원정길의 요충지인 가정을 지키는데 평소에 신임하던 마속을 내보냈다. 마속은 전략에 밝아 많은 계책을 내놓았지만, 실전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었다.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장수 왕평을 부장으로 붙이고, 직접 진을 치는 법까지 일러주며 만약의 실수에 대비했다.

 

그러나 마속은 도로에 진을 치라는 공명의 명을 어기고, 병법서에 나온 대로 원론적으로 산 위에 진을 치는 고집을 피웠다.

이에 촉군은 위군에 수로(水路)가 끊겨 대패하였다. 공명이 친자식처럼 아끼던 마속이었지만,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린다는 원칙 하에, 먼저 자신의 벼슬을 우장군으로 깍고, 마속을 참수했다. 이것이 바로 '읍참마속(泣斬馬謖:울며 마속을 베다)'이란 고사성어의 유래다. 마속은 공명과 의형제였던 마량의 아우로, 인재난에 허덕이던 촉의 처지에서 보면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확실한 법 집행은 촉의 백성과 문무백관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주었다.

이엄은 공명으로부터 벌을 받고 쫓겨난 인물이었지만, 공명이 죽자 오히려 이를 크게 한탄하며 병으로 죽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근신하면 다시 기용될 것을 확신하고 있던 터였는데, 공명이 죽자 그런 자신을 인정해줄 사람이 없음을 한탄했던 것이다. 역시 요립도 공명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지만, 정작 공명이 죽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탄식했다. "내 이제 좌임(서민)으로 끝나겠구나!"라고.

 

 

개인이나 조직의 준비성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도 목표를 성취할 수도 없다. 준비성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발견하게 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공명의 리더십은 그냔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이 아니라 항상 준비하고 정도를 걸으려고 하는 삶의 자세로부터 나온 것이다.

 

 

제갈공명은 어려서 불행하게도 부모를 잃고 숙부에 의지하여 자랐다.

숙부마저 죽고 의지할 곳이 없게 된 공명은 주경야독을 하면서 10년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초야에 은거하며 사는 평범한 농부가 아니었다.

그는 쉴새없이 방덕공, 사마휘와 같은 당대의 명사들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고, 형주 일대의 선비들과 교류했다.

 

그의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특출한 비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리더의 첫 번째 임무는 사명을 정의하는 것이다."라고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비전이 있으면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리더십의 핵심이란 추종자의 참여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보직은 리더십을 시험하는 무대(자리)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리더십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조직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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