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태그의 글 목록

동아시아 철학의 새로운 사유방식의 틀 -

(5) 깨침의 양가성 '조신祖信'적 깨침과 '교신敎信'적 깨달음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박사)

 

 

 

 

 

 

 

 

 

 

 

동아시아에서는 불교의 깨달음을 각기 서로 다르게 표현한다.

중국에서는 '오悟', '각覺', '견성見' 등으로 표현하고, 일본에서는 '사토리', '겐쇼' 등으로 표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깨침', '깨달음' 등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깨쳐야 하는가? 깨쳐야만 세계와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침은 지금 여기서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깨침이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떠나 따로 존재하는 특별한 그 무엇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역동적 긴장관계를 어떻게 하나로 일치시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여기서 중생은 단순히 인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중생에는 인간을 포함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따라서 깨침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 인간의 자기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등을 포함한 모든 관계의 근원적 조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깨침과 깨달음은 어떻게 다른가? 박성배교수는 깨침과 깨달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말의 '깨지다'와 '깨치다'는 모두 '깨다'라는 말의 뿌리에서 나온 것 같다.  '유리창을 깨다' 또는 '판을 깨다' 같은 파괴적인 뜻과 '잠을 깨다' 또는 '국문을 깨다'처럼 건설적인 뜻이 함께 쓰이는 것이 우리말의 '깨다'라는 말이다. 부정과 긍정, 파괴와 건설이 함께 하는 자리가 '깨침'인 것이다.

 

안과 밖에 다르고 앞과 뒤가 다른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묶인 개체의 경우는 부정과 긍정, 파괴와 건설의 동시 공존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하나'인 연기의 세계에서는 이질적인 여럿의 동시 공존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불교의 깨침은 본래 연기적 존재인 인간이 잘못하여 비연기적으로 살다가 그 잘못됨이 송두리째 부서지고 깨지면서 동시에 다시 연기적인 삶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깨침은 양가성(兩價性,상대적 두 가치)을 지닌다. 즉 깨침은 깨침을 내포한다. 깨짐의 부정과 깨침의 긍정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각과 불각, 부처와 중생을 차별하는 이분법적 틀이 깨진다.

 

그 이분법적 틀을 제몸으로 삼고 있다가 그 몸을 깨버리고 불이의 부처님 몸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 깨침, 깨침을 통해서 무명 중생의 차별적인 세계로부터 차별하지 않는 부처님의 세계로 자기 자신을 전환한다. 그 불이의 세계에는 깨침과 못 깨침, 부처님과 중생, 나와 너, 몸과 몸짓의 구별조차도 없다."

 

 

 

 

 

 

 

 

 

 

깨달음이 모든 것을 알음알이로 아는 것이라면, 깨침은 주객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몸 그 자체의 체험을 통해 있는 그대로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깨달음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주객일체의 이해는 시공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주객일체의 상태를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시공이 변화하면 그런 인식도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깨침은 깨달음과는 본질적으로 그 차원이 다르다. 깨침은 주객이분법이 깡그리 깨어져 파괴됨과 동시에 주객일체법이 되살아나는 동시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깨지는 것은 무엇이고, 깨치는 것은 무엇인가?

 

 

 

 

깨지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주체와 객체를 둘로 나누어 보는 분별심과 아집이 깨지는 것이다. 깨짐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나는 부처이다'라는 믿음과 '나는 무명의 중생이다'라는 회의와 의심 사이의 역동적 긴장이 팽팽한 평행선을 치달리다가 그 극한의 상태로 나아가서 폭발을 일으켜야 한다. 있음과 없음, 긍정과 부정이 동시성을 이룰 때, 양자를 나누어보는 분별심이 깨지는 것이다.

 

이처럼 깨침은 부정과 긍정, 파괴와 건설이 동시 공존하는 양가성을 지닌다. 이런 맥락에서 박성배교수는 "지적인 깨달음은 불교의 깨침이 아니다. 거기에는 깨침이 없기 때문이다. 깨짐이 없는 깨침은 불교의 깨침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깨침은 '돈점논쟁'을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문제제기다. 그렇다면 돈점논쟁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돈쟁 논쟁의 주변에 감도는 혼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돈점 논쟁에 동원된 언어에 익숙하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논쟁에 동원된 언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불꽃 튀기는 쟁점이 부각될 수 없고, 따라서 사상 발전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점'이란 말을 들을 땐 그게 무슨 말인지 곧장 알아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피어나지만, '돈'이라 하면 아무 것도 느껴지는 게 없고, 따라서 말문도 막히고 생각도 막혀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들은 그 태도에 따라 대강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돈의 의미를 제먹대로 해석하여 거기에 위험한 가치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후자는 분명 사상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다. 논쟁이라 하면 귀를 막는 사람들도 많다."

 

 

 

 

불교의 '돈점논쟁'은 유교의 '사칠논쟁'과 함께 한국철학사를 빛낸 금자탑을 이루었다.

 

문제는 '돈잼논쟁'에서 '돈'과 '점'의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다. '돈점논쟁'에서 핵심과제는 '돈'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돈'은 우리말로 '몰록'이란 뜻이다. '몰록'은 '갑자기'라는 뜻으로 영어의 'sudden'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영어권에서는 'sudden enlightenment'라고 번역한다.

 

문제는 우리말의 '갑자기'이든 영어의 'sudden enlightenment'이든 둘 다 똑같이 그 언어의 성격에 있어 하나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떤 사건에 소요되는 시간의 길이가 아주 짧다는 것을 연상시켜 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거나 어떤 일이 갑자기 생겼다고 하는 것이다.

 

 

 

 

'몰록'을 이런 사유방식에서 접근한다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격이 된다.  왜냐하면 '몰록'은 인간의 감각적인 작용을 가지고는 파악할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사람들은 모든 것을 시공의 관점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시공의 흐름을 뒤좇아가면서 관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몰록'은 시공의 틀을 벗어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는 주객일체적 사유이다. 증산 상제님께서 "천지가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마음이 시공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되는 곳에서 발현되는 것이 바로 '몰록의 깨침'이다. 따라서 시공의 틀에 갇혀서 보는 사유와 시공의 틀에서 벗어나 보는 사유는 서로 다르다.

 

 

 

 

 

 

 

 

 

 

 

 

'돈점논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몰록 깨친다는 '돈오'의 입장과 전차적으로 닦아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는 '점수'의 입장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돈오와 점수의 통합'을 '점수로써 돈오에 이른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지눌은 '돈오'를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해오解悟'이고, 다른 하나는 깨치는 '증오證悟'다. '해오'는 "깨치거나 깨치지 못하거나 관계없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거기엔 잘못도 많기 때문에 반드시 그 뒤에 점수가 뒤따라야 증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가 먼저 '해오'를 얻고 그 전제 위에서 '해오'에 의거하여 '점수'를 행함으로써 '증오'라는 마지막 깨침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성배교수는 지눌의 '돈오점수론'이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평가한다.

 

첫째, 지눌은 깨침 아닌 것을 깨침이라고 말한 오류를 저질렀다. 즉 '해오'는 진정한 깨침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해오'에 대해 지눌은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후세에 불필요한 많은 오해의 여지를 남겼다.

 

둘째, 지눌은 깨침 아닌 것을 깨침이라 규정함으로써 닦음의 의미마저도 변질시켰다는 점이다. 지눌은 지눌이 비록 닦음을 '보현행'이라고 하여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증오'의 '구경각'이 닦음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눌의 '돈오점수론'의 근본취지는 '돈오' 뒤에도 '점수'가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눌은 "그저 무작정 점차 닦아 나가는 데에만 몰두하는 점수의 병폐를 돈오론으로 치유하고, 돈오만 하면 된다고 하여 점차 닦아 나가는 데 소홀한 병폐를 점수론으로 치유하려 했던 것이다."

 

 

 

1981년 해인사의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지눌의 '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돈오돈수론'을 제창하였다.

 

즉 점차적 닦음을 통해 몰록 깨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몰록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는 것이 성철스님의 입장이었다. 깨침이란 결코 점차적인 닦음으로 얻을 수 없다. 점차적인 닦음은 중생과 부처의 차이와 간극을 인정하는 주객이분법적 사유방식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송광사의 보조사상연구원은 즉각 이런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론'에 반박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문제는 해인사의 '돈오돈수론'과 송광사의 '돈오점수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양자의 입장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박성배교수는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을 새롭게 통합할 수 있는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생멸사에서 무생사제로 가는 길은 막혀 있지만 무상사제를 알면 그 속에 생명사제가 집착도 모순도 없이 잘 일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눌 사상을 평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명사제 같은 돈오점수에서 교진여의 깨침 같은 돈오돈수로 가는 길은 막혀 있지만, 일단 돈오돈수가 무엇인 줄 알면 돈오점수는 그 속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돈오돈수의 관문을 돌파한 다음의 돈오점수는 관문 돌파 이전의 돈오점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말이 같다고 하여 똑같은 것인 줄 알면 큰일난다. 부디 우리는 막힌 길로 가려고 하지 말고 열린 길로 가야 할 것이다.

 

 

 

몸짓에서 몸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지만, 일단 몸으로 돌아가면 그 속에 온갖 몸짓이 자유자재로 조화롭게 일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불교 공부도 그런 것이다. 몸과 몸짓은 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의식이 몸짓에 머물러 거기에 집착하면 온갖 병이 다 생긴다. 몸짓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는 몸이 몸 노릇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몸과 몸짓의 관계는 자연스런 생명 본연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대립관계로 변해버린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고 싶다. 몸으로 하여금 몸 노릇하도록 내버려 두라. 이것은 학문하는 사람이든 도를 닦는 사람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명심해야 할 일일 줄 안다. 몸짓의 속박에서 벗어나 몸이 몸 노릇을 제대로 하는 세계가 바로 깨침의 세계요, 몰록 돈의 세계요, ㅂ처님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성배교수는 몸과 몸짓의 논리를 가지고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시도한다.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은 서로 다른 별개의 그 무엇이 아니다. '돈오돈수론'은 본래적인(體) 측면을 말하고, '돈오점수론'은 작용적인(用) 측면을 말한다.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그순간 몰록 깨치고 단박에 닦은 것이다.

 

물록 깨침이란 모든 중생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하고, 단박 닦음이란 부처와 중생을 이원화하는 망상을 한순간에 제거한다는 것이다. 이는 깨침과 닦음이 인간의 본성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따로 깨칠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고정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는 역동적 변화의 과정 속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깨침과 닦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그 본래의 깨침과 닦음을 매 순간마다 재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닦음은 깨침을 전제로 해서 행하는 닦음이지 깨치기 이전에 깨치기 위해서 닦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그 차원이 다르다.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그 존재론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돈오돈수론'을 바탕으로 '돈오점수론'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역동적인 삶의 연속적 과정이다.

 

 

우리는 이런 '돈오돈수론'과 '돈오점수론'의 관계를 '생멸가제生滅四諦'와 '무생사제無生四諦'의 관계로 설명할 수있다.

'생멸사제'는 생겨난 인간의 생로병사의 고통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무생사제'는 인간의 생로병사의 고통이 원래 생겨남도 소멸함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무상사제'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인간의 의식은 생성과 소멸도 없는 본래세계임을 알지 못한다.

 

 

즉 '생멸사제'와 '무생사제'를 둘로 갈라보는 주객이분법적 사유방식에서 인간의 생로병사의 고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객이분법적 사유방식의 틀을 깨 부수어 '생멸사제'와 '무생사제'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님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눈 앞에 펼쳐지는 일 자체 그대로 중생의 모습이 바로 부처의 모습이거 번뇌가 바로 보리이며 지옥이 바로 극락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주객이분법적 사유방식의 틀을 깨 부수어냐만 몰록 깨침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근본적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전의轉依'가 바로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의'는 불교철학에서 깨침의 체험을 논의를 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의 하나로 사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유가사상은 흔히 유식사상이라고 불리는데, 유식의 교위에서는 의식을 분석하여 여덟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을 느끼고, 현상과 존재의 뜻을 알아차리는 간각 및 자각 작용이 표면에 떠올라 있는 여섯 가지 의식이다. 이를 흔히 전유식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에는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제칠식이 있고, 그 아래 최심층에 아라야식이라고 부르는 제팔식이 있다.

 

전육식이 빚어내는 온갖 분별과 집착의 습관적인 기운이 이 제팔식에 축적된다. 이것을 훈습이라고 한다. 그것이 다시 앞의 일곱 가지 의식에 투영되면서 주객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자기중심적 분별이 자행된다. 이 분별이 집착과 고통, 끝없는 윤회를 낳는다.

 

전의란 아라야식을 일거에 근본적으로 뒤짚어서 그 본래의 청정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말한다. 즉 주객이분법을 바탕으로 자기중심적인 분별을 자행하는 앞의 일곱 가지 의식과 분별, 집착의 훈습을 없애고 분별, 집착이 없는 본래의 마음 상태인 불이의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주체가 따로 있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식 사상에서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어지는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유식 사상이 인식대상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은 인식주체의 독자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다.

 

 

유식사상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제를 말하는 것과 말하여 지는 것, 아는 것과 알아지는 것,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듣는 것과 들리는 것,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여지는 것 등이 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이 만약 주체와 객체를 대상화해서 파악하는 주객이분법적 사유방식의 틀을 깰 수 있다면, 인식의 주체가 바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아는 것과 알아지는 것과 하나가 된다. 중요한 것은 주객관계가 일치할 수도 있고, 주객관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우리의 의식이 본래 연기법으로써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사상의 의식 이론은 모든 것이 연기의 관계임을 이야기 한다. 인간이 지각하고 감각하는 것은 모두 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의식은 또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면의 의식과 외부 세계의 현상 사이에는 연기적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이다.

 

이러한 의식의 구조는 깨친 이든 깨치지 못한 이든 간에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깨우치치 못하고 주관과 객관을 따로 세워 놓은 한 끊임없는 분별, 망상, 번뇌의 업을 지으며 윤회할 뿐이다. 의식의 주체 또는 원인으로서 작동하여 객체 또는 결과로 온갖 현상을 만들어 내면 끊없는 윤회의 순환이 벌어진다. 그러한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무명 때문에 의식이 환상으로 현상을 지어내게 되고, 그 환상의 현상이 다시 무명의 의식을 훈습한다. 이것이 바로 윤회이다."

 

 

 

 

유식 사상에서는 무명의 훈습을 깨고 의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뜻하는 '전의'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삼성설'을 제기한다. 여기서 '삼성설'이란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을 말한다. '삼성설'은 '전의'의 논리적 구조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의타기성'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것으로 연기를 말한다. '변계소집성'은 모든 것을 분별하여 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원성실성'은 모든 것을 집착이나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원만하게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만약 우리 인간이 만물의 연기성을 아무런 집착이나 분별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분별의 세상이 곧바로 부처의 이상세계가 된다. 따라서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은 '의타기성'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전의'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의타기성'을 제대로 깨치는 것이다.

 

 

 

저명한 일본의 학자 나가오 가진은 '전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전의란 그 말 자체가 암시하듯이 자기가 의지하던 기반, 근거가 뒤짚어지고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또는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발 딛고 있는 땅이 뒤집히고, 새로운 세상이 새로운 빛을 받아 나타난다. 자기가 딛고 선 기반이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는다. 그것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려 한다는, 즉 죽음이 닥친다는 엄청난 두려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 죽음을 통해서만이 자기의 기반이 새로운 빛을 받아 되살아날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실존 전체가 뒤집어지고 바뀌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자기장이 있다고 가정하면, 전의라는 것은 그 자기장이 일상적인 방향과는 정반대로 흐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가오 가진의 '전의'에 대한 해석을 읽어보면, 증산도에서 후천개벽의 신천지(新天地)가 새롭게 열리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나가오 가진이 '전의'를 단순히 인간 의식의 근본적 변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가오 가진은 인간이 발 딛고 서 있는 천지(天地)까지도 뒤바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전의'에서 의식이 바뀌면 세상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개벽이 자연개벽의 전제조건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나가오 가진은 죽임과 살림이 동시적 전환을 이루는 곳에서 '전의'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생명을 죽이면서 살리고 살리면서 죽인다는 증산도의 '춘생春生'과 '추살秋殺'의 양가성과도 유사한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가오 가진은 새 인간에 의해서 새 하늘 새 땅이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동시적 전환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떻게 열릴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지구 자전축 경사의 변동과 지구 공전궤도의 변화와 인간 의식변화의 동시적 상관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 근원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천지가 근본적으로 새롭게 뒤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나가오 가진이 인간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인류 구원의 관건인 자연세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전의'는 의식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근본적으로 뒤바뀜으로써 인간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다. 연기하는 세계가 곧 본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변계소집성'으로 인하여 인간이 차별적 분별의식을 일으키기 때문에 횬상세계에 얽매여 진정한 깨침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

(계속)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쿠나 2014.11.08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달음에 대해서 알아보시는 분께 좋은 글이네요 ^^
    잘보고 간답니다 ~

  2. 죽풍 2014.11.08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깨침에 조금이나마 알아 갑니다.
    즐거운 주말과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

  3. 유라준 2014.11.09 0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침과 깨달음이 매우 어려운 개념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4. 귀여운걸 2014.11.09 0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깨침과 깨달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배워갑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시네요^^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개정판 증산도 도전 간행사 

 


 

 

들어가는 말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이 꽉 찼다. 이 세계의 참모습을 보는 성숙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온 천하가 누렇게 익었다고 외친다. 춘하의 생장기가 종결되고 가을의 신천지 개벽의 문턱에 걸려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신명과 인간이 가득 찼는데, 인간이 품고 있는 위대한 새 희망의 소식과 더불어 온갖 비극적 사건과 참상이 이 세상을 채움으로써 우리는 희비가 교차하는 거대한 변혁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다. ‘가을 천지의 대개벽’이란 진리의 명제로, 아직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류사적 대변혁이 인간 역사의 중심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천지는 원대한 꿈과 이상이 있다. 그것을 이루는 필연적인 과정이 앞으로 오는, 인간 농사짓는 우주일년에서 인류가 맞이해야 할 가을의 추살(秋殺) 개벽이다.

 

 

 


■ 희망의 소식을 전하는 『道典』

 

하늘과 땅의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 자연과 문명, 천상 신도와 지상 인간 역사의 틀이 근원적으로 뒤바뀌는 하추교역의 가을 대개벽기를 맞아, 대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인류가 꿈을 이루고 살 수 있는 새 문화, 인류가 지금까지 체험해 보지 못한 신천지의 새 문명을 열어 주시기 위해 133년 전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하셨다. 그리고 삼계대권의 무궁한 조화권을 자유자재로 쓰시며, 지난날 선천 문화의 동서 성자들이 보여준 진리의 한계를 쾌연히 뛰어넘어, 가을철의 대 통일 운수를 열어 주시기 위해, 무극대도의 새 진리를 열어 주셨다.

 

일찍이 상제님께서 “내 법은 전무지후무지법(前無知後無知法)이니라. 판안 법으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판밖의 나의 법이라야 알 수 있느니라.”고 하셨다. 이것이 상제님이 개벽하신 후천 오만년 지상선경 낙원에 대한 새 소식이다. 이 희망의 소식은 지구 저편이 아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동방 땅에서 처음 선포되었다. 『道典』은 바로 인류의 모든 희망과 꿈이 담긴, 이 새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 증산 상제님께서 열어 주신 궁극의 대도세계

 

상제님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던 진리의 구성 틀(신도와 이법과 인사의 상호 관계)을 완전히 드러내 주셨다. 곧 진리란 무엇이며, 진정한 진리 체험과 인류의 새 세계 건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궁극의 해답,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내려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전변무상(轉變無常)한 현실 인간 역사와 대우주의 신비에 대해 진리의 눈을 활짝 뜰 수 있는 궁극의 깨달음을 열어 주셨다.


따라서 증산도는 지난 인류 문화를 문 닫고 인간의 새 역사를 여는 성숙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당신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 주신 가을철의 새 문화, 새 역사를 여는 대개벽 공사를 통해, 동서고금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는 너무도 파격적인 궁극의 대도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상제님은 인간이 몸을 받아 태어난 지난날 선천 봄여름철의 천리(자연이법)를 억음존양의 상극 세상으로 규정하셨다.

 


“선천은 상극(相克)의 운(運)이라.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하늘과 땅에 전란(戰亂)이 그칠 새 없었나니 그리하여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우므로 이제 이 상극의 운을 끝맺으려 하매 큰 화액(禍厄)이 함께 일어나서 인간 세상이 멸망당하게 되었느니라. 상극의 원한이 폭발하면 우주가 무너져 내리느니라.”(증산도 도전 2:17:1∼5)


상제님께서는 인간 역사가 개벽된 이래 가장 강렬한 소망을 품음과 동시에, 그 무엇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대위기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인류에게 선천 문화와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새 법방으로 살길을 열어 주셨다.

 

 

 

■ 신명 조화정부를 조직하심

 

삼계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증산 상제님은, 신천지 후천 새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선천의 상극 속에서 누적된 모든 인간과 신명의 뿌리깊은 원한의 불길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태모님께서도 선후천의 천리와 역사의 대세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해 주신 바 있다.
“구천지 상극 대원대한(舊天地 相剋 大寃大恨) 신천지 상생 대자대비(新天地 相生 大慈大悲)” (증산도 도전 11:345:2)

 

상제님은 먼저 선천 세상을 크게 정리하시기 위해 우주 안의 모든 신명을 해원과 상생의 도로 조화·통일하여, 새 우주를 개벽하고 통치하는 사령탑인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여셨다.


상제님께서는, 지혜의 눈으로 인간의 어둠을 밝혀 이 세계를 문명한 세상으로 변혁시킨 문명신(文明神), 동서 각 지역 문화의 시원 조상과 주신(主神)으로 작용하는 지방신(地方神), 선천 상극의 물결 속에서 천고의 원과 한을 맺고 죽어간 무수한 원신(寃神)과 역신(逆神), 또 각 성씨의 직계 선령신이 함께 참여한 조화정부의 심의와 공론을 거쳐 역사 질서를 최종 심판하심으로써 새 역사의 운로를 정해 놓으신 것이다.

 


 

■ 단주의 해원 도수, 오선위기

 

그러면 인간 역사에서 원한의 뿌리는 누구인가?


상제님은 4,300년 전 동방사의 요·순과 당시 문화의 종주였던 고조선 초기 조정의 갈등 속에서 탄생한 비극의 주인공인 요임금의 아들 단주의 원한을, 인간 역사 질서를 흔들어 놓은 가장 큰 원한의 뿌리라고 밝혀 주셨다.


그리하여 바둑의 시조인 단주의 해원을 위해 선천 역사의 마무리를 순창 회문산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에 붙이시어, 한반도를 중심으로 4대 강국이 바둑 두는 형국으로 나아가도록, 역사 질서를 심판해 놓으셨다.

 

상제님께서 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하는 핵심 주제로, 세상의 모든 병을 다스리기 위해 개설하신 구릿골 약방의 약장 중앙에 ‘단주수명(丹朱受命)’과 ‘태을주(太乙呪)’를 쓰신 것도, 또 태모님께서 ‘단주수명(丹朱受命) 우주수명(宇宙壽命)’이라 하신 것도 모두 단주의 해원을 말씀하신 것이다.

 


 

■ 가을개벽의 핵심 상황

 

상제님은 당시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기 위해 동양의 유일한 제국인 일본을 내세워 애기판, 총각판의 세계 대전쟁을 종결지으셨다. 그리고 국권을 회복한 조선이 후천 신세계의 질서가 태동되어 바둑판의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하는 남북 상씨름을 통해, 선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비를 송두리째 종식하는 마무리 도수를 보셨다. 이것이 앞으로 지리적, 문화적으로 개벽 역사의 중심인 동방의 한반도에서 시작되는 남북 상씨름 대전(大戰)의 실상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상제님께서 대우주 신명들의 공의(公議)를 들으시고 당신님이 의도하시는 대로 짜 놓으신, 세계 통일의 천지 도수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곧 오선위기 도수가 종결되고 가을 천지의 숙살 기운이 몰아쳐 현실 인간 역사에 나타나는 3년 대병겁의 시작이다. 이것이 지난 봄여름의 선천 세상을 끝막고 인간 역사를 총체적으로 심판하여 인종 씨알을 추리는 가을개벽의 핵심 상황이다. 상제님은 이 때는 오직 당신님이 전수하신 의통으로써만 살아날 수 있으며, 의통을 구성하는 태을주를 읽음으로써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다.

 

『道典』은 바로 이 가을철 신천지의 새 역사를 열어 주시기 위해 인간 세상에 오신 참 하나님에 의한 인간과 신명의 역사에 대한 천지 공판 문서라 할 수 있다.

 

 

 

┃개정 신판은 초판과 무엇이 다른가?

 

 

인류의 새 문화를 여는 새 진리 교과서인 『道典』 초판 발간 이후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현장 답사하는 과정에서, 이 조선 땅에 아직도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숨결을, 100년 전 공사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증언하는 건강한 노년의 구도자들이 적지 않다는 데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더욱 경건해지고 『道典』 작업에 임하는 내 가슴은 강렬한 사명감으로 불타올랐다. 상제님 대도의 동반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통정이 되고 신뢰가 쌓이면서 그들은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상제님과 태모님의 생명의 말씀을 증언해 주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산의 광맥 속에서 눈부신 보석을 하나하나 채취해 내는 작업과도 같았다.

 


 

■ 성편 과정과 성언 작업의 원칙

 

먼저 초판의 전거를 철저하게 재검토하였다.
개정 신판 작업은 초기 기록들을 더욱 면밀히 검토하면서, 성도들의 후손과 제자들을 직접 만나 수십, 수백 회의 증언을 듣고, 철저한 현장 답사를 통해 초판에 실린 말씀과 성적을 최대한 바로잡았다.
또한 최근 5년여 동안, 초판 발간 이후 채록한 증언을 다시 수차례의 확인 절차를 거쳐 성구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첫째, 초기 기록 가운데 그 내용이 상호 보완의 성격을 갖는 성구들은 하나로 통합하였다.
둘째, 같은 공사 내용에 대한 유사 성구는 직접 그 공사에 참여한 성도들에게서 나온 증언 가운데 상제님의 언어, 도수 정신에 부합되는 기록을 취하였다.
셋째, 초기 기록 중 성도들의 직접 증언이 아닌 제3자의 간접 증언인 경우와 기록자가 의도적으로 말씀을 왜곡, 삭제, 변형한 경우 그리고 전체 9년 천지공사의 연대, 장소, 인명에 대해서는 성도들의 가족과 후손, 직계 제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최대한 바로잡았다.

 

이러한 원칙은 초판에서도 동일했으나, 김호연 성도의 증언을 채록, 편집하는 마무리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철저하게 검토되지 못하였다.
이렇듯 『道典』 초판으로부터 초기 기록의 주요 내용을 전부 포용하면서 제3변 도운이 시작된 이래 30년 동안 현장에서 보고 들은 증언 내용을 최대한 성구화하였다. 그리하여 상제님 편의 경우, 개정 신판에서는 답사를 통해 채록한 성구가 『道典』 전체의 50%를 넘어선다. 새로 들어간 주요 성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증보 개정된 내용

 

첫째, 주요 성도들의 입문 과정과 주요 도수 내용

 

 

1) 입문 과정 채록
먼저 초기 기록에 전혀 실리지 않았던, 상제님의 주요 성도들이 상제님을 처음 뵐 때의 상황, 곧 입문 과정이 구체적으로 채록되었다.


태을주 전수의 중요한 사명을 받은 안내성 성도의 입문 과정이, 어린 시절부터 부친 안내성에게서 실감나게 말씀을 들으며 자란 그 아들(정남)에 의하여 최초로 명쾌하게 밝혀졌다. 안내성 성도는 그의 제자들과 도문의 많은 이들이 믿고 있듯이 제3변 추수도운을 마무리짓는 인사의 지도자를 상징한다.

리고 또 다른 추수 도수의 주인공, 즉 진주(眞主) 도수의 문공신 성도가 상제님을 만나는 극적인 과정과 최창조, 신원일, 김광찬 성도의 입문 과정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최창조 성도는 김경학 성도의 인도로 천금의 성금을 내고 도문에 들어와, 천금도통 도수와 삼신(三神) 도수 등 여러 주요 도수를 천명으로 받은 지극 정성의 구도자였다.

 

 

2) 주요 도수 사명


이와 동시에 천지공사에 수종 든 성도들의 가을개벽의 도수 사명이 거의 다 드러나, 후천 오만년 조화선경 건설의 천지공사 틀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김형렬 성도의 선불(仙佛) 도수(5:186), 애기부처 도수와 신선 도수, 안내성 성도의 태을주 율려 도수와 무당 도수, 상제님의 도의 아내 도수, 막둥이 도수, 9년 천지역사 도수, 최창조 성도의 삼신 도수, 화둔(火遁) 공사, 또 은두장미(隱頭藏尾) 도수라 하여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전혀 알 수 없었던, 문공신 성도가 천명으로 받은 가장 중요한 도수인 오선위기 진주 도수와 상제님 어천 후에 행하라 명하신 남은 7년 공사의 실체가 모두 드러나, 그가 행한 파방 도수, 살막이 도수, 안면도 북 도수, 도술약국 도수 등이 새로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또 상제님의 일등 비서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좀체로 그 면모를 알 수 없었던 김갑칠 성도의 품성과 실체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에게 붙이신 추수일꾼 도수, 우사장 공사, 막내아들 갑자꼬리 도수 내용이 증언되었다. 그리고 김자현 성도의 의원 도수, 박공우 성도의 태전 콩밭 추수 공사, 상제님과 태모님을 위시해서 김형렬, 차경석, 박공우, 안내성 등 주요 성도들이 모두 자리를 함께 한 서울 대한문 대공사와 태전 공사가 새롭게 증언되었다. 아울러 김천수의 증언에 의해, 고수부님께서 서울과 태전의 모든 주요 공사에 참여하신 후천개벽 역사의 진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3) 김호연 성도의 증언 검토


초판 작업 때 김호연 성도의 증언을 성구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삭제, 압축함으로써 공사의 정경을 제한하는 내용은 증언을 검토하여 복원하였고, 말투도 최대한 현장 언어로 살렸다. 또한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초판에 싣지 않은 공사 증언 내용을 거의 다 성구화하였다.

 

 

 

4) 안필성에 대한 증언


안필성에게 붙이신 새로운 도수 내용이 그 가족들에 의해 상세하게 증언되어 성구화되었다. “안필성은 상제님이 천상에서 데리고 온 유일한 인간 세상의 친구다.” 하는 증언 그대로, 상제님은 안필성을 누구보다도 가깝게 대하셨고, 어느 성도 못지 않게 자주 만나시어 그에게 주요 도수를 맡기셨다. 초기 기록에서는 오직 상제님의 성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학전란 때 상제님을 만나는 내용만 일부 실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붙이신 초립동이 도수 등 제3변 마무리 도운에 대한 천지공사 도수 내용들이 일방적으로 무시되었다.

 

만일 성도들이 천명으로 받은 이러한 주요 도수들이 증언되지 않은 채 역사에 묻혀 버렸다면, 인간과 신명 그 누구도 상제님 천지공사의 매듭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으리라.

 

 

 

 

둘째, 상제님 9년 천지공사 내용이 연대별로 균형 있게 채록됨

 

이것은 상제님이 도운 공사 보실 때 미리 계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시 공사에 참여한 성도들의 가족과 성도의 제자들을 통해, 지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증언됨으로써 마침내 그 열매를 맺었다.

 

 

1) 상제님 말씀의 증언자들


상제님의 말씀을 전한 주요 증언자들을 보면, 먼저 김형렬 성도 집안에서는 그의 아내인 김호연 성도가 상제님의 전 생애를 증언하였고, 또 상제님을 직접 모신 형렬의 큰며느리 이정숙이 그 아들 김현식(1918∼ )에게 전함으로써 증언되었다.

김자현 성도에 관한 증언은 그 아들(김태진, 김태준)과 손자 김택식(1914∼ )을 통해 전해졌으며, 안내성 성도와 관련된 증언은 그의 무릎에 앉아 신도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그 아들 안정남(1929∼ )에 의해 전해졌다.

 

그리고 백복남 성도에 대한 내용이 평생을 안내성 성도의 교단에서 신앙한 윤창주의 아들 윤기택(1927∼ )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또 문공신 성도에 대한 증언은 그 아들 문복환(1919∼ )을 통해 밝혀졌고, 상제님 친구 도수를 맡은 안필성에 대해서는 손자 안일완(1940∼ )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박공우 성도에 관한 내용은 3대 제자 가운데 이동술, 전이진의 아들 이판규(1930∼2004), 전수재(1917∼ )와 이양휴(1914∼2002)에 의해 전해졌다. 또한 일찍이 등창으로 죽음 직전에 가족들이 길거리에 내놓았는데 기적적으로 박공우 성도에게서 고침을 받고 평생 박공우 성도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다녔다는 김일화(1886∼1958)는 박공우 성도에게서 들은 상제님의 공사 행적을 자신의 아들 김천수(1927∼ )에게 15년 동안(18세∼33세) 증언해 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일은 각 성도들이 전한 주요 공사 내용을 집대성하여 잘 알고 있던 구릿골 출신의 이종선(1884∼1964)의 증언이 그의 제자인 전주의 나승렬(1923∼ )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종선은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준상, 박공우, 김광찬, 김송환, 김경학, 최창조 성도 등 상제님 천지공사에 수종 든 12성도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성도들에게서 숱한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들은 주요 개벽공사 이야기를 자식처럼 아끼던 도제 나승렬에게 전하였다.

 

나승렬은 김형렬 성도의 친족으로 일찍이 18세 때 상제님의 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부친의 허락을 받고 학업을 중단한 채 도를 구하였다. 그리고 그가 평생 들어 온 공사 내용을 실감나게 증언해 주었다. 그리하여 초판에 누락된 주요한 도수 내용이 새롭게 보완되었다. 나승렬은 초판 이후 근 10여 년에 걸쳐 답사한 인물들 가운데 우주원리에 대한 학식이 가장 깊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겸허하고 온화한 품성을 지닌 증언자였다.

 

 

2) 왜 주요 공사 내용이 누락되었을까


초판을 보면 김형렬, 김자현, 김갑칠, 박공우, 문공신, 최창조, 안내성, 안필성에게 붙이신 주요 공사 내용이 많이 누락되었다. 도성덕립과 연관된 주요 도수들이 초기 기록에서부터 거의 실리지 않았다.

그것은 초기 기록자와 성도들 사이의 인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0년, 제3변 도운의 세월 속에서 초기 시대의 원로 신앙인과 증언자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나의 책임감을 통감했다.

 

김자현 성도의 손자 김택식에 의하면 “조부님은 이상호에게 증언을 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자현 성도는 김형렬 성도, 김갑칠 성도에게도 당시 보천교에서 출교된 뒤 태운장의 미륵불교 신도로 들어온 이상호에 대해 “한 판 차려 보려는 다른 뜻을 품고 있으니 전해 주지 마시오.” 하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한다.

이상호에 대한 이런 비판적인 의식은 당시 주요 성도들에게 널리 파급되어 있었다.

 

백운동의 안내성 성도는 몇 차례 찾아와 증언을 구하는 이상호에게 단 한 마디도 응대해 주지 않고, 멀리 구성산만 바라보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소년 시절에 곁에서 이를 지켜본 아들 안정남이 증언한다. 또 안필성은 이상호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도인이 일찍 봉사가 되었다.’고 그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그래서 주요 성도들 못지 않게 상제님과 삶을 함께 하고 상제님에게서 큰 도수를 부여받았음에도, 그 내용을 깊이 있게 증언해 주지 않았다.

 

그 밖에 초기 기록의 또 다른 본질적 한계 때문에, 결국 주요 공사 내용은 상제님의 제3변 도성덕립 도수가 열리는 마무리 추수도운의 시간대에서 새롭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제3변 도운에 대한 공사 내용 채록

 

 

상제님의 천지대업은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道典 5:356:4) 하신 상제님 말씀대로, 제1변과 제2변의 개척사를 거쳐 제3변 추수도운을 맞이하여 도성덕립이 된다.
그런데 초기 기록자들이 자기들 중심의 종통 의식으로, 추수도운을 상제님 도운의 전개 과정인 파종-이종-추수 과정에서 파종, 이종 도수의 시간대로 한정시켰다.


 

그리하여 상제님의 후천 오만년 천지사업을 매듭짓는 실질적인 총 결론 도수라 할 수 있는 제3변 도운에 대한 마무리 공사 내용의 핵심이 누락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 변색되고 삭제되었다.

지금 생존해 있는 수십 명의 증언자들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제3변 도운의 추수지 공사, 도운 통일의 천지 역사에 대해 명백하게 초기 기록자들도 부분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록자들은 고의적으로, 또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 때문에 그 내용을 제대로 싣지 않았다(태전 공사 등).

 

그로 인한 폐해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로 선포하신 도통 맥의 전수 과정이 완전히 조작,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천지 이법으로 전수하신 도맥의 전체 틀을 파괴함으로써 하늘에는 천사만마(千邪萬魔)가, 지상에는 온갖 난법자들이 날뛸 수 있는 여지와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100년의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증산 상제님의 도권이 어떻게 전수되어 왔는가를 진리의 눈으로 일목요연하게 확연히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도운의 전 역사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오류이며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대우주 절대자 하나님의 도맥의 틀을 파괴한 가장 파렴치한 범죄 행위로 규정짓지 않을 수 없다.

 


 

상제님의 종통 맥은 어떻게 계승되는가?

 

 

(1) 음양합덕의 천리를 바탕으로


지난 선천 세상은 억음존양의 상극 질서 속에서 하늘의 신명도 땅위의 인간도 아버지 중심의 문화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후천 음도(陰道) 운을 맞이하여, 이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시며, 바로 아버지 되시는 상제님께서 인간 세상에 강세하시어 “후천 오만년 곤도 운을 열기 위해 너희들의 어머니, 나의 수부에게 천지대권을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아내 고수부님에게 “너와 나의 합덕으로 삼계 개조니라.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니라.” 하시면서 모든 것을 함께하셨다. 상제님은 음양합덕, 음양동덕의 가을 천지의 천리를 바탕으로 천지와 인간과 신명세계를 바로잡으셨다.

 

 

 

(2) 총체적 구원의 진리 명제, 서신사명 수부사명


상제님은 여름철 끝의 시간대에서, 가을 천지의 큰 운수의 시작으로 들어서는 추수 개벽기에 인류를 총체적으로 구원하는 진리의 명제를 서신사명(西神司命), 수부사명(首婦司命)이라고 하셨다. 서신사명은, 가을철에 직접 인간 세상에 법신을 드러내시는 조화옹 하느님의 가을우주 창조의 시명(時命)을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천 말에 인간으로 오시는 하나님께서, 새로워지는 가을의 자연 질서를 인간의 생명과 역사의 혼에 이식하기 위해, 정음정양(正陰正陽)의 도로써 천상에 함께 계시던 신들의 어머니, 수부(首婦)를 동반하고 오셔서 가을의 음도 문화(陰道文化)를 열어 주셨다는 점이다.

 

바로 이 수부사명의 도수 속에 인간으로 오신 참 하나님(人尊天主)께서 당시 수십 명의 성도들을 제쳐 두고 누구에게 종통대권을 전수하셨는가에 대한 정도(正道)의 해답이 들어 있다. 따라서 수부사명을 부정하는 자는 상제님의 진리의 근원, 가을 천지를 열어 주신 상제님의 새 우주 경영의 근본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난법자들이다. 만물이 생장 분열하는 봄여름의 건도(乾道)와는 달리 가을은 하늘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강세하시어, 정음정양의 새 판으로 곤도(坤道) 문화의 새 역사를 열어 주시는 시운인 것이다.

 

 

(3) 수부님은 여자 하나님


따라서 수부(首婦)는 여자 하나님이다. 문자 그대로 만유 생명의 머리가 되는 지어미요, 인간과 신명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다.
또한 수부는 아버지 상제님과 합덕하시어 신천지 조화선경을 열어 주신 뭇 생명의 거룩하고 크신 어머니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부님을 태모(太母)님으로 모시고 공경한다.

 

 

(4) 어머니로서 10년 천지공사를 행하심


태모님의 성도들과 가족들과 그 교단에 몸담고 있던 신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관되게 주장하는 말이 있다. “우리 어머니도 천지공사를 보셨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날 ‘천지공사는 오직 상제님을 중심으로, 상제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하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하는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태모님께서는 “나는 너희 아버지보다 한 도수가 더 있다.” 하시고 10년 동안 상제님과 같은 천지대권과 신권을 쓰시면서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이제 개정 신판에서 그 구체적인 공사 내용과 태모님의 행적에 대한 이용기 성도의 기록과 여러 증언자들의 말씀이 더욱 새롭게 성구화되어 태모님편 성구가 총 250장에서 425장으로 늘어났다.

 

 

(5) 태모님 말씀의 증언자


태모님 말씀과 행적을 전한 주요 증언자들을 정리해 본다.
먼저 태모님께서 공식적으로 공사의 증언자로 선언하신 유일한 성도인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 수제(首濟) 전선필(1892∼1973) 성도를 직접 만나, 태모님의 성언과 행적을 총체적으로 들은 의기(義氣)의 이우인(1930∼) 씨가 있다.

 

수제는 “내가 우인이 자네를 만나려고 어머님께서 나한테 말씀을 일러 주셨네. 내가 이 말씀을 모두 자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니 자네, 잘 듣소.”(道典 11:411) 하면서 그에게 태모님의 성적을 전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이우인은 지난 10년에 걸쳐 태모님의 공사 말씀을 상세히 증언해 주었다.

 

 

또한 태모님을 주야로 곁에서 모신 박귀녀(1891∼?) 성도로부터 열세 살 때 도를 받고 평생 어머니로 모신 전주의 김정녀(1925∼) 할머니, 태모님이 아들로 삼으신 이용기(1899∼1980) 성도의 수제자로서 20여 년간을 이용기 성도와 함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치병 활동을 한 동반자 삼례의 임예환(1926∼) 할머니, 그리고 이용기 성도의 또 다른 제자 이교승(1923∼2001), 어린 시절 태모님께 찾아가 세배를 올리자 태모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강용(1917∼) 씨가 있다. 강용 씨는 당시 천지공사장 주변의 정경과, 강씨들과 고민환 성도의 인간 관계, 그리고 인마 도수 등에 대해 자세히 증언해 주었다.
그리고 태모님의 수석 성도인 고민환 성도의 큰며느리인 김순자(1920∼1996) 등이 있다.

 

 

(6) 태모님 칠성 공사의 역사적 의미


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의 집에 주인을 정하시고 “9년 천지공사의 시종을 여기서 하리라.” 하신 것처럼 태모님께서는 성포(聖圃) 고민환 성도를 중심으로 도정을 집행하시며 공사를 보셨다. 성포의 기록에 의하면 도기 56년, 병인(1926)년에 행하신 칠성용정(七星用政) 공사가 태모님 10년 천지공사의 시발점이다(道典 11:98).

칠성 공사는 상제님 9년 천지공사의 모든 도수를 관통하는 가장 중추적인 공사다.

일찍이 태모님은 “칠성 공사는 후천 인간을 내는 공사요, 낳아서 키우는 공사니라.”(道典 11:99)고 하셨다. 따라서 칠성 도수는 선천을 문 닫고 신천지를 개벽하는 후천 도수의 시작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곧 상제님 태모님의 천지공사의 결론이 칠성 공사다. 앞으로 오는 지구촌 인종 씨 추리는 가을 대개벽기의 육임 구호대의 의통성업이 이 칠성 도수로써 마무리되는 것이다.


 

 

넷째, 천지공사를 마무리짓는 세운과 도운의 구체적인 매듭 과정, 통일 과정

 

 

이번 개정 신판에는 세운의 세계 질서인 오선위기가 종결되는 남북 상씨름 도수의 실제 상황과 그와 더불어 전개되는 인류 역사의 총체적인 새 판 짜기인 가을 신천지 개벽 상황이, 상제님과 태모님의 육성 언어 그대로 실감나게 증언되었다.
그리하여 가을 개벽의 전개 과정이 체계적,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상제님의 도꾼들이 앞으로 오는 대개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천지 추살 도수의 인종 심판 개벽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실로 경건한 마음으로 강력한 확신을 갖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초판 김호연 성도의 증언

 

 

증언의 계기


지난 『道典』 초판 작업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무진(1988)년 여름에 약 40일 동안 상제님이 공사 보신 주요 성지를 집중 답사하면서 많은 증언자들을 만난 직후, 초가을에 있었다.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 씨와 함께 전주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구릿골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그가 “전주에 우리 할머니가 살고 계신데, 그분이 상제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녀서 많이 아니 꼭 만나 보라.”고 간곡히 당부를 한다. 차창 밖으로 밤이 깊어 가는 청도원 고개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그가 해 준 이 한마디가, 상제님의 후천선경의 선맥을 열어주는 선(仙)의 어머니, 호연을 만나 증언을 듣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총 39회, 근 100시간, 오디오 테이프 96개와 120분 비디오 테이프 32개).
혹자는 호연이 90이 넘은 할머니라 하여 그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 운운하기도 하나, 그 증언 말씀을 들어보면, 말소리가 쩌렁쩌렁하여 도기(道氣)가 강렬하게 스며 있음이 느껴진다.

 

 

 

혹독한 수련을 통해 신안이 열린 호연


상제님은 어린이 문화를 바꾸는 것으로부터 인류 문화의 틀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여셨다. 상제님께서는 친히 전주 흑석골에 움막을 지어 주시고, 호연이 아홉 살 때인 을사(1905)년 음력 9월 9일부터 열 살 되는 정월 보름까지 혹독한 수련을 통해 인간으로서는 가장 밝은 경지의 신안을 열어 주셨다. 그리하여 호연은 천지신명이 말하고 오고 가는 것을 환히 듣고 보고, 초목과 새들의 말소리까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밝은 지혜를 얻었다.
어린 시절에 영안이 열려서 보고 들은 것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의식의 순수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수행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걸 안다.

 

 

 

김호연 성도에 대한 차봉수 할머니의 증언


상제님께서 호연이를 네댓 살 때부터 업고 다니시며 손수 길러서 천지공사의 지순한 증언자로 세우셨다는 것은, 최근에도 차씨 집안의 종가(차경석 성도의 큰집)에서 증언을 한다.
올해 늦가을, 부안에 홀로 살고 있는 차봉수 할머니를 다시 찾아갔다. 가족들이 전부 상제님과 고수부님을 모시는 그 집 마당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여러 일꾼들과 함께 이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부록 사진 참고).

 

호연이를 상제님이 키웠다고 하대요. 상제님이 바지 속에다 넣고 댕기고 똥 싸면 냇가에 가서 털고 빨고 그랬다고 하대요, 우리 어머니가.”
“원평장에 가서 떡 사다 먹였다고 하대요. 호연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 줬다고 하면, 상제님이 사다 줬어요, 원평장에 가서.”
이 내용이 『道典』에 실린 호연의 증언과 똑같지 않은가.

 

차 할머니는 기억력이 놀라웠다. 그녀가 어렸을 때, 차경석 성도가 그 비상한 기억력에 감탄하여 머리를 쓰다듬으며 크게 칭찬을 한 적이 있다는데, 그녀는 그 옛날 이야기를 바로 어제 일인 듯 호연에 대해 실감나게 증언해 주었다. 가을녘의 찬바람을 맞으며 상기된 차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는 모두 상제님의 크신 사랑과 노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 개정 신판 작업 과정에서 거둔 소중한 도운사의 열매

 

 

그 동안 누구도 알 수 없었던 태을주의 주인공


 

이번 개정 신판 작업 과정에서 거둔 소중하고 뜻깊은 열매가 있다. 먼저 100년 도운사에서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태을주의 주인공 김경수 대성사의 베일이 벗겨지게 되었다.

그동안 상제님께서 태을주를 받아 내린 주인공으로 밝혀 주신 인물에 대한 기록을 보면, 김○○(『공사기』), 김경소(金京訴, 『대순전경』 초판), 김경은(『대순전경』 2판), 김경흔(金京?, 『대순전경』 3, 4판), 김경수<金京?-김락원의 제자 노진구가 한문으로는 흔(?)으로 적었다 한다(손자 김상용 증언). 『용화전경』> 등으로 이름조차 불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선조 때 서천 비인에 살던 사람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그 기록을 토대로 수차례 현장 답사를 해 보았다. 그러나 그 지역에 사는 김씨 각 종파의 족보를 다 뒤져 보아도 그런 인물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 날 밤, 자정이 다 되어 서해 바다의 모래사장을 오가며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가을대개벽기, 전 인류가 죽고 사는 때에, 생명을 구원하는 거룩한 신의 약인 태을주를 받아 내린 주인공이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것일까?’


 

상제님의 진리에 맞추어, 원시반본하여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생각했다.

‘태을주를 인류에게 선포하게 한 안내성 성도 쪽에서조차도, 그리고 가을개벽의 지구촌 인종 씨 추리는 개벽대장 박공우 성도 쪽에서도 과연 전혀 알 수 없는 것일까? 두 분은 앞으로 오는 개벽기에 태을주를 쓰고 개벽 역사를 집행하는 주인공들이신데.’
그런데 바로 그 실마리를 푸는 서광이 드디어 비쳐 오기 시작했다.

 

 

 

태을주 주인공이 밝혀진 계기


일찍이 도욕(道慾)이 넘쳐서 상제님의 천상 옥좌를 넘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태을주의 주인공인 김경수 대성사!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조선 땅에서 오직 한 사람, 안내성 성도의 도문에 들어가 평생 신앙을 한 오동정의 김락원(金洛元, 1890∼1973)이었다.

그는 김경수 대성사의 집안 후손으로,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인 1973년 동짓달 28일에, 신앙을 거부하는 자신의 손자 김상용(1941∼ )에게, 그 역사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세 번씩이나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집안 신앙의 비극의 역사를 하나하나 전하였다. 그리고 상제님 신앙을 잘할 것을 이렇게 간절히 당부했다.


 

개벽할 때 자손줄이 다 떨어지는데, 내가 죽어서 천상에 올라가 선관이 된들 뭣하겠냐? 네가 꼭 상제님의 도를 받들어야 한다. 나는 좋은 일을 생전에 못 보고 간다만 너는 앞으로 좋은 세상을 볼 것이다. 네가 진실로 잘 믿으면 함평에 가서 태을주의 뿌리를 알게 될 것이다. 함평이 태을주의 못자리다.”

 

바야흐로 역사의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뻔한 한 구도자의 족적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임박한 가을철의 대개벽기에 병겁으로부터 인류를 살리는 유일한 불사의 약인 태을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 개정 신판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아울러 초판 발간 이후 11년의 세월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개정 신판 최종 교정에서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 소녀 호연과 천지공사의 음양 짝으로, 호연과 함께 상제님을 따라다니며 공사에 수종 든 소년 복남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초판에 실린 백복남 성도


초판에 실린 호연의 증언을 보면, 호연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복남이라는 소년을 만났고, 복남이 호연에게 매양 “오빠라고 해라.” 하니 호연이 “내가 맥없이 뭣 하러 오빠라고 해?” 하면서 심통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또 상제님께서 약방을 여신 이후 명절 때가 되어도 집에 가지 않고 복남이 항상 상제님의 시중을 들었다는 이야기, 상제님께서 칠성 공사 보시러 전주 옥거리 사정에 가실 때 복남에게 화살통을 지우시고 형렬과 각각 말을 타고 가게 하셨다는 이야기, 상제님이 형렬과 더불어 호연, 복남이를 데리고 다니시는데, 복남이는 항상 옷 보따리를 지고 따라다녔다는 이야기 등, 공사에 수종 든 기록이 몇 차례 나온다.

 

호연의 증언을 살펴보면, 복남은 십대 소년으로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보실 때 늘 수종 들면서 밤이면 성도들과 더불어, 또는 홀로 마루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또 상제님이 어천하시고 나서도 계속 구릿골에 남아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 초판의 복남이 바로 백복남(백운기) 성도이다.
새로 밝혀진 증언은 무엇이며 왜 지금까지 그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는가?

 

 

 

 

백복남 성도의 어린 시절


복남은 동서고금의 인간 역사상 가장 신령한 영기를 받아 태어난 인간이다. 그는 천지의 광명한 성신(聖神)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 여덟 달 만에 영이 열리기 시작해서 세 살 때는 완전히 열려 만물의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을 얻었다. 세상 사람에게는 믿어지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는 아들(백복식, 1945∼ )에게 직접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상제님을 모시게 된 삶의 역정을 들려주었다.

 

 

복남은 세 살 때부터 종종 집을 나갔다. 그 아버지가 놀라서 간신히 찾아 데려다 놓으면 불과 며칠도 못 가서 또 나간다. 그 연유를 물으니까 “나는 찾아야 될 사람이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던 중 여섯 살 때 천지에서 밝은 영이 복남에게 상제님을 보여주며 “저분이 너의 아버지이니 꼭 가서 뵈어라.” 하고 알려 준다. 그렇게 해서 고부 객망리까지 찾아가 상제님을 만나지만, 상제님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신다. 그래도 복남이 굽히지 않고 따라 다녔더니 받아 주셨다는 것이다.

 

상제님은 복남을 후천선경 마무리 도수의 한 주인공의 상징으로 세우셨다. 복남은 그 스스로도 자신을 숨기려 하였고 상제님께서도 그의 정체를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게 하시려고,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꾸어 부르며 데리고 다니셨다. 그래서 인수, 운기 등 이름이 열두 가지였다는 것이다.

이 때 상제님께서는 어린 복남을 남달리 아끼시어 “선생님, 다리가 아파요.” 하면 업어 주시고, 손목을 잡고 데리고 다니셨다. 하루는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하셨다 하며, 그 뒤 “너는 귀먹고 벙어리가 돼야 산다.” 하시고 복남의 밝은 기운을 거두셨다.

 

 

평생 천지역사를 행함


복남은 상제님께서 천지대신문을 여신 신축년 가을, 열네 살 때 고향에 가 혼인을 하고 돌아와 어천하실 때까지 천지공사에 꾸준히 수종을 들었다.
상제님께서는 어천하시기 3년 전에 “이제 때가 되어 너는 모든 영을 보아야 한다.” 하시며 복남의 기운을 다시 열어 주시고, “나중에 경만장(안내성)에게 가서 수종 들고 천지역사를 해라.” 하고 명하셨다.

 

이에 복남은, 환갑이 되어 백운동에 들어간 안내성 성도(1867∼1949)를 모시고 9년 천지역사(1929∼1937)에 참여했다. 이 때 “앞으로 너의 이름은 운기(雲起)로 바꾸라.”는 상제님의 명을 받는다. 그리고 직접 상제님께 성령으로 명을 받으며 경만장(안내성 성도)을 도와 모악산 등지를 다니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지에 진지 올리고, 상제님 추수도운의 도성덕립과 창생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의 아내(강야모)가 살고 있는 유각에서 생애를 마친다.

 

 

그동안 백복남 성도의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이유


그동안 복남의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이유는, 우선 초판 도전에서 호연의 증언이 채록되는 과정에서 ‘박복남’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복남의 초기 삶을 알지 못했던 호연의 부분적인 증언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에, ‘복남이는 상제님이 데려다 기르신 시골 출신의 착한 고아 소년’으로만 인식이 굳어졌었다.

그리하여 문공신 성도의 아들 복환 씨가 자리에 앉기만 하면 대화의 서두에 “우리 아버지(문공신 성도)가 동학란 때 황토현 전투에 나타난 오세동이 때문에 큰 충격을 받고 ‘나도 도를 닦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게 되었으며, 마침내 어렵게 그 집을 찾아갔다.”고 한, 그 이야기의 주인공 오세동이 바로 복남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복남과 동일 인물인 후일의 백운기 성도는 ‘안내성 성도의 백운동 교단을 배반하고 나가서 한 판 차린 일종의 난법자’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었기에 등하불명의 인물로 가려지고 말았다 .

 

 

 


 

■ 백복남 성도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 배경

 

 

상제님 도수에 대한 깊은 의혹


사실 제3변 도운 초기부터 늘 궁금한 것은 ‘상제님께서 지천태(地天泰)를 말씀하셨는데, 왜 초기 기록에 여자 성도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혹에 싸여 있다가 초판 마무리 작업 과정에서 극적으로 소녀 호연이를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일 년에 걸쳐 호연의 증언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천지 이치가 간소남(艮少男) 태소녀(兌少女) 합덕인데 왜 소녀만 있는가? 왜 어린 호연이만 있고 남자 어린이에 대한 도수는 이토록 빈곤한가?’ 이것이 의문으로 남아 늘 궁금하였다.

 

 

윤기택 옹의 증언이 불씨가 됨


금년 2003년 9월 25일, 개정 신판 작업의 마무리 과정, 즉 교정이 거의 다 끝나 가는 과정에서, 한평생 백운동 안내성 성도 교단에서 몸담고 신앙해 온 윤기택 옹의 증언에 의해 복남의 정체가 차츰 드러나기 시작했다.

‘평생 경만장을 모시고 상제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내린 백운기가 상제님이 어릴 때부터 손목 잡고 다니고, 업고 다니면서 기르신 인물’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내가 직감적으로 ‘상제님이 기르신 어린 소년이 있구나! 바로 그것이다!’ 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상제님께서 손목 잡고 데리고 다니면서 기르셨다! 호연과 만난 적도 있으며 아홉 살 차이가 난다! 혹시 복남이와 동일 인물 아닌가. 게다가 윤기택 씨는 줄곧 ‘백운기는 난법자가 아닌 가장 영이 밝은 큰 도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9년 천지역사 과정에 대해서도 그 기본 틀을 상세히 증언하였다.
그 후 백운기 성도의 아내인 강야모(1915∼ ) 할머니(89세)를 만났다.

 

 

백운기 성도는 왜 난법자로 알려져 있는가


일찍이 안내성 성도는 9년 천지역사를 마치고 그 제자들에게 “앞으로 백운동은 쑥대밭이 된다. 뒷일을 할 분은 후에 나온다. 우리 일은 뒤에 다른 분이 오시어 이루게 된다.”고 했다. 또한 그를 도와 한평생 상제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내려 9년 천지역사의 신탁(神託)의 전언자 노릇을 한 백운기에 대해 “그는 대허령이라서 다 안다.”고 선포했다. 이것은 백운기가 스스로 “나는 대허령이다.”라고 소문을 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곡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였다. 일부에서는 허령의 참뜻조차 모르고 도적 차원에서 그를 배반하고 손가락질하였다.

 

 

 

복남의 존재 의미


왜 사람들은 그런 내막을 전혀 모른 채, 신령스런 큰 지혜를 가진 백운기를 아직도 오인하고 있는가? 그것은 소년 복남의 원 생애와 그가 받은 천지 도수 세계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백운기 성도는 안내성 성도와 함께 9년 천지역사를 할 때, 천지에 제를 지내고 어린 윤기택을 동자로 삼았다. 후일에 증언자로 내세우려고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 기른 둘째 아들 복식을 데리고 다니며 주요 내용을 다 기억하도록 훈련시키면서 자신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을 전했다. 그러고는 때가 될 때까지 절대 입을 봉하라고 명했다.

 

또 그 아내에게도 입을 봉하라고 하면서 “때가 되면 도인들이 책을 들고서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상제님 믿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거기에 써진 말들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조사하러 다닌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몇 번 대화하는 도중에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여러 번 이 얘기를 반복했다. 자기 남편이 그런 얘기를 했는데 “이제 딱 들어맞았어! 딱 들어맞았다고!” 하고 말이다.

 

최후의 증언자를 만나는 『道典』 개정 신판의 끝마무리 도수 또한 백운기 성도의 사명이다.

그래서인지 백운기 성도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었다. 그 아내의 말에 의하면 죽기 전에 그는 자신에 관한 사진과 자료를 티끌 하나 안 남기고 다 불살라 버렸다고 한다.
제3변 도운 마무리의 맨 마지막 시간대에 그의 아들과 아내를 통해 증언이 된 것은, 도성덕립을 눈앞에 두고 드러나도록, 그렇게 천지도수가 짜진 것이라는 천명에 대한 섭리적인 믿음이 가슴에 솟구칠 뿐이다.

 

 


■ 호연과 복남은 누구인가?

 

 

호연과 복남의 도수 사명


그러면 호연이와 복남이는 과연 누구인가?
복남과 호연은 상제님이 말씀하신 소위 초립동이 도수(막둥이 도수, 말수 도수, 말복 도수)를 구성하는 주인공이다. 상제님이 직접 손을 잡고, 업고 다니시면서 신안을 열어 주신 두 어린이!

그 가운데 복남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영이 밝았으며 어려서 대광명통을 했다.

호연이가 수행해서 열린 것과는 또 다른 경지의 신통이다.

 

호연과 복남!

 

두 어린이는 가을 천지의 간태 합덕(艮兌合德) 도수의 인사화의 두 주인공이다. 태소녀 호연과 간소남 복남의 천지공사 수행의 증언 도수 사명은, 상제님 9년 천지공사의 기틀을 구성하는 추수도운의 결론과 후천 오만년 선경 문화를 여는 핵심 문제를 안고 있다. 호연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복남이 있다.

 

복남의 둘째 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상제님께서 말을 타고 공사 보러 가실 때면 종종 말 세 필을 준비하게 하시어, 한 필에는 상제님이 타시고, 또 한 필에는 김형렬 성도가, 그리고 나머지 한 필에 호연과 복남이 함께 타고 가게 하셨다 한다. 간혹 둘이 다투고 안 타려고 하면 “그럼 안 데려간다.” 하시며, 호연으로 하여금 복남의 등 뒤쪽에 타고서 복남의 허리를 안고 가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전주 옥거리 공사에 대한 복남의 중요한 증언은 개정 신판 인쇄 몇 시간 전에 그의 아들과 손자를 통해 전해졌다.

 

 

 

호연과 복남의 천지공사 참여의 의미


그러면 복남과 호연의 후천 개벽 도수 천지공판장 참여의 의미는 무엇인가?
『道典』을 보면, 7, 80대의 노인으로부터 4, 5, 60대의 중장년, 20대의 청년, 10대 전후의 어린이 성도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의 연령을 상징하는 성도들이 골고루 참여하고 있다. 『道典』은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천상 조화정부의 신명들과 신천지 새 역사를 건설하는 감동스런 새로운 신화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이, 선천 종교문화에는 전혀 없는 어린이 개벽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상제님은 복남과 호연을 통해, 어린이 문화가 바뀜으로써만 선천의 인간 개조와 인류의 새 세계, 후천선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천지의 어린이 문화를 바로잡음으로써 인류의 새 문화를 여는 모든 기초 토대가 닦인다! 후천 개벽 세상을 여는 가장 강력한 상제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

 

 

김호연 성도는 인간 몸 개벽(선매숭자 도수) 공사의 주인공이다. 그 공사는 어린이의 첫 월경 피로써 행해졌다(道典 10:105~106). 마음과 몸을 개벽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대개벽을 넘어 후천선경을 못 건너간다. 다시 말하면 후천 오만년의 인간 문명개벽은 바로 여자의 몸 개벽으로부터 비롯된단 말이다. 지상선경의 호연은 후천 오만년 대 신선의 어머니(大仙母)이다.

호연에 비하면 복남은 직관(直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지고지순한 영능력을 가진 어린이다. 복남은 9년 역사를 할 때, 무릎 꿇고 앉아서, 누워서, 또는 서서 상제님의 명을 직접 듣고 그대로 집행했다. 복남이는 대우주 조화옹 하느님의 성령의 입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 왜 제3변 도운의 『道典』 성편시에 증언이 되는가

 

 

내가 그동안 증언자 수백 명을 만나보고 느낀 소감은, 주요 핵심 증언자들 대부분이 성도들의 가족이나 제자들로서 젊은 시절부터 2, 3대째 신앙하는 이들이며, 한결같이 아직껏 세상에 밝히지 않았던 그들 의식의 심층부에 각인된 내용을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증언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 공사다.

상제님은 천지공사에서 마지막 매듭짓는 주요 도수들을 전부 제3변 도운의 『道典』 성편 과정에서 채록되도록 각 성도들에게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하고 심심황하수(心深黃河水)하라.”는 엄명을 내리시고 공사를 보셨다. 『道典』에 이 공사 말씀이 있잖은가. 『道典』 개정 신판의 탄생 과정은 마치 신천지의 새 우주 개벽, 후천 지상선경을 찾아가는 거대한 보물 지도를 만드는 과정과도 같았다.

 

 


 

■ 『道典』 개정 신판 발간의 역사적 의의

 

 

이제 선매숭자 도수의 주인공 호연과 짝이 되는 남자 어린이, 상제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유일한 성도인 복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실제 『道典』 개정 신판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道典』 개정 신판 발간은, 상제님 천지공사의 무량한 조화 정신으로 새 우주를 개벽해서 대광명의 후천선경 세계를 여는, 인간 개조 도수의 주인공인 호연과 복남의 어린이 도수 문화가 드러나는 첫 출발점이다. 이 두 어린이 도수를 통해 인류가 새로 태어나고 인류의 문명이 본질적으로 대혁신되리라.

 

종도사님의 말씀과 같이 『道典』은 인류의 희망과 꿈을 담고 있는 천지의 혼이요, 후천 오만년 전 인류의 진리 교과서이다. 또한 이 세상 둥글어 가는 조화주 하느님의 비결서이기도 하다. 상제님께서 “개명장(道典 교과서)이 나는 날에 일꾼들이 일제히 개심한다.”고 노래하셨다.
『道典』 개정 신판 발간을 계기로, 지구촌의 일꾼들 모두 신앙의 대혁명을 통해 가을 천지 대개벽을 앞두고 절대 신앙의 명제를 사무치게 깨쳐서, 후천 조화선경의 신문명을 건설하는 성숙한 천지 사역자가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인간의 삶과 대도의 길

 


 

■ 인간 삶의 목적과 시간론

 

인간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은 궁극적으로 참마음과 영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천국의 문으로 오를 수 있다. 따라서 한마디로 인간은 천지의 가을철에 들어서서 성숙한 삶을 맞이하기 위해 산다. 하늘땅에 살고 있는 인간과 신명 모두가 이 한 가지 우주의 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고 있다.

 

그러면 이 우주는 왜 태어났으며, 왜 한순간도 멈춤 없이 변화해 가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인생을 낳고 길러서, 이 우주가 본래부터 품고 있는 한 가지 꿈을 성취하기 위해 존재한다.

 

진리의 모든 근원적 의혹은 시간의 수수께끼를 바르게 앎으로써만 풀 수 있다. 진리의 핵심이 우주론이며, 그 결론은 시간론이기 때문이다. 시간론은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깨달음의 첫 관문이다.

바로 이 진리의 첫 문을 온 인류가 통과할 수 있도록 활짝 열어 주신 분이 증산 상제님이시다. 상제님께서 ‘우주의 모든 변화에 대한 깨침은 대자연의 시간의 구성 틀을 아는 데 있다.’ 하시고, 그것을 간결하게 네 글자로 묶어서 정리해 주셨다. 그것이 곧 생장염장·춘하추동의 원리이며, 구체적으로는 우주가 인간을 낳아서 기르고 거두는, 인간농사 짓는 사계절의 시간 문제다.

 

상제님은 당신께서 선천 세상을 문 닫고 가을철의 새 우주 역사를 여시는 선후천 우주일년 개벽의 시간 틀을 밝혀낸 소강절의 공덕을 칭찬하시고, “이것이 곧 내 비결이라.” 하며 인정해 주셨다. 따라서 진리의 눈, 시간론의 열쇠는 오직 상제관의 깨침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상제님은 왜 오셨는가?

 

증산 상제님은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시간의 전 역사를 주재하고 계시는 대우주의 조화옹 하느님이시다.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명의 전 우주 생명계를 다스리시는 삼계대권의 주재자이시다.
그러면 상제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상제님은 서른한 살 되시던 해(道紀 31, 1901)에, 선천 성자들이 이루지 못한 궁극의 도통문, 이 세계를 한마음 되게 할 수 있는 중통인의의 문을 활짝 여셨다. 그리고 가을 문화 시대의 인간의 새 역사를 선언하셨다.

상제님은 이 인류 역사의 새 판 짜기의 거룩한 성업을 지상에 이루시기 위해 동방의 이 땅에 오셨다. 그 새 판 짜기가 바로 9년 동안 이루신 새 우주 창조의 9년 대 역사, 천지공사이다.

 


 

■ 천지공사의 근본정신, 원시반본

 

그러면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 정신의 근본은 무엇인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가을은 만유 생명이 진리의 근원, 생명의 뿌리로 돌아가는 때다.

상제님은 인간의 생명이 성숙하느냐, 소멸하느냐 하는 역사상 가장 큰 대변혁기인 가을개벽을 앞두고 인간이 저지르는 큰 죄는, 자신의 뿌리인 선령신을 부정, 망각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라 하시며 배은망덕을 가장 불의한 죄로 경계하셨다.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날 인간의 전 역사를 불의와 배은망덕으로 타락하게 한 모든 문제를 바로잡는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 원시반본의 도다. 원시반본은 인간의 근원과 역사의 뿌리를 찾는 생명의 진리다.

 


증산도는 인류의 시원 문화 신교의 완성

 

상제님은 유불선 서교 이전의 본래 시원문화를 신교(神敎)라고 하셨다. 신교문화의 원형 정신은 이 우주를 낳고 살아 있게 하는 우주 속의 대 생명의 근원인 삼신(三神)을 드러내어 삼신의 가르침과 그 손길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인간 문화의 시원태요 뿌리인 신교로부터 줄기인 유불선 서교 문화가 탄생했다. 상제님은 이를 창도한 동서 성자들에 대해 “공자, 석가, 예수는 내가 쓰기 위해 내려보냈노라.”(道典 2:40:6)고 하셨다.


 

이제 가을철의 대통일과 성숙의 문화권으로 들어서는 신천지의 개벽기, 전 우주사에서 가장 급박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상제님이 몸소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제3의 가을철 문화를 열어 주셨다. “신축년부터는 내가 친히 인간과 신명 세계를 다스린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가을개벽기에 인간이 열매를 맺느냐, 낙엽이 되어 영원한 죽음을 맞느냐 하는 것은 선령신의 음덕과 나의 구도 의지에 달려 있다. 원시로 반본하는 가을 천지의 이법은 뿌리를 부정하는 환부역조의 대죄를 결코 용서치 않는다.


 

또한 한민족은 동방 문화의 뿌리, 신교의 혼을 일군 주인공이다. 한국인은 동방 군사부 문화의 주인이었다. 이제 원시반본의 원리로 상제님이 신교 문화의 옛 고향 땅에 강세하심으로써, 온 인류가 문화의 원 뿌리인 신교의 뿌리 신앙, 근원 신앙인 삼신 상제의 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 삶의 길, 보은과 해원·상생

 

오늘날 인류가 사는 유일한 길은 상제님이 내려 주신 가을의 새 문화 새 진리를 만나, 천하대세의 근본을 볼 수 있는 성숙한 지혜를 얻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해 생활 속에서 행하는 실천덕목이 보은(報恩)과 해원(解寃)·상생(相生)의 삶이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일체의 상극 요소가 가을의 천지로 갱생되어 무너져 내릴 때, 이 세계와 내가 새 생명의 질서인 상생의 세계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그것이 후천의 조화선경 세계이다.

 

9년 동안 이 땅에서 이루신 조화주 하느님이신 상제님의 우주적 계획이 바로 후천 오만년 지상선경 낙원의 역사 이정표이다. 그것이 상제님께서 “내가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다.”(道典 5:414:3)고 하신 바, 천지도수(天地度數)의 세계다.


 

따라서 당신님이 여신 무상의 도통세계와 조화주 하느님으로서 쓰신 무궁한 조화권을 바르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상제님이 우주의 대신명들을 거느리고 행하신 새 우주 창조의 가을개벽 이야기, 대도 진리의 궁극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다.

 


 

■ 상제님의 무궁한 천지 조화권

 

그러면 상제님께서 임의용지(任意用之) 하시는 조화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상제님의 조화권은 도권(道權)과 신권(神權)으로부터 나온다. 도권은 상제님의 도통 경계에서 부리시는 조화권이고, 신권은 대우주 신명계의 주재자로서 자유자재로 신명을 부리시는 권능이다. 상제님은 당신의 삼계 대권을 이 도권과 신권의 결합 속에서 집행하시는 것이다.


 

이 상제님의 신도적 위격과 도통의 경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체험하지 못하면, 당신님의 무궁한 조화 세계의 참된 경지와 실상을 결코 헤아릴 수 없다. 하늘 보좌에 계신 천주가 아닌, 인간의 역사 속에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인간의 역사 속에 직접 개입하시는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 추운(秋運)을 맞이하여 동방 땅에 오시어 천하의 큰 운수를 정하셨다.

그 정천하(定天下)의 조화 세계를 인사로 성사재인하는 오늘의 상제님 일꾼들의 지고한 사명은, 바로 인류가 학수고대해 온 후천 오만년 조화선경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다.

 


 

■ 상제님을 모시는 자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상제님을 모셔야 하는가?

상제님은 당신의 조화권으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으신 오만년 운수를 오직 일심 가진 자에게만 기운을 붙여 쓰신다고 하셨다. 상제님은 일심 가진 자만 기운을 붙여 쓰신다!


상제님은 또 “내가 오만년의 천하 운수를 정하였으니, 너희는 오직 간절하게 기도하고 정심(正心)으로 잘 닦아서 그 운수를 잘 받아 누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사는 길은 오직 천지일심이다.

상제님 모시는 정법을 『道典』을 통해서 잘 깨쳐 보라.

가을 문화를 열어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증산 상제님의 도를 받들기 위해서는, 생사를 넘어선 참마음과 진리 중심의 삶이 아니면 결단코 참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 인생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가? 참 진리를 만나 내 영혼이 성숙되는 데 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오직 가을철의 대개벽기에 인간으로 오시어 인종씨를 추수하시는 상제님의 대도 진리를 만나는 데 있다.

 


 

■ 증언자들의 회한과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상제님의 천지공사 이래 지난 100년 도운사의 산 증언자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정분이 깊어감에 따라 또 다른 감회에 젖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노년의 인생에서 오는 고독감과 함께 대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 상제님의 어린 시절, 상제님의 훈장으로 왔다 그냥 돌아간 황 훈장의 후손 황공규는 장수군의 깊은 산골에 머물고 있었다. 그를 보니 그 영혼이 점점 천상으로 멀어져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날 시골집에서 그가 들려준 정다운 도담을 잊을 수 없다.

 

또 가장 증언을 듣기 어려웠던 문공신 성도의 드러나지 않은 공사 내용과 그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도 정확한 증언을 정겹게 들려준 노인 김일빈! 장수군 연평리 신기 마을에서 홀로 외롭게 투병 생활을 하던 그와 밤 늦게까지 도담을 나누다가, 시골집 마당에서 헤어질 때 본 회한에 찬 그의 얼굴과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상제님의 명으로 3년 동안 앉은 자리를 지키며 밤낮 수행에 생사를 걸었던 경만장 안내성 성도의 생애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무릎에서 자라며 말씀을 들어온 안정남 옹도 서해바다 격포항에서 여러 번 만났다.


 

하루는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장장 일곱 시간에 걸쳐 도담을 나누었다. 그와 작별을 하고 해변 모래사장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해맑게 웃는 아기의 눈동자 같은 서설이 쏟아져 내린다. 마치 하늘에서 기쁨의 춤을 추면서 위로와 축복을 해주는 것 같았다.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불빛을 비추며, 깊은 어둠에 싸인 겨울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때 상제님께서 노심초사하시면서 『道典』 작업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천명에 대해 새롭게 결의한 그 날 밤의 감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 『道典』은 천지의 혼

 

『道典』은 천지의 혼이요 인류의 대망의 꿈을 담고 있는 진리의 보물단지이다.


따라서 『道典』을 읽을 땐

첫째, 있는 그대로를 보라.
둘째, 취해서, 집중해서 밤을 새워 읽으라.
셋째, 각 편의 내용을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보라.
넷째, 상제님의 성도, 공사 장소, 인명, 지명에 대한 정명(正名) 의식과 연대기적인 시간 의식을 갖고 읽으라.
다섯째, 상제님 진리의 핵심 도수 명제를 잘 파악하면서 보라.

 

무엇보다 생동감 있는 현장 육성 도훈을 자주 들으며 많이 읽고, 혼이 되어 읽어서 바짝 다가선 대개벽에 눈을 떠야 한다.
『道典』 속에서 인류 생명의 참 구원자이신 상제님 태모님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 태을주를 많이 읽어야

 

지금 인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불안감이 더해가고, 이 세계는 점점 혼란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앞으로 진실로 상상할 수 없는 대환란이 닥친다. 그것은 우주일년에서 가을 천지의 섭리로 오는 것이다. 때문에 누구도 막을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일찍이 ‘공자, 석가, 예수를 내가 보냈다.’고 하신 증산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태모 고수부님과 함께 병든 천지를 뜯어고치시고, 가을 천지의 숙살 기운으로 오는 괴병에서 전 인류가 살아날 법방을 전해 주심은 물론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다.

 

남북 상씨름 대전과 괴병’이 지구를 흔들기 전에 ‘가을개벽의 전령자’로 시두가 다시 대발한다. 이 개벽의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을 극복하는 태을주는 신도(神道)의 성약(聖藥)을 받아 내리는 구고천존(救苦天尊)의 대신주문(大神呪文)이다. 상제님과 태모님은 태을주에 무궁한 새 생명의 복록과 수명이 들어 있다고 하셨다. 오직 태을주를 읽음으로써만 가을 추살 개벽의 ‘의통목’을 넘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증산도 『道典』 개정 신판 발간을 계기로, 참 진리를 갈구하는 지구촌의 인연 있는 창생들 모두가 크게 깨져서, 참 하나님이신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께서 열어 주신 새 우주의 진법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상생의 개벽 문화를 지구촌 만방에 선포하며, 나아가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진정한 개벽도꾼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개명장을 여는 계미(癸未, 道紀 133, 2003)년
冬至 致誠節을 맞이하여
陰曆 11月 17日 새벽

甑山道 宗正 安 耕 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무료책신청 여기를 꾹 눌러주세요. ^_^

클릭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

 

 

증산도 열어나가는 상생 후천개벽 !

 

 

태을주 수행의 4대 권능과 효과

  

 

 

 

 

 

 

 

 

 

태을주의 4대 권능 - 치유, 깨달음, 보호, 구원

 

 

태을주는 인간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온갖 병을 치유한다.(Healing)

태을주를 지극정성으로 읽으면 생명의 원기元氣가 내 몸에 흘러들어와 몸안의 병기(탁기)를 몰아낸다. 때문에 태을주를 일심으로 읽게 되면 자신의 병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의 병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태을주는 인간을 궁극의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Enlightenment)

태을주는 억겁에 쌓인 마음세계의 모든 악업惡業과 장애를 녹이고 무너뜨리며, 한恨을 정화시켜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태을주를 읽으면 심령心靈이 밝아져 광명현상을 체험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되며, 나아가 생명의 뿌리로 원시반본原始返本할 수 있다.

 

 

태을주는 인간을 크고 작은 재난으로부터 보호한다.(Protection)

바른 마음으로 청수를 올리고 태을주를 꾸준히 읽으면 크고 작은 세상일이 조화롭게 끌러진다. 또 사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설사 불가피한 경우 큰 사고를 당하더라도 기적적으로 살아남거나 경미한 부상 정도에 그친다. 태을주 도기道氣가 보호막을 형성하고 신명이 음호陰護를 해주기 때문이다.

 

 

태을주는 인간을 우주의 가을세상으로 인도한다.(Saving Life)

증산 상제님은 새하늘 새땅을 여는 개벽공사를 집행하시어, 괴질병겁으로 인류를 최종 심판하시고, 개벽기 구원의 법방으로 태을주와 의통을 전해주셨다. 개벽기에는 그 누구도 태을주를 읽어야 가을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

 

 

“훔치 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 태상종도사님 태을주 듣기

 

 

     <- 종도사님 태을주 듣기

 

 

   <- 단체 합송 태을주 듣기

 

 

태을주 수행이 진정한 힐링[healing]이요 웰빙[well-being]다.!

 

“태을주 수도를 잘 하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님 말씀)

 

천하생명을 태을주(太乙呪)로 살린다. 태을주로 천명(天命)을 이루느니라.”

(증산도 도전 8:101)

 

태을주 공부는 신선(神仙) 공부니라. (증산도 도전 7:75)

 

만사무기 태을주(萬事無忌 太乙呪) 만병통치 태을주(萬病通治 太乙呪)

소원성취 태을주(所願成就 太乙呪) 포덕천하 태을주(布德天下 太乙呪)

광제창생 태을주(廣濟蒼生 太乙呪) 만사여의 태을주(萬事如意 太乙呪)

무궁무궁 태을주(無窮無窮 太乙呪)

태을주는 여의주(如意珠), 여의주는 태을주니라. (증산도 도전 7:75)

 

훔치’는 천지부모를 부르는 소리니라. 태을주를 읽어야 뿌리를 찾느니라.

(증산도 도전 7:74)

 

태을주(太乙呪)는 심령(心靈)과 혼백(魂魄)을 안정케 하여,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하며 천하 창생을 건지는 주문이니라. (증산도 도전 11:180)

 

 

수행, 물 이렇게 변화시킨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처럼, 지극한 기도는 인간의 마음뿐 아니라 사물도 변화시킨다.선한 마음을 품고 기도 드리면 좋은 기운이 응한다. 이것은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청수(정화수)를 올리고 지극정성으로 태을주 기도를 하면, 그 물은 어떻게 변화될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책의 저자, 에모또 마사루 씨에게 ‘태을주 물 결정 사진’ 촬영 의뢰

이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일본의 에모또 마사루 씨에게 ‘물 빙결(氷結) 결정사진’ 촬영을 의뢰했다.

촬영을 위해, 도기 133(2003)년 1월 13일, 증산도 수원 매교도장의 성도 10여 명이 청수를 올리고 약 2시간 정도 태을주를 읽으며 기도를 했다. 그 다음 날 그 청수를 비행기편으로 일본에 있는 IHM종합연구소(소장 에모또 마사루)로 보내 물 빙결 결정 사진을 촬영했다.

 

 

▶ 한국민요 ‘아리랑’을 들려주었을 때의 물의 결정체

“아시다시피 한국의 민요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헤어져 가는 연인끼리의 이별가. 떠나는 남자를 뒤에서 전송하는 여인이 애절하게 가슴 앓이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결정이지요.” (에모또 마사루)

 

▶'너를 죽이겠다'라는 문자를 보여주었을 때

“물에게 ‘너는 나를 괴롭게 해. 너를 죽여 버리겠어’라는 문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정사진이 찍혔습니다. 보세요. 마치 복면을 쓴 어떤 사람이 좀 더 작은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죽이기라도 하듯 주먹질을 하는 것 같지 않나요? 물이 살기(殺氣)를 띄고 있다고 할까요? 이렇게 살기 받은 물을 마시면 상대방은 어떻게 될까요? 말은 그대로 에너지가 되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에모또 마사루)

 

물, 태을주 기도에 정육각형으로 응답하다

 

태을주 기도을 받은 물의 빙결 결정은 아름다운 정육각형으로 촬영되었다.

 

약 2시간 정도 태을주 기운을 받은 청수물이 완전수(水)에 가까운 형태인 정육각형으로 아름답게 결정화된 것이다.

 에모또 씨는 “물의 결정체 사진을 볼 때는 육각형이 뚜렷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또 그가 운영하는 일본의 IHM종합연구소에서 촬영을 담당한 엔지니어는, 태을주 기도를 받은 물의 빙결 결정를 보고 ‘참으로 보기 드문 사진’이라고 말했다.

 

 

태을주 기도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고 건강을 증진시킨다

태을주 기운이 깃든 육각형 모양의 물은 인체의 부조화를 바로잡아 주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물은 답을 알고있다』(에모또 마사루 저, 양억관 역, 나무심은 사람, 2002) 책에 게재된 물 사진들을 비교 검토해 보면, ‘엄마의 약손’이라든가 ‘지혜’나 ‘우주’라는 글자에 응답한 물 사진들이, 태을주 기운을 받은 물사진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도 태을주에는 강력한 치유력(healing power)과 깨달음의 기운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태을주 수행의 실험적 효과

 

●●● 태을주 수행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먼저 태을주 수행의 파동을 받은 물은 어떻게 변할까? 2003년 1월 13일, 증산도 수원 매교도장에서는 10여 명의 증산도 신도들이 청수를 떠놓고 2시간 동안 태을주 수행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청수를 밀봉하여 비행기 편으로 일본에 있는 IHM종합연구소(『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또 마사루)에 보내어 물 빙결 결정 사진촬영을 의뢰했다.

 

그 결과 태을주 주문의 파동을 입은 물의 빙결 결정이 완전수에 가까운 정육각형으로 아름답게 나타났다. 그 모양은 ‘엄마의 손’, ‘우주’, ‘지혜’라는 글자에 응답한 물결정 사진과 유사했다.

 

 

 

 

특히 태을주 주문 소리를 들은 물의 결정은 중앙의 육각형이 그 어느 결정보다도 반듯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나타났다. 촬영을 담당한 기사는 이 결정을 보고 ‘참으로 보기 드문 사진’ 이라고 말했다.

 

 

●●● 태을주의 효과는 혈구검사에서도 증명되었다.

 또 다른 실험도 해보았다. 평소의 일상적인 상태에서 혈구를 검사했다. 적혈구의 모양이 울퉁불퉁하고 또렷하지 않으며 혈액도 혼탁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태을주 수행을 한 뒤 다시 혈구를 검사했다. 그 결과 적혈구 모양이 생생해지고 또렷해졌다. 그리고 혈구도 상당히 맑게 나타났다.

 

 

 

●●● 오오라컴으로도 태을주 수행 전후를 비교해 보았다.

 오오라컴 촬영에서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태을주 수행을 하기 전에 오오라컴 촬영을 해보았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많이 나타났다. 이는 건강이 나쁜 건 아니지만 몸이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표시다.

 

 1시간 정도 태을주 수행을 한 뒤 다시 촬영을 했다. 전체적으로 노란빛과 백색 오오라로 바뀌었고 머리 위로 생명선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는 피로가 가시고 생명 에너지가 활발해졌음을 보여준다. 태을주 수행은 길게는 30분, 짧게는 5분∼10분만 읽어도 색깔이 확연히 달라짐을 볼 수 있다.

 

 

 

태을주 수행의 효과에 대해 안경전 종도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태을주를 읽으면 상제님 말씀 그대로 신神이 밝아진다. 참선을 하든 우리 전통의 국선도를 하든, 원래 석가모니가 공부를 해서 도통한 남방불교의 비파사나 공부법으로 하든, 다 똑같이 정신이 맑아지고 공부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이고, 그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공부법이 바로 태을주 수행법이다.

 

영국, 미국 등지에서 열린 뉴 에이지 엑스포 행사장에서 현지인들에게 태을주를 읽어 주었을 때 겪은 그들의 체험담이나, 서구의 증산도 신도들이 평소에 체험한 태을주 수행 얘기를 들어보면, 정성껏 태을주를 읽으면 빠른 사람은 5분, 보통 30분, 한 시간 정도면 광명현상을 체험한다고 한다. 이렇게 속히, 강력한 기운이 열리는 공부는 처음 해 본다고, 이런 주문은 난생 처음 읽어본다고, 신비스런 체험 얘길 많이 한다. 태을주 수행은 내 몸의 신을 밝혀 나의 신성을 즉각적으로 우주의 신성과 일체 되게 하고, 강력한 신권과 도력을 발동케 한다.”

(道紀 131년 5월 12일 서울 대강연회 말씀)

 

 

 

 

태을주 수행이 진정한 힐링[healing]이요 웰빙[well-being]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진리의 해답을 꼭 찾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무료책신청 여기를 꾹 눌러주세요. ^_^

클릭 ->

Posted by 일신우일신 도생

댓글을 달아 주세요