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선학교, 우주1년

경술국치 이후 명치 대정 소화 일본 왕의 이름 연호 사용과 대한민국 공식 연호 단군기원

도생(道生) 2024. 4. 5. 01:00

경술국치 이후 대일항쟁기에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등

일본 왕 이름으로 연호(年號) 사용과 대한민국 공식 연호 단군기원

 

 

 

 

2023년 별세한 사단법인 한배달 故 박정학 이사장님은 한평생 조국의 역사 광복을 위해 헌신한 민족사학의 큰 별입니다. 박정학 이사장님은 신문에 '단기(檀紀)'와 서기(西紀')는 '연호(年號)'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고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역사와 민족과 문화 등 전혀 관련 없는 서력기원을 연호로 지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문화가 자리 잡고 제도(制度)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황제국(천자국)만이 사용하는 연호(年號)도 역사 발전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정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때까지 역대 제왕께서 60간지(干支)와 함께 재위 원년을 기준으로 기년(紀年)했을 뿐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황제국이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 고려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연호(年號)는 '임금이 즉위한 해에 붙이던 칭호', 기년법(紀年法)은 '나라와 민족이 역사적으로 지나간 햇수를 계산할 때 특정한 연도를 기원으로 햇수를 세는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년법(紀年法)은 정치적 기년법, 특정 종교 창시자의 탄생과 사망을 기준으로 한 종교적 기년법과 천문학적 기년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군기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부터입니다. 19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일본 제국주의의 불의한 침략에 맞서 국가에 대한 애국심 고취와 민족의 단결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해방을 맞은 1945년까지 일본 왕의 이름인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연호가 사용됐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근현대 100여 년 동안 4번의 연호가 바뀌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연호가 없었던 조선의 27대 임금 고종은 1897년 황제국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光武) 연호를 사용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대일항쟁기에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제에 의해 일본 왕의 이름인 명치, 대정, 소화 등을 사용했습니다.

 

 

 

 

1948년 제헌 국회는 단군기원, 즉 단기를 공식 연호로 제정했고,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하여 만든 국가재건 최고회의는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서력기원을 공식 연호로 바꿨습니다. 단군기원 공식 연호를 폐기한 후 부작용은 계속 터지고 있습니다. 대일항쟁기 약 7,200년의 환국, 배달, 조선의 역사와 우리의 정신문화를 일제가 말살했는데, 해방 후 친일 청산이 무산되어 복원하지 못했고 신화로 굳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뿌리 역사가 말살되고 고대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는 국가가 됐습니다. 또한 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던 유일한 끈이었던 정신문화마저 잃어버리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이념으로 양분되어 철전치원수처럼 지내고 있고 위정자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이 왕조시대에서 민주공화국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연호에 대한 의미와 가치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간문제일 뿐 자기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잃으면 말라 고사하거나 언젠가는 반드시 쓰러져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서력기원 2024년은 환국기원 9221년, 배달기원(신시개천) 5921년, 단군기원 4357년입니다.

 

 

 

경술국치 이후 대일항쟁기에 명치(明治), 대정(大正), 소화(昭和) 등

일본 왕 이름으로 연호(年號) 사용과 대한민국 공식 연호 단군기원

https://www.youtube.com/watch?v=1AIqNuczro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