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선학교, 우주1년

고대 일본 문화 형성의 산실이었고 한반도 침략의 전진기지 대마도 쓰시마 섬

도생(道生) 2024. 4. 7. 01:00

고대 일본 문화 형성의 산실이었고 한반도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대마도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신봉하는 '일본서기'와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섬

 

 

 

 

미나미 지로(1874~1955)는 1931년 대장으로 승진하여 만주사변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일본 왕 직속의 육군 대신(육군 장관)을 지낸 미나미 지로는 1936년~1942년까지 조선총독부 제7대 총독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의 극동 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병보석으로 풀려나 1955년 사망했습니다.

 

 

조선어 사용 폐지와 일본어 사용, 창씨 개명, 한글 신문과 잡지 폐간, 강제노역,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서사 암기 등 무차별적인 황민화 정책과 민족말살정책을 주도한 미나미 지로가 조선 총독으로 재임하던 1937년 한국사를 왜곡 말살한 '조선사 35권'이 편찬됩니다. 1939년 미나미 지로는 현 경상북도 고령군의 고령향교 인근에 '임나대가야국성지비(任那大伽倻國城址碑)'를 세웁니다.

 

 

미나미 지로는 고령군 관음사 북쪽 언덕에 '임나일본부지(任那日本府址)'라는 팻말까지 박았습니다. 군인 출신의 조선 총독이 고대 야마토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인 양 비(碑)와 팻말을 세웠다는 것을 믿지 못할 수 있겠지만, 19세기 말 일본 왕 직속의 일본군 참모본부는 '황조병사', '임나고', '임나고고', '임나명고' 등 '임나일본부설' 관련 책을 간행했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는 한국 역사학계가 가장 신봉하는 역사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신봉하는 <일본서기>에 '임나'의 위치에 대한 기록은 아예 믿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나'는 고대 일본 문화 형성의 산실이었고, 후대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할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대마도, 즉 쓰시마 섬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침략의 근거로 내세운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후반 야마토 왜의 신공왕후가 한반도의 신라, 가야, 백제를 지배하고 '일본부(日本府)'를 두어 6세기까지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원문을 보면 이름과 연대가 맞지 않고, 무엇보다 만삭의 몸으로 정벌에 나서자 신라, 고구려, 백제의 왕들이 바로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했다는 내용 자체가 황당합니다.

 

 

 

 

<일본서기>에서 지금 검증해도 아주 정확하 게 맞는 내용 중 하나는 '임나', 즉 대마도(쓰시마 섬)의 위치입니다. 단군조선부터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등 선진국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 일본 열도로 전해지면서 고대 일본 문화 형성의 산실이었고 한반도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쓰시마 섬(대마도)의 위치는 옛 기록을 토대로 검증해도 변함없지만, 한국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서로 다른 내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일본 제국주의자 식민사학자들이 내세운 것이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입니다. 가야는 인정하지 않고 고구려, 백제, 신라는 4세기에 이르러서야 고대국가 성립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원룡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원삼국 시대'라는 명칭으로 바꾼 식민사학의 후예입니다.

 

 

 

고대 일본 문화 형성의 산실이었고 한반도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대마도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신봉하는 '일본서기'와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섬

https://www.youtube.com/watch?v=SKdasWIxT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