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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십칠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구등조, 호위영락태왕"

(還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단군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관계


















약 15년 전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고, 스토리 전개의 문제점 때문에 때론 비판도 받았던 화제작 '주몽'을 기억하실 겁니다. 드라마 '주몽'은 한류 열풍을 타고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외국인은 한국의 역사 드라마를 시청한 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뿐만 아니러 한국인도 우리가 만든 우리의 역사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배우면서 왜곡된 역사 이미지는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역사 드라마가 바로 '주몽'입니다.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주몽'은 고조선의 멸망 때부터 고구려가 건국되는 시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주몽'은 방영 당시 때도 중국의 '한사군' 문제와 일제 식민사관을 반영한 심각한 역사 왜곡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주몽' 드라마에서 가장 왜곡이 심한 부분은 고조선을 계승하여 북부여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부여를 건국한 시조 해모수 단군과 북부여를 계승하여 고구려를 창업한 시조 고주몽 성제를 부자(父子) 관계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사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 고구려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사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 및 한韓민족의 역사와 정신문화의 참모습을 기록한 <환단고기>를 부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역사기록만 아는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자 중 누구도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온 내용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광개토대왕비문 중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 조작 가능성이 있는 글자, 논란이 있는 해석 부분을 제외하고 판독 가능한 글자 중에서 고구려가 어느 나라를 계승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주는 내용이 있고,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관계를 밝혀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이 풀리 못하는, 아니 풀지 않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을 소상하게 밝혀주는 사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환단고기>를 무조건 부정합니다. <환단고기> 역사를 인정하면 자신들이 그동안 주장한 식민사학을 부정해야 하고 기득권이 모두 사라져 밥그릇을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환단고기>의 <북부여기>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부터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께서 건국한 역사를 다루고 있고,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구려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북부여기>에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과 고주몽 성제께서 북부여의 마지막 7대 단군으로 즉위한 내용이 나옵니다. <태백일사 -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구려지선 출자해모수, 해모수지모향 역기지야(高句麗之先 出自解慕漱 解慕漱之母鄕 亦其地也, 고구려의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왔는데, 해모수의 고향이 또한 그 땅(고구려)이다."라고 나옵니다.




<북부여기 -고구려국본기>에 "고리군왕고진 해모수지이자야 옥저후불리지 고진지손야 개이토적만공 득봉야(稾離郡王高辰 解慕漱之二子也 沃沮侯弗離支 高辰之孫也니皆以討賊滿功 得封也), 고리군의 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이다, 모두 도적 위만을 토벌한 공으로 봉토를 받았다."라고 하여 해모수에서 고진, 불리지(고주몽의 아버지 고모수)로 이어지는 혈통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광개토왕비문에는 "환지십칠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구등조 호위영락태왕(還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다시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에 왕위에 오르셔서 칭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사를 가르치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자 중 과연 고주몽 성제의 고조할아버지가 해모수 단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류 강단사학계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에 나온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추종하는 일제 식민사학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1935년 중국의 길림성 집안현에서 발견된 모두루 묘지(墓誌)에 고주몽 성제가 건국한 고구려가 해모수 단군이 건국한 북부여에서 왔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로부터 13세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19대 임금입니다. 













고구려의 열아홉 분의 임금 중 형제상속과 종손상속을 제외하면 19대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 됩니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비문에 쓰인 17세손에 대한 비밀은 북부여의 역사를 알때 수수께끼를 풀 수 있습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역사를 알기 위한 비밀의 열쇠가 바로 <환단고기>입니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4세손입니다. <환단고기>의 <삼성기>에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께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 단군을 시조로 삼아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계해춘정월 고추모 역이천제지자 계북부여이흥 복단군구장 사해모수 위태조 시건원 위다물 시위고구려시조야(至癸亥春正月 高鄒牟 亦以天帝之子 繼北夫餘而興 復檀君舊章 祠解慕漱爲太祖 始建元爲多勿 是爲高句麗始祖也), 계해(단기 2276, BCE 58)년 봄에 이르러 고추모(고주몽)가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받들어 제사 지내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시니, 이분이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



해모수 단군께서 단군조선을 계승하여 건국한 북부여로부터 고주몽 성제께서 건국한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역사의 문을 닫을 때까지 907년의 역사입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은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려 세운 것입니다. 만인에게 공개된 광개토대왕비문을 해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역사학자라고 자칭하는 참으로 우스운 세상입니다.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1부 한민족 역사광복의 성지 강화>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2부 환단고기가 밝히는 단군조선>







<환단고기 북콘서트 강화도 편 - 3부 동방 천자의 나라 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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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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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1.01.09 0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

  2. kangdante 2021.01.09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군조선에 대해 알고 갑니다
    연일 강추위지만 따듯한 하루되세요.. ^^

  3. 키미추 2021.01.09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4. 딱조아 2021.01.09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5. 리뷰어디노 2021.01.09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포스팅 잘 읽고 가요~!구독 꾸욱 누르고 갈게요~

  6. dowra 2021.01.09 2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조선 이전은 잘 알지 못했는데 깔끔하게 설명과 함께 정리를 해 주셨네요
    덕분에 긴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고 갑니다

<대한민국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1부 대한大韓,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잃어버린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광개토태왕비문과 고구려 창업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

 

 

 

 

 

 

 

 

 

 

 

 

 

대한민국 보물 제722에서 국보 제322-1호와 2호로 승격된 소위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부르는 책은 서력 1145년 김부식을 비롯한 11인이 2년여를 공들인 끝에 편찬한 우리나라 역사서로 원표제명은 <삼국사三國史>입니다.

 

우리가 흔히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 출신으로 우리 역사 왜곡 조작에 앞장섰던 샤쿠오 슌조가 <삼국사三國史>를 <삼국사기三國史記>라고 번역한 후부터 일제는 의도적으로 '삼국사기'로 불러왔고, 광복을 맞은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일제 식민사학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는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계가 '삼국사기'라고 주입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샤쿠오 슌조는 부산과 대구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대구일보 창간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샤쿠오 슌조는 서울에 올라와 경성중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조선잡지사를 운영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조선에 관한 지식과 역사 연구가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샤쿠오 슌조가 비록 역사학자의 정통코스를 밝아온 학자는 아니었지만,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장악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우리의 고문헌과 사료 등을 연구했고 28종 83책의 번역 출판을 주도했습니다.

 

샤큐오 슌조가 우리 역사를 왜곡 조작 날조할 때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도 개입한 것을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책의 표지에는 분명하게 <삼국사三國史>라고 되어있지만, 대한민국 정부(문화재청)와 주류 강단사학계는 굳이 '삼국사기'라는 이름으로 보물과 국보로 등재했고 영원히 '삼국사기'로 불리기를 원합니다.

 

 

 

 

 

 

 

 

 

 

김부식의 <삼국사 - 고구려 본기>에는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동명성왕이라고 하면서명성왕과 고주몽 성제가 누가 봐도 동일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기록했습니다.

 

 

1883년 일본군 사카와 가게노부에 의해 발견된 광개토태왕비가 1,500년의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지만, 지난 100여 년 동안 깨어진 글자와 해석의 차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1,802자로 이루어진 광개토태왕 비문은 <환단고기>를 엮어 편찬한 운초 계연수 선생이 1898년 탁본을 떴을 때만 해도 117자만 파악이 어려웠는데, 1912년 다시 탁본을 떴을 때는 138자가 완전히 마멸되어 있었습니다.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태왕께서 잃어버린 옛 영토를 회복한 업적을 기록한 훈적비가 광개토태왕비이며 내용 전문을 광개토태왕 비문이라고 합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의 관계 및 고주몽 성제의 유훈(遺訓)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을 그대로 받든 장수태왕은 광개토태왕 비문에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를 창업한 해모수 단군과의 관계와 고주몽 성제의 '이도여치以道輿' 유훈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의 아버지가 해모수라고 했는데,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환지십칠세손還至十七世孫,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이구등조二九登祚, 호위영락태왕號爲永樂太王" '다시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는데, 18세(391년)에 왕위에 오르셔서 칭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서는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뿐만 아니라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도 역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을 고구려의 태조(太祖)로 삼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주몽 성제는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으로부터 17세손이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 광개토태왕입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와 있는 혈통을 역으로 올라가 보면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13세손이며, 고주몽 성제가 태조(太祖)로 삼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17세손이개토태이 됩니다. <삼국유사>도 그렇고 <삼국사기>도 고구려 시조 고주몽 성제와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을 부자(父子) 관계로 만든 것은 대한민국에서 국보로 지정된 역사서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나와 있는 고주몽 성제의 유훈(遺訓)은 "이도여치以道輿治"입니다.

'도道로써 나라를 다스렸다'라는 "이도여치'는 장수태왕 때까지도 인류의 원형문화와 정신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글자가 깨어져 확인이 불가하든 석회 칠을 했든 상관없이 지난 1,500년 동안 광개토태왕 비문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글에 나와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해모수 단군은 북부여의 시조이면서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뿐만 아니라 구 후손들도 모두 해모수 단군을 고구려의 시조인 태조(太祖)로 모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비문을 통해 우리는 인류 창세역사의 천지 광명문화가 온전히 전해져 고구려 장수태왕까지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大韓의 역사는 상고 시대의 역사뿐만 아니라 고대의 역사와 근대의 역사까지 철저하게 왜곡, 조작, 말살되었습니다.

한韓민족의 상고 시대인 배달국과 단군조선 역사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사의 고대사를 이어주는 나라가 바로 해모수 단군께서 창업하신 북부여입니다.

 

 

우리는 '일제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 날조된 소위 '주몽신화'와 드라마 '주몽' 등의 영향으로 해모수의 아들이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라고 알고 있지만, 해모수 단군은 북부여 창업 시조이시며,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의 고조부님이 되십니다.

동명왕(東明王)은 고구려를 창업한 고주몽 성제가 아니라 북부여 5세 단군이신 고두막한 단군입니다.

 

 

 

 

 

 

 

 

 

 

 

 

 

 

<대한민국 국회 환단고기 북콘서트> - 1부 대한大韓,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다.

잃어버린 한국의 고대사와 근대사, 광개토태왕 비문과 고구려 창업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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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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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20.04.25 0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2. 젤루야 2020.04.25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잔 내용글 끝까지 잘읽고 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3. 혜니웨이 2020.04.25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공부했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ㅠㅠ 잘 보고 갑니다😊

  4. JOHN TV 2020.04.25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좋은하루 보내시고

    자주 소통해요~^^

  5. 모아모아모아 2020.04.25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놀러가기 딱 좋은 날씨네요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을 보내세요~~^^

  6. _soyeon 2020.04.25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가용 ㅎㅎ

  7. 병구씨 2020.04.25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닷 ㅎㅎ

  8. Deborah 2020.04.25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역사적 공부를 제대로 하고 가요

  9. 가족바라기 2020.04.25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공부 배우고 갑니다
    즐거운주말되세요

  10. 버블프라이스 2020.04.27 1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개토태왕비문과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 성제의 유훈 글을 잘 읽고 몰랐던 역사를 공부하고 갑니다^^

 

환단고기의 구성

 

『 삼성기 상』, 『 삼성기 하』, 『 단군세기』, 『 북부여기』, 『 태백일사

 

 

『환단고기』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신라 고승高僧 안함로에서 조선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다.


 

 

삼성기

두 권의『삼성기』는 인류의 창세 역사와 잃어버린 한민족사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데 근간이 된다.『 삼성기 상』이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라고 하여 ‘환국이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된 나라’임을 선언한 것을,『 삼성기 하』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하여 ‘옛 적에 환국이 있었다’는 말로써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삼성기 상』은 동북아에 세운 한민족 첫 왕조의 국호가 배달이었음을 처음으로 밝혔으며,『 삼성기 하』는 환국의 열두 나라 이름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전하고 있다.『 삼성기 하』는 또한 현 인류의 시조인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 두 권은 깍지 낀 두 손처럼 서로 음양 짝을 이루어 인류와 한민족의 시원사를 드러내 준다.

 

 

 

단군세기
『단군세기』는 고조선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의 성쇠와 함께 한 고조선 47대 단군의 2,100년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기록한 사서이다.『 삼성기』,『 단군세기』,『 태백일사』에서 일관되게 전하는 삼한관경제의 관점에서 고조선사를 들여다볼 때,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북부여기

『북부여기』는 유일하게 부여사의 전모를 밝혀 주는 진귀한 책이다. 기존의 국내 외 사서에서 말한 부여사라는 것은 부여 역사의 주체이던 북부여가 망한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망명 부여’들의 단편적인 사실을 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북부여기』에는 북부여의 건국 시조인 해모수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져 있다. 고주몽이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은 후 고구려를 열었음을 밝혀 주는 이 책 덕분에, 비로소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인 부여 역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태백일사

『태백일사』는 8권으로 짜여진 사서로, 인류의 원형문화인 신교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온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전한다.첫머리에「 삼신오제본기」가 나오는 이유는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이 한민족의 상고사를 이해하는 데 중심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삼신오제본기」는 삼성조 시대의 정치, 종교, 건축, 의식주 문화 등 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역사 철학서인 것이다.『 태백일사』는 또한『 삼성기』와『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 배달, 고조선의 소상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환단고기』각권의 내

『삼성기』

 

안함로의 『삼성기 상』과 원동중의 『삼성기 하』가 음양 짝을 이뤄 한민족의 국통 맥을 바로 세우고, 한韓문화의 원형이 '환桓(인간 마음의 본성이자 현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 이었음을 밝혀준다.

 

특히 『삼성기 하』는 12환국의 이름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두 권을 함께 읽어야 한민족 상고사의 특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군세기』

 

고려 말에 행촌 이암이 엮은 역사책으로 총 2,096년 47대 단군의 치적과 중요한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특히 고조선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를 밝혀, 한국의 강단사학계에서 해석하지 못한 고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얽힌 의혹, 고조선 문화의 실체 등을 총체적으로 해명해 준다.

 

『북부여기』

 

고려 말에 범장이 쓴 책으로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6대 단군 182년의 역사와 북부여에서 파생한 다른 부여의 역사를전한다.

 

부여 역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출생과 혼인에 대한 비밀을 밝혀, 북부여가 고구려로 계승되었음을 밝힌다.

 

『태백일사』

 

조선 중종 때 이맥이 쓴 8권의 책으로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첫머리에 해당하는 「삼신오제본기」는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성립된 음양오행 사상을 전하는 역사 철학서로 신교문화이 기틀을 밝힌다.


「환국본기」,「신시본기」,「삼한관경본기」는 『삼성기』, 『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배달-고조선의 7천 년역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소도경전본훈」은 신교의 경전 성립사를 기록한 책으로 한민족 시원문화의 3대 경전(『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을 기록하여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과 수행문화의 원형을 밝혀준다.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는 각각 고구려, 대진국(발해), 고려의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기록하였다.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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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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