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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231

국제통상무역 세계화(지구촌)와 자본주의의 물결을 탄 세계경제질서 국제통상무역, 세계화(지구촌)와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형성된 세계경제질서 천하만민이 물화(物貨)를 통상하는 새 생활법을 처결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 태고 시대의 자급자족에서 물물교환으로, 물품이 화폐처럼 사용되는 시대를 거쳐 현재는 동전과 화폐와 신용카드 등이 경제활동의 필수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2009년 일본의 프로그래머가 만든 비트코인 가상화폐는 온라인에서 극히 부분적이지만, 실제 화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된 지구촌화가 되기 오래전부터 생산과 소비와 소득의 필요에 따라 마을 단위를 넘어 도시와 국가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이 있었고, 주변국과 국제무역이 이루어졌습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등이 유럽과 중근동과 아프리카 등 현재의.. 2022. 9. 27.
일제의 쌀 수탈 산미증식계획과 보릿고개 해소의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 남해(南海)로 흐르던 섬진강 물줄기를 동진강을 거쳐 서해(西海)로 돌리심. 일제의 쌀 수탈 산미증식계획과 보릿고개 해소의 계화도 방조제와 간척사업 전라북도 임실군의 서북쪽에 위치했던 운암면은 1928년 운암댐(운암저수지)과 1965년 섬진강댐이 준공되면서 대부분 수몰됐습니다. 임실에 사는 주민들은 지명을 따서 운암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섬진강 하류 지역 사람들은 모래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다사강(多沙江)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섬진강 구간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두치강(豆治江)', '순자강', '탄진강'. '적성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일제는 19세기 말부터 식량부족으로 우리나라에서 쌀을 수입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이후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을 식민지배한 일제는 쌀 수탈을 .. 2022. 9. 2.
모악산 금평저수지와 청도저수지 및 유역변경식 운암수력발전소와 칠보수력발전소 상제님의 천지공사로 축조된 모악산 아래 금평저수지와 청도저수지 한반도 남쪽 최초의 유역변경식 운암수력발전소와 칠보수력발전소 천지인 삼계 대우주를 다스리시는 상제님께서는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默) 하나라도 천지공사(天地公事)가 아님이 없다."라는 말씀처럼 상제님의 행동과 말씀은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1908(무신)년 여름 증산 상제님께서 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쌍용리 용암마을 앞 물방앗간을 지나시며 "여기를 수리재라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제님을 따라가던 성도님들이 말씀의 의미를 몰라 여쭈니 "아, 이놈아. 물 넘어가는 고개도 모르냐?" 하시고 "이리로 물이 넘어가니 수리재라 불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넘어가는 고개가 생긴다는 '수리재' 천지공사를 집행한 비슷한 시기에 상제님께서 김.. 2022. 9. 1.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 호남평야(김제평야 만경평야)에 공급된 농업용수 일제가 1928년 준공한 운암댐과 1931년 운암발전소와 1945년 칠보발전소에서 공급한 농업용수 동진강을 통해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젖줄이 되다. 전라북도 김제시에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碧骨堤)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까지 유지되던 벽골제의 저수지 기능은 대일항쟁기였던 1925년 일본인 아베 후사지로가 설립한 동진수리조합에 의해 크게 훼손됩니다. 서력 330년 둘레가 약 40km에 달하는 거대저수지가 필요했던 이유는 지평선이 펼쳐질 만큼 최대의 곡창지대였기 때문입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입니다. 길이 74km의 만경강(萬頃江)은 전라북도 운장산에서 발원한 고산천(高山天.. 2022. 8. 26.
1914년 1월 11일 대전역과 목포역을 잇는 호남선 철도 개통 1910년 1월 충청남도 대전에서 논산의 연산 구간 착공을 시작으로 1914년 1월 11일 대전역과 목포역을 잇는 호남선 철도와 노령터널 개통 일반적으로 철도 사업의 목적을 여객운송과 화물운송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초 일제의 우리나라 철도 가설 목적은 전쟁을 위한 군사적 목적과 원활한 식민 지배와 수탈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특히 호남선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에서 수탈한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개통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경부선은 1905년 1월 1일 개통됐습니다. 경부선의 중간 지점이 대전입니다. 부산과 서울을 잇는 경부선을 생각한다면 1914년 1월 11일 개통한 호남선도 당연히 서울(상행선)로 가는 철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본래 호남선은 목포역에서 출발하면 대전역을.. 2022. 8. 25.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1928년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 일본 제국주의가 김제와 만경평야의 미곡 생산량 증대를 위해 일본인 대지주를 만들다. 일제의 동진수리조합이 주도한 1928년 운암댐 건설로 생긴 운암저수지(옥정호) 1910년 총칼을 앞세워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는 1905년 조선통감부 시절부터 준비해온 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실행합니다. 조선총독부는 합법을 가장해 불법적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고 원활한 식민지배를 위해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의 미곡을 수탈하고 농민을 지배하기 위해 조선토지조사사업을 벌입니다. 일제는 1906년 대한제국을 압박해 '수리조합 조례'를 공포했고, 국권 침탈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인의 땅을 빼앗았으며 일본인 대지주로 운영하는 수리조합사업을 시행합니다. 땅도 빼앗고 쌀도 빼앗고 조선인을 노예처럼 부.. 2022. 8. 24.
배 사과 포도 복숭아 등 우수 품종개량 과일 봉지 씌우기 작업 서양은 19세기 중반 목재펄프, 1909년 크라프트 용지(일본은 1925년 생산) 배, 포도, 사과, 복숭아 등 우수 품종개량 과일에 봉지를 씌우기 작업 우리나라 최초의 농약 공장은 대일항쟁기였던 1930년 일본 제국주의가 인천 학익동에 세운 조선농약(주)이지만, 우리나라가 현대와 같은 농약을 사용한 시기를 1920년대로 보고 있습니다.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의 조선 시대(대한제국) 서적에는 천연물과 무기물 농약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농약 공장이 세워지기 얼마 전부터 농약을 사용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일본에서 유입됐다는 의미입니다. 1429년 세종의 명을 받고 정초, 변효문 등이 지은 , 1618년 허균의 ,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의 와 서유구의 , 1886년 정병하의 , 1909년 이.. 2022. 8. 23.
일본의 조선 침략을 예견한 의병장 조헌과 최익현의 지부상소 임진왜란 전(前)과 강화도조약 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예견한 두 인물 의병장 조헌과 최익현의 목숨 건 도끼 상소, 지부복궐상소(持斧伏闕上疏) 임진왜란 조헌과 의병 ↑ 최익현 1590년 음력 3월 황윤길 등 일본으로 건너갔던 조선 통신사 일행이 1591년 음력 1월에 귀국합니다. 1591년 윤(閏) 3월 1일 왜(倭,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보낸 평조신과 현소 등 사신과 함께 한양에 입성합니다. 왜(倭)는 조선 침략의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명나라를 치러갈 테니 길을 내달라는 '가도입명(假途入明)'을 요구합니다. 강직한 성품의 기개 있는 선비였으며 임진왜란 때 700여 명의 의병(700 의총)과 함께 순절할 의병장인 중봉 조헌(1544~1592)은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갑니다. 1567년 문과에.. 2022. 8. 19.
항일 을미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된 1895년 을미왜변과 단발령과 군수삭발령 "내가 끊으면 시나브로로 다 끊어야!", "인제 죄다 깎어.... 다~ 깎어!" 항일 을미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된 1895년 을미왜변과 단발령과 군수삭발령 1894년 1월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동학농민혁명군 대대적인 활동 이후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톈진조약의 '동시 출병'을 명분으로 일본군도 한반도에 들어오게 됩니다. 1894년 7월 23일 얼마 전 죽은 일본의 前 총리 아베 신조의 외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난입한 갑오왜란(甲午倭亂)이 일어납니다. 일본군은 고종을 협박해 김홍집 내각을 국정 전면에 내세웁니다. 1894년 7월 25일 서해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군이 청나라 함대에 선제포격한 풍도 해전(海戰)을 시작으로 사실상 청일전쟁이 시작됐고, 1895년 4.. 2022. 8. 18.
서울 거리 대대적 정비사업 1904년 위생청결법 제정 상제님께서 솔선수범하여 천지공사로 처결하신 후 일제의 요구에 의해 완성된 서울 거리 대대적 정비사업, 1904(갑진)년 위생청결법(衛生淸潔法) 제정 19세기 말 급진 개화파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일본을 견학한 후 1882년 대한제국이 부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가 한성(서울)을 비롯한 조선의 도로정비 계획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치도약론(治道略論)'을 저술합니다. 김옥균은 깨끗하게 잘 정비된 도로를 만들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생과 건강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위생과 건강은 대한제국이 문명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상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 대한제국은 문명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전화, 전등, 전차, 수도 등 시설 설치에 심혈을 기울였고, 한성(서울)의 도로와 시가지 정비사업.. 2022.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